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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Jun 22. 2022

<이탈리아 20일차> 베네치아, 두칼레에서 키퍼에게

<이탈리아 1일차> 로마의 휴일, 그래도 팁

<이탈리아 2일차> 화려한 바티칸, 투박한 산탄젤로

<이탈리아 3일차> 로마 여행에서 놓치거나 놓칠뻔한

<이탈리아 4일차>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이란

<이탈리아 5일차> 사기캐 토스카나에서 관광 대신 여행

<이탈리아 6일차> 몬테풀치아노, 로망이 이긴다

<이탈리아 7일차> 발도르차 평원의 빛과 바람

<이탈리아 8일차> 토스카나, 하늘이 다했다.

<이탈리아 9일차> 피렌체, 63층을 올라갔다니

<이탈리아 10일차> 오, 다비드.. 그리고 피스토야

<이탈리아 11일차> 파랗게 빛나는 친퀘테레..그리고

<이탈리아 12일차> 만토바 공국..가르다 호수
<이탈리아 13일차> 베로나, 시르미오네..넘치게 좋았다

<이탈리아 14일차> 구텐 탁, 돌로미티

<이탈리아 15일차> 돌로미티, 세체다에서 멈춘 시간

<이탈리아 16일차> 돌로미티, 길 위에서...친퀘토리

<이탈리아 17일차> 돌로미티, 트레치메 6시간이 남긴것

<이탈리아 18일차> 베네치아의 상인들

<이탈리아 19일차> 베네치아, 부라노 무라노


베네치아 카포스카리 대학 한국학과 작년 9 입학 경쟁률은 91. 100 모집에 900 가까이 지원했다. 2~3 정원 많은 중국학, 일본학과가 앞서나간 시절이 있었으나 한국학 위상은 하루가 다르다. 대부분 BTS 빠져들었지만 한국의 법과 사회, 정치, 유교사상, 사주까지 논문이 나온다. 한때 일본 아니메에 빠져 일본을 공부하던 이들처럼, 한국 문화에 먼저 관심을 갖고 한국을 이해한다. 이곳의 안종철, 이효진 교수님은 어느새 BTS 전문가를 넘어서 아미. 우상을 잃어버린 세대가 BTS에게 어떤 위로를 얻는지 말한다.

연이 일하는 캘리포니아는 몇년 전 10월9일을 한글날로 정했다. 한국의 교환학생,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자가 급증하고 있단다. 결국 변화를 만드는 건 소프트파워다. BTS는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고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는 외교사절이기에 앞서 세상을 위로하며 사람들을 움직였다. (난 아직 아미가 아니다. 정국이 태형이 잘 키운 진이 훌륭하다는 걸 이제는 알지만)


한국인의 눈높이도 달라졌다. 베네치아에서 당황했다. 빈티지 풍이겠지만 오래된 이 도시가 덜 세련된 느낌이었다. 베네치아의 중심 산마르코 성당과 광장, 두칼레 궁전 앞은 남대문 시장 분위기다. 노점상에서 파는 물건이 익숙한 열쇠고리, 선글라스, 스카프, 티셔츠, 모자 종류다. 피렌체나 베로나의 노점상은 구경 재미난 지역 특산품 시장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는데 베네치아는 달랐다. 아직 아시안은 거의 없지만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풍경도 어수선했다. 최고의 명소에서!

산마르코 성당은 정문의 모자이크화, 색깔 다른 대리석 기둥, 섬세한 조각.. 모든게 아름답지만 공사중이다. 아니 여기 공사 이렇게 하는게 최선인가.. 코로나 끝났다고 바쁜건 이해하지만.

나올 때 찍은 모습. 울타리 너머에서 줄서서 들어왔다.


산마르코 성당 내부는 화려하다. 온통 금빛이다. 조각도 장식도 모든게 또 다르게 멋지다. 입장료 3유로라고 해서 좋아했더니, 제단 가장 안쪽 제단화를 보려면 5유로 따로 내야한다. 2층 박물관은 또 추가로 7유로. 아니 처음에 3유로라더니 다 보려면 15? 베네치아의 상인들! 더 가지 않았다.


가장 멋진 곳마다 가림막이라니 이것도 아쉽다. 베로나의 성당은 수리하는 장면도 공개해 좋았는데. 이탈리아 다른 성당에서는 어디든 고풍스런 나무 의자에 앉아 잠시 경건해질 수 있었는데, 여긴 의자도 막아놓았다. 그것도 간의의자. 바닥조차 아름다운데 온갖 집기가 영문 모르고 놓여있다. 한국 같으면 민원이 쏟아질 상황이다. 너무 멋진 성당인데 그 느낌을 다 얻지 못해서 괜히 심술.


우리를 구원한 건 근사한 점심. 평점 4.2 Rossopomodoro. 대단한 피자 맛집이다. 뇨끼와 가지그라탕은 쏘쏘. 아주 좁은 골목의 식당도 아니고, 적당히 여유있는 골목이라 좋았다. 딸기가 쐈다. 돌아가면서 쏘면, 공금이랑 뭐가 다르냐고 했던 빈의 명언이 생각나지만 땡큐.


