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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노 배낭여행기 - 중국 4대 미인 4

수화(羞花)

by 지노킴

4. 수화(羞花)


양귀비(楊貴妃) 미모에 이쁜 꽃들이 수줍어 고개를 숙이다.

중국 역사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도 중국 4대 미인을 물어보면 1순위가 일단 양귀비다. 삼국지 한번 읽어본 사람들 중에는 2순위로 매미담비(초선)가 나오고 서시와 왕소군은 거의 안 나온다. 일단 이 네 명 중에서 미모는 누가 제일 뛰어났는지는 가름하기 힘들어도 하나 확실한 것은 양귀비 집안이 제일 좋다는 것이다. 본명은 양옥환(楊玉瓛)으로 증조부가 수나라 조정에서 예부상서지냈고 집안 대대로 관직에 있어 명문 가문 출신이다. 그러니까 명문에다 미모가 있어 당나라 현종의 18번째아들 (우째 숫자가 타이거 우드 내연의 처 숫자하고 비스무리하다)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妃)로 간택되어 735년 그녀 17세 나이로 궁에 들어왔다. 약 5년뒤에 현종을 만나게 되어 불같은 사랑을 하고..... 이 부분 <불같은 사랑>을 피카소가 프랑스 남부 휴양지 코닷쥬어(coted'azur)에서 어느 여인과의 러브스토리를 원문으로 옮겨보면 이렇다.

A tormented, intense, obsessive and fruitful love story that began in the summer of 1920.......

(1920년 여름에 시작된 그 사랑은 고통스럽고 격렬하고 도저히 머리에서 지울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그러나 결실을 맺은 사랑이었다) 어느 나라던 마찬가지다. 지가 하면 불같은 로맨스고 남이 하면 뷸륜이다.


이와 비슷한 양귀비와 현종과의 사랑이야기도 현종이 죽고 50년뒤 문사 백거이(白居易=白樂天)가 장한가 (長恨歌)를 읊게된다.



만남의 과정


양옥환이가 궁에 들어온지 1년뒤(736년)에 시어머니 무혜비가 세상을 뜨자 현종이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궁에 약 3천명 정도의 미녀가 득실거렸서도 현종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인이 없었다.(여기서 민족 사관 입장에서 한번 집고 넘어 가야할 점은 무엇이냐 하면? 바로 궁녀의 머리수다. 현종이 홀애비된 때가 736년이면 백제 의자왕죽고 삼천궁녀들이 낙하암에서 백마강으로 뛰어 든 때가 나당연합군에게 백제가 망한 660년이니까 우리백제가 약 76년 앞서가며 궁녀 정족수가 3천 명 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의 궁녀수를 보니 그 수에 놀랬겠지. 돌아가서 궁녀 수를 증원하고 증원해서 76 년뒤 현종 때 가서야 겨우 3천명이 되었다 이거지. 궁녀들 인물도 백제애들 이 한 수 위일거고. 이건 진짜 명쾌하고 통쾌한 역사 고증이다) 그러고 지내는 동안 환관 고력사란 작자가 양옥환이를 현종에게 소개했는데 (이부분이 나도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양옥환이가 현종의 많은 아들 중의 한명의 며느리인데 왜 그걸 몰랐을까.) 뭐라고 홍보했는가 하면 시와 노래 출중하고 엄정화같은 댄싱퀸이라고. 그래서 현종이 연회때 한번 불러 가지고 현종의 자작곡 악보인 예상우의곡(신선들이 사는 월궁:月宮의 노래를 본따 만든 곡조)을 보여주니 아마데우스 빰칠 정도로 한번 보고 그대로 노래부르며 춤을 추는데 마치 월궁선녀가 지상 하강하여 춤을 추는듯하여 홀애비 현종의 맘을 사로 잡아 버렸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합동작전


