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깨가 훌쩍 위로 솟아오르던 날

보호자에서 전우(戰友)가 되어가는 시간

by 투박한 정리

얼마 전,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와 키가 엇비슷해진 아들과 나란히 걷다가 무심코 녀석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예전에는 어깨동무를 하면 아이의 어깨는 내 겨드랑이 안쪽으로 들어와 자연스럽게 감겼다.

그것은 어깨동무라기보다, 여차하면 아이를 끌어안아 지키려는 일종의 방어막 같은 포즈였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훌쩍 자란 키 때문에 내 어깨가 턱없이 위로 솟아올랐고, 팔 끝에 닿은 녀석의 어깨는 제법 묵직하고 단단했다.

장난스레 내 체중을 살짝 실어 기대 보았지만, 녀석은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걸음을 옮겼다.

서로 손을 맞잡고 힘주기 놀이를 할 때도 예전엔 내가 힘을 조절해 줘야 했는데, 이젠 내 손뼈가 뻐근할 정도로 녀석의 악력이 매서워졌다.


'너, 언제 이렇게 단단해졌니!'


단단해진 것은 겉모습만이 아니었다.

아이의 생각과 내면도 굵은 뼈대를 갖춰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자신의 불만을 그저 고집이나 떼로 표현했다면, 이제는 제법 논리적인 근거를 댄다.

가끔 학교에서 겪은 불합리한 규칙이나 선생님들의 지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면, 상황을 다각도로 고려하고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짚어내는 모습에 속으로 놀라곤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가장 낯설고도 뭉클하게 만드는 것은, 녀석이 나를 '보살핌의 대상'으로 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빠 배 나왔다고 놀리면서도, 식사할 때는 슬쩍 자신의 반찬을 내 밥그릇에 얹어주며 "아빠, 더 먹어." 하고 챙긴다.

내가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 "언제 들어와?", "누구야?" 하며 꼬치꼬치 캐묻고, 주말에 할아버지 댁에 자러 갈 때면 나에게 "혼자 있다고 늦게 자지 말고 일찍 자라"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어디 그뿐인가.

이제 녀석은 가족이라는 톱니바퀴의 당당한 축이다.

자신의 일정을 먼저 내밀며 가족의 주말 계획을 함께 조율하고, 조부모님과 식사를 하러 가면 자연스럽게 어른들을 먼저 챙기고 살핀다.


그 모든 변화를 지켜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지난 6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 보호막 아래 숨어 비를 피하던 꼬마는 이제 없다.

아이는 어느새 스스로 굵직하고 단단한 기둥이 되어, 나와 함께 이 울타리를 떠받치기 시작했다.


아마 아이 스스로는 자신이 우리 가족의 기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직 체감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다 어른'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우리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 훌쩍 어른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 것처럼, 녀석도 그저 자신의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며 아주 자연스럽게 든든한 기둥으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부모들이 내 아이가 훌쩍 자랐다는 사실만을 알아차릴 뿐 아이의 미세한 성장을 놓치는 것 같다.

마냥 품 안의 어린아이로만 여기거나, 오직 학업이라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가다가 문득

'언제 이렇게 컸지?'

하고 놀라곤 한다.

마치 산 정상을 오르기 위해 앞만 보고 걷느라, 길가에 피어난 아름다운 풍경들을 다 지나쳐버리는 등산객처럼 말이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성장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아이의 성장을 미세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부모의 특권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혼자가 되지 않았다면 남들처럼 그렇게 살았을지 모른다.

아내의 몫까지 채우기 위해 싱글대디로서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해야만 했던 지난 시간들.

그 시간은 분명 고단하고 벅찼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덕분에 나는 아이가 이토록 눈부시게 단단해져 가는 '과정'을 아주 가까이서,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볼 수 있었다.


아픔이 내게 남겨준, 내 삶의 가장 크고 벅찬 행운이다.


어쩌면 몇 년 뒤에 아들은 나보다 훨씬 더 튼튼하고 높은 기둥이 되어, 세상의 비바람으로부터 나를 쉬게 해 줄지도 모르겠다.


어깨에 둘렀던 팔을 내려 아이의 손을 툭 쳤다.

내 손끝에 닿은 아들의 팔뚝이 듬직했다.

우리는 이제 일방적으로 지켜주고 보호받는 부자(父子) 관계를 넘어, 삶이라는 진지를 함께 지켜내는 든든한 전우(戰友)가 되었다.

KakaoTalk_20260315_232413142.jpg 내 품에 쏙 들어와 보호받던 아이는 이제 나를 받치는 기둥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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