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전살이 / 항아리 (칠보산 어린이집 교사)
모험이 필요해
3월초 옛이야기 시간에 ‘은혜 갚은 개구리’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이야기 말미에 나들이 길에 개구리를 만나면 구슬을 물고 있는지 잘 살펴보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확장활동으로 연결이 되어 나라찬방(6~7세)에서 기존에 했던 탐험과 결합해서 ‘구슬탐험’을 떠나기로 했다. 형님들이 마냥 부러운 누리찬방(5세) 친구들도 함께 하고 싶지만 낮잠을 안 자고 떠나는 탐험을 하기에는 아직은 힘들어서 다른 대안을 찾아야했다.
그쯤에 누리찬방 친구들은 그림책 <곰사냥을 떠나자_헬린 옥슨버리>를 재미나게 보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곰사냥을 떠나는 것처럼 사각 서걱 풀밭을 혜치고, 덤벙 텀벙 강을 헤엄치고, 처벅 철벅 진흙탕을 밞으면서 곰사냥을 떠나는 흉내를 내며 상황극을 했더랬다.
칠보산 어린이집에서는 날마다 모든 연령의(4~7세) 아이들이 함께 하는 통합 나들이를 하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하루는 누리찬방(5세) 친구들만 따로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그것도 우리가 재미나게 했던 곰사냥놀이와 결합을 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찾는 것이 바로 ‘누리찬방 곰사냥 모험’이다.
먼저 교사회의 회의시간에 방별 나들이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한 후 화요일에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모아진 의견을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부모와 교사의 만남인 방모임 시간에 누리찬방 곰사냥 모험계획을 알려 드린 뒤 어떤 내용으로 하면 좋을지 부모님들의 의견도 들어보았다. 그리고 진짜 곰사냥 모험을 떠나는 것처럼 준비를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왔다.
누리찬 곰사냥 모험이야기
드디어 4월에 누리찬이들은 첫 모험을 떠나게 된다.
부모님들이 작은 가방과 물통, 작은 모종삽과 긁개를 마련해 주셔서 우리는 저마다 가방을 메고 매주 화요일에 모험을 떠난다. 날마다 형이나 언니들을 졸졸 쫓아다니던 아이들이 이제는 또래 친구들하고만 함께 하는 거다. 형님들을 따라 하던 놀이를 이제는 또래 친구들끼리 만들어 가는 거다. 과연 어떻게 놀이판이 펼쳐질지 설레는 마음과 궁금증을 안고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8월이다.
곰사냥을 떠나기 전에 ‘안전’을 기원하며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몇 번 반복되니 이제는 자연스레 포토존도 자기네들끼리 정하고
“너가 여기 서라, 나는 여기 설 거야.”
하며 자기네들끼리 자리도 정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서로 마주보고 재미있다고 깔깔댄다.
작은 가방을 들쳐 맨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산에 가서 곰을 어떻게 잡을지, 곰을 잡으면 어떻게 할지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길에서 만나게 되는 온갖 자연물이 아이들을 유혹하며 발목을 잡는다.
달마다 피고 지는 꽃과 열매가 달라 매주 우리가 가는 모험길의 모습도 바뀌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아까시나무꽃, 토끼풀꽃, 장미꽃과 같은 온갖 꽃과 버찌, 산딸기, 도토리, 밤과 같은 온갖 열매들 그리고 인기가 가장 많은 개미, 거미, 장수풍뎅이, 공벌레, 매미, 지렁이 그리고 온갖 새와 다람쥐, 청설모까지. 언제나 우리를 반겨주는 자연의 친구들이 있어 아이들은 즐겁다.
자연물을 또래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들여다보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에 친구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간다. 자연물을 이용해 자연물 만다라, 자연물 액자 같은 협동작품을 만들면서도 친구를 찾는다. 매주 화요일 5세 4명이 두어 시간동안 함께 하는 중에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면서도, 누군가 어렵거나 힘들어하면 도와줄 수 있도록 일러주니 서로 배려하고 아껴주는 모습을 자주 관찰할 수 있다. 언덕을 오를 때 미끄러워 무섭다고 우는 친구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넘어져 다친 친구를 위로해 주고, 무거운 걸 함께 들어준다.
누리찬 곰사냥 모험길에 교사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는다. 교사보다 더 큰 교사인 자연이 아이들을 자연스레 이끌어 준다. ‘누리찬 곰사냥’ 에서 교사도 아이가 된다. 덩치 큰 아이가 되어 칠보산 형님들 대신 가끔 곤경에 빠진 누리찬이들에게 약간의 팁을 던져준다. 그걸 힌트 삼아 누리찬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감동과 감탄을 할 때가 많다.
숲 속에서 우리끼리 올망졸망 놀고 있을 때는 마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종종 있다. 세상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우리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7월부터는 매주 목요일에 솔찬방(4세) 동생들과도 함께 모험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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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산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나들이는 날마다 먹는 밥과 같이 아이들을 성장시켜주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통합 연령과 함께 하는 나들이와 더불어 또래 연령과 함께 하는 개별나들이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밥상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화요일이 되면 누리찬이들은 곰사냥을 떠올린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곰사냥과는 사뭇 느낌이 달라서 아이들의 놀이판에 곰사냥은 그냥 하나의 이미지로, 이야기로 함께 한다
5세 누리찬방 교사로서 우리 누리찬이들이 ‘누리찬방 곰사냥’을 통해서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면서 공동의 화제를 주고받는 속에 나를 발견하고 우리를 발견하기를 바란다.
* 곰사냥의 후기는 매주 카페와 날적이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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