그래도 시아버지되는데 그리고 문무백관의 눈이 있어 바로 동거할 수는 없어서 일단 남궁에서 여도사로 살게 하여 아들과 생이별시키고 대신에 아들 수왕에게는 새 비를 간택해 주고 다시 여도사 양옥환에게는 태진(太眞)이라는 호를 내려 남궁을 도교사원 태진궁(太眞宮)으로 개칭해서 이곳 관리 여관(女冠)으로 관직을 준다. 남궁에 들어 온지 1년도 채 못되어 태진은 마치 황후가 된것처럼 도도한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짜장(진짜로) 시아버님이 뒤를 잘 봐 주니까 시비거는 작자가 있을 수 없었다. 이때 태진아(가수 이루의 아부지하고 동명이다. 가수 이루는 옛날 태진아가 미국으로 도망와 있으면서 뉴욕 플라싱에서 안경등 잡화장사하면서 미국 생활할 때 미국에서 얻은 아들이다. 1983년생. 태진아는 몇년 뒤 미국생활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토롯토 가수로 "옥경이"가 히트해서 재기했고 아들 이루도 미국 보스톤에 있는 버클리 음대(강남스타일의 싸이가 입학했으나 졸업은 못한 그 학교) 다니다가 중퇴하고 미국 국적포기하고 한국와서 2007년 단국대 연극 영화과에 새로 입학해서 공부하다가 2008년 5월 군 입대해서 공익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마쳤다. 작곡, 피아노,가창력있는 신인으로 기대되는 유망주로 2005년 1집 begin to breath 시작으로 가수 활동하다가 군대갔는데 까만안경, 흰눈등의 히트곡이 있다. 2010년에는 작사가 최희진과 스캔달로 연예가 뉴스에 올랐고 이루는 현재 인도네시아로 진출하여 k- pop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해 2015년에는 태진아 가족들이 LA 휴가가서 억대도박했다는 기사로 떠들썩했었고 기자 회견으로 태진아는 아니라고 울면서 해명하기도 하였다. 이루 본명은 조성현이고 아부지 태진아 본명은 조방헌이고 1953년생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때 태진아는 22세, 현종은 55세로, 33살의 갭을 극복해 가며 불꽃같은 사랑의 서사시를 쓰기 시작한다.



외척의 득세


양옥환이가 745년 27세 나이로 귀비(귀비는 당나라 때 후궁 서열 제1위로 품계는 정1품을 받았다. 귀비-숙비-덕비-현비 순서로 각 1명씩 두어 4부인이라고도 한다)에 오르자 3명의 사촌오빠에게는 높은 벼슬을 세명의 언니에게는 국부인(죽부인이 아니고)에 책명할 정도로 현종은 귀비를 싸고 돌았다. 그 중 사촌 오빠인 양소는 현종에게서 국충(國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나중에 승상까지 올라 지멋대로 국사를 좌지 우지하여 당나라가 망해 가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풍운아 등장


양귀비 이야기에 반드시 등장하는 사나이가 안녹산(安祿山)절도사로 조금 신비스러운 사나이다. 아부지는 이란계 소그드인. 어무이는 터키족 돌궐의 무녀. 아부지때 부족들의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을 피해 일가족이 중국 변방으로 망명했다. 외국인 출신의 군인 들도 중국 군대에 등용시킨 현종의 변경정책으로 안녹산도 군인의 길을 걸었다. 군대에 들어 가기전까지는 지금의 북경 북동쪽근처인 영주(營州)에서 무역중개인(호시아랑:互市牙郞) 역활도 했는데 6개국에 능통했다고 한다. 30대에 유주절도사 휘하에 들어가서 두각을 나타내어 영주에 근거지를 둔 평로절도로사로 발탁된 때가 742년으로 안녹산 39세, 양귀비 24세, 현종 57세. 그 뒤 출세 가도를 달려 2년뒤 744년에는 범양절도사, 751년에 하동절도사를 겸임하여 당나라 국경 수비대 전체 병력의 1/3 정도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 배경에 물론 양귀비의 후광효과가 있기도 하였다.



