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빛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빛을 보기 위해서는 색을 입혀야만 한다. 빛이 색의 형태를 띌 때, 우리는 빛을 인식하고 우리가 빛에 둘러 싸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신이 인간에게 말을 건다면, 아마도 빛의 형태를 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라하의 성 비투스 대성당은 빛으로 가득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성당 안의 사람들은 빛의 향연을 바라보며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성당이 주는 위압감, 여기에 빛이 더해져 사람들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말 많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조차 성 비투스 대성당 안에서는 조용히 카메라 셔터만 누를 뿐이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은 지금껏 가본 유럽의 대성당 중에서도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다. 성당의 외관도 어마어마했지만, 성당 안에 들어서자 그 규모에 기가 눌릴 정도였다. 성 비투스 대성당은 전체 길이가 124m, 너비가 60m, 천장 높이가 33m에 이른다. 이 넓은 공간을 빛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였는데도 스테인드글라스는 은은하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은 빨강, 파랑, 노랑, 보라 등 각양각색으로 변신해 사람들을 비추고 있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은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지만, 스테인드글라스를 비롯해 내부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많은 관광객이 입장료를 아끼려 입구에서 잠깐 성당 내부를 보다가 돌아가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입장료가 전혀 아깝지 않은 경험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은 바로 앞까지 가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성경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복잡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도상을 활용해야 했다. 그렇다고 그림책처럼 단순하게 그릴 수는 없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든 사람들은 당대의 미적 감수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가득 메운 화려한 도상과 아름다운 색채는 바로 앞까지 다가가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 망원경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순서대로 스테인드글라스를 하나하나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세 번째 스테인드글라스는 알폰스 무하가 직접 그린 작품이었다. 다른 곳보다 많은 방문객이 스테인드글라스 앞에 서 있었다. 나도 넋을 잃고 위를 올려다봤다. 무하 미술관과 <슬라브 서사시>에서 만났던 체코 사람들이 스테인드글라스 안에 한 명 한 명 살아 숨 쉬는 듯했다.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 <성 그리스도와 성 메토디우스>는 다른 스테인드글라스와는 달리 유리에 직접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색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맨 위에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고, 그 밑에는 슬라브 민족의 어머니인 슬라비아(Slavia)가 있었다.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슬라브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무하에게는 신과 민족이 다르지 않았다. 신의 목소리가 곧 민족의 목소리였다. 무하 특유의 생생한 인물 표정에 감탄하며 한참을 스테인드글라스 앞에 멈춰 서 있었다.
빛과 색이 함께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광경을 담아내려 카메라 셔터를 여러 차례 눌렀지만, 은은한 빛을 제대로 포착할 수는 없었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보다 결국은 단념하고 그저 눈으로 그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 "빛의 존재를 우리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창"이라고 설명했다. 성당 내부를 비춰주는 빛에 둘러싸여 한참을 서 있다 보니 비로소 빛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세 성당을 설계한 이들은 빛을 통해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을 것이다. 인간은 아둔해서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성당의 설계자들은 빛을 통해 신이 인간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종교를 믿지 않는 나에게 빛은 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여행은 열흘을 넘어서고 있었고 처음 출발했을 때와 달리 몸과 마음이 조금 지쳐있었다.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워야 했다. 쌓여가는 게 많을수록 내보내야 할 것도 많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자고 결심하게 했던 동기마저 그 사이 희석돼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걱정은 나무의 뿌리처럼 이리저리 뻗어나갔고, 한동안 잊고 있던 생계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경우도 많아졌다. 빛은 그런 내 마음속의 걱정과 불안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고, 다시 발걸음을 뗄 수 있는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빛이 지닌 치유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거대한 치유의 방이었다. 무하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떠나 성당 깊숙이 들어가자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스테인드글라스들이 줄지어 모습을 드러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하나하나가 독특한 고유한 문양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하나도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성당 안에는 네포무츠키 성인의 커다란 묘와 조각상이 있었다. 네포무츠키 성인은 고해성사의 내용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택한 첫 번째 성인이라고 한다. 그는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왕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혀가 잘리고 돌에 묶인 채 강물에 빠져 죽었다. 실제로는 프라하 왕가와 가톨릭 교회 간의 알력 다툼 때문에 네포무츠키 성인이 죽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람들은 더 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법이다. 까를교에는 네포무츠키 성인의 청동상이 있는데, 많은 사람이 소원을 빌며 청동상을 만져 금색으로 빛날 정도다.
성당에 있는 네포무츠키 성인의 묘는 온통 은으로 장식돼 있었다. 묘를 장식하는데 무려 2톤에 이르는 은을 썼다고 한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해 성당 안으로 들어온 빛이 네포무츠키 성인의 묘에 반사되면서 성당 내부의 빛이 더 다채로워졌다.
유럽의 성당들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지니고 있었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네포무츠키 성인의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앞서 부다페스트에서 방문했던 성 이슈트반 대성당도 그랬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헝가리 초대 국왕이자 가톨릭 교회의 성인인 이슈트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성당이다. 이 성당의 안쪽에는 이슈트반 예배당이 따로 있는데, 거기에는 '성스러운 오른손'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슈트반의 오른손 뼈가 전시돼 있었다. 이슈트반 예배당에도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다. 이슈트반 대성당 자체는 비투스 대성당에 비해 규모가 작았지만, 이슈트반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만큼은 비투스 대성당의 그것 못지않게 밝고 아름다웠다.
유럽의 대성당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 쌓여 있는 오랜 이야깃거리 덕분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찾지 않는 성당은 오래된 돌들의 무덤일 뿐이다. 오랜 역사의 성당에 숨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이들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사람의 이야기다. 성 비투스 대성당과 맞은편의 성 이르지 교회,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방문했던 여러 교회들을 떠올려보면 두 가지가 남는다. 빛과 사람이다. 빛이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공간이 유럽의 성당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빛을 소중하게 여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간직했다.
프롤로그
① 부다페스트 밤의 풍경
② 부다페스트 키슈피파 레스토랑
③ 부다페스트 테러하우스
④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
⑤ 빈 제체시온 클림트 <베토벤 프리즈>
⑥ 빈 벨베데레 미술관
⑦ 빈 벨베데레 미술관
⑧ 빈 프라터, CAFE SPERL
⑨ 빈 미술사 박물관
⑩ 프라하에서 읽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⑪ 플젠 필스너 우르켈 공장
⑫ 프라하 오페라 하우스 <카르멘>
⑬ 프라하 <슬라브 서사시>
⑭ 프라하 <무하 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