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차, 패션MD, 상품기획 어디까지 알고 있니, 디자이너와는 또 달라
내가 만드는 옷은 누가 기획하는가? 누가 디자인하는가?
한 때 패션회사에서 인턴을 한 적이 있다. 고객을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니즈’를 찾아서 그들이 ‘구매할 만한’ 옷에 대해 제언하는 일이었다. 몇 개월 뒤 내가 제언한 내용이 상품에 반영되어 출시되는 것을 목격했을 때 어찌나 뿌듯하던지.
오늘은 그 것을 업으로 삼는 상품기획 MD를 이 자리에 모셨다. 필자가 인턴으로서 경험한 일은 극히 일부일지라 실제 상품기획자들이 하는 일이 궁금해졌다. MD의 모든 것을 알아보자!
-Up (業) Side 목차-
03. 전략 컨설팅이 궁금하다고? (Feat. 뉴욕 컨설턴트)
11. 다들 주목! OECD 아프리카 담당이 한국인이라고?
13. 나의 두 번째 직장, 사모펀드(PE)의 A to Z
14. Next Steve Jobs? 상품 기획자의 삶
15. 우리가 머무는 공간을 만든다, 가구기획자 이야기
1. 패션MD에 대한 뿌연 상을 거둬주십쇼!
2. 패션 MD는 다 디자인 전문가?
3. 뭐든지 다하는 그녀의 하루
4. 회사생활은 솔직하게 몇 점?
5. 취업으로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오랜만이에요~ 지금 하는 일을 간략하게 소개해주겠어요?
스포츠 브랜드에서 상품 기획(이하 MD)하는 일을 하고 있어.
그렇군요! 원래는 다른 직무에 계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MD 일을 한 지 몇 년이나 되었죠?
내가 일을 한 건 6년 정도고, MD로서는 이제 1년이 넘었네!
그 전에는 뭐했어요?
같은 (패션) 회사 신사업 개발 팀에서 글로벌 유통망 설립 프로젝트를 했었고, 그 전에는 전략기획실에서 브랜드 단위의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프로젝트를 했었어.
굵직굵직하신 것들을 하셨네요. 그럼 오늘의 인터뷰 주제인 MD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하겠습니다. 사실 패션 MD에 대해 막연하게만 알고 있어요. 어떤 일을 하는지 뿌연 상을 거둬주십쇼!
MD는 종류가 많아. 백화점의 유통 MD도 있고, 나 같이 브랜드에서 옷을 기획하는 상품 기획 MD도 있, 나도 사실 다른 업계 MD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비교를 해주기보다는 내 일을 소개해주는 느낌으로 말을 해줄게.
패션업계에선 MD가 하는 일을 ‘시즌’에 따라 나누어 관리해. 현재 (이번 시즌) 팔리고 있는 상품과 다음 시즌에 팔릴,이미 생산 중인 상품, 그리고 1년 후에 출시할 상품에 대한 관리를 하고 있어.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년 후의 상품을 기획하는 일이야. 자식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예전부터 궁금했었는데, 왜 일년 전 것을 미리 만들어요?
요즘 추세는 SPA(Fast fashion이라고도 함.)로 인한 반응 생산 (소량을 생산하고, 시장 반응을 보며 물량을 조절) 쪽으로 확대되고 있긴 한데, 패션 트렌드가 보통은 1년 전에 이미 정해지고, 제품 원가 부분에서도 일년 전 생산이 유리하기 때문에 미리 하는 편이야. 특히 우리는 비수기에 원자재 사입을 해서 원가를 낮추고자 하는 부분도 있어.
그래서 정교하지는 않지만 1년 전부터 수요 및 트렌드를 예측해서 제품 기획을 하고 생산을 해. 내가 원/ 부자재 사입하는 쪽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에 원가 절감 부분에 대해 얼마나,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같은 경우에는 생산 리드 타임을 기획하는 사람이 있고, 그 파트에서 코스트 절감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그렇구나. 그럼 일년 후 기획하는 시즌에 대해 MD로써 어떤 일을 하는 지 조금 더 상세하게 말해주세요~ 저도 인턴 때 경험해보기 전까지 잘 몰랐었거든요.
