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나는 티켓에 적힌 숫자를 수십 번은 확인하곤, 버스 통로를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방황 끝에 찾은 내 자리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뻔뻔하게 앉아 있었다. 검은색 안경을 쓴 젊은 여자는 안경뿐만 아니라 자신의 눈꺼풀까지 굳게 닫아버리고, 사실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검은색 안경 뒤로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젊고 꽤 미인일 거라고 추측되는 그 여자는 머리를 좌석 시트에 기대고 눈은 감고 시선은 창밖에 던져둔 채, 자신의 만행을 다소곳하게 정당화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잠을 자는 것인지 심각한 사유에 빠져 있는 것인지 그 여자의 시공간을 방해하는 기분이 들어서 젋고 예쁜 여자에게 말도 걸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그만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아버렸다. 그리곤 주변에 널린 언짢은 공기를 치워버리기 위해,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노트북을 꺼내곤 전원을 연결할만한 구석을(콘센트) 찾아봤지만, 단 한 가지도 그럴만한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했다. 하지만 그것도 곧바로 수긍해야 했다. 남해 끝단으로 떠나는 버스가 아닌가. 그리고 80년 대적인 풍경이 차랑거리는 공간이 아닌가. 현대적인 문명은 이곳에서 오직 기능적인 가능성만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 내가 앉은 이곳으로 걸어와 ‘이 자리는 내 자리입니다. 제발 저리로 꺼져주세요. 당신 자리를 찾아 떠나세요’라고 클레임을 걸어도, 나는 아무런 군말 없이 이곳에서 쫓겨나야 할 처지가 아닌가. 결국 내 자리에 앉은 저 젋고 예쁜 여자는 계속 평화로운 인간으로 남아있을 테고, 나는 내 자리에서 늘 쫓겨 다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대리에게 배신당한 것처럼 내 운명은 언제나 그런 얄궂은 흐름이다.
그때 갑자기 옆자리에서 젋고 예쁜 여자가 뜬금없이 고개를 획 돌리더니 검은 안경을 코 밑으로 살짝 밀어내곤 “미안해요”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네?” 라고 아주 짧았지만 영문을 모를 그러니까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시그널을 그 여자에게 보냈다. 그 여자를 가만히 관찰해보니 역시 미인이다. 아니 미인 정도가 아니라 지나가는 남자들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눈길을 던질만한 그런 확실하게 예쁜 여자다. 그 젊고 예쁜 여자는 “아까 키오스크에서 순서를 제가 가로챘잖아요. 미안해요.” 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이 젊고 예쁜 여자가 내 자리를 빼앗은 행위에 대해 사과하려는 것으로 짐작했으나, 그곳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포괄적인 의도가 숨어있었다.
젊고 예쁜 여자와 나는 마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중엔 결국 연인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기막힌 우연의 작용으로 재회를 하게 됐다. 우리는 소설가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그저 우연이라는 단어로 우리의 만남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전형적인 소설적인 만남이었다.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그런 순서적인 것들이야 가끔 생략될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우리 뒤엔 아무도 없었고, 제가 신세를 지은 부분도 있었으니까요.” 내가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자, 그 젊고 예쁜 여자는 “네? 어떤 신세를요?”라고 동그랗게 커져버린 눈과 뾰족하게 말려버린 입술로 말했고 나는 다시,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개념적으로요.” 라고 많은 것들이 감춰진 모호한 문장으로 대답했다.
“시적인 거네요. 많은 부분들이 생략되어 있거나 진실은 때로 거짓으로 포장되죠. 시인이신가 봅니다.” 젊고 예쁜 여자가 호기심을 품은 말로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시인이 아니에요. 시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시를 쓰겠다고 사과 하나를 쟁반 위에 올려놓고 몇 시간 이상 관찰해본 적도 없어요. 안도현 시인의 시를 낭독해본 경험은 있지만, 그것도 오래전 교양과목 시 쓰기 시간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낭독해본 게 전부죠. 저에겐 시인이라는 가능성이 단 1%도 내재되어 있지 않아요” “그런가요? 저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삶엔 많은 분들이 가려져 있고 그것들은 언젠가 자신의 진가를 시라는 형태로 가열되죠. 지금은 지극히 작은 마침표에 불과할지라도 그게 얼마나 큰 느낌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시가 가진 가능성을 참 좋아해요.”
“네. 시인님의 이론 잘 들었어요. 근데 그건 그렇고 티켓 혹시 14번 이신가요?” 라고 내가 묻자, “아 제 거요? 맞아요 저 14번이에요. 왜요? 제가 14번인 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젊고 예쁜 여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제 번호는 13번이고요. 제 자리를 탐욕스럽게 차지하고 계셔서요.” 나는 감춰둔 진실을 고백하는 사람이지만 감정은 다소 억누른 채로, 최대한 유머스럽게 젊고 예쁜 여자에게 말했다.
“아. 저는 14번이 창가인 줄 알았어요. 이거 또 미안하다고 말씀드려야겠네요. 자리를 바꿔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진실이 밝혀졌으니…” “네 뭐라고요? 진실?” “아닙니다. 저 혼잣말입니다.” 단문으로 여러 말을 젊고 예쁜 여자와 주고받다가, 우린 다시 어색한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80년 대적인 깐깐하고 촌스러운 침묵이었다. 길고도 긴, 기약 없이 먼 여행을 떠나는, 혹은 어디론가 도피를 선택한 불륜의 남녀 주인공처럼 우린 말을 생략하고 오직 정면을 바라본 채 침만 꿀꺽 삼켰다.
버스는 어느새 고속도로에 진입했고 그 속에서 존재감 없이 한가로운 오후의 독수리처럼 열심히 달리기만 했다. 양쪽으로 자동차들이 부지런하게 제한속도를 넘어서곤 했는데, 그것은 흡사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려는 나름의 강렬한 메시지의 한 형태였다. 끝없이 새로운 마을들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전신주와 빨간 벽돌로 만든 주택들과 논과 밭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성격이 급한 동화 속의 마귀할멈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며 빨리 감기를 돌리듯 다시 생명이 태어났다가 급속하게 꺼지는 패턴이 반복됐다.
나는 조금 멀리 앉아서 그러니까 편안하게 앉아서 삶이 태어나고 무너지는 걸 관망했다. 안전한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나는 세계의 몰락을 구경하는 관찰자가 된듯했다. 내가 경험하는 것은 오로지 사라지는 것들의 연속적인 상영뿐이었다. 그래서 삶에는 몰락이 대세인가 라고 나는 질문을 던져봤지만, 대답은 정의 내리기 곤란했다. 오직 질문만 존재하고 대답은 저세상에서나 찾을 수 있으려나.
지루한 나머지, 나는 노트북을 꺼내곤 넷플릭스에 접속하려 했다. 와이파이, 그래 나에게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리고 촘촘한 연결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구현할 수 없다. 연결이 되어야 나는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80년 대적인 시시한 풍경뿐이다. 목가적이고 평화롭지만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도 하는 냉철한 공간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교차되어 있고 불규칙적으로 들쭉날쭉 편집된다. 그래서 나는 연결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넷플릭스를 켜고 좀비가 나오는 영화를 틀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양쪽 귀에 끼고 조용하게 영화에 빠져들려고 했다. 그런데 옆 자리에 앉은 젊고 예쁜 여자가 계속 신경 쓰였다. 좀비가 튀어나올 때마다, 그러니까 다소 역겹고 잔혹한 살인 장면, 인간이 인간 자신을 먹어치우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는 경악스러워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지독하게 그런 장면에 중독됐고 적응해버린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