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이를 위해 살아내는 것, 그것이 나의 애도였다.
애도(哀悼).
고작 두 글자. 입 밖으로 내뱉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는 이 짧은 단어에 담긴 '무한(∞)의 시간'을 알아채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들은 내게 위로차 말했다. "실컷 울고 털어버려라.", "충분히 애도해야 병이 안 난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그건 배부른 사치와 다름없었다. 나에게 애도란 끝을 알 수 없는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었으며,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마주해야 하는 '지독한 현실'이었다.
아내의 유골함이 안치된 추모공원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야 했다.
아이가 배고플 시간이었다.
눈물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마다 아이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불안에 떨고 있는 저 작은 눈동자 앞에서, 유일한 보호자인 내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의 애도는 남들과 달랐다.
소리 내어 우는 대신, 아이의 밥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주었다.
아내를 그리워하며 술을 마시는 대신, 아이의 알림장을 체크하고 준비물을 챙겼다.
나의 모든 신경세포는 떠난 아내가 아니라, 남겨진 아이를 향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나는 평생 수학을 가르쳤던 사람이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공식을 찾고 해답을 구했다.
하지만 아내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난제 앞에서는 어떤 공식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작정 '공부'를 시작했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사별한 아이들의 심리’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구입했다.
상담 센터를 예약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 내가 무너지지 않아야 아이를 지킬 수 있다는 절박함이 나를 책상 앞에 앉혔다.
나는 책에서 배운 대로, 슬픔을 추상적인 감정이 아닌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아내가 생전에 즐겨 입던 옷을 잘라 작은 키링을 만들었다. 아이의 가방에 달아주며 말했다.
"이거 봐, 엄마가 항상 너랑 같이 있는 거야."
아내의 사진을 인쇄해 아이와 함께 앨범을 만들고, 상담 선생님과 함께 만든 ‘엄마 나무’를 거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아이가 엄마를 잊을까 봐 두려워하는 대신, 아이에게서 보이는 엄마의 좋은 점을 찾아낼 때마다 큰 소리로 칭찬해 주었다.
"우리 아들 웃는 게 엄마랑 똑같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결심은'시간'을 견디는 일이었다.
나는 밖에서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연봉이나 커리어보다, 아이가 하교했을 때 현관에서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할 대상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장례 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추모공원을 찾았다.
단순히 추모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엄마가 있는 곳이 무섭거나 슬픈 장소가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공간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주말마다 소풍 가듯 납골당을 찾았다.
누군가는 너무 잦은 방문이 아이를 우울하게 하지 않겠냐고 걱정했지만, 나는 기다렸다.
아이가 스스로 "아빠, 이제 좀 덜 가도 될 것 같아"라고 말할 때까지.
그 텀이 늘어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이제 우리는 명절과 기일에만 엄마를 보러 간다.
그것은 잊힘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속에서 엄마가 안전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신호였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았다.
내가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심리책을 뒤적이며 고군분투했던 이 모든 시간이...
사실은 가장 치열하고 뜨거운 애도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아내가 남기고 간 삶의 일부인 아이를 온전히 지켜내는 것만큼, 아내를 기리는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나에게 애도란,
죽은 이를 위해 우는 명사(Noun)가 아니라, 산 아이를 위해 살아내는 동사(Verb)였다.
6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애도는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아이뿐만 아니라, 미뤄두었던 '나 자신'을 위한 심리상담도 시작했다.
여전히 '애도'라는 두 글자는 무겁고 깊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긴 시간은 슬픔의 길이가 아니라, 아내가 나에게 남긴 삶의 의미와 비례한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밥을 짓고, 아이의 옷을 세탁한다.
이 투박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삶을 대신 살고 있는 내가 아내에게 보내는 가장 긴 편지이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임을 증명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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