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은 회로에 각인되어야 하는 루틴에 목표를 정해준다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by 안영회 습작

<미래지향적이고 뇌와 조화를 이루는 사법 시스템>에 이어서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의 7장 '왕좌 이후의 삶'에서 밑줄 친 내용을 토대로 쓰는 글입니다.

인간, 즉 저마다 서로 떨어져 수많은 미립자로 이루어진 생명을 품고 있는
작은 연못 같은 인간이 강줄기 너머까지 이어진 물길이 아니라면 무엇이었을까?


의식은 회로에 각인되어야 하는 루틴에 목표를 정해준다

<폐위에서 민주주의로>를 이름으로 하는 구절에서 밑줄 친 내용입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610년에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했을 때, 종교적인 논평가들은 그가 새로 내놓은 태양 중심 가설이 인간을 옥좌에서 끌어내렸다고 비난했다. <중략> 100년 뒤 스코틀랜드의 농부 제임스 허튼은 퇴적층 연구로 지구의 나이에 대한 교회의 추정치를 무너뜨렸다. <중략> 찰스 다윈은 인간을 수많은 동물이 우글거리는 동물계의 가지 하나로 격하시켰다. 1900년대 초에는 양자역학이 현실의 구조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1953년에는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 DNA 구조를 해독해, 신비로운 생명의 근원을 네 글자로 이뤄진 시퀀스로 기록해서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제목의 이유를 알겠네요.

우리는 두개골 속 시스템에 의식이 느리게 접근하거나 아예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시각이 반드시 실제와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시각은 뇌가 구축한 것이며, 우리가 경험하는 상호작용(예를 들어 잘 익은 과일, 곰, 배우자와의 상호작용) 수준에서 유용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시각의 유일한 임무다.

그리고, 의식의 역할을 이렇게 말합니다.

의식은 회로에 각인되어야 하는 루틴에 목표를 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의식의 폐위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길이 열린다

카뮈가 소재로 삼은 부조리가 신의 폐위에서 온 것이었다니!

내 생각에는 철학자들이 폐위 소식을 조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폐위 이후 인류에게 남은 것이 정말로 전혀 없는가? 상황은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과학이 발견한 것인 부조리 위에서 발견한 사실에 대한 놀라움과 경이인가요?

폐위가 더 풍요롭고 더 심오한 지식으로 이어져, 우리는 자기중심주의를 잃은 대신 놀라움과 경이로 그 자리를 메웠다.

저자는 바로 그 과학으로 의식의 폐위를 돕고 있습니다.

의식의 폐위를 통해서도 우리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길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런 의식의 전환이 불러오는 실용적 효과를 말합니다.

인간의 행동에 대한 지식 향상은 사회 정책의 향상으로 곧바로 치환될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뇌에 대한 지식이 인센티브 구성에 중요하다.

다음 구절을 보니 확실히 그렇습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내면작업(성찰)뿐만 아니라 외부작업(과학)도 많이 필요하다. <중략> 성찰에는 한계가 있다. 말초신경계가 1억 개의 뉴런을 이용해 내장의 활동을 통제(장신경계)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아무리 성찰을 거듭해도 이 1억 개의 뉴런에 접근할 길이 없다. <중략> 신경계는 최적화된 상태인 만큼, 자동으로 움직이며 창자에서 음식을 이동시키고 화학신호를 보내서 소화 공장을 제어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폐위가 선행되어야 인간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듯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주문에 대한 새로운 해설

젠더 이야기는 마치 DNA의 힘을 거스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것 중 많은 부분은 우리가 평가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매력을 느끼는 대상을 바꾸려고 시도해 보라. 내가 현재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젠더의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 감정을 계속 유지하라고 사회가 내게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중력을 거스르는 일과 같을 테죠.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충동은 신경회로에 새겨져 있고, 우리는 거기에 접근할 수 없다. 어떤 대상에 특별히 매력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그 이유를 모른다. 우리의 내면 우주 거의 전체가 이처럼 우리에게 낯설다.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 백일몽을 꾸며 하는 생각, 밤에 꾸는 기괴한 꿈, 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두개골 속에서 만들어진다.

와, 멋진 정리입니다.

우리가 원자를 그림으로 그릴 수 없게 된 것은 맞다. 그러나 이제는 원자의 행동에 관한 실험 결과를 소수점 이하 열네 자리까지 예측할 수 있다. 과거의 가정을 잃어버린 대신, 더 풍요로운 것을 얻었다. 같은 맥락에서,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알다'의 정의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뇌라는 저택에서 우리 의식이 작은 방 하나만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우리를 위해 구축된 현실을 의식이 거의 제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자신을 알 수 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주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주문을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라고 합니다. ;)

그 말이 만들어진 문화, 성찰에 대한 강조, 각성의 길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중략> 그렇게 완전히 낯선 시각에서 우리를 알게 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중략>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물리적인 부품들로 만들어졌다는 것의 의미

뇌의 상태라...