일년 후 기획하는 시즌에 대해서는 소비자 니즈, 트렌드 예측, 경쟁사 분석, (자사) 상품 판매 데이터를 종합해서 내년에 어떤 상품이, 어떤 컨셉으로, 어떤 종류가 나와야 하며 가격대는 어떠해야하는지 써서 제출해. 경영대 마케팅 수업에서 말하는 4p 분석을 떠올리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거야. 이제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을 제품 하나하나에 상세히 서술하지!
구체적 설명을 원하는 것 같으니 예시를 들어줄게.
우선 큰 단위의 카테고리를 결정해. 다운 파카는 몇 종류, 맨투맨은 몇 종류, 바지는 몇 종류. 그 다음은 각 카테고리 내로 들어가 풀어줘. 이번 다운 파카로는 어떤 고객을 타겟할 거고 그러려면 어떤 유형으로 나와야하고 어떤 디자인 형태여야 한다는 아웃풋을 뽑고, 최종적으로 디자인 형태 및 포인트, 고객 등이 서술된 요청서를 가지고 디자인실과 회의를 하여 결정해.
사실상 이것을 하기 위해 앞서 말한 조사들을 수행하는 거야. 이제 요청서에 따라 디자이너가 샘플까지 뽑으면 샘플을 가지고 품평회를 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한 후에 데이터와 직관을 적절히 섞어 ㅎㅎ 수량 결정 회의를 하지. 그리고 나서 대량 생산 단계로 넘어가는 거야.
이번에는 앞서 말씀하신 다른 두가지 일 (현재 판매되고 있는 상품 체크 및 생산 중인 상품에 대한 일)을 설명해주세요!
이 두 업무는 기획 MD의 부수적인 업무라 할 수 있어. 현재 판매되고 있는 상품에 대해서 관리를 하는 건 1년 후 상품 기획을 위한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서야. 주로 매장, 영업부 등을 통해 현재 판매 중인 상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지.
그리고 현재 생산 중인 상품에 대해서는 생산 중 납기가 지켜지고 있는지 체크를 해.
흥미롭네요. 여러 MD를 인터뷰 했었는데, 산업마다 역할이 상이하네요!
응 모두 달라 ㅎㅎ 주로 후배들한테 설명할 때는 돈 쓰는 사람이라고 설명해. 내가 이번에 쓸 수 있는 돈이 1,000억원 어치야. 그 돈을 써서 생산해야하는데, 어떤 상품을 몇 개 생산해서 얼마에, 누구에게 판매할 것인지에 대해 정하는 것이지.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에 시장에 풀고, 기존에 판매했던 상품들은 언제 회수할 것인지를 모두 포함한 사업 계획을 짜. 회사 돈으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일종의 사업을 하는 거야. (하이라이트)
궁금한 게 어떤 사람들이 상품기획MD가 되나요? 의류 학과를 나와 디자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하나요? 아니면 디자이너 출신이어야 하나요?
디자인에 대한 백그라운드가 있으면 좋지만 디자이너 출신일 필요는 없어. 사람이다 보니 그리고 서로 맡은 역할이 상이 하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보는 관점하고 MD가 보는 관점이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이때 MD가 디자이너가 막혀 있는 부분에 뚫어 줘야 해.
예를 들어 너가 입고 있는 옷의 넥라인 하나만 변경해도 판매율이 달라질 수 있어. 지금보다 조금 더 파져있는 것과 올라가 있는 것의 차이는 분명하니까. MD는 이렇게 정성적으로 보여지는 미적 요소에 대해서도 판매와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해. 그래야 어떤 식으로 하자는 구체적 대안이 나올 수 있고.
만약 MD가 디자인, 상품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그것을 판매와 연결시키기 힘들어. 그냥 디자이너한테 맡겨 버리게 되는 거야. 문서상으로 디자인 특징만 보고 수량결정을 하게 되니까.
MD가 판매율 관리를 해서 성과 평가를 받게 되는 건데, 이렇게 맡겨버리기만 하면 답이 없어지는 거지.
그럼에도 디자인 관련 학과를 나온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그런가요?
