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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Dec 12. 2022

엄마의 공백 속에서

기억 속 내 이야기



열여섯에 외할머니한테 두드려 맞으면서 시집을 갔다는 엄마는 결국 아빠와 갈라섰다. 새 삶을 향해 떠났다. 엄마는 이혼을 원했고 아빠는 처음엔 이혼을 못 해주겠다고 하다가 결국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엄마는 우리 중 한 명이라도 데려가 키우고 싶어 했지만 아빠는 친권, 양육권을 주지 않았다. 가장으로 성실했지만 평생 부엌일을 해본 적 없는 아빠는 졸지에 국민학생 두 딸과 중3 아들을 키우며 회사를 다녀야 하는 돌싱남이 되었다. 아빠 나이 마흔둘이었다. 아빠는 바로 부엌에 발을 들여 집안일과 돈을 버는 가장 역할을 감당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회사 가기 전 빨래를 해놓고 반찬도 만들고 주. 야간을 반복하며 회사를 다니셨다. 겨울이 되면 김장도 직접 담그셨다. 언니와 난 돕고 싶었지만 작은 손이 거두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빠의 애씀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빈자리에 오빠의 방황이 치고 들어왔다.

점점 엇나가기 시작한 오빠는 아빠가 회사에 야간을 가면 친구들을 데려와 밤새 먹고 마시고 음식을 거덜 내놓고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아침에 아빠가 퇴근하기 전에 싹 사라졌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큰 사고를 쳐서 해결하느라 목돈이  들어갔다. 집을 나갔다가 들어왔다 들락날락했는데 오히려 오빠가 집을 나갔을 때는 집이 평화로웠다. 이렇게 아빠랑 셋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마 안 가 또 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 집은 더 괴롭고 고통스러운 곳이 되었다. 








잘못된 만남, 잘못된 선택


집안일과 회사일 두 가지 역할이 더 이상은 힘에 부쳤는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아빠는 주위 소개로 재혼을 하셨는데  새엄마는 지적으로 약간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자식 셋 딸린 홀아비라 그런 사람을 소개해준 것인지 모르겠지만 소개해준 그 누군가도 그것을 받아들인 아빠도  크면서 자주 원망했다. 사람이 나쁘진 않지만 위생관념이 없고 게으른 사람이라 도무지 정을 줄 수가 없었다. '여우랑은 살아도 곰이랑은 못 산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곧 알 수 있었다. 곰팡이가 습한 벽면을 타고 번식하듯, 집안이 새엄마의 냄새로 뒤덮였다. 물건이 뒤죽박죽 되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 음식을 아무 데나 방치해서 바퀴벌레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난해도 깔끔했던 예전과 딴판이 된 집은 몸을 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아빠가 새엄마랑 다투다 몇 번 때리는 것을 보았다. 친구와 학교가 끝나고 집에 함께 왔다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 충격이었다.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사람 좋은 아빠가 여자를 때리다니! 아빠한테 대놓고 묻고 싶었다.

아빠, 왜 재혼을 하셨어요?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집안 분위기가 더 좋아진 것도 아니잖아요!

무엇 때문에 함께 사는 거예요? 진정 묻고 싶었다.


부부관계는 겉에서 보는 것과 다른 걸까? 연민인가? 아니면 가정부처럼 아빠가 없을 때 최소한의 집안일을 해주길 바라서인가? 어떤 이유를 찾아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란한 마음을 못 참고 한 번씩 난 새엄마가 싫다. 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아빠는 이런저런 사정을 들어 결단하지 못했다. 


지인들과 가정사를 얘기하다 보면 보지 말았어야 하는 장면을 본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어린 내 자식은 아무것도 모를 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부모로서 보여줘서는 안 되는 말과 행동을 하고 들키기도 한다. 각인된 기억은 계속 되살아나 생채기를 낸다.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난다고 희미해지지 않으며 예리한 칼날처럼 더 깊게 상처를 내며 파고든다. 부모를 불신하게 된다. 상처로 인해 평생 이성을 만나지 않고 혼자 살기도 하고 부모의 싫은 면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느끼면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불쌍하고 애닮지만 원망스러운 양면적인 감정에 스스로를 책망하며 결국 현재의 내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부모가 보여주는 행동과 말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어른들은 알아야 한다. 부모의 문제가 그들의 문제일 수만은 없다. 그 기운은 예민하게 자식에게 흡수된다. 생명을 영위하기 위해 부모 테두리 아래에서 살아야 하는 아이를 쏙 빼고 어른들의 일이라며 결정하고 그 속에 내던져질 때 그 무력감은 말도 못 하게 크다. 


어린이는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세심하고 깊게 느끼는 존재이다.






<엄마의 이름 앞 이야기>

1.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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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롤로그-영웅 영숙이

https://brunch.co.kr/@miyatoon/37

3. 우리 영숙이는 선생님 시킬 거라......

https://brunch.co.kr/@miyatoon/38

4.호랭이는 뭐하나 저 간나 안 물어가고!

 https://brunch.co.kr/@miyatoon/41

5. 와야 국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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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뽕 따러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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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남의 집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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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진모 엄마는 키가 시집가서 컸어.

https://brunch.co.kr/@miyatoon/46

9. 내 살림과 아이들

https://brunch.co.kr/@miyatoon/47

10. 도시로 떠나다

https://brunch.co.kr/@miyatoon/48

11. 어두운 터널 속에서

https://brunch.co.kr/@miyatoon/49


<기억 속 내 이야기>

1. 맨드라미는 소환 버튼

https://brunch.co.kr/@miyatoon/52

2. 단칸방의 추억

https://brunch.co.kr/@miyatoon/53

3. 더 이상 기댈 수 없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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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학년에 겪은 찐 사춘기

https://brunch.co.kr/@miyatoon/55

5. 전해줄 수 없는 편지

https://brunch.co.kr/@miyatoon/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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