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데이파더스클럽 (19)
거실 벽에 알파벳 모양의 풍선 여러 개가 사이좋게 붙어 있다. ‘HAPPY BIRTHDAY!’. 지난주에 생일이었던 첫째가 동네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하고 남은 흔적이다. 생일은 지나갔지만, 알록달록한 풍선이 주는 느낌이 좋아 며칠 더 그대로 붙여놓고 있다.
아이의 열 번째 생일이었다. 아빠가 된 지 만 십 년이 되는 날.
거실 바깥을 내다보니 눈이 내린다. 페이스북에 접속하니 ‘10년 전 과거의 오늘’이 떴다. 태어난 직후에 찍은 사진이다. 3kg 남짓한 작은 아기가 체온 유지용 모자를 쓴 채 신생아용 침대에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활기 넘치는 아내는 옆에서 승리의 V자를 내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그래, 그랬었지. 아기의 탯줄을 자르고, 처음 품에 안던 그 순간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지금은 다른 소셜 미디어에 밀려 조금 인기가 사그라들었지만, 꿋꿋이 버티며 10년 전 과거와 오늘을 변함없이 이어주고 있는 페이스북이 새삼 고마워졌다.
아이는 겨울에 태어났다. 처음으로 기저귀를 가는데 이 연약한 생명을 어떤 자세로 뉘어놓고 갈아야 하나 1일 차 아빠는 산모 옆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병원에서 아기를 안고 나오는데 영하의 바깥 날씨에 혹여나 추울세라 아기 속싸개를 몇 번이고 여미던 기억들까지 같이 몰아쳤다.
십 년이 지나고, 3kg였던 아이는 이제 열 배가량 커졌다. 그저 몸만 커진 것이 아니다. 학교 친구들과의 생일파티 준비에 설레며 집을 꾸미고, 친구들과 저들끼리 영화를 보러 다니며, 이제는 제법 동생까지 챙길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이름을 뭘로 지을까 아내와 둘이 조리원에서 고민하는 내내 수유하는 시간 말고는 계속 잠만 자고 있던, 바로 그 핏덩이가.
“아빠, 아무래도 CCTV를 하나 달아야 할 것 같아.”
“왜…?”
“아무래도 수상해. 내가 분명히 수직으로 편지를 세워뒀는데… 흠.”
“???”
“분명히 엄마 아니면 아빠가 산타야. 내 추리로는 그래. 내 촉이 그래.”
아이의 생일과 크리스마스가 며칠 떨어져 있지 않다. 뭐 하나로 퉁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 그게 어디 그런가. 생일 선물은 생일 선물이고, 산타할아버지가 주는 선물은 엄연히 다른 거다. 그리고 재작년까지만 해도 아이는 산타의 존재를 굳게 믿었다. 아이 입장에서는 연말이 겹경사(!)가 있는, 쏟아지는 선물을 기다리는 시즌인 게다.
믿음에 금이 간 건 작년부터였다. 아이는 왜 며칠 전 받은 생일선물 포장지와 산타가 주는 선물 포장지가 같은 핑크색 잔망루피 포장지인가에 대한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깜짝이야…) 주도면밀하지 않은 양육자들을 만나 산타가 꼬리를 밟힌 셈인데, 지난해에는 그건 순전히 매우 낮은 확률의 우연이라고 강하게 둘러대고 어찌어찌 넘어갔다.
작년의 일을 교훈 삼아 올해는 아내와 좀 더 용의주도하게 산타 선물 배송작전(!)을 짰다. 포장지는 당연히 다른 걸 쓰고, 아이가 기대반 의심반으로 슬쩍 크리스마스 트리에 꽂아 둔 카드도 읽어보고 안 읽은 척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산타의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분명히 산타 할아버지가 카드를 읽었으면 편지가 꽂혀있는 방향이 바뀌어 있어야 하는데 왜 그대로인지, 읽지도 않은 편지 내용을 어떻게 알고 제 마음에 꼭 맞는 선물을, 그것도 카드도 안 쓴 동생 것까지 두 개나 같이 트리 밑에 놓여 있는 것인지를. (‘엉덩이 탐정’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그 아기가, 이렇게나 컸다.
