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자 Mar 22. 2016

검은 비석으로 쓰인 독일의 홀로코스트 반성문

⑯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이러한 범죄들이 희생자의 수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범죄에 개입한 사람들의 숫자 측면에서도 집단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수많은 범죄자들 가운데 희생자들을 실제로 죽인 것에 얼마나 가까이 또는 멀리 있었던가 하는 것은, 그의 책임의 기준과 관련된 한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와 반대로, 일반적으로 살상 도구를 자신의 손으로 사용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 히틀러나 아이히만 같은 전범이 아니라 평범한 독일 사람들 모두라고 선언한다. 히틀러나 아이히만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평범한 독일인의 침묵과 동조, 협력 덕분이다. 한나 아렌트는 학살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의 정도는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베를린과 아우슈비츠의 거리만큼이나 독일인들의 책임도 커질 수밖에 없다.


독일인들은 이 끔찍한 범죄를 잊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심장에 검은 비석을 세워 영원히 이 범죄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베를린에 도착한 이튿날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가든(추모공원)으로 갔다. 독일 통일 이후 베를린의 심장이 된 브란덴부르크문 바로 옆에 거대한 추모공원이 조성돼 있었다.

추모공원은 처음에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추모공원 바로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공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베를린 한 가운데 만들어진 추모공원은 2711개의 검은 비석으로 이뤄져 있다. 검은 비석의 높이는 다양했다. 4미터나 되는 비석이 있는가 하면 입구 쪽의 비석들은 작은 의자만 한 높이였다. 비석들은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높아졌다. 별생각 없이 비석 사이로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눈 앞의 시야가 사라지고 비석 안에 갇힌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다양한 높이의 비석들은 밖에서 보면 흡사 파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태양빛에 따라 비석들은 물결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역동성은 비석들 안에 들어서면 모두 사라진다. 침묵과 불안감이 엄습했다. 함께 간 친구나 연인, 가족이 불현듯 눈 앞에서 사라진다. 검은 비석은 그 자체로 비석의 기능을 한다.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잠깐이나마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이 추모공원을 설계한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은 질서 속에 잠재해 있는 혼란의 가능성을 담아내려 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적절한 크기의 질서정연한 체계가 너무 크게 확대되어 원래의 의도된 비례를 벗어나게 될 때, 인간 이성의 상실을 초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이 격자 체계는 내재적인 혼란과 질서 있게 보이는 모든 체계에 잠재된 혼돈의 가능성을 나타내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추모공원의 지하에는 홀로코스트 추모관이 있다.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한 홀로코스트의 참혹한 기록들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추모공원의 검은 비석들을 걷다 보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난다. 추모관은 입장객의 숫자를 제한하고 있었다. 10여분 정도를 입구에서 기다린 끝에 계단을 내려갈 수 있었다. 추모관 입구에서는 철저한 보안 검색을 받았다.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검색대와 금속탐지기가 있었고, 소지품을 모두 꺼내야 했다.

추모관에 들어온 관람객들은 말이 없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해 놓은 연표가 있었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팔짱을 끼거나 벽에 기댄 채 한참 동안 연표를 바라봤다. 연표 안의 모든 숫자를 다 외우기라고 할 것처럼 사람들은 집중했다. 그때는 이 모든 숫자가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추모관에서 관람객들이 마주할 역사는 잔인하고 끔찍하고 가슴 아팠다.


나는 그런 마음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무심코 들어선 전시관에는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품에서 발견된 편지들이 전시돼 있었다. 편지들은 바닥에 전시돼 있었기 때문에 글귀를 읽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에게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고하는 편지는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었고, 오로지 사랑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학살당한 유대인, 그들에게는 다른 것을 덧붙일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공포 속에 그들은 사랑을 적었다. 


Dearest Herta and Lore! We will see each other no more. I wish you both all the best. Think of me with love, as I do of you. Final greetings, kisses to both of you. I end.
Dear father! I am saying goodbye to you before I die. We would so love to live. but they won't let us and we will die. I am so scared of this death. because the small children are thrown alive into the pit. Goodbye forever. I kiss you tenderly.