새로운 만남


747년 정월 진눈깨비가 내리다가 말다가 하는 어느 날, 수도 장안의 흥경궁에서 황제 현종이 거대한 환영 파티를 열었다. 초대손님은 풍운아 안녹산으로 평로 및 범양절도사로 이 자리에서 안녹산과 양귀비는 처음으로 대면한다. 안녹산 44세, 양귀비 29세, 현종 62세로 20대말, 40대중반, 60대 초반의 세 주인공이 새로운 관계를 맺는 뜻깊은 자리였다. 안녹산은 몸집이 크고 배가 나와 곰처럼 보여도 사람을 휘여잡는 특기는 있어 현종과 양귀비의 환심을 사게 되어 그 후 자유롭게 궁궐을 드나들게 되며 사교폭을 넓힌다. 말도 안되게 40대 중반 남자가 20대말 여자의 수양아들로 들어가 온갖 재롱을 다 부려가며 양귀비의 비위를 맞추었다고 하는데 재롱을 다음과 같이 부렸다고 한다.


한번은 궁녀들이 모인 방에서 커다란 기지개를 차고 어린 애기 흉내를 내어 양귀비를 비롯하여 좌중을 웃기게 하는가 하면 양귀비가 수양 아들 안녹산을 목욕 시키고 오색천으로 요람을 만들어 어린아기 시늉을 내게하고 수십명 궁녀가 요람을 밀고 흔들어 양귀비 앞에 데려 가면 엄마하고 불렀다한다. 상상을 해봐라. 코끼리만한 거구가 알록달록한 색동천에 싸여 엄마 앞에서 짝짝궁하는데. 한마디로 어린 광대의 귀엽고 깜찍한 몸짓이 아니고 늙은 광대의 눈물나는 연기라 하겠다. 광대 이바구하니까 리쌍의 노래가 생각난다.


- 광대 - (by 리쌍)


(중략)

내 이름은 광대 내 직업은 수많은 관객

그 앞에 웃음을 파는 일

슬퍼도 웃으며 내 모습을 감추는게 철칙

오~ 이런 내 처질 손가락질 하며 날 모욕해도

더 크게 웃고 난 땀으로 목욕하고

음악이 꺼지고 막이 내리고 밤이 오면

별빛에 몸을 씻고 눈부시게 광낸 구두를 신고

달에게 청혼하듯 손을 내밀어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앞으로 달려

(아무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흐르는 이 시간에

외롭게 홀로 핀 꽃 한송이에 난 반해

사랑을 나누려 나는 간다네


무대 위에 서면 우린 때론 정반대 내가 관객이 돼

사람들의 얼굴에 상상의 그림을 그려 물감을 뿌려

저 불타는 이십대의 청춘은

내일이면 이 사회의 첫 줄을

이력서 쓰며 인생을 시험보고


저 순진한 사랑의 초보 애인있는 남자와 눈 맞어

사랑에 빠져 슬픔을 기다리네

(yeah~come on baby) 너와 나 모두 왕의

옷을 입어도 신하가 되버리는 현실에

혼신의 힘을 다해 헌신해

오늘 술 한잔하면

내일은 물 한 잔으로 버텨야 하지만

일단은 오늘 또 마시네 아픔이 싹 가시네(중략)



이렇게하여 양귀비의 재롱동이가 된 절도사는 수시로 궁을 방문하였고 현종이 양귀비를 찾지 않을 때에는 밤새도록 귀비처소에서 지내다가 가곤 했다는데 아마도 젊은 엄마와 늙은 아들이 소꼽장난을 했는지 아니면 엄마의 구수한 옛날 이바구를 밤늦게까지 듣다가 아들은 배가 고파 엄마 젖을 물고 잠들어 버렸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하여간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뒤에서는 이러쿵 저러쿵 수근거렸다고 한다.


다른 에피소드로는 안녹산의 뚱뚱한 배불뚝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하루는 궁궐에 출입하던 안녹산과 현종이 마주쳤다. 그러자 황제가 농담조로 절도사에게 물었다.

