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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21. 2022

<이탈리아 19일차> 베네치아, 부라노 무라노

<이탈리아 1일차> 로마의 휴일, 그래도 팁

<이탈리아 2일차> 화려한 바티칸, 투박한 산탄젤로

<이탈리아 3일차> 로마 여행에서 놓치거나 놓칠뻔한

<이탈리아 4일차>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이란

<이탈리아 5일차> 사기캐 토스카나에서 관광 대신 여행

<이탈리아 6일차> 몬테풀치아노, 로망이 이긴다

<이탈리아 7일차> 발도르차 평원의 빛과 바람

<이탈리아 8일차> 토스카나, 하늘이 다했다.

<이탈리아 9일차> 피렌체, 63층을 올라갔다니

<이탈리아 10일차> 오, 다비드.. 그리고 피스토야

<이탈리아 11일차> 파랗게 빛나는 친퀘테레..그리고

<이탈리아 12일차> 만토바 공국..가르다 호수
<이탈리아 13일차> 베로나, 시르미오네..넘치게 좋았다

<이탈리아 14일차> 구텐 탁, 돌로미티

<이탈리아 15일차> 돌로미티, 세체다에서 멈춘 시간

<이탈리아 16일차> 돌로미티, 길 위에서...친퀘토리

<이탈리아 17일차> 돌로미티, 트레치메 6시간이 남긴것

<이탈리아 18일차> 베네치아의 상인들


어느해 봄, 도다리쑥국에 한껏 들떠서 행복한 오후에 후배의 이직 소식을 들었다. 기분이 한껏 날아오르다 바로 추락했다. 인생 원래 그렇지. 좋은 일만 계속되지 않는다. 그래도 좋은 일로 나쁜 일도 넘길 수 있다. 여행으로 뭉쳤지만 또 이별하는게 순리. 살짝 울적해진 오후에 서울에서 톡이 왔다.

"여행 잘 즐기고 계시죠. 포스팅을 보면 저도 같이 간 것처럼 좋네요 ㅎㅎ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2012년 오늘 제가 상태 안좋을 때 언니가 선뜻 달려와 위로해주신 날을 잊을 수가 없네요 페북에서도 마침 알려주고요 ㅋㅋ 벌써 10년이네요. 그날 언니는...
앞으로 더 즐거운 날들 함께 보내면 좋겠고 언니도 힘들고 지칠 때 저도 옆에 있다는 것 기억하시고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네요 ㅎㅎ 남은 여행 건강히 잘 마치시고 서울에서 봐요!!"

사람들은 이렇게 서로의 온기, 에너지를 나눈다. 힘이 빠질 때 마음 포개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도 한때 그랬구나. 울고 웃는 기억이 겹겹이 쌓이는 세월. 조금 괜찮은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다면 좋을텐데. 길고 짧은 이별이 이어지겠지만, 옆을 지켜주는 이들이 또 있다.. 옆을 지키고 싶을 때도 있고.


숙련된 여행자 연과 빈은 중심가에 숙소를 정했다. 돌아다니다 슬쩍 쉬었다 나갈 수 있다. 오늘 놓칠뻔한 행복은 그렇게 잡았다. 또 하나. 베네치아 숙소는 리알토 다리 옆인데 우체국이 160m 거리다. 여행자에게 우체국이 중요한걸 이번에 알았다. 출장으로 일정 이어가는 빈과 짐이 늘어난 연은 등산화와 산행 패딩 등을 먼저 집으로 부쳤다. 빈은 독일에서 만날 일행을 위해 한결 가벼워진 캐리어에 이탈리아 와인을 네 병이나 넣긴 했지만 그것도 좋지. 우체국에선 clothes, shoes 등은 그냥 넘어갔다가 souvenir 에선 까다롭게 물었나보다. 플라스틱이냐 뭐냐, 줄이 긴 와중에 직원 두 분이 토론하느라 오래 걸렸단다. EU 규정 객관식 항목에 안 맞으면 그들도 고민하겠지.

