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향하던 그래프를 멈추고, 다시 원점으로
아내가 떠났을 당시, 나는 학교 선생님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안정적인 교직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내 사업'을 해보겠다며 야심 차게 학교 밖으로 나온 상태였다.
"남자라면 내 일을 한번 해봐야지."
"더 많이 벌어서 가족들을 호강시켜 줘야지."
그것은 가장의 책임감이기도 했고, 나의 숨겨진 야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를 보내고 남은 지난 6개월.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고, 복잡한 서류들을 처리하는 그 혼란스러운 시간 동안 나는 우리 부자(父子)의 앞으로의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처음엔 수학적인 계산으로 접근했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경제적 뒷받침이 필수적이고, 그러려면 아빠의 사회적 성공이 중요한 상수(Constant)가 아닐까?
하지만 초등학생 아이의 양육 입장에서 검산해 보니 이 결과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조건 하나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압도적 안정감'이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이 그렇듯, 나 역시 결혼생활 중에 먹고사는 일에 바빠 아이를 학원으로 돌리고, 저녁 늦게나 되어야 지친 몸으로 아이 얼굴을 보곤 했다.
우리는 그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이라 믿는다. 좋은 학원, 부족함 없는 용돈, 미래를 위한 경제력.
하지만 아내가 떠나고 나니 그 모든 것은 부차적인 변수(Variable)에 불과했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상수(Constant)는 '따뜻한 밥, 깨끗한 옷, 그리고 언제든지 부르면 대답하는 부모의 존재'였다.
나는 목표를 수정했다.
"엄마의 부재가, 아이의 생활에 불편함이나 결핍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따뜻한 밥 냄새가 나고,
학교 갈 때는 다림질된 깨끗한 옷이 준비되어 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온기 있는 집이 아이를 맞이하는 것.
즉, '의(衣)·식(食)·주(住)'라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의 리듬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것.
그것이 아이가 느낄 상실감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해법(Solution)이라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사업을 하면서 아이의 밥을 챙기고 빨래를 하고 집을 청소하는 '멀티캐스팅'은 불가능했다.
사업은 내 인생의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전쟁이고, 육아 역시 시간과 정성을 먹고 자라는 나무였으니까.
나는 하던 사업을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막 궤도에 오르려던 일, 내가 꿈꿨던 미래, 앞으로 벌어들일 수익들.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가장으로서 경제적 활동을 멈추고, 모아둔 자산을 갉아먹으며 버텨야 한다는 두려움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두려움보다 '아이의 정서'를 선택했다.
돈은 나중에 다시 벌 수 있지만, 아이가 자라나는 이 시간은 '비가역적(Irreversible)'이다.
지금 흘러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밖에서 돈을 버는 동안 아이가 느낄 텅 빈 집의 공기보다, 조금 덜 벌더라도 내 손으로 지은 따뜻한 밥 한 끼가 아이의 영혼을 살찌울 것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전업 아빠'의 길로 들어섰다.
밖으로 뻗어 나가려던 성공의 그래프를 꺾고, 다시 '집'이라는 '원점(Origin)'으로 돌아왔다.
거창한 희생이나 비장한 각오가 아니었다.
그저 내 아이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구겨지지 않은 옷을 입고, 배고픔 없이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불행'이 아니라, 단지 가족 구성원이 조금 다른 '특이점'일 뿐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사회적 경력을 멈췄다.
대신 아이의 등굣길을 배웅하고, 하굣길을 마중하며, 매일 저녁 식탁을 차리는 '일상의 관리자'로 재취업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아이는 상담 선생님께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엄마가 없어서 불편하거나 힘든 점은 딱히 없었어요"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안도했다.
내 해법(Solution)이 맞았다.
내가 포기한 돈과 경력. 그것을 갈아 넣어 내가 산 것은, 아이의 '결핍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소리, 다림질된 셔츠를 입고 현관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
그 평범한 풍경을 지켜내는 것.
당분간 나의 성공 그래프는 오직 이 집 안에서만 그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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