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차리는 독서의 시작
<Same as Ever>에 이어 <역사의 시선>을 읽고 쓰는 글입니다. 두 책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는데, <Same as Ever>를 읽고 쓴 마지막 글에서 인용한 단락이 둘을 이어주는 듯합니다.
십여 년 전 나는 역사를 더 많이 공부하고 예측 자료를 덜 읽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결정은 내 인생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를 알면 알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줄고 편안해졌다.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하면, 불확실한 앞날을 예측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대신 세월이 흘러도 유의미한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다. 바라건대 이 책을 읽고 당신도 그랬으면 한다.
다시 한번 마음에 간직하고픈 내용을 추려서 인용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를 알면 알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줄고 편안해졌다.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하면, 불확실한 앞날을 예측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대신 세월이 흘러도 유의미한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다.
자, 이제 <역사의 시선>의 '책머리에'에서 밑줄 친 내용을 보겠습니다.
군대에서 읽었던 가장 인상적인 책의 상징적인 문구가 등장합니다.
E. H. 카가 제시한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는 역사를 도그마(Dogma)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그 의미가 '역사를 도그마로 만들지 말라'였다는 점은 몰랐습니다.
역사가들에게 이 명제는 '늘 현실에 발을 딛고 과거를 보라'고 촉구하는 권고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과거는 바위처럼 단단하지만 현실은 유동적이다. 그렇기에, 과거를 보는 일보다 현실에 발을 딛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내가 신문 칼럼을 쓴 이유는 첫째로 내 발을 현실에 닫기 위해서였고, 둘째로는 독자들에게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법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 책을 읽고 생각을 글로 남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구절입니다.
앞선 문장은 역사를 떠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첫 번째는 저의 단골 화두인 <외면(外面)하기와 직면(直面)하기>입니다. 우리 내면은 작은 고통만 만나도 생존기계로 작동하는 유전자에 복종해 달콤한 상상이나 현실 바깥에서 중독할 대상을 찾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이 '바위처럼 단단한 것'을 기대期待하다가 만난 현실의 '유동적流動的'[1]인 면이란 생각을 처음 해 보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역사학자인 저자는 우리들에게 E.H. 카가 제시한 '역사를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로 만드는 법'을 예로 들어 전해줄 모양입니다. 기대됩니다.
또한, 저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언급하며 이렇게 씁니다.
과거는 자기를 잊지 않고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현재만 도와준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격언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Same as Ever>의 저자가 불확실한 앞날 예측을 요구하는 불안감에 대응해서 역사 공부를 했다는 동기가 다시 떠오릅니다.
역사는, 자기에게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만 가르침을 베푼다.
여기서 배운다는, 내 눈앞의 현실을 직면하고 역사에서 배움을 얻는 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장으로 넘어갑니다. #01 제목(심의(心醫)와 살의(殺醫))으로 검색해 보니 저자가 칼럼으로 기고했던 원문으로 추정되는 글이 나타납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쟁취했던 세조가 친히 <의약론>이라는 의서를 지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당시로서는 탁견이라고 평합니다. 그 책에서 의사를 여덟 종류로 나누는데, 심의(心醫), 식의(食醫), 약의(藥醫), 혼의(昏醫), 광의(狂醫), 망의(妄醫), 사의·(詐醫), 살의(殺醫)가 그것입니다. 사실상 등급이라 할 수 있는데, 그중 셋만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심의입니다.
첫째는 심의(心醫)니,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의사다. 환자의 마음이 편안하면 저절로 기운이 편안해지며 의사의 말을 잘 따르게 되어 치료 효과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최상 등급인데, 읽으면서 그런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최고 존엄인 왕이 신하나 백성에 해당하는 의사들을 관찰하면 쓴 글이라서일까요? 아무튼 저에게 심의의 표상은 <당신이 옳다>를 쓰신 정혜신 선생님입니다.
다음으로 광의(狂醫)를 살펴봅니다.
다섯째는 광의(狂醫)니, 환자를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아무 약이나 마구 쓰며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침을 놓는 의사다.
