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미하다 Nov 09. 2017

2부 05. 술 많이 좋아하나 봐요

술이 다시 놀이가, 취미가 되기를 꿈꾸며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연재 중

- 맥주 초보가 맥주 애호가가 되기까지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는지 알아가는 일상 이야기


제 2부_ 나만의 취향 탄생

다섯 번 째 잔. 술 많이 좋아하나 봐요




태곳적 신의 힘을 나눠 받은 엔키두는 동물이었다.

짐승의 젖을 먹고 짐승처럼 풀을 뜯었다.

육일 밤낮으로 사랑을 나누고

구운 빵을 먹고

잘 익은 술을 마시고서야


그는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


신화의 시대에는 빵과 술을 빚는 존재,

빵과 술을 먹고 마시는 존재만이 인간이었다.


술 빚는 지혜는 말했다:


신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주었으니

그 누구도 영원한 삶을 얻을 수는 없으리라.

그저 밤낮으로 또 낮과 밤으로

배를 채우고 춤을 추고 축제를 하고

삶에 기뻐하라.

새 옷을 입고 목욕을 하고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아내를 안아주어 기쁘게 하라.

이것이 인간의 몫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서사시 ‘길가메시 이야기’에는 2/3는 신, 1/3은 인간인 길가메시 왕과 엔키두가 등장한다. 그들에게 술은 인간성의 상징이자 죽음의 허무 앞에선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지혜로움이었다.



사슴 대신 직장을 사냥하고 

보리 대신 이자를 수확하는 재화의 시대에는 

오직 돈을 버는 존재만이 인간이다.


부자의 지혜는 우리에게 말한다: 

따스한 곡식과 고기의 온기는 곧 사그라질 신기루

재화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살며

쌓이면 쌓일수록 값지니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

이것이 인간이 영원히 사는 법이다.


술은 지금의 온기를 더해주는 양식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은 지우고 

고통은 흐릿한 취기로 증발시켜

새벽이 오면 꿈을 꾸듯

현실을 견디게 하는 마약이 되었다.


괴로움을 삼키며 입에 털어 넣고는

취해 쓰러지게 하는 약효만을 원할 때

술은 통제할 수 없는

중독과 일탈을 낳는 마약이 되었다.


중독에 대한 불안은 두려움을 낳고

인간은 부도덕이라는 포장지로 감싸

눈에 보이지 않도록 

그 두려움을 감추기 급급하다.


매일 같이 먹는 쌀밥에 중독될까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지금의 술은 인간의 배를 채우고 목을 적시는 양식이 아니다. 식사와 분리되어 특별한 취급을 받는 독극물이 되었다.


고운 빛깔을 즐기고 거친 향을 느끼고 온화한 맛을 음미하는 시간은 거추장스러울 뿐인 의식이 되었다. 다음날 두통없이 훌훌 자리를 털고 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감미만이 허락되었다. 그러니 술은 이제 인간의 배를 채우고 목을 적시는 양식이 아니다.




어색한 첫 만남에서 누군가가 좋아하는 것을 물어봤을 때 
머릿속에서 불현듯 떠올라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존재.




우리의 술은 기원전 28세기 인류의 조상을 인간답게 해주었던 그것이 아니다. 무엇이 우리의 술을 빼앗아 갔을까? 보글보글 익어가는 술 향기와 함께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한 모금의 술을 나누며 즐거움을 느끼고, 그렇게 함께 놀고 취하곤 아무렇지 않게 오후의 햇살과 함께 깨어나는 삶은 언제부터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고 허락을 받아야하는 일이 되었을까? 언제부터 술을 마시는 것 조차도 업무가 되었을까? 




 일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것이고, 놀이란 무엇이든 의무적으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 중에서




술이 다시 놀이가, 취미가 되기를 꿈꾸며 말해본다.
나는 술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술과 함께 노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일주일에 2회 연재 중입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


머리말: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 맥주 자체도 우리의 삶에서 음미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제 1 부

1-1. 술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걸까요? 上 - 지금 마시는 술은 내가 선택한 한 잔인 가요?

1-2. 술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걸까요? 下 -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 건배해야 할까요?

2-1.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上 - 다 함께 술 마시며 회식하면 하나가 되나요?

2-2.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下 - 숙취를 방지하려면 적게 마시는 방법뿐일까?

3. 즐기는 사람도 잠재적 중독자 - 쥐들은 외로움에 적응하기 위해 마약을 했다?

4. 취향은 나 자신의 거울이다 -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5. 한국인의 커피, 한국인의 맥주? -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입맛은 존재하는 것일까?

6. 맥주는 취미가 된다 - 트라피스트 맥주


제 2 부

1. 맥주의 의미의 의미 - 낯선 의미의 맥주, 벨지안 스타일 트리펠

2. 맥주의 이름 - 맥주 알코올 도수가 와인이랑 비슷해?

3. 자꾸만 이름은 늘어간다 - 세상에 존재하는 100가지가 넘는 맥주

4. 맥주와 치즈의 나라 벨기에

5. 술 많이 좋아하나 봐요

6. 선택의 즐거움

7. 까탈스러운 존재

8. 나에게 맞는 맥주 찾기

9. 한 잔의 맥주를 위한 준비

10. 실패해도 괜찮아?

11. 맥주가 녹아내리는 일상

12. 마그리트의 맥주

13.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


제 3 부

1. 한 잔의 맥주를 만나기 까지

2. 맥주와 함께 여행하기 - 上

3. 맥주와 함께 여행하기 - 下

4. 맥주와 함께 여행하기 - 맥주 생활 영어

5. 맥주의 재료 - 효모


그라폴리오에서는 매주 토요일 연재하고 있습니다. 
http://www.grafolio.com/story/19374


페이스북에는 맥주와 관련된 일상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facebook

매거진의 이전글 해피 호피 추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