뇌의 상태가 우리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는 것. 친구들이 알고 사랑하는 나는 뇌 속 트랜지스터와 나사가 제자리에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됨됨이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니, 최봉영 선생님 덕분에 다뤘던 '됨됨이'를 두고 묻따풀 했던 일도 떠오릅니다. 바로 그 됨됨이가 뇌의 상태라는 생물체인 동시에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개체의 총체적 상태에 달려 있다는 것이군요.

물질주의적 시각에 따르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물리적인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다. 뇌는 화학과 물리학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시스템이며, 모든 생각, 감정, 결정은 국지적인 법칙을 따르는 자연스러운 반응에 의해 만들어진다. 뇌와 그 안의 화학물질이 바로 우리다. 신경계의 문고리를 조금이라도 돌리면 우리라는 사람이 달라진다.

또다시 박문호 박사님 덕분에 끝까지 읽은 혹은 읽기는 했던 <데카르트의 오류>가 떠오릅니다. 이어서 인용한 내용은 최근에 쓴 <감정을 돌보면 일이 잘 되고, 공감 없는 협업은 없다> 덕분에 익숙한 내용입니다.

신경생물학에 대해 다른 건 전부 모른다 해도, 마약의 존재 자체가 우리 행동과 심리가 분자 수준에서 조종될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중략> 차가운 아이스티로 갈증을 푸는 일에서부터 원하는 사람에게서 미소를 이끌어내는 일, 어려운 문제를 푸는 일, "잘했어!"라는 말을 듣는 일에 이르기까지 보상과 관련된 네트워크다. 넓게 퍼져 있는 이 신경회로(중간변연 도파민 시스템)는 특정한 행동과 거기서 파생된 긍정적인 결과를 하나로 연결해서 행동을 최적화하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우리가 먹을 것, 마실 것, 짝을 구하는 데, 일상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


신경전달물질의 미세조정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설명을 들으면

뇌에서 벌어지는 신경생물학적 현상의 총체가 바로 나라는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 도파민 시스템은 수많은 예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수십 가지 신경물질(예를 들어 세로토닌)의 정확한 수치가 우리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과 관련해서 몹시 중요하다. 임상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약어로 SSRI)라고 불리는 약을 처방받을 가능성이 높다. 플루옥세틴, 설트랄린, 파록세틴, 시탈로프람 등이 여기 속한다. 이 약의 작용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하는 모든 정보는 '재흡수 억제제'라는 말에 들어 있다.

정신과 처방의 효용과 동시에 분명한 한계가 확인됩니다. 바로 <당신이 옳다>를 읽은 덕분이죠. 신경생물학적 관점 이후에는 '대화라는 문화(文化)적인 문제'나 남게 됩니다.

평소에는 수송체라고 불리는 채널이 뉴런 사이의 공간에서 세로토닌을 흡수한다. 그런데 이 채널의 활동을 방해하면, 뇌의 세로토닌 농도가 높아진다. 이것이 인지와 감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침대에 걸터앉아 울던 사람이 이 약을 복용하면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일자리도 되찾고, 주위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회복한다. 이 모두가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의 미세 조정 덕분이다.

책의 맥락을 벗어나

인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신경전달물질만이 아니다. 호르몬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분자인 호르몬은 혈류를 타고 다니면서 항구에 들를 때마다 소란을 일으킨다.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차이가 궁금해져서 퍼플렉시티에게 묻습니다.

그녀는 어떤 순간에든 몸속 화학물질의 총합이 곧 자신이라는 견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녀라고 생각하는 것이 시간을 기준으로 평균을 낸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신내림이 간질발작 증상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용하다는 분들을 찾아 그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며 마음을 산 후에

외적인 존재가 없는데도 있다고 느끼는 것, 신의 목소리로 여겨지는 목소리를 듣는 것 등이 특징적인 증상이다. 역사 속 예언가, 순교자, 지도자 중 일부는 측두엽 간질 환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백 년 정쟁의 흐름을 바꿔 놓는 16세 소녀 잔 다르크를 생각해 보자. <중략> 이제 와서 확실한 진단은 불가능하지만, 그녀의 전형적인 묘사, 신앙심의 증가,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확실히 측두엽 간질 증상과 일치한다. 뇌의 특정한 지점이 활성화되면 사람들은 목소리를 듣는다. 의사가 간질 약을 처방해 주면 발작도 사라지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 현실은 생물학적인 현상에 달려 있다.

간질 약을 전해주면 그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물론, 실없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현상 위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현상의 바탕을 쉽게 받아들일 사람이 다수는 아닐 듯합니다.