물론 의류 학과 출신이 많긴 해. 그런데 알 지 모르겠지만 의류학과가 디자인을 하는 과가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의류학과 졸업생과 디자이너는 명확히 달라~ 디자이너는 전년과 다른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게 주 포인트야. 예를 들어 이번에 출시된 맨투맨이 작년 버전과 똑같으면 상설가서 사지 누가 정가에 사겠어. 디자이너는 제품을 정가에 판매하기 위해 새로운 요소를 옷에 입히는 역할을 해. MD는 잘 팔릴 만한 것을 찾아내 옷에 입히는 역할을 하고.
새로운 것만 있다고 매출이 나는 것이 아니니 MD는 잘 팔릴 만한 것을 옷에 입히고, 수량 조절을 통해 회사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하지.
그래도 전공 관점에서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을텐데, 전공을 얘기하자면 경영학과나 의류학과 애들이 많다고 할 수 있어. 제품에 대해 관심이 많고 사람들이 왜 이 제품을 쓸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문제 해결적 접근 방법이잖아. 그런 면에서 경영 학과 애들이 잘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
예시를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의류 상품을 좋아하고, 많이 경험해봤다면 충분한 것 같아. 예를 들어 너가 입고 있는 더플 코트를 가지고 얘기를 해보자. 너가 MD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지. 더플코트에도 라인이 들어간 것과 통으로 내려오는 것이 있는데, 내가 입어보니 라인이 들어간 것은 여성스러워서 우리가 유니섹스로 팔기 위해서는 통으로 내리는 것이 낫겠다. 또한 모자가 달려있는 것은 귀여운 인상을 주니 여성 고객들한테 어필하기 위해서는 모자 같은 요소가 달려 있으면 좋겠다.
디테일과 고객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굳이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되잖아. 그림을 그릴 필요 없이 옷을 좋아하고, 내 경험이던 고객을 인터뷰해본 결과던 구매, 비구매 요소만 알면 되니까 굳이 학문적인 백그라운드에 한정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작년에 내가 키즈 라인 가방 기획을 했었어. 키즈용 가방인데, 핵심요소가 무게거든. 고객들이 처음 와서 하는 일이 뭐냐면 바로 가방을 드는 일이야. 재작년 상품도 들었을 때 가볍게 한다고 했는데, 실패했었어. 고객들이 무겁다고 하는 거야. 정확하게 어느 정도 되어야 가볍다고 느끼는지 알아야 해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고, 그 결과 XXg 미만으로 하기로 결정을 했어.
그러면 나는 무조건 해당 무게 미만으로 만들어 달라고 디자이너에게 요청을 하지. 디자이너가 이런 저런 요소를 말해도, 그 무게에 어긋나는 부수적 디테일은 제거 해달라고 요청하고.
이제 상품기획MD가 어떤 일을 하는지 상이 잡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세 시즌을 동시에 관리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묘사해주시겠어요?
내가 제일 중요했다고 말한, 일년 후 상품을 기획하는 일은 딱 기간이 정해져 있는 일이야. 내가 상품 기획을 하면 그 다음부터 생산 프로세스로 넘어가니까. 여담으로 이 시즌을 기획시즌이라 하는데, 기획 시즌 + 상품이 생산되는 기간을 머천 다이징 프로세스 (기획자가 기획하여 제품이 매장에 입고되기 까지 걸리는 기간)라 해. 이것을 중심으로 나를 비롯한 생산, 영업, 마케팅 직군들이 일을 해.
그럼 나머지 기간에는 다른 두 시즌 (현재와 바로 다음 시즌) 관련 일들만 하는 거고.
혹시 하루 일과를 한 번 들려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어제 어떤 상품이 얼마만큼 팔렸는지 판매 데이터를 돌리는 거야. 이것을 데일리 / 위클리 / 먼슬리로 모아 관리를 해. 이렇게 데이터를 업데이트 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고, 그 후에는 어느 매장에서 어떤 상품이 왜 이렇게 팔렸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거지.
어떤 상품이 더 나가야하는데 덜 나갔다던가, 반대로 더 나가면 안되는데 더 나갔다던가. 이렇게 판매 데이터를 체크를 하는거야.