오후 일정은 두칼레 궁전 Palazzo Ducale 에서 시작했다. 그런데..이게 또 13유로인줄 알았더니 전시회랑 묶어서 25유로? 독립 티켓은 안 판다고? 삐져서 안 볼 뻔...
사람이 정말 한 치 앞을 모른다.. 베네치아의 인상은 물론, 기억까지 확 바뀌는 경험은 두칼레에서 시작됐다. 일단 도떼기 시장 같던 베네치아가 비싼 티켓 덕인지 궁전에 들어서자마자 호젓하고 우아하다. 814년 건축된 후 1400년대에 재건된 아름다운 궁전이다.


헤라클레스와 지구를 받치는 아틀라스를 보면서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화려함과 웅장함에 홀렸다. 천장과 문, 벽의 장식들이 모두 예사롭지 않다.


접견실이라는데, 베네치아 공국의 권세를 자랑하는 복도와 방들. 황금기를 황금으로 보여주는구나. 기죽으라 보여주는 과시용이기도 할텐데 효과가 있었겠다. 정말 어마어마하다.


소소한 재미들. 15~16세기 무기들이다. 아름다운건 역시 당시 돈의 힘이겠지.


압도적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다음 방에서 더 압도당했다...저 화려하고 웅장하고 권세를 자랑하는 역사적 증거물들보다 더 처연하게 아름다운 작품 앞에 당황했다. 먼저 작은 방. 이게 뭐지? 정말 사전정보 없이 들어온 덕분에 놀라움이 컸다. 타버린 책이 작품에 붙어있다.


그 다음 방에선 숨이 막혔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검색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미술가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거대한 작품이 벽을 가득 채웠다. 불에 타버린 거대한 잔해는 잿빛으로 처연했다. 신발은 쓸쓸하게 붙어있고, 작업복들은 슬프다. 벽에 붙어있는 관과 쇼핑카트는 그로테스크하다. 이게 뭐지? 알고보니 이 전시의 제목은 '이 글이 다 타버리고 나면 마침내 약간의 재만 남으리라'. 베네치아 1600주년 기념 작품이라는데 이렇게 슬퍼하기를 기대한걸까? 베네치아에도 잊지 말아야 할 시간들, 사연들이 있겠지? 아. 진짜 이 전시 구경만으로도 값진 시간이다. 두칼레에 홀린 시간도 안젤름 키퍼에게 빠진 시간도 순식간에 마법의 순간처럼 다가왔다.

이분 작품의 질감이 놀랍다..


두칼레에 대한, 베네치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갑자기 커진다. 멀리 보이는 보수 현장도 다 품게 된다.

이런 마음의 변화를 읽기라도 한듯, 권세의 상징이 이어지던 궁전은 감옥으로 연결된다.


탄식의 다리, 이름을 이해못했는데 감옥으로 가던 죄수들이 저 다리를 건넜다는걸 이제 안다. 창살 너머 바다를 바라보며 탄식하던 마음을 상상한다. 전날 다른 관광객처럼 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이건 정말 슬픈 장소잖아. 궁전 내부의 법정에서 죄를 선고받고 바로 감옥으로 가다니. 카사노바가 스캔들로 갇혔다가 탈출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는데, 그 시절 죄목들이 문득 궁금하다.


여기에 베네치아의 인상을 확 바꿔준건 베네치아 카포스카리 안종철 교수님을 만난 덕분이다. 딸기의 페친이고 친구의 선배. 만난 적은 없다나. 처음엔 호기심으로 만남에 함께 했는데, 베네치아의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관광객들에게 치여 돌아다니다가 교수님을 따라 리알토 다리를 건너 대학 쪽으로 가는 길은 내내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학생들이 많은 광장의 카페는 관광지와 완전 다르다. 당연하지만 고마운 풍경. 이쪽으로는 올 생각도 못했다.


안종철 교수님과 함께 일하는 이효진 교수님은 심지어 맛집에도 빠삭했다. Ai Garzoti 홍합도 좋았지만 이탈리아 빵은 별로라는 인상이 싹 바뀌었다. 역시 관광지보다 동네 맛집. 베네치아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두 분 모험담이랄까, 한국학 관심이 높아지고 학생 정원이 늘고, 연구 주제가 다양해지는 모든 얘기가 흥미진진한 가운데.. 기승전BTS.. 두 분 교수님이 아미가 된 과정도 몹시몹시몹시 흥미롭다. 해외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려면 불가피한 과정. 아미인 연과 딸기가 두 분을 만났으니..... 안 교수님은 BTS의 '봄날'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노래 덕분에 정말 다양한 이들이 세월호에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보고 싶다 이렇게 말하니까 더 보고 싶다

너희 사진을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

너무 야속한 시간 나는 우리가 밉다

이젠 얼굴 한 번 보는 것 조차 힘들어진 우리가....

그리움들이 얼마나 눈처럼 내려야

그 봄날이 올까....

사실 난 아직 널 보내지 못하는데

눈꽃이 떨어져요 또 조금씩 멀어져요


이효진 교수님은 유럽인 남편을 일본에서 만났다. 일본어가 모국어가 아닌 두 남녀는 일본어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딸은 엄마의 한국어, 아빠의 모국어, 엄마아빠의 일본어, 그리고 영어까지 하면서 자라겠지. 이탈리아의 통일은 고작 150년 됐다. 때로 민족주의가, 전체주의가 21세기 방식으로 진화하지만 국경과 국적은 BTS가 만드는 소프트파워에 밀린다. 다음 세대는 여러가지로 더 섞이면서 자랄거라 기대한다. 우리는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이렇게 이탈리아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내일은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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