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떤 함수(Function)니?

아이의 성적표를 나의 성적표로 착각했던 날들의 반성문

by 투박한 정리

"게임 좀 그만하고 공부 좀 해!"

"숙제는 다 했어?"

"아휴... 그렇게 공부해서 어쩌려고 그래!"

내 입에서 나가는 말들이 칼이 되어 아이에게 꽂히던 시기가 있었다.


저녁 시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거실이나 방에서 세상 편한 자세로 스마트폰 게임을 붙들고 있는 아이의 등짝을 볼 때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단순히 공부를 안 해서가 아니었다.

책상에 앉아있는 태도, 문제집을 대충 풀고 넘기는 습관, 성적에 대해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그 천하태평함이 못 견디게 싫었다.

특히 부모님이 시키는 건 착실히 해냈고, 평생을 모범생처럼 생활하며 '수학 교사'가 된 나로서는 도무지 아이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안 그랬는데, 쟤는 대체 누굴 닮은 거야?'

이 마음들이 모여 결국 화산처럼 터지곤 했다. 아이를 다그쳤고, 짜증을 냈고, 때로는 소리를 질렀다.


"네가 해야 할 건 최소한으로 해야지!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그 흔해 빠진 레퍼토리를 읊으며 나는 내 분노가 정당하다고 믿었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니까. 엄마 몫까지 내가 더 신경 써야 하니까.


하지만 어느 날, TV에서 육아 상담 프로그램인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던 중이었다. 화면 속 부모를 보며 '저 부모는 왜 저렇게 아이를 이해 못 할까?' 혀를 차던 순간, 서늘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잠깐... 혹시 나도?'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는 진짜 이유가... 정말 아이의 미래 때문일까?

솔직히 인정해야 했다. 그것은 '나의 성적표' 때문이었다.


싱글대디로서 아이를 혼자 키운다는 것.

세상 사람들에게 "엄마 없이 컸어도 반듯하게 잘 자랐네", "아빠가 교육을 참 잘 시켰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나의 인정 욕구.

반대로 아이가 성적이 떨어지거나 삐끗하면, 그 모든 비난의 화살이 "역시 엄마가 없어서..."라는 말로 내게 돌아올까 두려웠던 나의 방어 기제.

나는 아이가 받아온 '성적표의 점수'를,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양육 점수'로 치환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아이는 나름대로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었고, 자신의 성적에 크게 좌절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객관적으로 보면 학업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꽤 상위권이었다.

그런데도 혼자 조바심을 내며, 아이라는 그릇에 내 욕심을 쑤셔 넣고 있었다.


수학에는 함수(Function, f(x))라는 개념이 있다.

y=f(x)에 x라는 값을 넣었을 때, y라는 결과가 나오는 일종의 틀.

나는 내 아이가 나와 '같은 함수'라고 착각했다.

내가 공부했을 때의 방식(x)을 넣으면, 당연히 내가 기대하는 결과(y)가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이는 나와 전혀 다른 공식으로 설계된 함수였다.


우리 어른 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아이는 각기 다른 형태의 함수이다.

어떤 아이는 y=x 처럼 넣는 만큼 바로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함수'이고

어떤 아이는 y=x² 처럼 처음에는 미비하다가 나중에 폭발하는 '대기만성형 함수'이며

어떤 아이는 '성적'이라는 y축보다는 '행복'이라는 z축으로 뻗어가는 '입체 함수'일 수도 있다.


"같은 입력값을 넣는다고 해서, 모든 아이에게서 같은 결괏값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결과 같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모두 같은 과정을 겪는 것도 아니다"


이 명제(Proposition)를 받아들이고 나니, 비로소 아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성적표라는 종이 뒤에 가려져 있던, 진짜 내 아들의 모습이.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딛고,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게임을 즐기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밥을 먹고, 학교에 지각 한 번 안 하고 등교하는 그 '평범한 기적'.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이미 제 몫을 다하고 있었는데, 나는 대체 무엇을 더 바랐던 걸까.


이제 나는 아이 하교 후의 풍경을 바꾸기로 했다.

잔소리 대신, 현관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린다.

"다녀왔어요" 하고 무뚝뚝하게 들어오는 중학생 아들.

변성기가 와서 굵어진 목소리, 거뭇해진 콧수염.

나는 그 녀석의 앞을 가로막고 팔을 벌린다.


"한 번 안아보자. 우리 아들."


사춘기 아들에게 아빠의 포옹이란, 피하고 싶은 수행평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녀석은

"아, 왜 이래 진짜~"

하며 몸을 비틀고 쑥스러워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매몰차게 뿌리치지는 않는다.


그 어정쩡한 0.5초의 포옹.

내 가슴에 닿았다 떨어지는 아이의 체온.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마음속으로 주문을 왼다.


'고맙다. 그냥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나는 오들도 노력 중이다.

내 아이를 내가 원하는 공식에 끼워 맞추지 않기를.

이 아이가 가진 고유한 함수의 그래프가 어디로 뻗어 나가든, 그저 묵묵히 그 좌표를 따라가며 응원해 주기를.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우리는 서로 다른 함수지만, '가족'이라는 하나의 집합 안에 있으니까.

그거면 충분하다.

제목을 입력해주세요..jpg "네가 그리는 함수의 그래프가 어디로 향하든, 아빠는 그저 묵묵히 그 좌표를 따라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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