그 다음 하는 일은 이슈가 있는 부분에 대해 영업부, 마케팅부에 액션을 요청하는 것이지. 예를 들어 어떤 상품이 초반에는 잘 팔렸는데, 지금은 그 속도를 못 따라가. 그러면 영업부에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결품이 생겨 판매 속도가 느려진 것 같다, 아니면 전반적으로 잘 팔리는 매장에 몰아주자, 혹은 프로모션을 해달라’는 식으로 요구를 해.
이걸 출근하자마자 1시간~ 1시간 30분 정도 걸려 처리해. 현재 판매 중이 시즌에 대해서는 사실상 이게 전부야.
그럼 생산 중인 아이템에 대해서는요?
생산 중인 아이템에 대해서는 생산 리드 타임에 관한 체크를 주로 해. 주 단위로 생산 관리하는 분과 의사소통을 하며 생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해 논의를 하지.
지금 어떤 상품이 베트남 공장의 어떤 공정에 있는가, 원단/ 부자재 수급은 어찌 되고 있는가… 만약 베트남 공장에서 파업이 발생하여 납기 시점이 처음 계획보다 늦어질 것 같다는 연락이 오면 그것에 관한 의사결정도 해주어야 해.
신기하다. 다른 예시는 또 없어요? 예시가 풍부하니까 와닿네요.
원/부자재 가격이 오른다는 연락을 받으면 가격을 올리던지, 생산 수량을 늘려 단가를 낮추던지 하곤 해. 주로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슈들이 출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고민하고, 우리에게 최대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리지.
그 외에는 주로 기획과 관련 있는 일을 해. 다양한 것을 하는데 정해진 것은 딱히 없어. 트렌드 리포트도 보고, 트렌드 세미나도 가고, 아니면 해외에서 잘 나가는 브랜드를 보기 위해 출장도 가고, 경쟁사 분석도 하면서 관련 제품도 실제로 사보고, 아니면 구매했던 고객들에게 인터뷰 요청도 드려보고.. 매일매일이 같지는 않고 시점에 따라 해야할 일을 다르게 가져가.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에는 보통 한 달에 하나씩 테마를 정해서 일을 해. 예를 들어 이번 년도 다운 판매가 잘 되었어. 그러면 그것이 왜 잘되었는지 집중적으로 파악하는데 시간을 사용해.
고객 조사는요? 예전에 인턴 했었을 때 고객 조사 정~말 많이 나간 기억이 나네요 ㅠㅠ
너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는 고객 조사를 많이 하잖아. 그래서 고객 조사는 매일 해. 그 외로 매장 나가서 이주나 한 달에 한번 씩 나가서 2~4시간 씩 아이템을 실제로 팔아보기도 해. 회사에서는 일주일에 2~4시간을 권장하지만 사실 바빠서 많이 못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어.ㅜㅜ
어때요. 직접 팔아보면? 저는 고객 접점에서 일하지 않아 항상 그렇게 하는 분들의 경험이 궁금했었어요.
팔다 보면 고객들이 특정 상품의 이런 면을 매력적으로 생각하고, 반대로 이런 면을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끼는구나가 느껴져. 그리고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기획단계에서 잘못한 건지, 생산 과정에서 초기 기획이 변질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판매 과정에서 어필이 안 된 것인지 판단해볼 수 도 있고.
주로 선호하는 고객 조사 방법이 있어요?
조사 방법이 대략 12가지가 있는데, 그걸 적절히 믹싱 해~ 그때 그때 상황을 봐가며 한다는 게 정확한 말인 것이, 나 같은 경우는 다음주 주간 스케줄을 전주 금요일에 잡거든. 조사 방법도 그 때 결정하고.
재미있어 보이네요!
나는 이 일이 잘 맞아서 재미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잘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조금 힘들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MD를 M(뭐든지) D(다한다)로 불러. 지금까지 말한 일들은 벨류체인 상 앞 단에 주로 위치하고 있지만, 사실 상품이 나와서 판매되는 것에 대한 판매율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마케팅, 영업이 하는 일에도 개입을 할 수 밖에 없어.