만 10년 동안 아이를 키웠다. 이제는 기저귀도, 젖병도, 유모차도 아스라하다. 얼마 전에는 첫째에 이어 둘째가 쓰던 욕실 발 받침대도 버렸다. 더 이상 두 아이 모두 양치질을 할 때 발 받침대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엊그제, 둘째도 오빠에 이어 드디어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 두 번째 취학통지서를 받아 드는 부모의 마음은 첫째 때와는 또 다르게 묘하다. 한 번 겪어봐서 알 것도 같지만 이번에는 또 무슨 일들이 펼쳐질까 하는 설렘과 두려움이 같이 마음 속으로 밀려들어온다.
어쩌면 지금, 육아라는 긴 마라톤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풀코스까진 도전해보진 못했지만) 10km를, 그리고 하프마라톤을 뛸 때 반환점을 찍고 돌아오는 코스를 달려본 적이 있었다. 처음에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반환점이 얼마나 멀게 느껴졌던지 모른다. 나는 기껏 정말 젖 먹던 힘을 짜내며 힘들게 달려가고 있는데 반대쪽 차로에서 나를 마주 보며 뛰어오는 근육 건장한 마라토너들과 매번 마주쳤다. 이미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을 향해 뛰어가는 그들을 보니 가뜩이나 멀어 보이는 반환점이 더 멀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1등이 아닌 한, 반환점이 있는 게임에서는 늘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저 조급해하지 않고, 자신의 호흡과 페이스를 유지해야만 무사히, 다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달리기를 통해 배웠다.
지난 10년을 돌아본다. 아이들과 하나하나, 겹겹이 쌓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힘들었던 때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나고 보니 견딜 만했다. 아니 사실 힘들었던 건 찰나에 지나지 않고, 아이들 덕에 기쁘고 행복했던 시간이 열 배는 더 많았다.
아이가 더 자라 어른이 되기까지 앞으로 또 다른 10년이 남아있다. 반환점을 돌았다 생각하니 오히려 뭔가 아쉽기도 하다. 러너스 하이*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페이스를 잘 유지해서, 어찌어찌 잘 뛰다 남아있는 10년도 잘 지나갈 것 같다. 근거 없는 자신감만으로 차 있는 건 아니다. 지난 10년의 기억이, 바로 그 자신감의 근거가 되고 있으니까.
* 30분 이상 뛰었을 때 밀려오는 행복감. 다리와 팔이 가벼워지고 리듬감이 생기며 피로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힘이 생긴다.
많은 양육자들에게, 아이를 키우는 스무 해는 그전에는 미처 겪어보지 못한 긴 호흡의 시간이다. 한 회사에서 10년을 다니는 것도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지 않은가. 10년은 고사하고 처음 창업한 스타트업들은 7년 정도만 망하지 않고 생존해도 훌륭하다 잘했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 양육자들은 20년짜리, 혹은 그보다 더 길 수도 있는 장기 프로젝트를 여하간 큰 탈없이 꾸려나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물론 일상은 눈코 뜰 새 없는 전쟁의 연속이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창밖에 내리는 눈도 곧 그칠 것이고,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것이고, 여름과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이 올 것이다. 그렇게 계속 변해가는 시간 속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들과 추억을 하나하나 쌓아가다 보면, 언젠간 반환점을 돌아 육아의 종착점을 마주할 날이 올 것이다.
세상 모든 양육자들 파이팅! 함께 끝까지 완주해요 우리. :)
#썬데이파더스클럽
다음 책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에세이스트. 윈스턴 처칠의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마라'라는 말을 좋아한다. 죽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야구팀의 우승을 보는 것이 꿈이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 《아들로 산다는 건 아빠로 산다는 건》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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