" 자네 불뚝한 그 배 속에 무엇이 들어있나?"

그러자, 절도사는 눈도 하나 깜짝하지않고 대답한다.

"오직 폐하를 위한 충성심만 들어 있사옵니다."

황제도 한마디 보태며 이렇게 응수하였다.

"그래, 두고 보면 나중에 알겠지."

나중에 알았지만 절도사는 황제에게 반기를 들었다.




권력투쟁


현종이 양귀비를 싸고 돌때 초기에는 李림보라는 재상이 국사를 도맡아 운영하였다. 李재상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아무도 대항할 수 없었으나 외척의 실세로 양국충, 변방 절도사로서 안녹산이 힘을 키워 가자 나중에는 권력 구조가 삼파전으로 되었다. 원래 양국충의 속셈은 안녹산과 손을 잡아 李재상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을려고 했으나 양귀비의 보살핌으로 갑자기 커져 버린 안녹산이 우선적으로 경쟁상대가 되어 버렸다. 안녹산에 대한 비방과 험담을 현종 앞에서 하였으나 귀비가 있는 한 현종도 무슨 말을 할 수도 없었다. 752년 李재상이 노환으로 죽자 양국충이 그 자리를 이어 받자 궁중내 안녹산 지지파를 제거하고 안녹산 변방군사들과 대적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강구 하였다.



안녹산의 반란


이러한 양국충의 속셈을 간파한 안녹산은 755년말 간신 양국충을 제거하라는 황제의 밀지를 받았다고 주장 하면서 그 명분으로 휘하군사를 남하시켜 수도 장안 으로 쳐들어갔다. 파죽지세의 안녹산 군대는 관군을 격파하고 한 달만에 동쪽수도인 뤄양(낙양)을 함락하고 756년 정월에 안녹산은 스스로 대연(大燕) 황제임을 선포한 뒤 성무(聖武)로 개원(改元)했다.




현종의 피신과 양귀비 최후


동도 뤄양을 잃은 뒤 관군은 장안으로 들어 오는 유일한 길목인 좁은 계곡 동관(潼關)을 굳게 방어하여 6개월 동안 반란군은 더이상 전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곳을 수비하던 관군 사령관과 양국충의 내부알력으로 수비가 무너져 관군이 궤멸되고 756년 6월 반란군은 장안으로 진격할 수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현종은 식솔을 이끌고 장안 서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가는 도중 조그마한 마을 마외파(馬崴坡)에서 현종을 호위 하던 금위군들이 반란을 일으켜 양국충을 살해하고 양귀비의 처형을 요구하자 현종은 마지못해 승락 하였다. 그래서 양귀비는 배나무에 목을 매어 자진했다. 756년 여름 7월의 일로 그 때 귀비나이 꽃다운 나이는 아니고 여자로서 한창 무르익은 38세로 인간 양옥환은 귀비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그녀의 화려한 비단버선만 바람부는 마외파 흙먼지 속에서 외로이 뒹굴었다.(2013년 네팔 - 티벳을 거쳐 시안에 갔을 때 마외파를 한번 찾아 보려고 했는데 말도 잘 안 통하고 차편도 없어서 접어버렸다. 다음에 가서 마외파를 찾아서 사진을 찍어 올 참이다)


안녹산의 최후


755년 발발한 반란은 756년 장안을 점령하여 세력을 떨쳤으나 내분으로 다음 해인 757년 안녹산이 그의 후계자 자리를 애첩의 아들 안경은에게 물려주고자 적자인 큰아들 안경서를 폐하려고 하자 이를 눈치된 큰아들에게 피살되고, 다시 2년 뒤에는 안경서가 안녹산의 부장이었던 사사명에게 피살되어 반란군의 위세가 차차 꺾여 가다가 2년 뒤 사사명마저 그의 아들 사조의에게 피살되자 반란군은 구심점을 잃어 763년 사조의가 자결하자 드디어 8년만에 난이 진압되었다. 안녹산의 난을 안사의 난이라고도 하는데 안녹산과 그의 부장인 사사명을 둘 다 싸잡아 부르는 말이다.