30분 기다렸다는 빈과 연이 보내준 사진. 딸기와 나는 숙소에서 그냥 쉬었다.


이탈리아 19일차, 빈은 독일 에센으로 떠났다. 덕분에 함께 베네치아의 산타루치아 기차역 나들이. 역 주변을 검색해 평점 4.1의 식당 povoledo를 골랐다. 날 생선 메뉴(24유로)는 세비체 비슷. 10유로대 앤초비 파스타와 라자냐도 괜찮았다. 넷이서 메뉴 셋이면 충분한 날들이라니. 자릿세 '코페르토' 10유로가 포함된 계산서라 팁은 생략. 운하를 바라보는 테이블에서 한껏 즐겼다.


전날 새벽 3시까지 와인 각1병 달린 건 빈을 보내기 아쉬운 마음. 우린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사이인데 왜 이렇게 애틋하지? 있을 때 잘하지 그랬냐는 말처럼 사람의 존재감은 부재할 때 더 커진다. 결단력 있는 동지이자 유쾌하고 사려깊은 친구가 떠났다. 내가 그를 꼭 끌어안는 순간 내 눈시울이 뜨거워진건 그렇다치고, 우리 포옹을 보면서부터 눈물 쏟은 연은 뭐니. 딸기는 "빈을 안지 얼마나 됐다고" 한탄하며 눈이 빨개졌다. 둘은 여행을 계기로 처음 만난 사이다. 역시 관계는 양보다 질이다. 연의 젊은 조카 부부가 옆에 있는데 네 여자 모두 주책맞게 감정이 요동쳤다. 밀도 깊은 시간이 지나갔구나. 빈이 기차역까지 10여분 탄 수상버스 편도 티켓이 7.5유로인데, 베네치아-뮌헨-에센 총 14시간 기차 티켓은 89유로. 유럽'연합'을 새삼 실감한다. 빈. 건강하게 여정 이어가길!

빈의 캐리어에는 각 여행지의 스티커가 가득하다. 아이고 부러워. 뒷모습 찍는게 이렇게 슬플 일이냐구..


수상버스 일일권(21유로)을 구입한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거의 1시간 거리의 부라노. 알록달록 거리로 아이유의 '하루끝' 뮤비 촬영지로 더 유명해졌단다. 가는 길에 수상버스를 갈아타려고 내린 섬은 무라노. 유리공예로 유명한 섬이다. 예쁜 유리 공예품 상점과 레스토랑, 카페만 보이는 작은 동네다.  난 처음에 무라노, 부라노 구분도 못했...

무라노 거리도 소박하다..


수상버스 갈아타기 전에 1시간 정도 구경하자고 해서, 관심있던 유리박물관으로 혼자 후다닥. 입장료 10유로이지만 완전 내 취향이다. 난 옛 사람들의 흔적을 좋아한다. 10~11세기에 아래 두 사진과 같은 유리 제품이 있다는 자체가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유리의 역사는 최소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네치아의 유리도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중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라도 유리 공예품이 있었다.


무라노섬은 13세기 베네치아에서 유리공예 장인들을 격리시킨 동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도시국가의 노력은 대단하지만, 비인간적 시대. 그래서 더 발전했다니 역사가 늘 그렇지 뭐. 14~17세기가 이 지역 유리 공예의 전성기다.


17세기 유리 제품. 섬세하게 올록볼록 표면 무늬를 만들다니.
18세기 제품들이다. 오른쪽은 1880년 Lorenzo Radi 주니어 작품.


유리 장식으로 별 걸 다.. 이건 누구의 호사와 권력 자랑을 위한 거였을까. 그러나 그런게 남는게 아이러니.


