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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Aug 14. 2019

지노 배낭여행기 - 남태평양편 36

최종편 - 고도 이스터섬에서(3)

2017년 6월 14일(화) 맑음



   마을 중앙통 Hanga Roa의 풍경들


섬 왼쪽 아래에 위치한 중앙통 마을이 Hanga Roa


중앙통 마을 Hanga Roa 바닷가에 홀로 서있는 모아이상

섬마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 Hanga Roa라고 하는 섬마을의 중앙통이다. 모든 숙박 시설과 레스토랑, 기념품 판매점, 차량 렌트 회사 등등 없는 거 빼고 전부 있는 거주지이며 동시에 상업 지역이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공항에 내려서도 배낭 메고도 사부작사부작 걸어가면  금방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섬 안에는 공공 버스 같은 교통시설은 없다. 그러나, 섬 구경을 하려면 시간이 많은 여행객은 걸어 다니든지, 아님 자전거나 이륜 혹은 사륜 구동 탈거리를 렌트해야만 한다.


마을 포구에 정박한 모터보트들

관광지이니까 섬을 일주하는 작은 모터보트 서비스도 이곳 Hanga Roa에서 찾을 수 있다. 내륙으로 다니면서 보는 해안 유적지를 모터보트를 타고 배 위에서 바라보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는 관광 옵션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이 섬만의 독특한 해저 풍광을 눈으로 즐길 수 있는 scuba diving 회사도 몇 군데 있다.


마을에 있는 식당들

깨끗하게 단장된 식당들은 100% 관광객 상대로 영업을 하는 곳으로 음식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음식자재 대부분이 뭍에서 공수되다 보니 그럴 수밖에.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배를 채우는 일은 엄청 쉽게 해결하는 편이다. 소위 말하는 <맛집 기행> 이란 걸 배낭여행에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배가 고프면 현지 local 음식으로 대부분 때우는 것으로, 눈으로 현지 풍광을 즐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판에 위장까지 호사시키는 것은 형편이 맞지 않는 처사로 여겨왔다. 때때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깨끗한 레스토랑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현지 음식을 길거리에서나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허름한 가게에서 마주할 수도 있는데 바람 불어 억수로 재수가 좋은 날에는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다.


마을 중앙통을 따라 늘어선 가게들


마을 중간에 세워진 모아이상으로 마을 어디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기념품 가게라고 간판을 내건 공방 앞에

마을 Hanga Roa의 오른쪽 귀퉁이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가는 길을, 마을 구경도 할 겸 해서 걸어서 찾아갔다. 가는 길 이곳저곳에 위 사진과 같은 허접한 광고판을 내달고 영업하는 기념품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가게 앞에 전시된 여성 목각상

위 기념품 상점은 목각으로 제품을 만드는 공방 같은 곳으로 상점 앞에 풍만한 젖가슴을 자랑하는 여성 목각상을 눈에 확 띄게 전시해 놓았다. 얼굴과 목 언저리에 문신을 하고 손을 추켜올려 그 무엇을 열렬하게 받아들이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같은 가게 앞에 전시된 남성 목각상

그 옆에는 대칭으로 남성 목각상을 세워 놓았다. 전문 목각 조각 제품을 판매하는 기념품점 겸 조각 공방 같았다. 들어가서 구경이라도 하고 갈까 하였으나, 실컷 보고 난 뒤에 하나도 팔아 주지 않고 그냥 나오는 것도 무안할 것 같아 첨부터 보고픈 욕망을 싹둑 잘라 버렸다.





   초기 정착지인 Tahai 유적지


Tahai 유적지 약도

지도 왼쪽 아래에서 보이는 것처럼 Tahai 유적지는 마을이 끝나는 위쪽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어 그 뒤쪽에 위치한 세바스챤 목사 박물관을 보고 나오면 바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타하이 유적지 입구

여기 타하이 고고학 유적지가 중요한 이유가 섬에 정착한 원주민들이 첨으로 보금자리를 튼 곳으로 그 시기를 AD 700년경으로 추정한다. 이곳에 정착한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해안 경사가 완만하여 배를 띄우기에 적합했고, 지형이 위에서 아래로 경사지게 되어있어 지하수를 얻기에 용이했다는 것이다.