당의 몰락과 오대십국 등장


안사의 난이 평정된 후 그 뒤 당나라가 망해가는 과정을 조금 더 부연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안사의 난을 고비로 당의 세력이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특히 변방 방비책으로 임명된 절도사들이 군정.민정.재정의 실권을 휘어잡아 마치 독립국의 제후들처럼 세력을 키워갔다. 게다가 북방 이민족들의 침입과 환관들의 횡포로 사회불안과 백성들의 생활이 피페해지자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859년 저장성에서 구보의 반란, 868년 쉬저우에서 방훈의 반란을 거쳐 결정적으로 875년에 행정고시에 몇 번 낙방한 후 소금장사로 변신한 황소가 반란을 일으켜 전국에서 일어난 반도 들과 힘을 모아 장안으로 들어가서 국호를 대제, 연호를

금통이라 하고 위세를 떨쳤으나 얼마 못가서 진압되고 황소는 산동성 타이산 (우리가 잘 아는 태산) 에서 자결하였다. 이 황소의 난이 거의 10년동안 계속되는 동안 전 국토가 유린되어 당의 지배력이 서서히 상실되었다. 그 틈을 타 황소의 무장이었던 개봉의 절도사 주전충이 907년 당나라 마지막 황제 애제로부터 제위를 물려 받아 후량을 세워 거대제국 당 (618-907) 이 끝난다. 당이 끝나고 오대 (후량-후당-후진-후한-후주) 의 왕조가 차례대로 교체되고, 그 외 변방에서는 오, 초, 남당등 10개의 군벌이 서로 다투어 이를 5대10국시대라 하며 마침내 960년 오대의 마지막 왕조 후주의 무장 조광윤이 송나라를 세워 주변 나라를 차례로 병합하여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다.



수화(羞花)의 유래


양옥환이가 비로 간택되어 궁에 들어 온지 얼마되지 않아(현종을 만나기 전) 홀로 궁내 꽃밭을 거닐다가 고향생각도 나고 갑갑한 궁내에서 꽃다운 청춘을 보내는 자신이 처량하게 생각되어 꽃을 보며 중얼 거렸다."꽃들아, 너희들은 이렇게 활짝 피는 좋은 때가 있는데 나는 언제 너희처럼 한번 활짝 필 수 있겠니."라면서 꽃을 만지자 꽃잎이 고개숙이고 가지의 잎사귀들이 아래로 축 쳐지기 시작했다. 마침 지나가던 궁녀 하나가 그 모습을 보고 "꽃이 옥환이의 미모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 고개를 숙이더라."고 소문을 내자 그 때부터 羞花가 그녀의 지칭어가 되었다.


@토막지식1: 양옥환이가 손을 댄 꽃이 소위 말하는 미모사로 잎을 건드리면 불과 1-2초만에 잎과 줄기를 접어버리는 식물이다. 건드리면 반응한다고 해서 감응초, 신경초, 함수초라고도 하는데 브라질이 원산지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낮에는 퍼져있다가 밤에는 접혀 자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잠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옥환이가 운이 좋아 미모사를 만졌고 그 때 마침 그걸 누가 봐서 그런 멋진 비유어를 얻게되거지 아무나 만저도 미모사는 고개 숙인다. 그런데, 서시가 얼굴 찡그리면 섹시하다고 해서 추녀가 따라 찡그리면 못 보아주듯이 만약 추녀가 미모사를 만져 꽃들이 고개 숙이면 그 때는 뭐라고 비유했을까?


