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과 함께 배우기
<육아란 무엇인가?>로 시작한 배움의 여정은 <당신이 옳다>를 만나 '충조평판'에 물들어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물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참 다행한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밀당하던 경험이 특히나 기억납니다. 이 역시 아이와의 관계 이전에 일터에서 밀당을 하며 배운 '개취인정'에 더해진 깨달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하는 행동을 무심코 흘려보낸 후에 나중에 뒤늦게 깨닫고 반성을 했습니다. 과거라면 이러한 인식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이 글은 지난 시간의 노력에 대한 회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기회는 지나갔지만 그래도 흔적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기록의 가치를 새삼 깨닫습니다. 기록이 지나간 시간에 제가 놓친 질문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들이 시킨 사람도 없는 일을 스스로 해나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실제로 말로 한다면 이런 질문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아침부터 이런 편지를 쓴 이유는 뭐야?
이런 질문들은 누가 생각한 거야?
다음에는 무엇을 하고 싶어?
글을 쓰며 제 행동을 다시 살펴보니 기록을 다시 살려내는 일은 고고학과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저는 다시 둘째에게 기록을 쓴 동기를 묻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챗GPT 고급 음성 기능으로 아이들의 호기심 다루기>와 유사한 방식으로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신이 옳다>에서 알려준 공감적 대화처럼 먼저 상대에게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무언가를 꼭 가르치고 싶더라도 말이죠. 아이가 커갈수록 그 정도는 더 커지죠. 결국은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으니까요.
한편, 큰 아이는 둘째와 놀기 위한 규칙을 개발하는 일에 열을 올립니다. 제 어릴 때를 돌아보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한 번은 큰 아이가 저울을 가져다가 둘째에게 몸무게를 쟤는 일을 놀이처럼 다루며 같이 놀자고 설득하는 모습을 봅니다. 둘째는 자기 몸무게를 쟤고 나서 이를 말해 줍니다. 큰 애는 책꽂이의 책을 잔뜩 꺼내어 저울 위에 올려놓습니다. 무게가 충분하지 않자 의자를 끌고 오는 장면이 불편했습니다. 큰 애가 종종 선을 넘어서 제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데, 안전을 위한 가이드라인만 설정하고 개입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러다가 저에게도 식(式)에 대한 집착이 있던 것인지 무게와 책의 개수를 식으로 연결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다가가 무게와 책의 개수 관계에 대해 열심히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큰 아이의 눈이 반짝이면서 특정 무게에 딱 맞추는 놀이를 개발하고 신이 났습니다.
집착을 떨치고 아이들을 존중한 후에 대화를 했더니 아이들은 주체적으로 선택을 했습니다.
(21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22. 둘째와 영어 책을 읽다가 감성 지능과 마음챙김도 배운다
23. 주기율표를 따라 그리는 아이에게 경험을 살짝 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