돈벌이가 초점이 된 강남의 모 병원이 떠오릅니다. 실비 보험의 맹점을 악용하기 때문에 '자세히' 살필 이유도 없고, '마구 쓰는' 인센티브가 확실합니다.
마지막으로 살의(殺醫)를 보겠습니다.
여덟째는 살의(殺醫)니, 총명하여 의술에 대해 아는 바는 많으나 세상일에 경험이 없어 인도(人道)와 천도(天道)를 알지 못하며 병자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도 없는 자다.
<당신이 옳다>를 쓰신 정혜신 선생님께서 정신과의 행태에 대해 일갈하던 글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살의(殺醫)로까지 비난하는 면모는 역시 만인지상의 위치가 작용한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살의(殺醫)에 어울리는 인물은 조희대 판사 같은 인물들이라 생각합니다.
조희대와 함께 한덕수나 최상목 같은 인물들은 정말 살의(殺醫)에 준하는 공직자입니다.
이런 의사는 남에게 이기려는 마음만 가득하여 남이 동쪽이라 하면 서쪽이라 우기고, 먼저 말을 내뱉은 다음에 그를 합리화하는 논거를 찾는데, 찾을 수 없으면 억지를 부린다. 이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자신만 옳다고 여겨 남을 능멸하고 거만하게 구는 자다. 최하(最下)의 쓸모없는 인간이니, 마땅히 자기 한 몸을 죽일지언정 다른 사람은 죽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글을 인용하며 다시 읽어보니 국힘의 행태 자체가 이런 모양입니다. 언젠가 도올선생이 기회주의자들이 권력을 잡게 된 시조가 세조의 쿠테다라고 주장한 영상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평가 받은 세조가 이런 글을 썼다니 묘한 기분이 듭니다. 그만큼 자기 잘못은 안 보이고, 다른 이들을 관찰하기는 쉬운 듯합니다.
한편, 세조가 가장 높이 평가한 의사는 '무심지의無心之醫'라고 합니다.
마음은 생生이 되나 본래 생生이란 없다. 생이 없으면 병도 없고, 병이 없으면 의사도 없고, 의사가 없으면 일도 없다.
<심의와 살의>에서 마지막으로 밑줄 친 내용을 보겠습니다.
조선 세조가 가장 뛰어난 의사로 꼽은 '심의'와 조야(朝野)의 지식인들이 생각한 '나라를 구하는 의사'의 덕목은 완전히 같았다. 먼저 환자의 마음을 열고 그 뒤에 약을 쓰는 것.
<당신이 옳다>의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인생책 <대체 뭐가 문제야>에서 배운 문제부터 정확히 정의하는 일도 떠올립니다.
나라의 병을 고치는 데에도 정확한 처방과 시점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처방이라도 환자가 수긍하지 않거나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지 않을 때는, 먼저 환자의 마음 상태를 바꾼 뒤에 써야 한다.
그 과정에서 최근에 후배의 말을 경청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반성하게 됩니다.
[1]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한자사전을 찾습니다.
[2] <낱말의 뜻을 깊고 넓게 묻고 따지는 일의 소중함> 실천으로 한자사전을 찾습니다.
(202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202.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은 곤경에 빠지는 원인이다
203. 우리는 접근할 수 없는 현미경적인 역사의 소산이다
204. 남은 반평생을 인터스텔라 시대를 여는데 바치려는 사람
205. 미래지향적이고 뇌와 조화를 이루는 사법 시스템
206. 일론 머스크가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단 하나의 이유
208. 미래지향적이고 뇌와 조화를 이루는 사법 시스템
209. 리더가 관성에 빠지면 통제 불가능한 간접비용을 낳는다
210. X를 거의 쓰지 않는 나는 시대착오를 범하고 있을까?
211. 의식은 회로에 각인되어야 하는 루틴에 목표를 정해준다
212. 목표로 삼을 가치가 있는 것 중에 공짜는 없다
213. 얼굴 습관의 힘이 Life 2.0을 떠올리게 하다
214. 모형을 깨부수고 당신 자신과 비즈니스를 재창조하라
215. 진화는 우위에 관한 학문이고, 끊임없는 변화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