@토막지식2: 장학퀴즈같은 tv 퀴즈프로그램에서 난이도가 꽤 높은 문제가 종종 백거이의 장한가에서 출제되는데 여러분들도 들어 본 적이 있을거다. 장한가 맨 마지막 귀절의 가사중에 비익조(比翼鳥)와 연리지 (連理枝)가 나오는데 뜻은 '남녀의 애틋한 정'을 상징하는 말로 비익조는 전설상의 새로 태어날 때 한쪽 날개만 가지고 있어 하늘을 날려면 자기와 꼭 맞는 다른 쌍의 날개와 맟추어야 하고 연리지는 나란히 붙어있는 나무가지로 뿌리는 다른데 자라면서 가지가 나란히 붙는 것를 말한다. 장한가의 마지막 귀절이 이렇게 끝난다.

<내가 죽어 하늘에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기를, 땅에서 나무가 되면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오니> (중략)

<천지가 영원하다지만 그래도 끝은 있겠지요. 그러나, 이 슬픈 사랑의 한(恨)은 끊일(絶) 때가 없을거예요>


@마지막 토막지식: 물에서의 잉꼬부부를 표현하는 유사한 말에는 비목어(比目魚)가 있다. 비목어는 눈깔이 하나밖에 없는 고기로 암수가 항상 나란히 붙어 다닌다고 하는데 어느 시인(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가 비목어(比目魚) 이바구다.


장한가(長恨歌) - 백거이(白居易)


漢皇重色思傾國: 황제 사랑 그리워함에 나라 기울어가네

御宇多年求不得: 오랜 세월 세상을 살펴도 구할 수 없구려

楊家有女初長成: 양씨 가문에 갓 장성한 딸이 있었으나

養在深閨人未識: 깊숙한 규방에 자라 누구도 알지 못하나

天生麗質難自棄: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朝選在君王側: 하루아침 뽑혀 군왕 곁에 있도다

回眸一笑百媚生: 눈웃음 한 번에 모든 애교가 나오니

六宮粉黛無顔色: 육궁에 단장한 미녀들의 안색 가렸다오

春寒賜浴華淸池: 봄추위에 화청지에서 목욕함을 허락하여

溫泉水滑洗凝脂: 매끄러운 온천물에 기름진 때를 씻으니

侍兒扶起嬌無力: 부축하여 일어나니 아름다움이 더하여

始是新承恩澤時: 그때부터 황제 사랑받기 시작하였네

雲鬢花顔金步搖: 귀밑머리, 꽃 같은 얼굴, 금장식에

芙蓉帳暖度春宵: 휘장 안은 따뜻하여 봄 깊은 밤 헤아리니

春宵苦短日高起: 짧은 밤을 한탄하며 해 높아서 일어나니

從此君王不早朝: 이를 좇는 군왕은 이른 조회를 보지 않고

承歡侍宴無閑暇: 총애로 연회에 매이니 한가할 틈 없어

春從春游夜專夜: 봄을 좇는 춘정을 즐겨 온밤을 지새우니

後宮佳麗三千人: 빼어난 후궁에 미녀 삼천 있었지만

三千寵愛在一身: 삼천의 총애가 그녀에 있으니

金屋粧成嬌侍夜: 금 같은 방 단장하고 교태로 밤 시중들어

玉樓宴罷醉和春: 옥루 잔치 끝나면 춘정을 이루니

姉妹弟兄皆列士: 자매와 형제 모두가 열사라

可憐光彩生門戶: 예쁘게 여기 가문에 광채가 나니

遂令天下父母心: 이로 하여금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 아들보다 딸 낳기를 중히 여기도다