지름이 고작 750억 분의 1미터에 불과한 이 바이러스가 자기보다 2500만 배나 큰 동물의 몸을 조종해서 살아남는다니. 이건 사람이 키가 4만 4800미터나 되는 생물을 찾아내서 아주 영리한 방법을 동원해 멋대로 휘두르는 것과 같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변화가 뇌에서 일어나면 행동이 크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은 뇌의 작디작은 부분들과 불가분의 관계로 묶여 있다.

연가시에 대해 들은 내용이 생각나서 퍼플렉시티에 확인을 합니다.

사마귀나 여치 같은 육식 곤충이 중간 숙주(잠자리 유충 등)를 먹으면 연가시 유충이 들어가 성장합니다. 성충이 된 연가시는 숙주를 물가로 유인해 항문이나 몸을 뚫고 나오며, 숙주는 익사하거나 영양 고갈로 죽습니다.

다음 구절을 읽을 때면 연가시의 작용과 무슨 차이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헌팅턴병을 생각해 보자. 전두피질에서 서서히 진행되는 손상 때문에 성격이 변해서 공격성, 성욕과다, 충동적인 행동, 사회적 규범 무시 등이 나타나는 병이다. 이런 일이 몇 년 동안 진행되다가, 팔다리가 경련하듯 눈에 띄게 움직이는 증상이 나타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유전자 하나의 변이가 헌팅턴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로버트 새폴스키는 이렇게 요약했다."수만 개의 유전자 중 하나만 바뀌어도, 사람이 인생을 약 절반쯤 살았을 때 성격이 급격하게 바뀐다." 이런 사례들 앞에서. 우리의 본질이 세세한 생물학적 현상에 달려 있다는 결론 외에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헌팅턴병을 앓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발휘해서 그 이상한 행동을 그만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유전자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이제는 나약한 의지의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된 듯합니다.

아무리 애써도, 생물학적 변화가 나의 변화로 이어진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선택'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마치 영혼이 없다는 말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듯한 내용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많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방대한 네트워크에 달려 있다. 이 요소들이 너무 많아서 요소 하나와 행동 하나의 관계를 일대일로 파악하기는 아마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세계는 생물학적인 현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만약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세세한 생물학적 현상들과 결코 풀 수 없을 만큼 얽혀 있을 것이다.

뒤이어 저자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한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여러 공장에 가서 그곳에서 사용되는 나사의 길이와 나사산 사이의 거리를 조사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래봤자 최종 생산품의 기능에 대해서는 거의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최종 생산품이 토스터인지 헤어드라이어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두 제품 모두 비슷한 부품으로 이루어졌으나 기능이 다르다. 우리가 기대하던 답을 얻지 못했다는 말은 인간게놈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요지를 다시 확인해 줍니다.

유전자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행동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없다는 것이 이 의문의 답이다.


관점, 성격, 의사결정 능력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다시 한번 <당신이 옳다>를 떠올립니다.

아브샬롬 카스피의 연구팀은 2001년 우울증 유전자가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들이 찾아낸 답은 '아마 있는 듯'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기질을 미리 결정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우울증에 걸릴지를 좌우하는 것은 삶의 경험이다.

우울증의 약 처방은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다음 내용을 읽을 때면 육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쁜' 형태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으나 아동학대를 겪지 않았다면, 학대하는 어른으로 자랄 가능성이 낮았다. 그리고 '좋은' 형태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면 어렸을 때 심한 학대를 당했어도 반드시 폭력을 이어가는 어른으로 자라지는 않았다.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해도 두 아들이 더 나은 어른으로 커가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이상의 의미 있는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다음 글을 읽을 때면 천성과 환경은 음양 관계란 생각이 듭니다.

천성인지 환경인지를 묻는 질문에서 답은 거의 항상 '둘 다'이다. 앞 장에서 보았듯이, 천성도 환경도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둘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유전자 청사진을 물려받아, 인격이 형성되는 기간 동안 우리 자신에게 선택권이 전혀 없는 세상에 태어난다.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성격, 의사결정 능력 등이 날 때부터 크게 다른 이유가 이것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그냥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환원주의의 한계와 창발Emergence

저자의 환원주의 역사에 대한 빠른 브리핑을 봅니다.

환원주의가 인기를 얻은 이유가 무엇일까? 환원주의의 역사적인 뿌리만 조사해 봐도 답을 알 수 있다. 최근 몇 세기 동안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은 갈릴레이, 뉴턴 등의 결정론적 방정식이라는 형태로 결정론적 과학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갈릴레이나 뉴턴 같은 과학자들은 끈을 잡아당기고, 공을 굴리고, 무거운 것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해서 물체의 움직임을 간단한 방정식으로 예측하는 실력을 점점 키웠다. 19세기 무렵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우주에 있는 모든 입자의 위치를 알 수 있다면, 계산을 통해 미래 전체를 알아낼 수 있다(그리고 방정식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서 모든 과거를 알 아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이론이 환원주의의 핵심이다. 환원주의는 기본적으로 큰 것을 구성하는 작고 작은 조각들을 일일이 이해하면, 큰 것 전체 또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환원주의는 르네상스 이전부터 과학의 엔진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죠.

