아내에게 보내는 6년의 중간 보고서

영원하지 않기에 더 소중한 시절인연(時節因緣)

by 투박한 정리

네가 떠난 지 어느덧 6년이 흘렀다.

너와 내 품에 쏙 들어오던 작은 우리 아들 '웅이'는 이제 나보다 악력이 세진 중학교 3학년, 든든한 전우(戰友)가 되었다.


가만히 돌이켜보니, 내가 그동안 숱한 밤을 지새우며 썼던 이야기들이 사실은 너에게 보여주기 위해 꼼꼼히 기록해 둔 '6년 치 중간 보고서'였다.


내가 '투박한 정리'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는 벅찬 현실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웅이를 잘 키워낸 나 자신을 향한 칭찬이었고,

둘째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조심스레 '어떤 상황이든 가족을 먼저 챙겨보라'고 권유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지막 셋째는, 바로 너에게 '너 없이도 내가 이렇게 웅이를 잘 키워냈다'고 보여주고 싶은 자랑 섞인 보고서였기 때문이다.


세상의 흔한 사별이야기처럼 눈물샘을 자극하는 애절한 연서(戀書)를 쓸 생각은 없다.

그것은 우리의 진짜 모습이 아니니까.


미화할 생각도 없다.

우리는 참 많이 달랐다.

우리는 서로의 무의식이 갈구하는 바를 온전히 채워주지 못했고, 그 다름 속에서 수많은 생채기를 주고받았다.

네 안의 어린아이는 완벽한 남편을 바랐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버거워했다.

내 안의 어린아이 역시 완벽한 아내를 바랐고, 너는 삶의 모든 일을 혼자서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힘들어했다.


그래서 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내 안에는 극장판 멜로 영화 주인공들처럼 절절한 슬픔이나 애틋함만이 자리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원망스럽고, 밉기도 했다.

남들처럼 "사랑한다. 미치도록 보고 싶다."는 말조차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엉킨 감정의 실타래를 풀고 싶어 심리학과 철학, 영성을 그토록 파고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과정 덕분이었을까.

네가 떠난 후 나는 오히려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지 않고 평안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음에 대해 깊이 고찰하며 내 마음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다가 불현듯 한 가지 질문에 다다랐다.


'내가 너에게 지금 진짜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


사랑해? 미안해? 아니었다.

내가 너에게 가장 갈구했던 말은 이거였다.


"고생했어. 많이 힘들었지. 참 잘했네."


그 평범한 문장을 떠올리는 순간, 단단하게 굳어있던 내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지난 6년 동안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대단하다.", "혼자서 아를 참 잘 키워냈다."라고 수백 번 칭찬해 주었을 때는 그저 고마울 뿐, 마음의 울림은 없었다.

그런데 상상 속에서 네가 건넨 그 한마디는 내 존재의 밑바닥을 강하게 흔들었다.


'아! 나는 그토록 너의 인정이 고팠구나!'


그렇게 밉고 원망스러웠던 너의 인정이 왜 이토록 간절했을까.

가만히 돌이켜보니,

너는 나의 20대 젊은 시절, 나의 가장 치열했던 선택, 나의 가족, 그리고 나의 미래까지 내 삶의 모든 궤적에 촘촘히 연결된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나의 모든 시절을 함께한 너에게 '인정받는 남편'이고 싶었던 것이다.

나 역시 너에게 온전히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었던 연약한 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니, 거짓말처럼 널 향한 미움과 원망이 눈 녹듯 사라졌다.

불타는 열정이나 애절한 사랑은 아니었을지라도, 너는 내 삶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고정 불변의 사람이었다.


시절인연(時節因緣).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고 한다.

비록 우리의 인연은 남들보다 짧게 끝이 났지만, 영원하지 않다고 해서 그 의미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영원하지 않기에, 우리가 함께 부딪히고 빚어냈던 그 시간들은 내게 더욱 소중하다.

우리가 주고받았던 그 숱한 찰나의 시간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음은, 지금 내 곁에서 이토록 씩씩하고 단단하게 자라난 우리 아들의 모습이 온몸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녀석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통과해 온 그 모든 시절의 가장 완벽한 증거이자 눈부신 결실이니까.


오늘 내가 결재를 올리는 이 서류는 겨우 6년 차 '중간 보고서'에 불과하다.

앞으로 웅이가 교복을 벗고 성인이 되는 날, 스스로의 힘으로 밥벌이를 시작하는 날, 그리고 훗날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는 날까지...

나는 이 양육 보고서이자 내 씩씩한 생존 보고서를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내 삶의 시계가 다하여 널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그 수많은 일상의 낱장들을 묶은 두툼한 '최종 보고서'를 네 앞에 당당히 내밀겠다.


투박하고 부족한 남편이었지만, 네가 남겨두고 간 우리의 아들 웅이만큼은 내가 이렇게 단단하고 씩씩하게 키워냈다.


그러니 하늘에서 이 중간 보고서를 먼저 읽고 있다면, 거기서 나에게 한마디만 해다오.

고생했다고. 우리 아들 참 잘 키워냈다고.

KakaoTalk_20260319_200022191.jpg 나의 6년 치 중간 보고서가, 그곳에 무사히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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