驪宮高處入靑雲: 화청궁 높이 솟아 구름 속에 들어 있고

仙樂風飄處處聞: 신선의 풍악은 바람 타고 들려오네

緩歌慢舞凝絲竹: 느린 노래와 춤이 비단결 피리에 맺히니

盡日君王看不足: 군왕은 종일 넋 잃고 보아도 부족하도다

漁陽瞽鼓動地來: 어양땅 울리는 악관의 북소리 들려오니

驚破霓裳羽衣曲: 예상우의곡에 깜짝 놀라도다

九重城闕煙塵生: 구중궁궐에 연기 먼지 솟아오르고

千乘萬騎西南行: 수천수만 관군들은 서남으로 가고

翠華搖搖行復止: 천자의 기 흔들리며 가다가 서곤 하며

西出都門百餘里: 도성문 서쪽 백여리 마외역에는

六軍不發無奈何: 육군을 보내지 못해 어찌할 수 없어

宛轉蛾眉馬前死: 미인의 긴 눈썹이 굴러 군마 앞에 죽었네

花鈿委地無人收: 땅에 떨 군 꽃비녀 거두는 사람 없고

翠翹金雀玉搔頭: 취교, 금작, 옥소두 땅에 흩어졌네

君王掩面救不得: 군왕은 얼굴 가린 채 구하지 못하고

回看血淚相和流: 차마 돌린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르네

黃埃散漫風蕭索: 누런 흙먼지 일고 바람 쓸쓸히 부는데

雲棧縈紆登劍閣: 구름 걸린 굽은 잔도 검각산을 오르네

峨嵋山下少人行: 아미산 아래에는 오가는 이도 드물어

旌旗無光日色薄: 천자 깃발 빛을 잃고 햇빛도 희미하네

蜀江水碧蜀山靑: 촉강 맑게 흐르고 촉산은 푸르건만

聖主朝朝暮暮情: 황제는 아침저녁 양귀비 생각에 잠겨

行宮見月傷心色: 행궁에서 보는 달에 마음 절로 상하고

夜雨聞鈴腸斷聲: 들리는 방울소리에 애간장 끊어지고

天旋地轉回龍馭: 천하 정세 변하여 황제 돌아오는 길에

到此躊躇不能去: 마외역에 이르러는 걸음 뗄 수 없었네

馬嵬坡下泥土中: 말 높은 고래 아래 진흙더미 속에는

不見玉顔空死處: 고운 얼굴 어디 가고 죽은 자리만 남아

君臣相顧盡沾衣: 임금 신하 서로 보며 눈물 옷깃 적시네

東望都門信馬歸: 동쪽 도성문 향해 말에 길을 맡겨 가니

歸來池苑皆依舊: 돌아와 본 황궁의 정원은 변함없어

太液芙蓉未央柳: 태액지의 부용도 미양궁의 버들도

芙蓉如面柳如眉: 부용은 양귀비 얼굴 버들은 눈썹

對此如何不淚垂: 이들을 대하고 어찌 아니 눈물 드리우리

春風桃李花開日: 봄바람에 복숭아며 살구꽃이 만발하고

秋雨梧桐葉落時: 가을비에 젖어 오동잎이 떨어져도

西宮南內多秋草: 서궁과 남원에 가을풀 우거지고

落葉滿階紅不掃: 낙엽이 섬돌을 덮어도 쓸지 않으니

梨園子弟白發新: 이원의 자제들은 백발이 성성하고

椒房阿監靑娥老: 양귀비 시중들던 시녀들도 늙었네

夕殿螢飛思悄然: 반딧불 나는 저녁 궁궐 더욱 처량하여

孤燈挑盡未成眠: 등불 심지 다 타도록 외로이 잠 못 드니

遲遲鍾鼓初長夜: 더딘 종과 북소리에 밤이 긴것을

耿耿星河欲曙天: 은하수 반짝이며 새벽은 다가오고

鴛鴦瓦冷霜華重: 금슬 좋은 기와는 차고 서리꽃 심해지나

翡翠衾寒誰與共: 함께 덮을 이 없는 싸늘한 비취 금침

悠悠生死別經年: 생사를 달리한 지 아득하니 몇 년인가

魂魄不曾來入夢: 꿈속에 혼백마저 만나볼 수 없네

臨邛道士鴻都客: 임금의 도인이 도성에서 머무는데

能以精誠致魂魄: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올 수 있다 하니

爲感君王輾轉思: 양귀비 그려 잠 못 드는 군왕을 위해

遂敎方士殷勤覓: 방사시켜 양귀비 혼백 찾게 하였네

排空馭氣奔如電: 허공을 가르고 번개처럼 내달아

