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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형 은행원 Jul 05. 2020

전재산 5억이란 뭐랄까? 겸손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결혼 6년차 5억을 모았다.


6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나는 그동안 우리 부부가 모은 돈의 총량을 집계해보았다. 퇴직연금까지 싹싹 긁어모아 더하니 5억 원이 넘어 있었다. 뿌듯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5억이라는 돈이 그리 대단한 액수는 아니다. 내 주변만 해도 이보다 훨씬 큰 금액을 가진 사람이 많다. 엄마 아빠가 결혼을 축하한다며 이만큼의 돈을 쥐어주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았다. 과천이나 광교에 집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 2~3년 동안의 집값 상승분만 해도 5억 원을 쉽게 넘길 것이다. 무엇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의 20%는 5억 이상의 자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재산 5억이란 돈은 뭐랄까 – 약간은 겸손해야만 하는 그런 숫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도 5억이라는 숫자를 강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만약 내게 50억이 있었다면 책의 띠지에는 “50억을 만들어내는 초특급 재테크 노하우 대공개” 같은 홍보 문구가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5억은 그럴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내 책 띠지에는 “현직 은행원이 소개하는 직장인 맞춤 자산 관리 시스템”이라는 문구만 아주 겸손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내가 월급으로 5억을 모았다는 사실은 책날개 저자 소개 부분에만 아주 조그맣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애석한 일이다. 돈이 50억 원 정도 있었더라면 삐까뻔쩍하게 책을 꾸밀 수 있었을 텐데…




“정말로 5억을 모았어? 어떻게 모은 거야?”란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의외였다. 나는 이 숫자가 다른 사람에게 인상 깊을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언제 책을 썼냐는 질문보다 이 질문을 더 많이 받았다. 어쨌거나 이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제가 어찌어찌 5억을 모았네요. 유후”라고. 때때로 반응이 좋을 때면 “돈은 원래 닥치고 모아야 제맛이죠. 데헷”이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내가 은행이라는 고소득 직종에 속해있고 맞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보다 연봉이 50% 정도 더 낮았거나, 맞벌이를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는 결국 이 정도의 돈을 모았을 것이다. 시간은 2배 더 오래 걸렸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돈을 모으면 이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돈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는 가치 기준 때문이다.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다. 오랜 시간 검소하게 살고 돈을 모으면 5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어쨌거나 50억 도 아니고 5억 아닌가? 조금은 겸손한 바로 그 금액이지 않은가? 계산기를 두드려볼 필요도 없다. 문제는 “5억이란 돈이 오랜 시간 인내하고 희생하여 만들어야 할 가치가 있는 돈인가?”하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고추 농사를 짓던 아랫마을 아저씨의 밭 5 고랑의 가격이 5억이다. 5억은 직장을 때려치울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심지어 수도권에서 조금이라도 블링블링한 아파트는 모두 5억을 넘지 않던가? 5억은 삶의 결정적인 어떤 부분도 바꾸어주지 못하는 금액이다. 이것이 문제다. 5억은 겸손해야 마땅한 금액인 것이다.


5억을 얻기 위해 당신은 일상의 어느 부분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5억을 위해 내가 지금까지 해온 희생을 당신도 감수할 수 있는가? 만약 이 질문에 대한 답이 Yes라면 당신 늦든 이르든 결국 5억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No라고 대답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5억이란 그렇게까지 희생하고 인내하며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금액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은 속절없이 흘러가며 돌아오지 않는다. 돈을 모으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삶 그 자체라면 그것을 모으기 위해 아등바등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5억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가 가치 기준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모으지 못하는 게 아니라 모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게 그 5억은 물론이거니와 그 돈을 만들기 위해 희생했던 시간들까지도 조금도 빛바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초라하게 느껴지질 않는다.