초기 주거형태인 boat house

초기 정착지라 섬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발굴 현장으로 많은 고고학자들이 초기 정착민의 생활상을 밝힐 여러 유적지를 발굴하여 연구하였는데, 초기 주거형태로 boat house라고 하는 집터를 발견하였다. 보트 형태의 완만한 곡선으로 돌을 쌓아 위에는 건초 등으로 지붕을 덮고 그 밑으로 땅을 파서 기거하였다고 한다.



Tahai 유적지에는 세 군데 Ahu(제단)이 있는데

- Ahu Ko Te Riku

- Ahu Vai Uri

- Ahu Tahai로 세 개의 제단에 모아이상들이 Tahai 유적지에 서있다.



- Ahu Ko Te Riku

홀로 서있는 Ko Te Riku 모아이

이 제단에는 모아이상이 홀로 서있다. 나머지 두 개의 제단과도 별로 떨어지지 않고 바로 옆에 있다. 이곳이 초기 정착자들이 보금자리를 튼 곳으로 약 Ad 700년 경이라고 한다.


옆에서 바라본 모아이상은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오지도 않을 god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정면 사진으로 모아이상을 보면

이 모아이상에는 또렷한 눈이 살아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모아이상에는 텅 빈 퀭한 눈으로 눈동자가 없다. 원래는 하얀 산호로 눈알을 만들고, 검은 돌로 눈동자를 박아 넣었다고, 최근의 고고학 발굴 결과로 알려지게 되었다.




 - Ahu Vai Uri

석상 뒤로 해안가가 보이는데 해안 경사가 완만하여 배를 띄우기에도 쉬워 보인다

섬에 있는 모아이 상중에 제일 마모가 심하여 연식이 가장 오래된 모아이상이란 느낌을 받았다. 두상이 대부분 마모되었거니 훼손되어 있었다. 이 제단이 위치한 곳이 해가 넘어가는 서쪽 바닷가에 위치하여, 석양을 조망하는 최고의 spot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


해가 떨어지는 바다를 등지고 서있는 5개의 Vai Uri 모아이상


이제 5개의 모아이상을 하나씩 확대하여 살펴보면

Vai Uri 모아이상


1번 모아이상은 두상이 떨어져 나간 것을 시멘트로 붙인 흔적이 역력


2번 모아이

두상의 윗부분이 심하게 마모되었을뿐더러 역시 부러진 두상을 이은 흔적이 보인다.


3번 모아이

두상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세월에 의한 마모보다도 고의적으로 파손시킨 모아이상이다.


4번 모아이상

모아이상 두상이 평평한 걸로 보아 원래는 붉은 모자라고 부르는 pukao를 쓰고 있었는데, 무슨 사유로 붉은 모자를 분실한 모양이다. 퀭한 눈은 다른 모아이 상의 그것과 별 다른 바가 없다.


5번 모아이상

두상과 상체 몸통은 떨어져 나가고 몸통 아래 부분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정도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모아이상이다. 아마 지금까지 본 모아이상 중에서 연식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사료된다.




  - Ahu Tahai

홀로 서 있는 Ahu Tahai

제단(Ahu)에 붙여지는 이름이 Ko Te Riku, Vai Uri,

Tahai로 되어 있는데, 같은 location에 왜 이렇게 3가지 다른 제단이 존재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제단 간의 거리가 좀 떨어져 있다면 다른 제단 이름을 갖다 붙여도 이해가 가겠지만 바로 옆에 있는 제단들이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Ahu Tahai 측면 모습


초기 정착 주거형태인 boat house


Tahai 유적지의 돌담




   사소한 일에 황금 같은 시간을 소비하고


Tahai 유적지 파킹장에서 차대가 돌뿌리에 걸린 나의 렌트카

Tahai 유적지 피킹장 - 여기는 따로 파킹장이 없고 빈 공터에 적당하게 세우면 된다 - 에서 작은 사건이 있었다. 조그만 주의를 가졌으면 피할 수도 있었던 그런 사고였기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차대가 돌에 걸려 앞뒤로 움직일 수 없었다

바퀴 사이즈가 작다 보니 땅에 박힌 돌에 차대가 걸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렌터카 회사에 연락했더니 금방 오지 않고 한참을 지나고서야 서비스팀이 달려왔다. 결국 재키로 앞바퀴를 들어 올리고 끼인 바퀴 뒤로 큰 돌을 고우고 나서야 후진할 수 있었다. 아까운 두 시간이 증발해 버렸다. 타히티 Huahine섬에서의 반창고 사건에 이어 두 번째 액땜으로 기록된 셈이다. 결국 여기서 시간을 헛되게 소비하는 바람에 나중에 소개하는 모아이상 제조 공장 격인 Rano a Raraku를 다 보지도 못하고 밖에서 얼쩡거리며 구경하면서 사진이나 몇 장 남기고 돌아 서야만 하였다.




