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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Sep 10. 2023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5 경종 영조실록

콤플렉스의 결정체

 조선 왕 중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무장한 숙종의 뒤를 이은 경종은 아버지와 같은 정통성을 갖추지는 못했다. 중전까지 바꿨던 숙종의 로맨스, 희빈 장 씨의 아들이 경종이기 때문이다.


 물론 희빈 장 씨가 중전에 오르기는 했지만 강력한 유학으로 중무장한 대신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숙종의 카리스마에 눌려 간언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그들의 눈에는 정통성의 ‘정’ 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들의 견제와 경종 스스로의 강박으로 인해 무려 19년 동안 미리 염려하고 돌아보며 근심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경종의 마음은 어땠을까?? 조선 왕들의 재위 기간을 단축시킨 가장 큰 원인이었던 정통성에 의한 스트레스를 경종 대에 가장 극심했다고 할 수 있다.


 혹여 자신이 실수하여 세자에서 내쳐지지는 않을까, 왕위에 올랐어도 독살당하지는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 경종의 삶을 단명시키는 진짜 독약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경종을 부검해 보면 아마 모든 장기들이 썩어 문드러진 상태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경종은 자신의 뒤를 이를 후사가 없어서 자신의 이복동생 연잉군은 조선 왕가의 4번째 세제가 된다. 정종과 태종을 제외한 모든 세제는 다 이복 관계로 반정의 결과를 만든 연산군과 중종의 관계는 특수했지만 모두 피를 부르지는 않았다.


  조선 왕들의 고질병 심열증으로 인해 재위 4년 만에 경종이 죽자 세제였던 연잉군이 왕위에 올랐고 최장수, 최장기 집권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영조이다. 숙종과 무수리 출신 숙빈 최 씨 사이에 태어난 영조는 정통성은 고사하고 엄청난 콤플렉스를 지고 살았다.


 성리학적 통치 체계에서 가장 비천한 신분의 피를 물려받은 혈통에 대한 콤플렉스는 영조를 더욱 옥매이게 해서 경종과 같이 자신이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미리 염려하게 만드는 스트레스를 주었고, 이러한 자신의 혈통 때문에 더욱더 왕실과 대신들의 눈밖에 나지 않도록 모범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붕당정치 상황 속에서 소론이 지지하는 경종과 노론이 지지하는 세제 연잉군의 시절을 보냈던 영조가 즉위하자 노론의 세상이 되는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탕평책으로 정치적 안정을 추구하고자 했던 영조의 노력과는 달리 실상은 노론이 모든 자리를 차지하여 허울뿐인 탕평책만 남았다.


 영조가 장수하며 오랜 재위 기간을 누렸던 원인이 정통성을 증명하려는 노력을 버렸고 미약한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었다. 솔직히 영조에게는 처음부터 정통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영조에게는 미약한 정통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혔고 건저, 대리란 꼬리표와 삼수의 옥이란 꼬리표도 영조의 삶을 무겁게 만들었다.


 이런 꼬리표는 영조를 가장 정치적인 왕이 되도록 하였고 정치를 위한 연기에도 능통한 왕이었다. 자신이 겪은 치욕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에 그토록 사랑했던 효장 세자가 죽고 얻은 사도세자에게는 매정하고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비정상적인 훈육으로 일관했다.


 무예와 예술 방면에 조예가 있던 사도세자에게 학문에 정진할 것만을 강요하였고 대신들과 내시, 궁녀 앞에서도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면박을 주는 날이 많았기에 사도세자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옷을 입지 못하는 ‘의대증“이란 병에 걸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만 무서운 아버지였지 다른 공주와 옹주들에게는 수시로 사가에 찾아가는 행보를 보였던 이중적인 자녀사랑은 아들을 버리고 세손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효장세자를 잃은 슬픔을 잊게 해 준 사도세자, 어릴 적 영특하다는 칭찬이 끊이지 않았던 귀한 아들은 더 이상 영조의 안중에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마음의 병으로 고생하며 왕실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동으로 대신들까지도 세자를 저버리게 되자, 영조는 없었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사약도 아닌 뒤주에 세자를 가두고 8일 동안 방치시켜 죽게 만든다. 명예로운 죽음이 아닌 조선 역사상 가장 비참한 죽음으로 끝난 세자의 삶은 정치적 갈등의 희생양이 되고야 만다.


 52년 최장기 집권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역대 왕과는 달리 가장 검소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던

영조는 대신들과 백성들이 자신의 이름 때문에 일상생활 속 곤란한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알고, ’ 금‘이란 단어 사용을 허락했던 어진 군주였지만, 어긋한 자녀 사랑으로 흠집을 남긴 너무나 엄격한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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