근거 #1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주가지수가 급락했었다. 지금이야 잘난척하면서 무용담처럼 그때 주식을 구입한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사실 그때 나는 쥐뿔 아무것도 몰랐다. 나뿐만이 아니다. 주가가 이렇게 빠르게 반등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당시 나는 주식을 구입했다. 익스포져 기준으로 2억 원을 넘는 포지션이었다. 복잡한 의사결정은 아니었다. 당시의 생각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코로나가 발생했고 실물경제가 작살 났다. 한국은행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저금리 상황에서의 추가적인 금리인하는 주식 가격에 강한 상승 압력이 된다. 코로나가 늦던 빠르던 진정이 된다면 주가가 오를 것이다."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똑똑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던 컨센서스였다. 그러나 그때 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입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단기적인 손실 가능성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회복 시점이 가늠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점에 현금을 들고 있었다. 그래서 주식을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는 손실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감당할 수 있었다. 설사 2억 원을 다 잃어도 버틸 수 있었다.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는 돈이기 때문이다. 2년이 걸릴지 3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분명 다시 만들 수 있는 돈이었다. 그래서 주식을 샀다. 다행히 주가가 빠르게 상승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 그 운을 제때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동안 계속해서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손실을 얼마든지 버틸 수 있는 맷집이 있었기에 기회를 잡아 내 주머니에 넣을 수 있었다.


코로나 사태는 2008년에 벌어졌던 모든 최악의 경우를 새롭게 갱신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코로나와 같은 일들은 얼마든지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점점 더 밀접하게 연결되고, 비대해지고,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점점 더 블랙스완이 출몰하기 좋은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응해야 할 경제시스템은 오히려 더 취약해지고 있다. 이토록 위태로운 세계는 언제고 휘청대며 다시 한번 거대한 빈틈을 보일 것이다. 그것이 기회다. 블랙스완이든 네온 스완이든 무엇이든 나타나기만 하면 나는 다시 한번 그것의 목구멍에 검을 쑤셔 넣을 생각이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5억 원은 검이다. 이 5억 원이 손 때 묻은 검처럼 내 손에 착착 붙는다. 당연하다. 누가 준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겸손한 금액이라 하더라도 검소하게 살면서 종잣돈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언제고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에서 수익을 얻기 위해서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때 우아하게 그것에 맞서기 위해서다.

용을 물리치고 금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검소하게 살면서 꾸준히 저축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지금과 같은 저금리 환경에서 그것이 아무리 미련하고 의미 없이 느껴질지라도 말이다. 당신이 검소할 때 용이 당신에게 내뿜는 불길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손실이 얼마든 상관없이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다는 사실만큼 강력한 방패는 없다. 당신에게 충분한 저축액이 있을 때 그것은 검이 된다. 당신은 그 검을 용의 목구멍에 쑤셔 넣어야 한다. 이토록 위태로운 세상은 때때로 당신에게 거대한 빈틈을 보일 테지만 당신 수중에 저축해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맨손으로 용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빈틈이 보일 때 그곳을 향해 있는 힘껏 밀어 넣을 검이 있어야 한다. 이 방패와 검이 있다면 당신은 어렵지 않게 용을 물리치고 그것이 지키고 있는 금을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 코로나 이후의 재테크에 대한 이야기들(2020.04.26) 중 발췌



근거 #2


코맥 매카시가 쓴 '더 로드'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 말미의 한 장면에 아들과 아빠의 대화 장면이 나온다. 지옥으로 변한 세상에서 아들이 아빠에게 묻는다. 용기를 냈던 적이 있었냐고. 아빠의 대답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질문만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살아남아 지금 이 순간도 내게 답을 요구한다. 용기를 냈던 적이 있느냐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할 수 없었다. 두려웠던 순간은 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꼈지만 참아내고 꿋꿋이 일상을 지켜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내다. 내게도 인내의 순간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었다. 인내가 쉽다거나 가치가 떨어진다고 폄훼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용기를 낸 적이 있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나는 인내했다고 답변할 수는 없다. 용기와 인내는 다르다. 용기는 인내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용기를 냈던 것은 언제인가? 나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쥐어짜 낸 용기를 기억한다. 금융권 총파업의 날이었다. 나는 그날 손모가지 전체를 걸고 그 파업에 참석했다. 파업은 참담하게 실패했고 내가 걸었던 손모가지 전체가 깨끗하게 날아가버렸다. 나는 홀로 파업장에 앉아서 내가 쌓아 올린 커리어가 불타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


그때 내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했다는 동료들의 문자나 카톡이 아니었다. 돈이었다. 당시 내게는 3억 원 정도의 돈이 있었다. 그날 나는 내가 1년에 약 1.6천만 원으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내일 당장 사표를 쓰고 회사를 뛰쳐나가도 19년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혼란은 실체가 없는 것이었다.