예를 들어 판매 하시는 분이 멘트를 잘 못친다 이러면 마케팅/ 영업부에 전화해서 메인 상품이고, 발주량도 집중되어 있는데 액션이 너무 약하다. 판매하시는 분들 인센티브 더 주고, 마케팅 POP (설명) 더 놔달라는 식으로 요구를 하지.
사실상 벨류체인 전 영역에 일이 걸쳐 있다고 볼 수 있어. 그래서 이것도 내 일이고, 저것도 내 일인 성격이 있어. 이런 것이 안맞는 분들에게는 짜증 나는 일일테고, 그 만큼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직업인 것 같아. 그래서 마냥 재미있다고만 볼 수 없을 것 같아.
듣다보니 자기가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잘 해내는 사람이 잘 할 것 같은데, 회사에서 정해주는 일이 많아서 그렇게 보이는 건가요 아니면 스스로 해야하는 것이 많은건가요?
나는 내가 문제제기를 먼저 하는 스타일이야. 이것을 해결해야겠다, 이 상품이 전년 대비 10% 덜 빠진다., 매장에서 보니까 이런 문제가 있다. 나는 이처럼 내가 제안 하는 스타일이고, 사실 MD마다 스타일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보통 브랜드 별로 MD가 몇 명이에요?
이것도 브랜드 마다 달라. 우리는 상품이 크게 성인 / 키즈로 나뉘고, 키즈는 사실상 단독 브랜드 형태로 되어 있어. 그런데 키즈 같은 경우 성인에 비해 제품 종류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의류도, 신발도, 기타 용품도 한 명씩만 맡고 있어. 우리는 성인 의류 다섯 명, 신발 네 명, 기타 용품 두 명 이런 식으로 배치 되어있어.
아마 매출 크기에 따른 인력 배분이겠죠?
응. 그렇지!
듣다 보니, 궁금한게 있는데.. 신입이 바로 하기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모든 의사결정 단위에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임무를 회사에서 신입에게 줄 것 같지는 않거든요. 특히나 브랜딩 및 매출과 직결된 의사결정들이니.
너 말대로 원래는 기획 MD를 신입이 바로 하지는 않아. 나 같은 경우에도 1) 유관 전공 (의류학과 및 경영학), 2) 비슷한 경험(전략기획 부서에서 브랜드 단위의 의사결정을 도와줌)을 한 것이 있어 기획 MD로 올 수 있었어. 그렇다고 아예 안 뽑는 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 회사 사풍은 부딪히면서 일을 배우게 하는 스타일이라 큰 아이템을 바로 맡기지는 않지만 MD일을 보조시키거나 직접 하나 해보게 해. 나 같은 경우에도 작은 아이템부터 시작했어.
그러면 보통 어떤 커리어 패스로 기획 MD를 맡게 되나요?
정해진 틀은 없어. 영업이나 영업MD쪽에서 오는 경우도 있고. 영업MD는 생산된 제품을 각 매장에 몇 개씩 넣어줄 지를 결정하는MD야. 이런 거 경험하고 난 뒤에 주로 기획 MD를 시켜. 너가 얘기한 것처럼 모르고 하면 회사, 브랜드가 한 방에 훅 갈 수 있거든. 나도 이 트랙을 추천해.
아니면 신입 기획 MD를 뽑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큰 일을 주지는 않지. 사실상 보조MD 역할을 하는데, 무역 송장 체크, 한국에 들어올 때 수입품들이 받아야 하는 검사들을 대신 체크해주고, 스케쥴을 체크해줘. 그런 일들을 엑셀로 정리해서 주기도 하고. 사실상 기획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것 같아.
MD가 "나 이번에 이런 상품을 기획할 거야" 할 때, 옆에서 조사보조를 해주기도 하고. 그 후에 조그마한 아이템을 주기도 해. 혹은 처음부터 주기도 하고. 대신 하더라도 의사결정 하는 사람이 자기 관점을 섞어서 피드백을 주고, 그에 맞게 수정을 해주는 편이야.
초임 MD들에 대해 리스크 관리를 해주면서 키우는군요.
응응, 원래는 너가 얘기한 것처럼 기획 MD가 신입이 바로 하기 회사차원에서 위험 부담이 높긴 하니까.
누나는 어땠어요?