     Rano Kau 분화구


섬의 왼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Orongo와 Rano Kau

Rano Kau는 분화구로 한라산 백록담 같은 곳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Rano Kau는 백록담같이 분화구 경사가 완만하지 않고 급경사로 내려갈 수도 없고 분화구에는 물이 고여 늪지대로 남아있어 접근할 수가 없다.


Rano Kau 입구 표시판


Rano Kau 확대 지도

주황색으로 표시된 것이 비포장도로로 Rano Kau

분화구 꼭대기까지 길이 나있어 차로 올라갈 수 있지만 그곳까지가 도로 마지막이라 Orongo 유적지까지는 차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


측면에서 보아도 경사가 가파르다

분화구 정상에 서니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모자가 훌떡 벗겨져 날아가 버렸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세기가 장난이 아니다. 분화구를 둘러보는 trail은 없다. 분화구 경사면이 너무 가파르게 솟아 있어 trail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분화구 남쪽 side는 벽면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분화구 남쪽 경사면이 흘러내려 광활한 남태평양 바다로 절벽을 형성하고 있다.


분화구의 가파른 측면


사진을 합성하여 슾지대 분화구 표면을 잡아 보았다

분화구 지름이 너무 길어 한 폭으로 담을 수 없어 여러 장의 사진을 합성하여 이어 붙였다.  이 화산구의 지름이 무려 1.6km나 된다고 하니 엄청난 크기의 분화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늪지대로 변해버린 분화구

분화구 측면을 두 장을 연결하여 나열해 보았다. 물로 덮인 늪지로 변해 버린 분화구 바닥으로 내려가 볼 수도 없었다. 바람 부는 정상에서 잠시 구경하다 돌아서야만 하였다.


무너져 내린 분화구 남쪽 경사면


Rano Kau 화산의 분화구 반쪽 전경으로 지름이 약 1.6km


분화구 남쪽 경사면




    Orongo 유적지와 조인 숭배 사상


Orongo 유적지 입간판


Rano Kau 분화구와 Orongo 유적지 약도

오롱고 유적지의 절벽 아래로 3개의 섬(Motu)이 있는데 이름하여 큰 섬(Nui), 작은 섬(Iti) 그리고 Motu Kao Kao인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Kao Kao의 의미를 알 수 없다. kao kao의 영어 번역이 sea stack으로 되어있어 걍 뾰족 섬으로 부르기로 하자.


Nui, Iti 그리고 Kao Kao 섬(인터넷 사진)

Rano Kau 분화구에서 비탈을 따라 걸어서 좀 더 내려 돌아가면  절벽 아래 저쪽에 서있는 섬들을 볼 수 있는데 분화구에서만 얼쩡거린 까닭에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큰 섬과 작은 섬은 평평한 바위섬이지만 뾰족 섬은 높이가 약 20m 정도이다. 여기가 다음에 소개하는 조인 숭배 의식이 행하여진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조인 숭배 사상의 대두


모아이상이 유일한 숭배 대상이었던 섬 원주민들에게 섬의 수목이 황폐되어 더 이상 모아이상을 만들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하게 되자, 17세기경 새로운 형태의 수호신으로 조인 숭배 의식이 새롭게 대두되었다. 조인(bird-man)은 사람 형상에 새날개를 가진 형상의 신을 숭배하는 의식으로 세계 곳곳에서 신화나 전설 이야기로 구전되는 오는 설화중의 하나이다.


