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을 차릴 알고리듬
페북에서 광고로 발견한 도식이 2024년 이후 멈추었던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합니다.
여기서 다름 아닌 저의 습관(Habits)이 제가 풀어내려는 생각을 이미 실행합니다. 흥미로운 (저 자신에 대한) 관찰입니다. 습관의 정체는 49편의 인공지능 길들이기 연재를 포함하여 '인공지능'이 들어간 글을 1,100개 이상 쓰는 가운데서 창발創發[1]한 저의 행동 양식입니다.
2024년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 <나에게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은 약 일 년 반 만에 나름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듯합니다. 이것 역시 역량이나 습관으로 창발 한 것일까요? 아무튼 그 형상을 단순화해 보면 아래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바로 최봉영 선생님이 정의한 'Linguistic Self'이 자연스럽게 들어맞아 차용합니다. 욕망이 없는 인공artificial 언어 자아를 '동료'로 활용하여 나의 욕망을 추구하면 지식과 스킬을 무한하게 확장할 수 있는 것이죠.[2]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반복하려면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듯합니다. 그리하여 이는 필수적인 행위도 보아도 무방할 듯합니다.
인공지능을 '도구'가 아니라 '동료'라 쓴 이유는 우리를 'linguistic self'로 보았기 때문이죠. 그 층위에서는 인공지능과 우리가 같은 역할을 하니 동료라 할 수 있습니다. 도구든 동료든 일단 인공지능에는 욕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치 판단도 무의미하죠.
자, 이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2024년 이후 멈추었던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그리고 즉흥적으로 떠올린 도식을 다시 살펴보기로 합니다.
여기서 정혜신 선생님의 말씀이 나타나 저를 돕는 듯합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에 가로막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마치 람다 함수(?)처럼 사는 것에 초점을 두라는 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1] 뜻밖에도 創發은 네이버 한자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클로드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요약해 줍니다.
하지만, 제가 창발이란 말에 담아 쓰고 있는 뜻은 퍼플렉시티가 찾아주었습니다.
오늘날 과학·철학에서 쓰는 “부분에는 없던 성질이 전체 수준에서 새롭게 드러나는 현상”이라는 의미는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학술적 확장이라, 일반 한자 사전이나 오래된 사전에는 잘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2] 작년에 썼던 <인공지능은 허구적 믿음을 이식받은 놀라운 기계>를 보면 <듀얼 브레인>에서 켄타우로스Centauros와 사이보그Cyborg로 묘사한 내용과 매우 유사합니다.
(45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45. 오만 가지 생각에 휩싸인 자기 대화가 자신을 망친다
49. 부정적인 감정들도 나의 힘이다
50.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 허우적대고 있을 때
51. 병입 한 감정은 예기치 못한 순간 감정 누출을 낳는다
53. 인생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는 의지가 있다고 말하자
54. 당신의 두뇌는 당신이 항상 이기도록 만들어져 있다
55. 동물로 인간사회에 살아야 하는 한계를 극복하려는 신앙
56. 경청을 위해서는 생각을 멈추고 존재를 기울여야 한다
57. 나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58. 불확실성을 피하는 것은 결국 성취를 내려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