升天入地求之遍: 하늘 끝에서 땅 속까지 두루 찾아

上窮碧落下黃泉: 위로는 벽락 아래로는 황천까지

兩處茫茫皆不見: 두 곳 모두 망망할 뿐 찾을 길이 없는데

忽聞海上有仙山: 홀연 들리는 소문 바다 위에 선산 있어

山在虛無縹緲間: 그 산은 아득한 허공 먼 곳에 있고,

樓閣玲瓏五雲起: 누각은 영롱하고 오색구름이 일어

其中綽約多仙子: 그곳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사는데,

中有一人字玉眞: 그중 옥진이라 하는 선녀 하나 있으니

雪膚花貌參差是: 눈 같은 피부와 고운 얼굴 그녀 인것 같다

金闕西廂叩玉扃: 황금 대궐 서쪽 방의 옥문을 두드리고

轉敎小玉報雙成: 소옥시켜 쌍성에게 알리도록 말 전하니

聞道漢家天子使: 한황제의 사자가 왔다는 말 전해 듣고

九華帳里夢魂驚: 꿈에 깨어 놀라는 화려한 장막 안의 혼백

攬衣推枕起徘徊: 옷을 들고 베개 밀고 일어나 서성이더니

珠箔銀屛迤邐開: 길게 이어진 구슬발과 은병풍 열리니

雲髻半偏新睡覺: 머리 한쪽으로 드리우고 막 잠에 깬 듯

花冠不整下堂來: 머리장식 안 고친 채 당에서 내려오네

風吹仙袂飄飄擧: 바람 부는 대로 소맷자락 나부끼니

猶似霓裳羽衣舞: 예상우의무를 추던 그 모습인 듯

玉容寂寞淚欄干: 옥 같은 얼굴 수심 젖어 눈물이 흐르니

梨花一枝春帶雨: 활짝 핀 배꽃 한 가지 봄비에 젖은 듯

含情凝睇謝君王: 정어린 눈길 돌려 군왕에게 사뢰니

一別音容兩渺茫: 헤어진 뒤 옥음, 용안 듣고 뵙지 못하여

昭陽殿里恩愛絶: 소양전에서 받던 은총도 끊어지고

蓬萊宮中日月長: 봉래궁에서 보낸 세월이 오래건만

回頭下望人寰處: 머리 돌려 저 아래 인간 세상 보아도

不見長安見塵霧: 장안은 보이지 않고 짙은 안개와 먼지뿐

唯將舊物表深情: 오래 지닐 물건으로 깊은 정을 표하려니

鈿合金釵寄將去: 자개 상자와 금비녀를 가지고 가라 하네

釵留一股合一扇: 비녀는 반 쪽씩 상자는 한 쪽씩

釵擘黃金合分鈿: 황금 비녀 토막내고 자개 상자 나눴으니

但敎心似金鈿堅: 두 마음 이처럼 굳고 변치 않는다면

天上人間會相見: 천상에든 세상에든 다시 보게 되리라네

臨別殷勤重寄詞: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하는 말이

詞中有誓兩心知: 두 마음 만이 아는 맹세의 말 있었으니

七月七日長生殿: 칠월 칠일 장생전에

夜半無人私語時: 인적 없는 깊은 밤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하늘을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땅에 나무로 나면 연리지가 되자고

天長地久有時盡: 천지 영원하다 해도 다할 때가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이 슬픈 사랑의 한 끊일 때가 없으리


사진 1. 양귀비 상상도


사진2. 华清池(화청지)는 산시성 시안 시의 동쪽 35km 떨어진 곳에 있는 온천지로 당 현종이 양귀비에게 지어준 '해당탕'이 있었던 곳으로 가보이 지금은 완전 관광지다.


사진3. 풍운아 안녹산


사진4. 태진아 아들 이루


사진5. 광대의 리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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