나도 처음에는 발주액 100억 넘는 작은 카테고리부터 했고, 그것이 잘돼서 더 큰 카테고리를 나한테 시킨 거야. 나 같은 경우 운이 좋았던 것은 부서장이 내게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주었어. 그것이 초반에 재미있게 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
지난 1년 동안은 가방, 모자 등 액세서리류를 했어. 원래 우리 회사에서 의류 기획MD를 하면 생산 관리 담당자가 따로 있어서 생산까지 관여를 하지 않아도 돼. 그런데 액세서리류는 종류가 적은 대신 생산과 관련된 부분에 공장과 컨택했어야 했어. 벨류 체인상으로 조금 더 넓게 보았다고 이해하면 될 거야.
그런데 요즘 의류 하면서 재미가 살짝 떨어진 부분이 있어. 상품은 많아지고, 중요도도 높아졌는데 너무 기획 쪽으로 포커싱이 맞춰져 있고, 그것도 우리는 MD 한 명에 디자이너가 세명이라 그 부분에서 오는 관계도 약간은 빡세고 ㅎㅎ
일대 다 (1 : 多)야. 나는 대리잖아, 디자인 실장님은 아무리 낮아도 차장 정도인데 그 분하고 붙어야 하거든. 내가 back-up이 빵빵해야 디자이너 실장님하고 붙어 볼 수 있는 거야. 실장님도 이 인더스트리에서 상품을 많이 내 본 사람 이잖아. 나는 실장님의 그런 전문지식이나 경험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아니다 싶은 것들만 백업할 수 있는 선에서 조율하고, 구조화하는데 정말 빡세.
사실 예전 악세서리 때는 내가 디테일한 것 까지 관여했었는데, 원래 그렇게 하면 안돼. 협업을 해야 해. 나는 어떤 용도의 상품이 필요하고, 반드시 이런 요소가 들어갔으면 좋겠다 선에서 그쳐야하는데, 안그러면 디자이너가 필요 없잖아. 기술적으로 그림 그리는 애들만 필요하지. 그런 면에서 조율을 배워나가는 것 같아.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의사 결정함에 있어서 직관적인 영역이 있잖아요. 패션이 다른 산업 대비 더 클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서 패션 제품을 좋아하고 아니고가 그 영역에서 성공하는데 도움을 주나요?
내 생각에는 사실 이성으로 풀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 다만 풀 수는 있는데, 이성으로 풀기에는 너무 빠르게 변하는 산업이거든. 내가 맡은 브랜드 같은 경우에는 SPA처럼 빠르게 출시하고, 시장 반응에 따라 물량조절하는 측면이 적기 때문에 괜찮아. 유행이 미치게 빠른 분야에서는 기획이 할 일이 적어. 빠르게 만들어 팔고, 피드백 받고, 다시 반영해서 진행하면 돼.
그런데 내가 있는 곳은 트렌드가 그렇게 미친 듯이 빠르게 변하지 않아서 분석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있고, 실제로 의미있게 작용도 해. 논외로 기능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원/ 부자재의 개발, 기능 개발 속도가 빨라야 하는 영역이지만 ㅎㅎ 원자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의복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원한다고 다 할 수 있지 않은 부분이 있는 거는 조금 있어.
그런데 누나는 왜 패션 산업으로 왔어요?
그냥 내가 제일 패션을 좋아하고,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부분이어서. 사람이 태어나서 학비던 음식이던 자기가 소비하는 패턴이 있잖아. 나는 그것이 옷이었어.
앞으로도 패션 기획MD를 할 지 모르겠어. 화장품으로 갈 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빠르게 변하는 소비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확실했고 패션이 그 시작이었던 것 같아.
나한테 제일 가까운 아이템을 해서 그런지, 패션 기획MD가 된 것이 자연스러웠고, 그게 업무에 적응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것 같아. 제품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이해도도 있었으니까.
회사는 만족스러워요?
자율성 부분에서는 만족도가 높아. 그런데 얄미운 것은 내가 좀 알 것 같고,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내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내 업무를 할 수 있겠다 싶으면 더 어렵고, 챌린지 한 일들을 주거든. 5년차가 되니까 회사 패턴을 알겠고, 이용 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하하하하하 짜증나!
