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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Nov 28. 2022

4학년에 겪은 찐 사춘기

기억 속 내 이야기




여름방학이 지나고 전학 첫날이 되었다.  전학 간 첫날부터 새 학교 생활에 적신호가 켜졌다.

80년대 울산 대부분 국민학교는 아이들은 많고 교실은 적어서 일주일마다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했는데 오후반은 수업 분위기가 별로였다. 다들 학교 갔다 오는 시간에 학교 가는 것부터가 귀찮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하필 전학 간 첫날 오후반에 걸렸다. 안 그래도 낯선 환경에 긴장되어 있는데 하필 오후반일까 생각하며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교실 안은 어수선했다. 선생님도 아직 계시지 않았다. 2학기 첫날이라 더한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뻘쭘했다. 잠시 후 담임 선생님이 앞문으로 들어왔는데 선생님은 나를 소개도 시켜주지 않고 가장 뒤쪽 빈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새로운 전학생이라는 이슈도 없이 아무도 모르는 반에 앉아 있으려니 힘들었다. 쉬는 시간에 한 두 명이 말을 걸었지만 어색하고 불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약사 국민하교 아이들은 하고 다니는 모양새가 깔끔했다. 병영 국민 한교 아이들이 대체로 촌티가 나는데 비해 훨씬 도시 냄새가 났다.  동네가 동동보다 번화가에 있었고 학교 근처 한진중공업 사택에 사는 아이들도 많이 다니는 학교였다. 1학기에 이미 삼삼오오 친구관계가 형성된 틈에 쑥 들어가기 힘들었다. 깔끔하고 밝으며 공부까지 잘하는 친구들은 그들끼리 관계를 형성했다. 다행히 몇 명과 친하게 되었지만 3학년 2학기는 있는 듯 없는 듯 소심하게 마무리했다.  4학년이 되었다고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수업은 어려워지고 특히 수학을 못 따라가니 자신감이 떨어졌다. 


아니다. 사실은 진짜 문제는 수학이 아니었다. 4학년 때 우리 집은 엄마, 아빠 사이가 더 안 좋아져 있었다. 어려서 세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동동에서 반구동으로 이사를 오는 과정에 엄마, 아빠 사이에 엄마의 남자 문제로 두 분 사이에 큰 갈등이 있었던 것 같았다. 아빠는 엄마와 다시 잘해보자며 이사를 왔지만 한 번 떠난 엄마 마음이 다시 아빠에게 돌아가지는 못했다. 어느 날 엄마는 아는 아저씨라며 우리에게 소개를 했다. 올 때 자꾸 과자 같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머릿속에 무언가 충돌했다. 이상했다. 이해가 안 되었다. 아빠가 있는데 엄마는 왜 다른 아저씨를 만나는 거지? 


나를 괴롭힌 또 하나는 오빠였다. 같은 형제라도 집안 분위기에 받는 영향이 다르다. 나보다 나이가 5살 많은 첫째 오빠 마음이 어땠는지 알 수 없으나 좋은 영향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오빠는 이것저것 귀찮은 심부름을 시키고 자기 멋대로 하고 말을 안 들으면 때리기도 했다. 처음에 몇 번 엄마, 아빠에게 이르면 오빠가 혼났지만 나중에 일렀다고 더 심하게 때렸다. 오빠의 강압과 폭력은 내게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괴로웠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아, 엄마, 아빠도 나를 지켜줄 수 없구나. 마음 기댈 곳이 없어졌다. 점점 집도 학교도 재미가 없었다.




엄마도 일을 다녔기에 낮에는 엄마, 아빠가 집에 없었다. 보통 나는 옆집 2층에 사는 친구가 계단을 내려오며 학교 가자고 부르면  함께 학교에 갔다. 오후반에 걸린 어느 날이었다. 오후반 때 종종 그랬지만 그날은 정말이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벽시계를 보니 학교 갈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도 친구가 학교 가자고 부를 텐데... 너무 가기 싫다. 어떡하지?'

"은미야~학교 가자!" 

어김없이 친구가 2층 계단을 내려오면서 나를 불렀다.

"......"

나는 다락에 올라가 조용히 없는 척을 했다.

"은미야~~"

마음은 '그냥 나갈까?' 하는 갈등을 느꼈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친구는 몇 번 불러도 기척이 없자 자리를 떠나는 것 같았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후아... 사방이 조용해지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숨을 크게 쉬었다. 

