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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Apr 26. 2023

<런던 5일차> 켄우드하우스, 버로우마켓..이제 집으로

"왜 레미제라블이 팬텀보다 더 감동일까? 이야기가 다른 것 같아. 어렸을 때 장발장 동화책 생각나? 프랑스 혁명 얘기는 쏙 빼고 나왔지. 레미제라블은 혁명과 맞물려 인간의 의지와 운명, 사랑 등 이야기가 끝내주지. 팬텀은 진짜 뮤지컬을 위한 작품 같아. 음악을 위한 이야기지"

"난 팬텀이 조금 불편했어. 순수한 사랑이라고 하기엔 스토커잖아. 크리스틴과 팬텀에게 감정이입이 잘 안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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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감동을 이어갔다. 40~50분 정도 거리의 켄우드 하우스 가는 길. 수다가 줄어들면서 졸렸다. 런던 튜브, 지하철에 나란히 앉아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 자세, 몇년 만인지 모르겠다. 도란도란 여정의 막바지인데 뭘 못해. 짧지 않은 강행군에 아직 갈라서지 않았다. 다행이다. 솔직히 둘이 여행 괜찮을지 긴장 좀 했는데 무사하다니. 손 잡고 다니는 걸 디폴트 값으로 재조정했고, 서로 조심해야 할 선도 확인했다. 관계란 이해와 노력 없이 어렵다. 사랑할 땐 상대의 눈짓몸짓말짓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때문에 이해와 노력이 저절로 이뤄지지만, 오래된 부부에게 그걸 바랄 수는 없지. 그냥 다른 모든 타인처럼 존중하고 배려하는 수 밖에. 남편의 쓸모는 어찌보면 어깨나 온기가 최고인듯도 하고.

기억에 남는 커플 사진. 론다에서 평온한 실루엣, 세비야애서 분수에서 멱감는 분들

나를 피사체로 바라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켄우드 하우스는 L온니가 권했다. 1760년에 리모델링한 저택. 그때 귀족들은 이렇게 살았구나 구경하고, 주변 햄스테드 히스 지역이 그렇게 좋다고 했다. 켄싱턴궁 가볼까 하다가, 궁전 대신 이번엔 집으로. 궁전은 입장료가 비싸고 켄우드는 무료다ㅎ

버스정류장 내리자 마자 엄청난 숲길이 등장하고 바로 저택이다. 앞은 호수와 끝없는 풀밭, 숲이다.

맨 처음 지은 백작은 잘 모르겠고, 중간에 이 집 주인은 기네스 가문의 손자. 기네스맥주를 부흥시켰던 인물이다. 그림을 많이 사들여서, 집이 미술관이다. 방 끝에 있는 분이 그 분.

방마다 벽난로, 그림, 커텐, 멋진 가구들이 이어진다. 음악실엔 오르간과 피아노, 하프가 있고, 식당엔 렘브란트 자화상과 베르메르 '기타 연주자'가 있다.

저 끝이 렘브란트

안목도 좋으셨네. 새로 그림 사면 친구들 초대하고, 파티하고, 음악 연주 감상하고, 숲에서는 가끔 사냥을? 뭐 그 시절 귀족들의 삶이 오늘날 우리네와 크게 다르진 않다ㅎㅎ



살면서 이런 도서관, 아니 서재 정도는 있어야지. 쥔장도 손님들 오면 이 도서관에서 모셨다고. 부심 느껴진다. 근데 1800년대 The Annual Register 는 뭐가 있길래 매년 저리 두툼한 걸까. History of Derby, Devon, Durham 시리즈도 있다. 이분들 동네 역사에 진심이었나보다. 며칠 추위에 떨다보니 벽난로 앞에 앉아서 책 읽고 싶다.


저택이 워낙 훌륭하니까 어울리는 콜렉션 기부도 있었나보다. 충격적인 건 구두 버클. 18세기 말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는 비싼 구두 버클이 얼마나 많은지 여부로 알아봤다니. 이게 당시의 명품인가? 이런걸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얼마나 부질없나. 버클이든, 보석이든, 가방이든..그러나 컬렉션 자체는 훌륭하다.

베를린 스타일 철제 보석류는 지금도 예쁘다. 아기 손보다 작은 미니어처 초상화 콜렉션도 있는데, 이게 뭐랄까 마음에 품는 증표? 사진이 없던 시절엔 그랬겠네. (사진 찍은게 핀이 나갔다...)

창밖 풍경도 내부 인테리어도 더할 나위 없다.


정원도 아닌, 숲이 너무 좋아서 실컷 걸을거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추웠다. 오늘 런던 최저기온 2도. 오전엔 7도라는데 추웠다. 가져간 옷들 레이어드로 다 껴입고 다녀도 추웠다. 어쩔 수 없이 저택 구경만 하고 철수. 남편이 이틀 연속 실패한 버로우마켓을 가보자고 꼬셨다. 40분 거리였다.

광장시장 같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랬다. 엄청난 대형 철판에 요리하는 해물 빠에야엔 정말 줄이 길었다. 버섯리조또 집도 만만치 않다.

나는 치킨랩, 남편은 버섯리조또를 골라서 줄을 섰다. 다들 서서 먹는다. 광장시장보다 서비스가 못하구만ㅎㅎ 인도, 태국, 일본, 스페인 온갖 동네 요리 부스가 있다. 이거 고수부지 푸드트럭과 비슷한건가? 다행히 버섯리조또가 훌륭한 맛에 비해 양이 적었고, 맥주가 땡긴다는 그를 위해 점심 2차. 앤초비와 새우, 오징어 튀김에 맥주를 마셨다. 나는 무알콜 맥주. 술 마실 땐 배불러서 안 마시던 맥주를 요즘 이렇게 즐긴다. 이 나이에 맥주와 사랑에 빠지다니.


일찌감치 공항으로 이동했다. 어제부터 피로의 몇가지 징후를 나눴다. 몸도 눈치가 빠르다. 갈 때 된거 아는거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여행이 좋다. 멋진 풍경과 음식탐험, 아는 만큼 보이는 그 동네 이야기들에 푹 빠져서 다니는거, 난 계속 할 수도 있을거 같은데ㅎㅎ 서울을, 우리 동네를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보고싶은 얼굴들이 있으니 돌아간다.
인생 여행이었다. 둘이 원없이 쉬고 놀았다. 조금 이른 나이에 둘이 놀게 됐다는게 조금 걸릴 때도 있지만, 아직 에너지 좋은데 뭐든 못할까. 놀면서 사는 법도 슬슬 익혀야지. 더 늦어지지 않은 것도 복이다.


#마냐여행 #런던_5일차 #스페인_포르투_런던_epi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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