앞서 했던 다른 일들과 비교했을 때는 어때요?
MD는 실행을 해볼 수 있는 직업이야. 솔직히 전략 기획이나 신사업 개발도 실행에 관여는 하지. 그런데 실행팀이 따로 붙잖아. MD는 어쨌든 하나의 팀안에서 내 의도대로 생산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판매는 어떤지 체킹해 볼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좀 더 기획과 실행의 간극이 적은 것 같아.
단점은요?
빡세. 아까 말했잖아, M(뭐든지) D(다한다) 라니까. 전략 기획, 신사업 개발도 빡세지. 그런데 MD는 기획한 모든 상품에 대해 기획되는 순간부터 생산되고 입고 되어 팔리는 순간까지 다 책임을 져야해.
이 옷에 문제가 생겼어. 그런데 매장에서 그걸 발견하잖아? 그러면 노답인거지. 사실 세일즈 단계에서 잘 못해서 안팔리면 담당자는 내가 아닌데, 내가 책임 져야하는 것이고… 원/ 부자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내가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만 옷이 잘 못 꿰졌는지, 현지 공장 습기 때문에 재질이 조금 안좋아진다던지 하는 문제는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지만 어쨌든 판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내가 온전히 책임을 져야해.
이럴 때 퇴사하고 싶다?
퇴사? 퇴사.. .아직 심각하게 해보고 싶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MD가 되고나서는 없는 것 같아. 다만 배우고 싶은 사람이 적다라는 느낌이 들면 그런 생각이 가끔은 들긴 해.
반대로 제일 뿌듯했던 순간들?
요즘이야. 작년에 기획했던 것들이 나와서 성과가 나오니까 ㅎㅎ 다 내 자식들이야. 내 자식도 내 마음대로 기획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만 얘네들은 손가락, 발가락, 눈썹까지 내가 다 기획할 수 있잖아.
기획 할 때 얘네들이 세상에 나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게 있는데, 예를 들어 3월에는 얼리어답터 같은 패션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구매할 것이고, 이의 파급효과가 어떻게 나서 4월에는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 결과 판매가 피크를 칠 것이라는 시나리오 같은 거. 그런데 그게 진짜로 나오잖아? 그러면 정말 뿌듯해.
반대로 나오면 우울하지. 안팔려도 우울하고.
그것에 대한 압박이 장난 아닐 것 같은데..?
그거 못 견디면 못하지. 그래서 애들이 전투적이야 ㅎㅎ
누나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요즘은... 잘 모르겠어. 같은 맥락에서 내가 멘토링 해주던 것을 일년 전부터 안하고 있거든. 아까 너한테 얘기했었잖아. 나조차 흔들리는 30대이고 나도 고민이 많은데, 내가 무슨 얘기를 해줘.
먼저 길을 밟아 봤으니 ㅎㅎ 누나 이것저것 많이 했었잖아요!!
요즘이랑 우리랑 취업 환경이 다르지 않냐? 그래서 더 하기 조심스러운 것이 있어.
많이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으니 얘기해주세요. 보시는 분들이 다 걸러 들으실 거에요.
음.. 나는 후배들 만나면 이렇게 얘기를 해. 내가 실제로 지원했을 때 마인드도 그랬고. 우선 예전부터 내 친구들이 나한테 미쳤다고 그랬어. 일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거든. 친구들이 재는 미쳤거나 가식이라고 했어.
나는 솔직히 입사해서 지금까지 일이 재미 없었던 적은 없어. 굳이 뽑자면 기획만 하고 실행이 안되었던 순간들인 것 같아. 그 때는 사실상 의전 역할을 했었거든. 화려하게 외국 나가서 이것저것 보며 기획했었는데, 사실상 의전이었던 것이지. 생전 안걸리던 위염도 걸리고 그러더라..
나라는 사람은 내 멋대로 하고, 그것을 실행시켜야하는 사람이었던 것이지. 반대로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잘 맞춰주는 사람도 있어.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자기 이해야. 나에게 안정적인 공무원 시켜줄 테니 하루종일 같은 서류보라고 하면 우울증 걸릴 지도 몰라. 그만큼 나에게 안맞을 거라는 확신이 있거든. 내가 의전 관련된 일을 일년 남짓 했었지만 거기서도 같은 감정을 느꼈잖아.