환원주의가 모든 것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뇌와 정신 사이의 관계는 확실히 환원주의로 설명할 수 없다. 창발emergence이라는 개념 때문이다. 대량의 부품들을 하나로 조립했을 때, 그 결과물이 부품들의 총합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개념이다. 비행기를 구성하는 금속덩어리들에는 '비행'이라는 속성이 없지만, 그들을 올바르게 조립하면 그 결과물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중략> 창발이라는 개념 은 어느 부품에도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속성이 생겨날 수 있다는 뜻이다.

제가 (소프트웨어 개발 경력에서 배운) 좋아하는 창발emergence이라는 개념의 등장이 반갑습니다.

신경계의 부품만으로는 인간의 경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사람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생물학적 요인은 뇌만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제가 '대화라는 문화(文化)적인 문제'라고 꼽은 문제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복잡한 사회적 네트워크가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의 생물학적 현상을 바꿀 수도 있고, 우리 행동이 그 네트워크를 바꿀 수도 있다. 따라서 경계선이 어디인지 물어보게 된다. '나'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나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유일한 해법은 뇌를 '나다움'의 가장 조밀한 집적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뇌는 산꼭대기일 뿐, 산 전체가 아니다.

책의 끝으로 갈수록 문제를 탐구할 때 개방성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직은 인류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말하며 책을 마칩니다.

그가 내린 결론에 한계가 있는 것은, 그가 전파에 대해서, 그리고 그보다 더 넓은 개념인 전자기복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를 읽고 쓰는 독후감

1. 우리는 이 행성에서 가장 분주하고 밝게 빛나는 존재다

2. 자동으로 움직이는 뇌에서 선택의 주체는 누구인가?

3. 관념계 여행과 무의식에 밀항하는 자아

4. 정신세계의 일들은 대부분 의식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

5.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생명현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6. 경험의 해체와 인간 관찰력의 한심함에 대하여

7. 시각이 세상을 충실하게 표현한다는 널리 퍼진 착각

8. 우리는 실제 세상이 아니라 뇌가 보여주는 것을 인식한다

9. 뇌가 추측을 최대한 동원해서 정보를 더 크게 키운다

10. 눈이 아니라 뇌(머리)로 보는 것이라 해야 할까?

11. 뇌는 두개골 안에서 절대적인 어둠 속에 갇혀 있다

12. 뇌는 자신의 실수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3. 의식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한 형태의 암묵 기억

14. 좋은 결정을 위해서는 육감이 필요하다

15. 움벨트 밖으로 나아가는 모험심은 어디서 나오는가?

16. 우리 행동의 엔진 역할인 본능을 우리는 볼 수 없다

17. 인종차별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공존하는 뇌

18. 우리 뇌에 프로그래밍된 정신의 양당제 민주주의

19. 율리시스의 계약이 알려주는 타인의 말에 경청할 이유

20. 해마가 만드는 기억과 아미그달라(편도체)가 만드는 기억

21. 뇌 속에는 외계인 같은 낯선 기계적 서브 루틴이 있다

22. 우리는 접근할 수 없는 현미경적인 역사의 소산이다

23. 미래지향적이고 뇌와 조화를 이루는 사법 시스템


지난 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연재

(195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194. 혁신을 낳는 동력은 다양한 형태의 인센티브

195. 킹메이커 피터 틸과 파운더스 펀드의 동지들

196. 성장과 발전은 그것을 막는 힘과 싸워야 한다, 언제나

197. 해마가 만드는 기억과 아미그달라(편도체)가 만드는 기억

198. 전쟁과 진화의 힘에서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

199. 뉴-아메리카의 마에스트로가 된 실리콘밸리의 마스터

200. 뇌 속에는 외계인 같은 낯선 기계적 서브 루틴이 있다

201. 2025년 독서 목록과 독후감에서 보이는 행동 분석

202.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은 곤경에 빠지는 원인이다

203. 우리는 접근할 수 없는 현미경적인 역사의 소산이다

204. 남은 반평생을 인터스텔라 시대를 여는데 바치려는 사람

205. 미래지향적이고 뇌와 조화를 이루는 사법 시스템

206. 일론 머스크가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단 하나의 이유

207. 비관론자처럼 대비하고 낙관론자처럼 꿈꾸라

208. 미래지향적이고 뇌와 조화를 이루는 사법 시스템

209. 리더가 관성에 빠지면 통제 불가능한 간접비용을 낳는다

210. X를 거의 쓰지 않는 나는 시대착오를 범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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