이스터섬에서 조인 숭배 의식이 행해진 곳이 바로 Rano

Kau 분화구 아래에 있는 Orongo 유적지인데 섬주민들의 바람대로 자신들이 새가 되어 섬을 훨훨 날아가고픈 심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조인 숭배 사상은 섬주민들이 가톨릭으로 교화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원주민어로 <탕가타 마누>라고 하는 조인 숭배 의식에는 총 여덟 명의 신이 등장하는데.....
1) 마케마케(Makemake) - 조인 숭배 신화의 우두머리 신이자 인간의 창조자로 풍요와 산란을 관장하는 최고의 신이다.
2) 하와-투-타케-타케(Hawa-tuu-take-take) - 알을 주관하는 신이다.
3) 비에 호아(Vie hoa)는 하와-투-타케-타케의 아내.
4) 비에 카나데아(Vie kanadea)
총 네 명의 주신이 있었으며 이들 네 신은 각각 종속 신을 한 명씩 두고 있었다. 이들 여덟 신의 이름은 각종 (갈매기) 알 채집 의식에서 참가자들의 노래로 불러진다고 한다.


당시 섬에는 총 11개의 부족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일 년에 한 번씩 11개 부족들이 Orongo에 모여 그 해 다른 부족을 통치할 leader 부족을 선출하는 대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하였다고 한다.


각 부족에서 제일 용맹스러운 젊은 전사를 대표로 출전시켜, Orongo에서 아래 절벽으로  물속으로 diving 하여(현대 스포츠로 말하면 절벽 다이빙 대회 같은 것이다) 약 1.5km 수영을 해서, Motu Nui(큰 섬)에 있는 제비갈매기 알을 먼저 찾아 가져오는 사람이 우승하는 걸로 해서 그 전사를 내보낸 부족장이 한 해를 통치하고, 그 전사는 부족의 영웅으로 대접받게 되는 것이다. 요새 말로 하면, 일종의 3종 철인경기처럼 마라톤-수영-싸이클링 대신 절벽 다이빙(cliff diving)- 수영 - 암벽 타기 시합으로 그 시대의 철인을 선발하는 시합이었던 모양이다.


바위에 새겨진 마케마케신과 제비갈매기 알이 있는 Moto Nui(큰섬)




  Rano a Raraku - 모아이 석상 제조 공장


석상 제조공장격인 Rano a Raraku는 섬 오른쪽 귀퉁이에 있다. 마을 중앙통인 Hanga Roa에서 약 18km 떨어져 있다


 


Rano가 원주민말로 분화구란 뜻이다. Raraku 분화구 입구.

여기에 형성된 돌산에서 섬에 있는 모아이상들이 조각되어 여러 곳으로 이동되어 지금까지 서 있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의하면 현재 여기에 널브러져 있는 모아이상이 약 300개 정도로, 완성되었거나 또는 작업 중에 있었던 것으로, 17세기경 알 수 없는 이유로(고고학자들이 여러 가설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정설로 인정된 것은 없다) 갑자기 중단되었다고 한다. 마치 제조공장에서 열심히 작업하다가, 점심시간 벨이 울려 작업자들이 일하던 도구를 그대로 놓아두고 점심 식사하러 나갔다가, 점심시간이 지나고 작업할 시간이 되어도 작업자들이 돌아오지 않고 그 작업현장이 그대로 방치된 것과 같다는 것이다.


Rano Raraku 전경으로 전체가 응회암 돌산이다


Rano Raraku의 트레일

트레일이 이어지는 Rano Raraku 입구 전경이다.

입장권을 철저하게 조사하는 곳으로 원칙상 1회에 한하여 관람할 수 있다. 돌담으로 경계를 표시하여 아무 곳에서 돌산으로 올라갈 수 없도록 울타리를 확실하게 해 놓은 곳이다. 주의할 점은 트레일을 둘러보는데 적어도 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관람시간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에 문을 닫기에 오후 4시 넘어서는 입장시켜주지 않는다.


입구에 쌓여 놓은 돌담


Rano a Raraku 돌산

여기서 제조된 모아이 석상의 재질이 화산재가 쌓여서 굳어져서 형성된 퇴적암으로 응회암이라고 한다. 응회암을 영어로 tuff라고 하는데, 다른 암석에 비해 단단함이 약해 재질이 쉽게 마모되는 특성이 있어, 이스트섬에 남아있는 모아이상 대부분이 심하게 마모되어 있음이 그러한 이유이다.



