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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하다 Nov 11. 2017

2부 07. 까탈스러운 존재

취향이 있으면 이기적이고 불편한 사람?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연재 중

맥주 초보가 맥주 애호가가 되기까지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는지 알아가는 일상 이야기 


제 2부_ 나만의 취향 탄생

일곱 번 째 잔. 까탈스러운 존재




천만 명이 봤다는 영화. 시청률이 50%가 넘는 드라마, 100만 부가 넘게 팔린 책. 




그런데 나는 도무지 어리둥절하다. 


이 영화는 너무 작위적인 감동을 주려는 것 같아서 싫어. 

이 드라마는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내용이 많아서 싫어. 

왜 화가 나면 아르바이트생에게 푸는 게 당연한 거야? 

직원에게는 냉혈한인데 애인한테만 잘해주는 사장이 왜 매력적인 거야? 


'같이 본 영화'가 싫다는 말이 '같이 보자고 한 사람'이 싫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마치 자기 자신이 무시당한 것처럼 나를 설득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너는 왜 이렇게 까다로워? 유난 떨지 마, 적당히 좀 해.”

“그러면 네가 만들어봐. 이것보다 잘할 수 있어?"


 천만 명이 좋아했으니 너도 좋아해야 해,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이니 훌륭한 영화라고 말해야 해, 이렇게.




“양보하는 것이 착한 거야. 네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이 겸손한 거야."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른다. 내가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양보하고 말 잘 듣고 겸손한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다. 내가 얼마만큼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기도 전에 희생하는 법부터 배웠다. 내 취향을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기적인 것이었다. 그렇게 내 취향을 감추고 발달시키지 않는 것이 무던하고 착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의 취향을 숨기고 무시하듯 타인의 취향도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나처럼 자신의 취향을 숨기는 것이 배려이고 예의 바르다고 생각했다. 굳이 자신의 취향을 내세우려는 사람은 이기적이거나 어딘가 모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에 관한 취향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직장 동료이거나, 스쳐 가는 사람이거나, 혹은 세상 모든 것을 다 내어 줄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잠깐은 얼마든지 그 사람에게 맞춰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매일을 함께 하다 보면 “내가 사랑하니까 맞출 수 있어” 는 어느새 
“나를 사랑하는데 이 정도는 맞춰줄 수 있잖아”로 바뀌곤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른다.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위해 맞출 수 있는 줄 알았지만 그 범위와 한계는 내 생각보다 너무나 좁다. 내 한계를 알기 전에 양보부터 해왔으니 한계가 어디인지 모른다. 참고 참다가 어느 날 폭발해 버린다. 늘 함께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1박 2일의 짧은 여행에서는 매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평소라면 쉽게 양보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여행 중에는 상대방이 조금만 늑장을 부려도 시간이 아깝다. 평소라면 무엇을 먹어도 별 상관없지만 오사카에서의 단 두 번의 식사 중 한 번이라면 한국 식당에서 하고 싶지 않다. 그 하루를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보낼지, 오사카성에서 보낼지, 시장에서 쇼핑하고 초밥을 먹으며 보낼지를 결정하는 순간에는 더 물러설 수 없는 서로의 취향이 부딪친다. 그제야 서로가 아주 다른 사람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취향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만의 스타일을 얻기까지 무수한 취향의 옷을 입어본다. 서점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 중에 내가 좋아하는 책은 어디에 있을까? 막막함에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된 베스트셀러만 뒤척이다 결국 빈손으로 떠난다. 책 한 권의 페이지만큼 서점을 드나들고 나서야 내가 진짜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얻는다. 이렇게 얻어진 취향의 집합이 ‘나'이다. 취향이 언제나 가볍게 무시할 수 있고 언제든 손쉽게 바꿀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illust by @eummihada - 음미하다




어렵게 찾아간 미술관이 때마침 휴관일 때. 

홈페이지에는 아무런 공지가 없는데 공사 중일 때. 

갑자기 비가 많이 와서 흠뻑 젖었을 때. 


맥이 탁 풀리는 순간 발견한 수제 맥줏집을 향해 환호하며 함께 뛰어들어갈 때의 기분.



서로를 위해 참는 것이 아니라 진정 같이하고 싶은 것을 함께 하고, 함께 즐기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한 가지를 공유하는 시간.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참기 힘든 싫은 것도 공유할 수 있는 자유로운 관계.


각자의 취향을 가진 까탈스러운 존재들. 그 까탈스러움을 소중하게 지켜온 존재들. 내 취향의 소중함을 알기에 서로의 취향도 소중하게 대할 수 있는 존재들. 




그래서 나는 불편하더라도 까탈스러운 존재가 되고 싶다.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일주일에 2회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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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 맥주 자체도 우리의 삶에서 음미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제 1 부

1-1. 술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걸까요? 上 - 지금 마시는 술은 내가 선택한 한 잔인 가요?

1-2. 술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걸까요? 下 -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 건배해야 할까요?

2-1.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上 - 다 함께 술 마시며 회식하면 하나가 되나요?

2-2.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下 - 숙취를 방지하려면 적게 마시는 방법뿐일까?

3. 즐기는 사람도 잠재적 중독자 - 쥐들은 외로움에 적응하기 위해 마약을 했다?

4. 취향은 나 자신의 거울이다 -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5. 한국인의 커피, 한국인의 맥주? -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입맛은 존재하는 것일까?

6. 맥주는 취미가 된다 - 트라피스트 맥주


제 2 부

1. 맥주의 의미의 의미 - 낯선 의미의 맥주, 벨지안 스타일 트리펠

2. 맥주의 이름 - 맥주 알코올 도수가 와인이랑 비슷해?

3. 자꾸만 이름은 늘어간다 - 세상에 존재하는 100가지가 넘는 맥주

4. 맥주와 치즈의 나라 벨기에

5. 술 많이 좋아하나 봐요

6. 선택의 즐거움

7. 까탈스러운 존재

8. 나에게 맞는 맥주 찾기

9. 한 잔의 맥주를 위한 준비

10. 실패해도 괜찮아?

11. 맥주가 녹아내리는 일상

12. 마그리트의 맥주

13.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


제 3 부

1. 한 잔의 맥주를 만나기 까지

2. 맥주와 함께 여행하기 - 上

3. 맥주와 함께 여행하기 - 下

4. 맥주와 함께 여행하기 - 맥주 생활 영어

5. 맥주의 재료 - 효모


그라폴리오에서는 매주 토요일 연재하고 있습니다. 
http://www.grafolio.com/story/19374


페이스북에는 맥주와 관련된 일상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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