Vincenzo Moretti (1835~1901) 라는 탁월한 무라노 유리 장인의 1880~1883년 즈음 작품
19세기 유리공예품. 장인들의 기술과 예술혼 경쟁이기도 하고, 발주자들의 지위도 궁금하고..
왼쪽은 1955년 작품. 오른쪽은 2018년... 이 박물관은 현대 유리공예로 넘어간다.
역시 오른쪽은 2017년

유리는 여전히 인간의 의지로 불고 깍고 다듬을테지만, 현대 작품은 수천년 전, 몇 백 년 전 작품만큼의 감흥이 내게는 없다. 나는 아름다운 물건을 사용했을 그 시절 사람들을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오랜 세월을 품고 남겨진 것들의 아우라에는 당대의 화려함과 쇠락하는 권력의 흥망성쇄를 궁금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한때 강력한 도시국가, 해상무역 중심이던 베네치아는 전성기의 빛이 바랜 느낌이 강하다. 나는 이탈리아 역사가 궁금해졌다. 한국이 그만큼 잘살게 되면서 눈높이가 달라진 것도 분명히 느끼지만,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걸까.


무라노에서 부라노로 곧바로 갈 수 있을줄 알았지만.. 수상버스를 타려는 줄이 넘 길어서 포기. 20분 거리의 숙소로 일단 귀환했다가.. 한낮의 열기를 피해 5시10분 부라노행 수상버스를 탔다. 무라노 섬보다 베네치아 구시가지 관광지에서 타는 편이 줄이 짧다. 낮에는 지치지만 5시 넘어가면 바람이 한결 시원하다. 재충전이 가능한 숙소의 지리적 위치와 수상버스 일일권 덕분에 만들어낸 기회. 그리고 알록달록 예쁜 거리를 만났다. 베네치아와 무라노섬 등의 건물이 세월에 빛바랜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반면, 부라노 섬의 거리는 낡은 건물에 곱게 화장을 해서 예뻐지는데 성공했다. 오후 6시 넘어가는데 여전히 햇빛은 찬란하고, 물위의 그림자는 알록달록 살아있다.  

파스텔톤 집들 사이에 강렬한 원색 집들이 주는 시각적 만족이 있다. 색도 햇빛 만큼 쨍하다.

레이스로 유명한 동네 답게 커텐에도 진심.

특히 베니스에서 건물마다 꽃이 화려하다. 오른쪽 집의 오렌지빛 국화는 천으로 만든 거다. 자수와 레이스의 동네 맞다.


실컷 사진 찍은 날이고, 예쁜 공예품을 무라노가 아니라 부라노의 작은 가게에서 샀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연과 딸기 모두 홀려서 샀다. 베네치아 온 가게들마다 비슷한 유리 제품이 아니라, 진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멋진 물건들을 파는 작은 가게. 대를 이어 만들어왔고, 눈이 아프도록 며칠씩 수작업한다는 아주머니 홧팅. 색 고운 배경에서 사진 하나 자랑하지 않을 수 없네.


그리고 저녁 자랑질을 또 빼놓을 수 없다. 무라노 다녀오는 골목에서 만난 신선한 체리와 토마토 각 500g에 5.8유로. 관광지 골목에 없던 슈퍼도 찾아서 햄과 올리브, 말린 토마토 절임과 야채를 14.3 유로에 샀다. 신나게 먹어도 어쩐지 건강한 느낌의 #마냐밥상. 빵은 낮의 식당에서 남은걸 싸오고, 사실 여행 내내 저녁 식비는 많이 들지 않았다. 배보다 배꼽이 큰, 와인값이 문제인데 8유로 로컬 와인이 3.9 평점 나오는 동네에서 많이 마실수록 돈 버는 거란 이론은 여행 후반에도 유효하다. 리알토 다리 옆골목 Mille Vini 와인가게 아저씨는 몹시 친절. 우리는 전날도 들리고, 오늘 아침엔 빈이 독일 가져갈 4병을 사고, 오후엔 우리가 저녁에 마실 와인을 3병 샀다. 그리고 어제만큼 못 마시고, 딸기가 자러 들어갔다. 이 글 정리하는 내게 "스스로 글 마감 지옥을 자처했다"고 깔깔대면서. 딸기는 딱 한 줄 설명만 붙여 사진 포스팅을 일찌감치 끝냈다.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사진 정리하다가 열받은거 하나 남겨놓는다... 대체 저런건 무슨 재미로 만드는거야... 먹고 싶지 않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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