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경제를 배우는 수요일
<도시를 연구하는 경제학자가 만들어내는 방정식>에 이서 <도시의 승리>를 읽고 생각을 담는 기록입니다.
바그다드 '지혜의 집'을 이름으로 하는 구절에서 밑줄 친 내용입니다.
상인들이 통치하는 도시의 성장세가 왕과 귀족들이 이끄는 도시의 성장세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밀집된 장소들은 혁신의 안식처였으며, 동양의 지식을 수입하는 전 세계 무역 네트워크들이 만나는 교점(交點)이었다. 이런 상업 도시들은 오늘날까지 우리의 지침 역할을 하는 개인 부동산과 상거래 관련 법규를 개발했다. 저지대 국가들의 무역과 모직 제조 전문 도시들로부터 시작된 대반란(Great Revolt)'은 네덜란드에 최초의 근대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바그다드 '지혜의 집'을 처음 들어봤기에 퍼플렉시티에 물었습니다. 결과 중에서 '역사적 역할'만 추려 인용합니다.
지혜의 집은 이슬람 황금기의 상징으로, 수학·천문학·의학·철학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며 유럽 르네상스에 간접 영향을 미쳤다. 1258년 몽골 침략으로 파괴되었으나, 번역 운동은 고대 지식을 보존하는 데 핵심적이었다.
가장 값진 교역 항목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지식'이었군요. 한편, 대반란과 함께 책에 병기된 'Great Revolt'로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찾으니 저자가 언급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퍼플렉시티 덕분에 (나무위키가 출처라 찝찝하지만) 80년 전쟁으로 네덜란드가 설립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저지대 국가들(현재 네덜란드·벨기에 지역)은 중세부터 무역과 모직물 제조로 번영했으나,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가혹한 지배가 반란을 촉발해 80년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플랑드르·브라반트 등의 모직 제조 도시들이 초기 반란의 중심이 되었고, 결국 북부 7개 주가 최초의 근대 공화국을 세웠다.
더불어 위키피디아 대반란 목록에 없는 것을 보면 '세계사'로 뭉뚱그렸을 때는 그 의미가 크지 않은 듯합니다. 저자가 보는 관점이 그만큼 세계사에 대한 일반적 시각과 다르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밑줄 친 내용을 볼까요?
19세기 중반까지는 유럽의 군대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의 군대들보다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한 나라, 바로 일본은 유럽의 지배로부터 거의 전적으로 독립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1853년에 미국의 배들이 출현한 후 일본은 시장 개방에 합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고, 그로부터 40년 내에 일본은 서양 방식을 철저히 섭렵한 후 세계 무대에서 가공할 만한 힘을 갖게 됐다.
이번에도 퍼플렉시티 도움으로 (또다시 나무위키가 출처라 찝찝하지만) 인용한 단락의 바탕에 있는
일본은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 도착으로 쇄국 정책을 끝내고 개항했으나, 이를 계기로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 문물을 빠르게 수용하며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막부 체제를 타도하고 천황 중심의 근대 국가를 건설하는 '부국강병(富國強兵)' 사상이 핵심이었다.
일본 근대사에 대한 간결한 요약인 듯합니다. 거대한 서구의 힘에 맞서는 이웃나라의 모습을 본 군인이라면 그 웅대함에 감탄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퍼플렉시티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과의 관계를 물었습니다.
박정희의 10월 유신(1972)은 메이지 유신처럼 '유신(維新)'이라는 용어를 차용하며 서구 문물을 수용해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모델을 따랐으나,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권위주의 체제로 변질됐다. 메이지 유신의 천황 중심 국가주의와 쇼와 유신(1930년대 일본 군부 쿠데타)의 강권 통치를 결합한 형태로, 박정희의 자서전에서 메이지 유신을 국가주의 사상의 기저로 언급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편 다음에 인용한 내용은 핵심적인 질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서술입니다.
어떻게 일본이 서양 국가들을 그토록 빨리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나가사키란 도시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과 서양의 접촉은 1543년에 포르투갈 배들이 나가사키 인근 '다네가시마'라는 섬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그로부터 300년 동안 나가사키는 일본으로 들어오는 모든 서양 기술의 통로가 되었다. 외국인 혐오증이 있던 일본인들은 외국인들을 한 장소에 몰아넣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그 후로 서양의 지식을 배우기가 더욱 쉬워졌다.
저자는 독자를 기다리게 하는 대신에 곧바로 명확한 답을 제시합니다.
나가사키를 통해 네덜란드인들과 접촉하면서 일본은 아시아 이웃 국가들에 비해서 상당한 우위를 얻게 되었다. 일본군은 19세기 네덜란드인들이 준 이 배를 사용해서 유럽의 해군력에 맞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인용한 내용을 보니 최근에 있었던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의 이면에 있던 러시아 기술 이전의 영향이 떠오릅니다.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둘을 연결해 보면 '집약적인 전달'이 배우고 적응하는 속도를 늘렸다는 패턴이 보입니다.
도시가 바로 그러한 '집약' 역할을 하는 것이겠죠.
교류의 시작은 네덜란드가 아니라 포르투갈 예수회였는데 결국 퇴출당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정치 개입과 개종 문제로 일본에서 퇴출당했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 회사는 수익을 낼 수 있는 무역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런 문제들이 개입하지 않게 했다.
여기서 또 간접적으로 <협상론적 세계관>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1640년대에 서양 의약품이 일본으로 들어왔다. 곧바로 일본 학생들은 나가사키에서 유럽 의학 기술을 도입하는 훈련과 인증을 받았다. 19세기가 시작될 무렵에 한 일본 의사는 전신마취 하에서 세계 최초로 유방절제술을 시도해서 성공했다.
의학 기술의 성공사를 들어 보니 일제가 저지른 잔악한 생체 실험을 감행한 바탕에는 '유신(維新)'의 성공에 대한 도취와 제국주의적 탐욕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한편, '제국주의'라는 말 때문에 어젯밤 읽었던 <고백의 언어들>의 다음 구절이 떠올라 인용합니다.
성경을 반제국주의 담론이라고 말하면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핵심 주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한편,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지는 다음 구절을 읽을 때는 전혀 다른 궁금증도 생겼습니다.
1853년에 미국의 군함들이 들이닥쳤을 때 일본에는 '네덜란드 연구를 하면서 훈련된 많은 엔지니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재빨리 자신들이 처한 새로운 역경을 극복할 수 있었다. 1855년에 네덜란드인들은 일본인들에게 최초의 증기선을 주었는데, 이 배는 현재 새로 지은 나가사키 해군훈련소에 전시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유럽의 군사 기술들을 공격적으로 모방하기 시작한 가운데 나가사키는 상품과 지식이 출입하는 항구 역할을 계속했다. 그러한 군사적•기술적 노하우는 100년 만에 일본이 아시아의 많은 지역을 점령하고 진주만에서 미해군을 놀라게 만드는 힘을 갖게 해 주었다.
바로 같은 시기에 조선의 대처에 대해서였죠. 퍼플렉시티에 물으니 영리하게도 '서양 학습 거부 이유'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표를 제시합니다.
(30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33. 경제를 움직이는 역동성 그리고 투자하는 마음의 정립
35. 구체적인 목표, 변화를 읽고 위기에서 기회를 보는 힘
38. 활발히 진행되는 도시화와 건축을 대하는 문화적 차이
39. 기후 변화에 대한 기사는 경제적 관점에서 가치가 있나?
40. 도시의 콘텐츠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인간의 체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