이게 취업과 연결시키면 자소서, 면접과 연관되어지는 것 같아. 자소서도 자소설처럼 보이면 좋지. 그런데 자기 이해를 기반으로 써야해. 내가 공격적인 사람이야. 그러면 그것이 장점이 될 수 있는 회사, 포지션에 내 공격성이 어느 정도고, 얼마나 일에 도움될 것이냐의 관점으로 어필 해야 해.
그런데 요즘은 취업이 힘들고, 어디든 붙어야 한다는 심리 때문에 여기에다가는 이렇게, 저기에다가는 저렇게 쓰잖아. 나는 그 접근법이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여력이 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게 첫번째 인 것 같아. 나한테 없는 것은 없다고 쓰고, 있는 것은 있다고 쓰고. 그 결과 내게 맞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만약 꾸며서 들어갔는데, 안맞으면 괴롭잖아. 괴로워하고, 또 고민하고 시간 낭비인데..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회사에 편지를 보내는 심정으로 기다리는게 좋은 것 같아.
다만 지금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는 맞지 않는 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취업은 해야하니까. 결국 어떤 접근법을 취하는 지는 개인의 선택 문제이기는 한데, 이런 길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야.
그래도 자기 이해는 꼭 했으면 좋겠어. 취업이 어려우니 준비 해야 하는 것이 많으니 이것저것 다해 봤는데, 그럴수록 자기 이해가 잘 안될 수 있는 것 같아. 아무래도 다급하니까 자기를 돌아볼 시간도 갖기 힘들고, 그러한 불안감에 뜨문뜨문 남들이 하는 일을 다하며 시간 보내고..
내가 인턴, 신입 사원을 뽑아봤는데 면접장에 오는 애들이 다 비슷해. 스펙이 상향평준화되어서 공모전, 인턴, 창업 다 해봤어. 그런데 내가 이력서에 적어낸 것 중, 이런 일을 왜 했어요? 무슨 생각으로 했어요? 라고 물어보면 이력서에 한 줄로 적으려고 했던 것인지 아닌지가 티나. 내 개인의 취향일 수도 있는데, 자기가 하나의 테마를 갖고 쭉 파온 애들이 더 멋있고 잊혀지지 않는 면이 있어.
1-2학년이라면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
누나는 어떻게 했어요?
너도 알다시피 나는 많은 경험을 했었고, 나는 취업 할 때 그 구슬을 잘 꿰려고 노력했었어. 내가 이것을 왜 했는지 고민해보고, 하나의 테마로 나를 관통시켰던 것 같아. 굴비 엮듯이. 참 요즘 취업이 어렵다 보니 함부로 말을 하기가 어렵네 ㅎㅎ…
아니에요. 많은 도움이 되었을 거에요!
그녀는 나의 인턴 시기 사수였다. 당시 그녀는 일에 열정이 많았으며, 일을 잘했고, 행동력도 있었다.
한번은 가설 검증을 위해 고객 조사를 해야했었는데, 우리가 쭈뼛쭈뼛거리자 직접 거리로 나가 고객을 인터뷰하고, 구매 고객들에게 일일이 전화걸어 끈질기게 인터뷰를 따내는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근 1년만에 그녀를 만나니 그 시절이 떠올랐다. 시간이 4-5년이나 흘렀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조금 달라진게 있다면 나도 돈을 번다는 사실. 하지만 당시 그녀의 연차와 지금 나의 연차가 같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은 묘하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자연스레 (!?) 대화의 주제는 일로 넘어가게 되었고, 그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며 인터뷰는 즉흥적으로 진행됐다.
MD 관련 프로젝트를 했었지만 다시금 그녀의 입으로 MD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코끼리의 일부분만 봤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 경험한 것 이상으로 기획MD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해준 그녀에게 감사를 전한다. 더불어 이 인터뷰를 통해 MD에 대해 직접 경험 한 것 이상을 알려줄 수 있다고 자부한다.
Disclaimer
Up(業) Side의 인터뷰는 개인적 경험 및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특정 회사의 상황이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