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노력하면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위험하다.
내가 겐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은 마피아 게임을 하면서였다. 마피아의 지정이 무작위성을 따르므로 확률적으로 마피아 게임의 승률은 50%에 수렴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도 겐지와 마피아 게임을 해서 이겨본 적이 없다. 그는 나를 한벗 흘낏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마피아인지 아닌지를 간파했다. 내가 시도하는 모든 속임수와 거짓말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제대로 게임을 해보지도 못한 채 나는 겐지에게 계속해서 체포되거나 살해당했다. 그러면 게임이 끝날 때까지 침묵해야 한다.
침묵 속에서 나는 겐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남은 일생 전체를 범죄 심리학과 언어, 표정, 거짓말의 상호관계에 대한 공부를 한다고 할지라도 마피아 게임에서 겐지를 이길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상한 냄새가 나는 벌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구조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이 세계는 평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겐지는 마피아 게임의 제왕이었다. 그는 마피아 게임을 잘하기 위한 노력이나 공부 같은걸 1초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승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가 어떻게 마피아 게임을 그토록 잘했는지 -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속임수와 거짓말, 심지어는 심리까지 그토록 쉽게 간파했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 겐지 스스로도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에게는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다. 나는 마피아 게임을 할 때 그에게 어렸던 신기(神氣)를 기억한다.
겐지뿐만이 아니다.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나는 이들을 메타 인간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인 인간은 자신에게 특화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메타 인간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한 번이라도 겐지와 마피아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겐지의 존재는 한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만약 마피아 게임에 있어서 메타 인간이 존재한다면 투자라는 게임에 있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닐까? 겐지가 인간의 심리를 읽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금융시장 자체의 심리를 읽어내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종류의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바둑이나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에 특화된 메타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시에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투자라는 영역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공정성과 정의의 문제였다. 만약에 그런 종류의 인간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부당하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이 오로지 타고난 특정 자질 하나 때문에 부의 사다리를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고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금융시장의 목적은 공정성에 있지 않다. 세상의 존재 이유가 정의에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금융시장의 존재 목적은 효율성이다. 효율적으로 자본을 배분할 수 있다면 금융시장은 메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내게는 몇 개의 증거들이 있다. 나는 투자라는 행위를 통해 시장을 초과하는 수익을 얻었으며 그 결과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끔 마주한다. 불과 얼마 전에도 비트코인으로 십 수억원을 벌어들인 사람의 거래목적과 자금출처 SWIFT 전문을 작성하는 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비트코인뿐일까? 부동산, 주식 - 특히 제약주 주식으로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인 사람을 나는 바로 옆에서 바라본 경험이 있다. 그들 중 한 두 명은 메타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디바가 그랬다. 그녀는 시험이나 책, 공부 같은 존재들과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언제나 패배하는 쪽은 시험이었다. 그 어떤 시험도 그녀가 책을 15분 이상 보게 하는 데는 실패했으니까. 물론 그녀를 합격시키는 데 성공한 시험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뛰어난 은행원이다. 인사 발령이 나고 그녀가 다른 지점으로 배치가 되면 수십수백억 원을 가진 고객들이 그녀를 따라 우르르 이동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녀와 믹스커피를 한잔 마시며 15분 정도 투자 이야기를 하는 것에 비하면 자동차로 한 시간씩 이동한 다음 기계식 주차장에 주차를 해야 하는 수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과거 그녀가 자신의 고객들에게 선사한 수익률 때문이다. 고객까지 갈 것도 없다. 그녀 자신도 이미 상당한 자산가이며 투자가이므로 지금 당장 은행을 그만둔다고 해도 여생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나는 디바와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녀가 투자라는 영역에서 정교한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 많은 경우 그녀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기까지 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가 한 그 조악한 이야기들이 결국에는 퍼즐처럼 맞아떨어졌다.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그녀가 어떤 고대의 의식에 따라 살아있는 짐승을 불에 태운 다음 남은 뼛조각의 배열을 해석하여 금융시장을 예측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금융시장에 대한 리서치 자료를 만들거나, 주식 가격결정 모형에 대해 설명하는 능력으로 투자 성과가 결정된다면 분명 나는 그녀보다 훨씬 더 높은 투자수익률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삶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녀의 투자수익률은 나의 그것을 압도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디바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디바는 메타 인간이었다.
7살 무렵의 일이다. 그때의 나는 길가에 오줌을 싸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던 소피의 장소가 행운의 요정이 살고 있던 거처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자기 집에 오줌을 싸지 말라고 내게 몇 차례나 경고를 했다. 그러나 나는 키득거리며 하루에도 서너 번씩 그녀가 살고 있던 골목 모퉁이 전봇대에 오줌을 갈겨댔다. 유독 묵직하게 오줌이 마려운 날이었다. 전봇대에 오줌을 싸고 있는 내게 행운의 요정이 마법의 가루를 뿌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에랄라이~☆ 호롤롤로~★ 새리야~☆"라고.
그때부터였다. 게임에 몰입할 때면 내게 어떤 느낌적인 느낌이 오곤 했다. 그것은 신내림 - 승리에 대한 확신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과감하게 내질렀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 내 손에 착착 붙었던 것은 지독한 똥패들이었다. 경악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행운의 요정이 키득거리고 있었다. 보드게임, 볼링, 다트, 당구까지 무엇을 하건 상관없었다. 행운이 필요한 순간마다 행운의 요정은 나를 보며 썩소를 날렸다. 그러므로 그 모든 순간에 카운터에서 게임 값을 내는 것은 나였다. '이 우주의 중심적 호구는 나다. 고로 모든 게임 값은 내가 낸다.' 이것은 내가 살고 있는 우주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진리라고 생각된다. 나는 반(反) 메타 인간이다.