당시의 계산:
누적 저축액 3억 원 / 결혼생활 4년 = 연 환산 저축액 7.4천만 원
세후 소득 9천만 원 - 연환산 저축액 7.4천만 원 = 연 필요 생활비 1.6천만 원
누적 저축액 3억 원 / 연 생활비 1.6천만 원 = 무소득 생존 가능 연수 19년


직장을 떠나서도 별 무리 없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내게는 더 이상 직장이 견디지 못할 천형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텔레비전 소리가 듣고 싶지 않을 때 리모컨의 음소거 버튼을 누르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직장이 견디기 힘들어질 때마다 되뇐다.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도 나를 헤칠 수 없다"라고. 이것이 나의 만트라다.


5억은 내게 갑옷이다. 이제 나는 직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음과 관계의 삐걱거림과 생채기들로부터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직장에서 경험하는 것들 중에 정말로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1년은커녕 불과 3개월 전에 자신이 괴로웠던 이유조차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직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던가 스트레스라는 것이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자신이 직장에서 경험하는 것들에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업무를 처리해 나가면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


나는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을 좋아한다. 그 책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강인한 영혼을 가졌고, 지혜로웠고, 아름다웠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들이 삶에 요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삶에 요구하는 것이 없을 때 삶 또한 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다. 직장 또한 마찬가지다. 검소한 삶을 살면서 지금 당장 직장을 떠나더라도 생존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에 다다르면 직장생활은 훨씬 더 우아해질 수 있다. 직장은 더 이상 나에게 숙명도 고통도 아니다. 선택이고 배움으로 가득한 여정이다. 나는 지구별에 온 여행자다.

그러므로 나는 직장에서 경험하는 부당한 것들을 거부할 수 있고, 형편없는 사람들을 거부할 수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 진정성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다.

부당한 것을 거부하면 그것들은 당신을 찾아오지 않는다. 형편없는 사람들을 거부하면 그들도 당신을 찾아오지 않는다. 당신이 진정성을 가지고 당신의 생각을 주장하면 회사 전체가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정성을 담아 말할 때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만큼 주변이 고요할 것이다. 진정성이란 이제 그토록 희소한 무언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주 오랫동안 회사는 당신이 그래 주기를 바래 왔을 수도 있다. 설사 당신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와 조직이 근본까지 썩어 빠졌고, 당신의 용기 있는 모든 노력이 아무런 변화를 만들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당신을 비웃는다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즐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즐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안되면 그만두고 다른 더 재미있는 기회를 찾으면 된다. 도대체 뭐가 아쉽지? 뭐가 두렵지? 아쉬워할 것 하나 없다. 삶은 유한하다. 그런 쓰레기에 집착하며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 나는 이제 더 이상 월요일이 우울하지 않다(2019.07.19) 중 발췌



근거 #3


내 마음은 한 마리 원숭이다. 바람을 타고 망고 향기가 풍겨 올 때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는 것이다. 누군가 비트코인, 제약주 주식과 갭 투자 같은 같은 것을 통해서 큼지막한 망고를 따오는 것을 볼 때마다 원숭이는 외쳐댄다. "망고다! 이 미련 곰탱이야 지금 당장 망고를 향해 달려가! 나는 저 망고를 먹을 자격과 능력이 있어. 지금 당장 달려가지 않으면 내 몫의 망고가 모두 사라져 버릴 거야. 달려! 지금 당장!"이라고. 마음은 이미 저만치 앞서 망고 밭에 가있다. 어쩌면 원숭이가 맞을지도 모른다. 내게도 망고에 대한 권리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내게는 약삭빠른 잔머리와 몇 가지 잔기술이 있다. 그것을 망고를 훔치는 데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망고 냄새는 정말이지 향긋하고 달콤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망고 밭으로 가지 않았다.


내게 바나나 나무가 두 그루 있었기 때문이다. 한 그루는 "좋은 아빠 되기"였고, 다른 한 그루는 "좋은 글 쓰기"였다. 아주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바나나 나무는 순식간에 시들해져 버린다. 만일 내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망고를 훔치러 달려간다면 이 두 그루의 나무는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 뻔했다. 누군가는 망고와 바나나를 모두 가지는 데 성공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능력 밖의 일이다. 바나나 나무를 가꾸기도 벅차다. 망고와 바나나 모두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망고 냄새가 유난히 향긋했던 날이었다. 그날 나는 원숭이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망고와 바나나 모두를 먹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것을 알고 있어. 나 또한 그것이 걱정되고 두려워.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그려온 궤적을 봐. 생각보다 훨씬 잘해왔어. 그동안 망고맛 사탕을 5개나 모았잖아. 망고 따위 없어도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 그리고 앞으로는 더 많은 망고맛 사탕을 더 쉽게 모을 수 있을 거야. 이미 한번 와 봤던 길이잖아?"라고.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원숭이가 길길이 날뛰며 나를 할퀴어 댔다. 그러나 가끔은 원숭이가 군말 없이 나를 도와주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함께 힘을 합쳐 바나나 나무를 가꾸었다.