그들의 마지막 편지를 읽는 내내 눈물을 억지로 삼켜야 했다. 사람들의 훌쩍이는 소리만이 어두운 전시관을 가득 채웠다. 누구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았다. 편지의 사연 하나하나가 이렇게나 애달픈데, 이런 사연을 간직한 죽음이 600만이나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지나온 동유럽의 도시들은 모두 전쟁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부다페스트의 테러하우스와 빈의 홀로코스트 추모비, 프라하의 유대인 공동묘지까지. 유럽인들에게 홀로코스트는 흘러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남아 있는 상처였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그들의 아픔과 한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 믿기지 않는 현실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개가 숙여졌다.


이어지는 전시관은 'Room of Names'였다. 말 그대로 이름들의 방이다. 넓은 전시관의 벽들에는 학살당한 유대인의 이름이 한 명씩 차례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스피커에서는 유대인의 이름을 나직하게 호명했다. 유대인들의 이름을 한 번씩 부르는 데만 6년 하고도 7달, 27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게 학살당한 유대인의 이름을 한 번씩 모두 부르고 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호명을 시작한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이었다. 추모관의 입구에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유대인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글이 있었다.


"It happened, therefore it can happen again: this is the core of what we have to say."

역사는 반복된다. 하지만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역사도 있다. 프리모 레비의 글과 이름들의 방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었다.


추모관은 크지 않다. 추모관 전체를 둘러보는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추모관에는 유럽 각지에서 학살당한 유대인 가족들의 사진도 있다. 사진 속의 일가족 중에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였다. 전쟁과 학살은 그들에게서 가족을 빼앗아갔다. 나는 사진 속의 유대인 중 살아남은 이들의 얼굴에 더 눈길이 갔다. 그들은 전쟁 이후 어떻게 살아갔을까. 살아남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프리모 레비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추모관을 나오자 해가 저물고 있었다. 추모공원에는 관광객과 현지인이 가득했다. 말없이 검은 비석이 연출하는 장관에 빠져드는 연인도 있었고, 비석에 걸터앉아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학생들도 있었고, 비석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는 꼬마 아이도 있었다. 기쁨과 슬픔이 서로 다르지 않듯이 추모와 놀이의 경계도 희미했다. 사람들에게 추모공원은 추모의 공간이자 쉼터였다. 죽음을 애도하는 곳인 동시에 삶의 여유를 되찾는 곳이었다. 추모공원 지하에 가득했던 한숨과 눈물은 살아 있는 현재로 탈바꿈했다. 


프롤로그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용기가 아닌 동기

① 부다페스트 밤의 풍경

야경을 아름답게 해주는 것은 빛이 아닌 어둠이다

② 부다페스트 키슈피파 레스토랑

글루미 선데이의 선율을 따라

③ 부다페스트 테러하우스

헝가리에게 히틀러와 스탈린은 현재진행형이다

④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

삶은 죽음을 향한 전주곡

⑤ 빈 제체시온 클림트 <베토벤 프리즈>

시는 음악이 되고, 음악은 미술이 된다

⑥ 빈 벨베데레 미술관

코코슈카와 에곤 실레, 세기말을 그린 화가들

⑦ 빈 벨베데레 미술관

색들의 각축장, 클림트의 풍경화

⑧ 빈 프라터, CAFE SPERL

비포 선라이즈 사랑의 속삭임을 따라

⑨ 빈 미술사 박물관

그림으로 쌓아 올린 박물관

⑩ 프라하에서 읽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⑪ 플젠 필스너 우르켈 공장

"맥주, 맥주!"

⑫ 프라하 오페라 하우스 <카르멘>

카르멘의 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

⑬ 프라하 <슬라브 서사시>

슬라브 민족을 위한 알폰스 무하의 장엄미사

⑭ 프라하 <무하 미술관>

무하가 창조한 여신들을 만나다

⑮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신은 빛을 통해 말을 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은 빛을 통해 말을 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