나는 마피아 게임을 해서 겐지를 이길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나는 디바보다 높은 투자 수익률을 만들어 낼 수 없다. 나는 이것을 인정한다. 이것을 인정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우리가 물질 중심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노력 만능주의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수익률이 높지 못한 것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력은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노력하지 않는 자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한다'라는 인식이 당연하다는 듯 지천에 널려있다. 그것이 수많은 반 메타 인간으로 하여금 도서관에 가서 재테크 책을 읽게 만든다. 그리고 그 모든 책은 당연히 노력하고 공부하고 투자해서 수익률을 높이라고 이야기한다. 투자 수익률이 높지 못한 것은 당신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노력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누구나 노력하면 높은 투자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는 이런 이야기가 위험하게 느껴진다. 노력은 때때로 치명적일 수 있다.
여기 간단한 테스트가 있다. 어느 늦은 저녁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잠들었고 당신 홀로 의자에 앉아있다. 당신은 지금 무언가에 몰입해 있다. 마치 세상에 그것과 당신밖에 없는 그런 느낌이 든다. 지금 당신이 몰입하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가?
겐지라면 회사에서 목격한 직장 동료와 상사의 언행의 동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었을 것이다. 디바라면 누군가와 끊임없이 통화를 하며 돈과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워런 버핏이라면 재무제표를 읽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닐 게이먼의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자신이 어느 쪽에 서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세상에는 단 두 가지의 투자만이 존재한다. 메타 인간을 위한 투자와 반(反) 메타 인간을 위한 투자가 그것이다. 만약 당신이 메타 인간이라면 메타 인간을 위한 투자를 하면 된다.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느낌적인 느낌에 따라 투자하면 되는 것이다. 먼 고대의 신녀(神女)들은 개구리에 꿀을 발라 개미굴에 집어던지거나, 별자리를 읽거나, 타로카드를 사용하거나, 짐승을 죽여 신에게 바침으로써 자신들의 느낌적인 느낌을 더 날카롭고 강력하게 만들곤 했다.
현재를 살고 있는 당신은 매일 아침 경제 뉴스를 보거나, 주식차트를 들여다보거나, 유튜브에서 투자 관련 채널을 구독하거나, 혹은 디바처럼 돈이 많은 사람들과 하루에 4시간씩 수다를 떠는 방법을 통해서 당신의 느낌적인 느낌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메타 인간이라면 분명 이 모든 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주식, 부동산, 채권, 미술, 골동품 어디든 내키는 대로 투자를 하면 된다. 언제 무엇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의 고민 따위는 무의미할 것이다. 당신의 내면에는 이미 답이 있을 테니까. 만약 당신이 메타 인간이라면 당신은 성공할 것이다.
문제는 자신을 메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반(反) 메타 인간들이다. 이들 또한 경제신문을 읽고, 주식차트를 보고, 유튜브에서 관련 채널을 구독할 것이다. 이들의 노력은 종종 메타 인간의 그것을 추월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들의 투자 성과는 그리 좋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많은 경우 이들의 노력은 손실과 비례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똥패란 아득아득 노력하는 반 메타 인간에게 쥐어 줬을 때 가장 흥미진진한 법이기 때문이다. 키득.
행운의 요정이 빡쳐있는 세계에서의 삶은 가혹하다. 그런데 그에 더해 이 세상에는 메타 인간들이 득실거리고 있다. 이들은 가뜩이나 가혹한 이 우주에서의 삶을 더욱 지랄 같은 방향으로 악화시킨다. 그러나 요령만 있다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로또를 사지 않는다. 돈이 걸린 어떤 종류의 내기도 하지 않는다. 여기 좋은 기회가 있으니 와서 행운을 시험해보라고 손짓하는 모든 것들을 거부한다. 이것은 메타 인간들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나만의 생존전략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자신이 어떤 도박이나 내기에서도 이길 수 없도록 운명 지어진 호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로또나 내기를 하면 안 된다. 내기와 도박만 멀리한다면 반 메타 인간의 삶은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벌어들이는 족족 다 써버리는 것이 아닌 이상 투자라는 행위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투자와 도박의 차이에 대하여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 두 행위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아메리카노에서 에스프레소를 뽑아낼 수 없듯 누구도 투자라는 행위에서 도박이라는 요소만을 추출해낼 수 없다. 농도의 차이일 뿐이다. 결국 모든 반 메타 인간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결국 투자라는 행위를 통해 행운의 요정과 만나게 될 수밖에 없다. 행운의 요정이 그동안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내가 자신에게로 와 행운을 시험할 수밖에 없으리란 사실을. 아마도 그녀가 가진 가장 거대한 똥패는 나의 몫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게도 나름의 계획은 있다.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이다. 이 거대한 자연법칙 밑에 숨어 나는 살금살금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이제 나는 느낌적인 느낌을 믿지 않는다. 나는 행운의 요정의 흥미를 끌만한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다. 나는 노력하지 않는다. 무리하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나는 행운의 요정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투자를 수동적 투자(Passive Investment)라고 한다. 나는 이것이 반 메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자라고 생각한다.
수동적 투자에 관한 이야기가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Brunch에 B형 은행원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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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책 『부자들은 모두 은행에서 출발한다(RHK)』가 출간되었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브런치 독자분들이 없었다면 제 윈도 부팅 비밀번호는 오래 전 "이제는 그만"으로 바뀌었을 테니까요. 독자분들이 있어 글을 쓰는 시간이 저에게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검소한 삶에 관한 이야기들
나는 스타벅스를 좋아할 당신이 검소하게 살기를 바란다.
은행과 예금에 관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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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번도 펀드로 10억 번 사람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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