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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뮨 Mar 31. 2020

날찾아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우연히 주문한 책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마침 또 드라마에서 방영 중이지 않겠는가. TV는 없지만 유튜브를 통해 쉬는 시간에 보고 있다. 나는 이런 영상을 볼 때면 사람들의 댓글도 좀 주의 깊게 보는 스타일이다. 어떤 면에서 좋았는지, 어떤 면에서 감동을 받는지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생각보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오는 모양이다. 원작도 괜찮고, 작품도 잘 나왔고, 무엇보다 주인공인 서강준과 박민영이 하드 캐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들은 만족도가 높은 반면,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그런 드라마 인듯하다.



굿나잇클럽

책방 이름이 왜 '굿나잇'이냐고 그녀가 물었을 때 멍청하게 들리는 대답만 했다. 사실은 ' 내 인생의 오랜 화두가 굿나잇이었어'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거죠. 은섭은 이렇게 해원이에게 다 하지 못한 말들을 블로그 비공개 글에 차곡차곡 적습니다. 


우리는 난롯가에 마주 앉습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말합니다. 
어느 밤, 새벽이 올 때까지 잠 못 들고 서성이다 문득 생각했어. 
이렇게 밤에 자주 깨어 있는 이들이 모여 굿나잇클럽을 만들면 좋겠다고. 
서로 흩어져 사는 야행성 점조식이지만, 한 번쯤 땅끝 같은 곳에 모여 함께 맥주를 마셔도 좋겠지. 
그런 가상의 공동체가 있다고 상상하면 즐거워졌어.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고 그 안에서 같이 따뜻해지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서로에게 굿나잇, 인사를 보내는 걸 허황되게 꿈꾸었다고.



은섭은 불행하게 자랐고 아픔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따뜻한 사람이라서 이런 가상의 공동체를 꿈꿉니다. 누구라도 잠이 안 오면 들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고, 그 안에 해원이도 포함되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은섭이도 상처가 많고, 해원이도 상처가 많지만 성향이 다르다 보니 상처를 해소하는 방법이 조금은 다릅니다. 그리고 은섭이는 해원이에 대한 비밀을 또 하나 갖고 있지만 쉽게 말할 수 없는 비밀입니다. 상처가 하나도 없고 완전히 밝은 남자였다면 해원이의 예민한 반응이나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인한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은섭이는 본인도 그 못지않은 여러 가지 일들을 겪어봤기에 묵묵히 해원이를 기다립니다. 떠날까 봐 초조해하지 않고, 그냥 자기의 자리에서 은섭이는 비공개 글을 쓰면서 말이죠. 



서른한 살

서울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해원은 여러 가지 모멸감을 겪고 이모가 있는 북 현리로 내려온다. 지친 마음을 좀 위로받고 현실로부터 도피해보려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모와의 사건이 발생을 하는 등 쉽지 않았다. 돈에 그렇게 목매는 스타일이 아닌 은섭이는 작은 책방을 하면서 겨울에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논두렁 스케이트장도 관리하고 있었다. 둘 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동네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고 해도 무방 할듯싶다. 논두렁 스케이트장에서 넘어진 아이들을 일으켜주는 등 안전요원 역할을 할 사람을 구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해원이 책방에 매니저로 들어오게 되었고, 은섭이는 논두렁 스케이트장을 주로 맡으며 양쪽을 오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뒷산에 올랐던 두 사람은 첫 키스를 하게 된다. 


산에서 H와 키스했다. 하마터면 정신이 나갈 뻔.
더 이상 농담으로 말할 수 없다는 건 심각하다는 뜻이다.
눈동자 뒤에 그녀가 살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도 소용이 없다, 계속 보이니까.
사라지지 않는 잔상의 괴로움.
담요에 감싸인 그녀의 모습.
온종일 입술에 맴도는 첫 키스의 감촉


서른한 살에 첫 키스인 것도 신기한데, 드라마를 보니 너무 잘한다 ㅋㅋㅋ 다들 첫 키스에 저게 가능하냐며 계속해서 그 부분을 돌려보고 난리가 났다. 박서준이 얼굴로 이미 다했는데 키스신까지 잘 나왔으니 수많은 여성 펜들은 난리가 날 법도 하다. 이 소설에서는 진짜 있었던 일과 비공개에 글을 쓰는 것이 교차로 나온다. 그러니 뭔가 주인공의 속마음을 더 아는 것 같고, 비밀 얘기를 우리끼리 공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속으로 막 응원하게 되는 거? 그런 느낌.


http://tv.jtbc.joins.com/photo/pr10011158/pm10057634/detail/16771



감초

책방을 드나드는 9살 승호부터 사춘기 현지, 해원이 이모 친구 수정 이모, LED 배근상 아저씨를 비롯해서 승호를 픽업 오는 정길복 할아버지 등 많은 이들이 북클럽 멤버로 나온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가 잘 형성되어있을 때 만족감을 느끼고 또한 안전하다고 느끼기도 하며 내가 이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도 받게 된다. 동네 사랑방 드나들듯이 은섭이의 동창들과 북클럽 회원들, 또한 서울에서 구경 오는 손님 등 개성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로맨스 이외의 재미를 준다. 



공감

내가 꿈꾸는 함께 책을 읽는 사람들의 공동체,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더 발전해서 뭔가 일도 저질러 보는 잔재미도 있어서 공감이 안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동네 이름이 '북현리'라고 나오는데 내가 나고 자란 동네는 '묵현리'이다. 대학교 때 동아리 친구들이 읍에서 사는 애를 처음 본다며 우리 집 주소를 장난으로 다 외우고 그랬다. 남의 집 주소를 진짜로 다 외울 줄이야. 못 외우는 애들이 없을 정도로 뭔 말 만나 오면 우리 집 주소를 떼창으로 읊어대곤 했었다. 실제로 논두렁에서 스케이트와 썰매를 타고, 대나무 스키와 비료포대 눈썰매를 탔으니 공감이 안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시골 배경이 나오면 뭔가 마음이 편하고 푸근하기도 한데 소설 속의 풍경 또한 그랬다. 그래서 술술 잘 읽혔다. 


잔인한 장면, 무서운 장면, 불륜 이야기들은 자극적이긴 하지만 잘못 봤다가는 꿈에 나오고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데 <날 찾아>는 파스텔톤의 크게 달지 않은 소프트 아이스크림같이 거부감이 없다. 사회적 거리 유지가 장기화되면서 더욱더 예민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계속해서 뉴스만 보기보다는 딱딱한 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 줄 수 있는 책을 보면서 릴랙스 하는 것은 어떨까?


어떻게 보면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소소한 일상의 고마움을 깨닫게 되었고, 그 지겹던 회의나 회식도 슬슬 그리워지려고 하고, 아무 일 없이 무사하게 아프지 않고 귀가하는 가족들이 대견해 보이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너무 경쟁하고, 욕심만 많았던 우리들의 일상에 경고를 주는듯한 코로나가 나에게 끼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여기서 나는 무엇을 캣취 해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무조건 답답해! 짜증 나! 가 아니라 작은 것에 대해 감사가 회복되고,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도 온라인이 발달되어있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잘 지내고 있는 게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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