커다란 박스 등 잡동사니 짐이 한쪽에 높게 쌓인 좁은 다락에 큰 대자로 누워 낮은 천장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학교를 안 갔다. 무단결석을 했다. 

너 무슨 생각인 거니? 어떻게 감당하려고? 몰라, 몰라.

오늘 하루만 안 가고 다음부터 가면 되지 뭐. 그냥 놀자.


학교를 빠지니 걱정이 되면서도 좋았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오전반으로 바뀌었다. 학교에 가야 하는데 가서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상황을 떠올리니 마음이 불편했다. 제일 늦게 학교에 가는 나는 또 다락에 올라가 숨었다. 친구는 며칠 부르다 이내 혼자서 학교를 갔다. 하루 이틀은 사흘 나흘이 되어 일주일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다. 다행히 비상연락망이 지금처럼 철저하게 되어 있지 않아서 부모님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제 가고 싶어도 감당해야 할 일들이 무서워서 학교를 갈 수 없었다. 엄마, 아빠에게 들킬까 봐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를 얹은 것 같았다.


주말에 오빠가 근처 중학교에 공놀이를 하러 가자고 했다. 혹시 학교 아이들을 마주칠까 걱정이 되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언니랑 따라갔다. 그리고 설마 했던 일이 진짜로 일어났다. 공놀이를 하고 돌아가는 길에 같은 반 친하지 않은 떠벌이 아이를 마주쳤다. 눈앞이 깜깜했다. 아파서 못 갔다고 해야 하는데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마주쳤다. 대충 얼버무리고 집에 왔지만 심장은 두 근 반 세근반 터질 것 같았다.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 되었다. 이제 가슴을 누르는 돌덩이는 나보다 커져 나를 찧어 눌렀다.  들켜버렸으니 더는 피할 수 없었다. 가슴이 콩콩거렸다. 죄지은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운 마음을 잔뜩 안고서 학교에 갔다.

선생님은 책상 앞으로 나를 부르셨다.

"아팠니?"

"네..."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듯 어제 마주친 떠벌이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선생님, 쟤 어제 중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거 봤어요. 아팠다는 거 다 거짓말이에요."

'굳이 저렇게 일러바치는 재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녀석을 향해 더듬거리며 변명을 했다. 

"그 그건 계속 누워있다 힘들어서 산책하러 나간 거야."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자리로 들어가. 다음부턴 빠지지 마라." 

'끝? 진짜?' 

진짜 그게 끝이었다. 맥이 빠질 만큼 선생님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걱정하거나 나무라지도 않았다. 선생님은 무심히 다음 조회 사항을 안내했다. 정말 다행이었지만 한 편으로 학생들에게 관심이 없는 참 무심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4학년 어린 여자애가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대범성은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 더 대단한 건 그렇게 간 큰 행동을 했는데 엄마는 내가 성인이 되어 그 일을 말할 때까지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다. 아빠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학교도 학생 개개인 사정에 무관심했지만 엄마, 아빠도 두 분의 문제에 빠져 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부모가 생각지 못한 틈새에서 아직 어리기만 할 거라 생각한 열한 살 아이가 저지른 찐 일탈이었다.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부모는 자식이 고민이 있을 때 털어놓을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대화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가리기 급급한 존재가 된다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물질적으로 좋은 것을 주려고 애를 쓰면서 마음을 돌보는 것을 간과할 때가 있다. 단칸방에서 가난하게 살았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는 부모님이  화목하지 않고 그것을 피부로 느꼈을 때 불행하다고 느꼈다.


머리가 조금 굵어진 나는 알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집은 화목하지 않고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며 결정권이 없는 나는 어떤 상황에 던져지더라도 그대로 견뎌야 될 운명이라고.

동동 단칸방에서 행복은 이사한 방 두 칸만큼 커진 게 아니라 그 넓이만큼 옅어지고 있었다.



<엄마의 이름 앞 이야기>

1.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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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롤로그-영웅 영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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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 영숙이는 선생님 시킬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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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랭이는 뭐하나 저 간나 안 물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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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와야 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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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뽕 따러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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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남의 집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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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진모 엄마는 키가 시집가서 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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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내 살림과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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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도시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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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어두운 터널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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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내 이야기>

1. 맨드라미는 소환 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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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칸방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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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더 이상 기댈 수 없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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