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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민 Nov 27. 2023

TV없는 세상

썬데이파더스클럽 (18)

주말 아침,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에 휑하니 구멍이 뻥 뚫린 것만 같다. 큼지막한 TV가 늘 놓여있던 자리에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맞은편 흰 벽만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아 그랬지, TV를 없애기로 했지. (자주 꺼내진 않았지만 TV와 함께 고요히 빛나고 있던 나의 오래된 친구 엑스박스 원 게임기도 함께 증발했다. ㅠㅠ)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이별은 쉽지 않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작게나마 처음 나만의 보금자리를 꾸몄을 때도, 이후 몇 번의 거처를 옮길 때도 TV는 늘 생활공간의 중심에 있었다. 모처럼 집에서 쉬는 날이면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TV로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한없는 게으름을 즐기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도 드라마 ‘연인’을 TV로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지난 십여 년 동안에도 TV는 훌륭한 보조 양육자 역할을 해줬다. 내가 어릴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TV란 존재가 어쨌든 켜져 있으면 아이들을 끌어당기는 힘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니까.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다 지치면 TV와 바통터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많다. 아이들이 한번 보면 정신없이 빠져들곤 하는 마성의 ‘캐리 언니’, ‘유라 이모’의 존재는 TV를 통해 처음 알았다. 초등학생, 중학생 남매 사이의 티키타카를 코미디로 풀어낸 ‘흔한 남매’ 시리즈 역시 아이들이 보는 TV 채널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나중엔 같이 앉아 깔깔 웃으며 볼만큼 나도 익숙해졌다. 


물론 아이들만 내게 신세계를 알려준 것은 아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보통 한 주를 무사히 마감한 것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우리 집 자체 ‘주말의 명화’ 시간을 가졌다. (물론 둘째는 이 시간을 본인이 좋아하는 치킨을 먹는 ‘치킨 타임’이라고 부른다.) 코로나 기간 동안 무료함을 달래는 차원에서 시작했던 이 루틴은 꽤 오랜 기간 유지했는데, 그러면서 많은 애니메이션들을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같은 지브리의 명작들, ‘라따뚜이’나 ‘엔칸토’, ‘모아나’ 같은 디즈니의 작품들은 꼬마 관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여러 차례 반복 상영(?) 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조금이나마 교육적인 콘텐츠를 보기 바라는 부모로서의 마음이 살짝 섞인 기획이었지만, 나 스스로에게도 꽤나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보거나 처음 보는 애니메이션들이 많았고, 부모의 관점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는 애니메이션이 새롭게 해석되는 부분들이 없지 않아서 감동이 잊히기 전에 브런치에 관람 후기 비슷한 글을 써서 브런치북으로 묶어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TV가 글쓰기 소재까지 제공해 준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나 소중한 TV를 왜 없애기로 했는가? 


사실은 솔직히 늘 고민이었다. 얼마만큼의 영상 노출이 아이들에게 적정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 늘 머릿속에 존재했다. TV를 통해 전달되는 콘텐츠는 어쨌거나 시대의 반영이고, 유년의 기억으로 남는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봤던 만화영화들과 드라마들,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어떻게 보면 TV를 통해 접하는 프로그램들은 대중가요와 함께 또래들과 비슷한 문화적 코드를 공유하는 중요한 자양분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다. 김종민과 신지가 부른 원피스’의 드라마판 주제가인 ‘우리의 꿈’만 들으면 유년기 생각이 나고 절로 가슴이 뛴다고 하는 세대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TV가 갖는 순기능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정할 수는 없었다. 


결국 결단을 내린 건, 첫째 때문이었다. 5학년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점점 해야 하는 숙제가 늘어나는 게 보였다. 평일에 TV 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숙제를 해야 하는 시간도 뒤로 밀리고, 그러다 보니 열 시를 훌쩍 넘겨 잠이 들 때가 많아졌다. 또래들보다 큰 키도 아니고 남들처럼 성장주사를 맞히는 것도 아닌데 잠까지 너무 늦게 자면 안 되겠다 싶어 아내와 상의 끝에 TV를 없애기로 했다. 아이들은 극렬히 저항했지만, 아이들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비밀작전하듯 TV를 재빨리 거실에서 치워버렸다.