트레일 아래 위로 마완성 모아이 석상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반쯤 완성된 모아이 석상들이 상반신만 드러내고 서있다.


이곳 저곳에 미완성 석상들이 널브러져 있다


Rano Raraku 곳곳에 남겨진 미완성 모아이 석상들


Rano Raraku 원경 사진

멀리서 Raraku 분화구를 보면 중간이 움푹 파인 돌산으로 보인다. 화산재가 굳어져 형성된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저 돌산이 이스터섬에 흩어져 있는 모아이 석상이 만들어진 제조 공장인 셈이다. 이제는 폐쇄된 제조 공장처럼 더 이상 석상은 만들어지지 않고, 반쯤 다듬다 버려진 모아이 석상들이 살아있는 돌 화석처럼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다.


석양으로 점점 어두워지는 이스터섬

   



   서태지의 뮤직비디오


다른 곳을 경유하지 않고 Easter Island만 바로 찾아간다는 것은 시간적이나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해다. 그만큼 멀리멀리 떨어져 있어 손쉽게 찾아갈 수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터섬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앉거나 누워서 쉽게 구경할 수 있는 한 편의 뮤직 비디오를 알려 주고자 한다.



https://youtu.be/9WLcIvqA1Uk  <——여기를 콕​

서태지의 모아이 뮤직 비디오

2008년 서태지의 8집 싱글 앨범 곡으로 <Moai> 뮤직 비디오를 보면 내가 소개한 이스터섬의 곳곳의 풍경이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의 풍경도 간간이 보여준다. 비디오 뒷부분에는 장엄한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도 보여주는데, 땅이 갈라지면서 UFO 비행접시가 모아이 석상 위로 떠 다니는 영상을 CG로 처리하여 보여주는데 노래 내용과 별 관계가 없는 너무 과한 연출 효과가 아닌가 여겨진다. 당시 칠레에서 약 8억 원을 들여 완성된 뮤직비디오 <모아이>라고 한다.



Moai -서태지와 아이들-


네온사인 덫을 뒤로 등진 건
내가 벗어두고 온 날의 저항 같았어
떠나오는 내내
숱한 변명의 노를 저어
내 속된 마음을 해체시켜 본다
때론 달콤한 내 거짓으로도
때론 아이 같은 응석에
두 손을 벌려도
이젠 All I Need
저 모아이들 에게
나의 욕심을 말해볼까 이젠
내 가슴속에 남은 건
이 낯선 시간들
내 눈에 눈물도
이 바닷속으로
이 낯선 길 위로 조각난 풍경들
이런 내 맘을 담아서
네게 주고 싶은걸(중략)




    언제나 완전하지 못한 여행


집으로 돌아갈 길도 만만치 않다. 내일 아침 여기서 페루 리마로 가는 뱅기를 타고 멕시코시티에서 미국행 뱅기로 갈아타야 한다. 다르게 돌아가는 길이 원래 내려왔던 피지로 해서 하와이로 올라가는 루트가 있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은 길이다. 남태평양에 널브러진 섬들을 보러 왔는데 와서 보니 생각보다 의외로 많았다. 특히, 사이판, 티니안과 괌이 있는 마리아나 제도와 2차 세계 대전의 상혼이 남아있는 마샬 제도와 솔로몬 제도, 국토가 수몰될 위기에 처한 키리바시와 투발루, 희귀 광물인 인광석이 풍부해 남태평양 섬나라 중 가장 부유한 나우루 공화국을 보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쉬웠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비행기 연결 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 다음번에 이런 섬나라로 여행을 가려면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와야 할 듯하다.

짧은 4주의 시간이었지만 남태평양의 파라다이스 같은 섬들을 둘러볼 기회를 가진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특히, 천국에 가장 가까운 섬에서 보았던 해변의 경치는 영원히 가슴속에 묻어  만한 굉장한 보물이다. 남태평양을 다시 여행하게 되면 이번에 가보지 못한 섬나라를 찾아 가서 남태평양 2탄을 여러분에게 보내드릴 것을 약속하며 남태평양 1탄을 여기서 접어야 한다. -jh-



Atlantic Canada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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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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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록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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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뉴질랜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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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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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독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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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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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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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중국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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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대 미인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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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기행 - 지중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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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마 그리고 쿠바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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