그것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나는 스타벅스 라테를 좋아할 당신이 검소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렇지 못할 경우 세상의 모든 탐욕스러운 이야기들이 당신의 마음을 들끓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검소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내가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말짱 개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당신이 검소할 때에만 당신은 모든 탐욕스러운 이야기들을 거부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영감과 배움을 주지 않는 모든 것을 거부하기를 바란다. 검소하기를 바란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고, 자신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베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일 때 바라건대 잭팟이 터질 것이다. 적어도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 나는 스타벅스를 좋아할 당신이 검소하게 살기를 바란다(2019.07.08) 중 발췌


지난 몇 년 동안 내 컴퓨터의 윈도 부팅 패스워드는 "올해는 출판"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내 책상 한구석에는 언제나 두툼한 책 원고가 있었다. 나는 틈만 나면 그것을 만지작 거리곤 했다. 중간중간 멈추기도 했고, 완전히 그만두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2018년 초고가 완성되었다. 나는 그것을 출판사 여기저기에 보냈다. 회신은 없었다.


꼴도 보고 싶지 않았다. 컴퓨터의 패스워드를 "이제는 그만"이라고 바꾸려고 했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원고들을 조금씩 헐어서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했다. 2018년 11월의 일이었다. 내가 쓰던 원고를 모두 등재했을 무렵 내 구독자는 150명 정도 되었다. 내가 쓴 글이 왜 책이 될 수 없는 것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개운했다. 오랫동안 쓰고 있던 묵직한 원고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 것은 브런치가 처음이었다. 구독자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느낌이 좋았다. 작성했던 원고 이외에도 틈틈이 몇 편의 글을 더 써서 올렸다. 책을 쓴다는 생각을 할 때는 그토록 지긋지긋하던 글쓰기가 비로소 즐겁게 느껴졌다. 지랄 같던 여름 전지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태어나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 쓴 글들이 연달아 터졌다. 출판사에서 출간제의가 왔다. 내가 원고를 투고했던 그 출판사였다. 그리고 지난주 나의 첫 책이 나왔다.


오랫동안 굳게 잠겨있던 문이 비로소 열린 기분이다. 열린 문 너머로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향긋한 바나나 냄새가 풍겨온다. 5억은 내게 검이다. 갑옷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망고맛 사탕이 없었다면 지금쯤 나는 망고 밭에서 망고를 훔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지금까지 글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국은 가치 기준의 문제이다. 만약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가 오픈카를 사고, 크루즈 여행을 떠나고, 남은 생을 일하지 않고 싶어서라면 미안하다. 5억은커녕 10억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택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부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가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추구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가능하다. 5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3억, 2억, 1억이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결국 부자란 얼마를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무엇을 추구하는 가의 문제인 것이다. 가치 기준의 문제인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재테크란 빠른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생각한다. 재테크란 돈이란 존재를 초월해가는 여정이다. "너 같은 건 가난해서 안돼"라고 말하는 세상을 향해 가웃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기백이다. 이것을 받아들일 때 돈은 더 이상 족쇄가 아니다. 아무리 겸손한 금액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당신의 검과 갑옷과 열쇠가 되어 줄 것이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다가올 미래가 설렐 것이다. 비로소 당신은 이 질문을 두려움 없이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지금 삶을 만끽하고 있는가?"



저의 첫 책 『부자들은 모두 은행에서 출발한다(RHK)』가 출간되었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브런치 독자분들이 없었다면 제 윈도 부팅 비밀번호는 오래 전 "이제는 그만"으로 바뀌었을 테니까요. 독자분들이 있어 글을 쓰는 시간이 저에게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에 B형 은행원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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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한 삶에 관한 이야기들

나는 오늘 메로나가 땡긴다.

말하거니와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이 숨겨진 잔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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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뉴스는 보지 않는게 더 낫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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