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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하다 Dec 04. 2017

3부 01. 한 잔의  맥주를 만나기 까지

한 잔의 맥주에도 술 빚는 이의 피 땀이 서려 있네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연재 중

- 맥주 초보가 맥주 애호가가 되기까지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는지 알아가는 일상 이야기


제 3 부_ 나만의 취향 탄생

첫 번째 잔. 한 잔의 맥주를 만나기 까지



illust by @eummihada - 음미하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깃들어 있고


한 톨의 맥아에도

만인의 노고가 스며 있으며


한 잔의 맥주에도

술 빚는 이의 피 땀이 서려 있네


이 맛을 음미하고

이 향과 빛깔을 찬미하며

오늘 이 한 잔의 맥주를 낳은

모든 만물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1837년 편찬된 술 제조 비법서인 ‘양주방’에는 해 뜨기 전 새벽이슬이 내려앉은 우물물인 ‘정화수’로 술을 빚으라 했다. 아마도 낮이 되어 기온이 오르게 되면 따뜻한 공기를 타고 공기 중에 떠오른 잡균 들이 우물에 내려앉기 시작해 그 물로 술을 담그면 쉬 쉬지 않았을까. ‘필스너 우르켈’로 유명한 체코 필젠 지방의 황금빛 필스너는 한국의 물처럼 석회나 다른 광물질이 적게 들어간 연수로 빚어 맥아의 단맛을 최대한 끌어낸다. 양조자들은 세상에서 물맛에 가장 민감한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질 좋은 보리 (barley)에 물을 주면 생명이 깨어난다. 새싹이 자라나며 효소들이 태어나 낱알에 저장된 영양분을 깨울 준비를 한다. 생명을 가득 담은 신선한 보리일수록 많은 새싹을 틔울 것이다.


새싹들이 먹을 영양분을 가로채기 위해 인간은 발아된 맥아 (green malt)에서 싹을 제거하고 굽는다 (roasting). 전분과 효소들이 잘 우러나도록 적당한 크기로 갈아주어 (milling) 따뜻한 물에 담가두면 (mashing), 효소들이 전분을 잘게 잘라서 달콤한 당분을 만들어 낸다. 밥을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느껴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씹어 뱉은 곡식을 발효시켜도 술이 된다. 미인주, 쿠치카미자케, 치차. 왠지 야하다.


한 시간쯤 후에 단물 (wort)을 빼어내면 껍질만 남은 맥아가 바닥에 가라앉게 되는데, 빗물이 걸러져 지하수가 되듯이 이 맥아 층에 단물을 몇 번 걸러주면 뿌옇던 단물이 어느새 투명해진다 (lautering). 팔팔 끓이면서 홉을 넣어주면 (hopping) 그 뜨거움의 길이만큼 홉은 쓴맛을 남긴다. 차갑게 식혀준 후에 효모 (yeast)를 넣어주면 당분을 먹이 삼아 알코올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fermentation). 술지게미를 옥수숫가루와 섞어 발효하면 술빵이 된다. 그렇다. 빵과 맥주는 이란성 쌍둥이이다. 정성 들인 한 잔의 맥주에서는 보리의 생명, 잘 구워진 빵 냄새, 종일 데워진 오래된 쓴맛이 아닌 갓 볶은 커피의 그것 같은 신선한 쌉쌀함이 느껴진다. 그 정성을 알아보고, 찾으려 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마음은 더욱더 신선하고 맛있는 맥주로 돌아올 것이다. 맥주에 대한 우리의 작은 보답이다.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일주일에 2회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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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맥주도 취미가 될 수 있나요? - 맥주 자체도 우리의 삶에서 음미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제 1 부

1-1. 술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걸까요? 上 - 지금 마시는 술은 내가 선택한 한 잔인 가요?

1-2. 술을 도대체 왜 마시는 걸까요? 下 -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 건배해야 할까요?

2-1.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上 - 다 함께 술 마시며 회식하면 하나가 되나요?

2-2. 우리 모두 하나가 되자! 下 - 숙취를 방지하려면 적게 마시는 방법뿐일까?

3. 즐기는 사람도 잠재적 중독자 - 쥐들은 외로움에 적응하기 위해 마약을 했다?

4. 취향은 나 자신의 거울이다 -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5. 한국인의 커피, 한국인의 맥주? -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입맛은 존재하는 것일까?

6. 맥주는 취미가 된다 - 트라피스트 맥주


제 2 부

1. 맥주의 의미의 의미 - 낯선 의미의 맥주, 벨지안 스타일 트리펠

2. 맥주의 이름 - 맥주 알코올 도수가 와인이랑 비슷해?

3. 자꾸만 이름은 늘어간다 - 세상에 존재하는 100가지가 넘는 맥주

4. 맥주와 치즈의 나라 벨기에

5. 술 많이 좋아하나 봐요

6. 선택의 즐거움

7. 까탈스러운 존재

8. 나에게 맞는 맥주 찾기

9. 한 잔의 맥주를 위한 준비

10. 실패해도 괜찮아?

11. 맥주가 녹아내리는 일상

12. 마그리트의 맥주

13.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


제 3 부

1. 한 잔의 맥주를 만나기 까지

2. 맥주와 함께 여행하기 - 上

3. 맥주와 함께 여행하기 - 下

4. 맥주와 함께 여행하기 - 맥주 생활 영어

5. 맥주의 재료 - 효모


그라폴리오에서는 매주 토요일 연재하고 있습니다. 
http://www.grafolio.com/story/19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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