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의 이야기에 당당해도 됩니다
에세이는 누구에게나 친밀한 글이다. 내용은 친구에게 대화하듯 친밀하지만, 그 비밀스러운 얘기를 읽을 마음 있는 독자 누구에게나 들려준다. 그래서 에세이를 읽는 독자는 작가와 한층 가까워짐을 느낀다.
하지만 에세이는 누구나 읽을 수 있기에 쓰기 조심스러워지는 글이다. 가뜩이나 글을 쓰는 것도 어려운데, 에세이를 쓰는 데는 꽤나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솔직하지 못한 글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독자가 (단번에는 아니더라도 언젠간) 알아챈다. 어느 독자는 넘어갈 수 있어도 누군가는 알아차리고 만다. 그렇기에 솔직해야 하지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이기에 솔직하기가 쉽지 않다. 나의 이야기가 비판과 판단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났던 일, 나의 생각, 나의 관점, 나의 주장 등등. 에세이는 "내 이야기"다.
에세이는 자기 얘기를 못하는 사람이 가장 써야 하는 글이지만, 에세이는 자기 얘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쓰기에 가장 어려운 글이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부끄럽고, 내 이야기가 과연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 든다.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얘기를 누가 궁금해한다고... 글은 대단한 사람들이나 쓰는 거지 내가 뭐라고...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당연히 들겠지만, 나도 여전히 이런 생각이 매번 들지만, 그래도 에세이를 써야 한다. 엉망인 에세이를 쓰는 게, 안 쓰는 것보다 낫다. 아마 처음 쓴 100편의 에세이는 다시 읽기 부끄러울 수도 있다. 나는 그 이상을 썼는데도 여전히 부끄럽다. 그래도 써야 한다. 쓰면 쓸수록 덜 부끄러운 에세이를 쓸 수 있다. 점점 생각이 정리되고 글에 논리가 생긴다.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나의 주장이 생긴다. 어떠한 주제에 대해 의견이 생긴다. 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에세이를 쓰는 게 점점 재밌어진다.
당신이 아무리 형편없는 에세이를 쓴다고 해도, 그 누구도 당신이 에세이를 쓸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의 에세이를 읽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당신이 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읽기 싫은 사람은 안 읽으면 그만이다.
대개 에세이를 쓰거나 자기 얘기를 하는 게 꺼려지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도 당신에겐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내가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는 이 세상에 잊혀 가는 이야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주위를 가만히 둘러보면 나만 볼 수 있는 것, 나에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들. 그리고 그중에는 내 마음과 생각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스스로 대변해주지 않으면 그 누구도 먼저 나서서 내 마음과 생각에 신경 써주지 않는다. 가끔 나의 의견을 묻거나 좋은 의도로 내 생각의 추측해 주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도 내가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나는 어려서 수줍음이 많았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손을 들고 화장실에 가도 되냐고 물어보는 게 쑥스러웠다. 그래서 항상 쉬는 시간을 기다리거나, 선생님이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하고 물어보기를 기다렸다.
똥·오줌은 누구나 싼다. 그래서 기다리기만 하면 화장실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오거나, 누군가 내가 혹시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은지 물어봐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드는 억울함, 겪은 불의, 나만 목격한 누군가의 착한 일 같은 것들은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내게 물어주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누가 봐도 못된 내 남편이 얼마나 못됐는지 물어봐 주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그런 것들은 내가 스스로 이야기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헛소리를 아주 단호하게 사람들이 널렸다. 그런 사람들도 자신 있게 자기 얘기를 하는데, 당신이 당신 이야기를 하지 못할 이유 없다.
처음에는 못 쓰는 게 당연하다.
처음부터 말을 잘하는 아이는 없다. 어버버 하다가 유창해진다. 처음부터 근육질이었던 사람도 없다. 볼품없는 몸으로 운동하다가 몸짱이 된다.
내 생각을 담은 에세이도 마찬가지다.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를 글만 쓰다가 나중에는 누군가 공감하는 글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누군가를 위로하는 글을 쓰게 된다. 어쩌면 오늘 못쓴 나의 글이 훗날 나처럼 못쓰는 사람을 위로할 수도 있다. 그러니 계속 쓰자. 일단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쓰자.
아직도 에세이를 쓸 수 없다고 느낀다면 읽어야 할 글들:
어차피 읽을 사람만 읽을 테니 하고픈 말을 쓰면 됩니다
주위에 내 말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어 에세이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