TV가 없어진 지 이제 한 달쯤 되었다. 불편한 것이 여러 가지다. 뉴스나 이런 건 가끔 보던 것이었으니 괜찮은데,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를 같이 큰 화면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은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스포츠도!) 하지만 모든 걸 만족하는 옵션은 없으니 결국 어떤 가치가 우선일지를 고려해서 선택을 해야 할 수밖에. 


아이들 입장에서는 더욱 힘든 상황이었을 테다. 늘 만화영화 소리로 가득하던 집안이 절간처럼 조용해졌다. 가만히 지켜보니 아이들에게 가장 힘든 건 ‘심심한 상황’이다. 요즘처럼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미디어를 통해 즉각적인 자극을 얻을 수 있는 환경에서 영상 콘텐츠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는 꽤나 힘든 환경인 듯하다. TV는 그나마 하루 중 얼마간이라도 그런 욕구를 상대적으로 쉽게 충족시켜 주는 매체였는데, 그게 사라지니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이 며칠 지속되었다. (TV가 사라졌다고 해서 절대 숙제를 하지는 않는다.) 


“오빠, 이거 봐라? 노래가 나와! 아빠 이 기계는 뭐야?”

“어…? 그거 CD플레이언데…?”


TV의 부재로 인해 닥쳐온 무료함에 아이들은 집안을 탐험하듯 이것저것 뒤적인다. 그러다 분명히 집안에 늘 걸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존재를 부정당한 채 관상용으로 전락했던 CD플레이어를 찾아냈다. 첫째는 얼마 전 본인 용돈으로 처음 지른 뉴진스 앨범을 CD플레이어에 넣고 노래를 틀었다. 가만, CD플레이어 음질이 이렇게 좋았던가…? 생각해 보니 실은 나도 몇 년 동안 CD라는 것을 틀어본 적이 없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들이 CD플레이어가 연주하는 뉴진스 트랙에 맞춰 정신없이 몸을 흔든다. 보아하니 제법 비슷하게 따라 추는 것 같기도 하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깔깔 서로 웃기다고 난리다. 보고 있는 나도 흥이 나고 즐겁다. 어느 순간 나도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춘다. 아빠 그게 아니야 이렇게 해야 해. 아이들이 가르쳐 주는 스텝에 따라 엉거주춤 몸을 맡긴다.  


TV가 사라진 곳이 휑해 보였는데, 어느 순간 새로운 즐길거리들로 하나씩 채워져가고 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으나 이제야 새롭게 발견된 CD플레이어는 요즘 라디오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아이들은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저녁을 먹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책을 꺼내 읽는다. 아직은 글보다는 그림이 많은 학습만화류 위주이지만, 종종 너무 많이 봤다 싶으면 동화책이나 다른 책들도 곁눈질로 살펴본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무료함과 싸워 이기는 연습을 해가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부모로서 썩 나쁜 선택을 한 것 같지는 않다는 마음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어느새 십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육아는 어렵고, 선택은 두렵다. 내가 하는 선택이 아이들의 미래에 과연 옳은 선택인지 늘 고민이 된다. TV가 없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이 돋아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것도 확고한 확신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일 뿐. 


그럼에도, 유일하게나마 기대고 싶은 것은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이다. 아이들은 백인백색 모두 다르다. 양육자들이 처한 상황도 제각기 모두 다르다. 그러니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그 마음을 바탕으로 주어진 환경 하에서 가능한 한 최선의 선택을 해나가는 것일 테다. 100% 정답은 아니겠지만 끊임없이 시도해 가며 근사치에 가까운 결과를 찾아간다. 설혹 실패하더라도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해 간다. 그게 남아있는 육아 기간 동안, 아니 남은 삶 동안 우리가 계속 해나가야 할 일이 아닐까. 


+) 아이들 다 키우면 최신 PS나 엑스박스 하나 장만할 수 있겠지? (과연 언제쯤?)


#썬데이파더스클럽





정민@jm.bae.20


다음 책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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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Oscar N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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