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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Sep 14. 2023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 헌종 철종실록

부실의 시대

 순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헌종은 고작 여덟 살의 어린 나이였기에 자연스럽게 명경대비 수렴청정을 맡았다. 훗날 헌종이 후사 없이 33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먼 친척이었던 원범이 즉위할 때도 수렴청정을 하여 조선 역사상 양대에 걸쳐 수렴청정을 한 대왕대비로 남게 된다.


 순조 재위 당시부터 강력한 권력을 가진 안동 김 씨의 정치적 행보는 같은 집안사람인 명경대비의 수렴청정 기간 동안 더 물이 올랐고, 예순대비의 수렴청정은 자기 주도적이었다는 평가와는 달리 명경대비의 수렴청정은 정치적 식견이 부족했기에 친정의 자문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동 김 씨의 수렴청정이라 봐도 무난할 정도이다.


 정계의 모든 분야에서 안동 김 씨의 입김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기에 사관의 객관적인 시선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실록의 의미와는 다른 변질된 기록으로 안동 김 씨에게 불리한 내용은 기록조차 안 되어 있는 반쪽짜리 실록이기에 조선왕조실록 중 옥에 티로 남아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 상황 속에서 조선이 그토록 섬기던 아시아의 강국, 청나라도 아편전쟁으로 영국, 프랑스와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게 되고, 일본도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문호를 개방하게 된다. 군사력으로 따지면 비교조차 되지 않는 서양의 기세는 무섭게 동북아시아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조선도 청나라와 일본과 같은 수순을 밟게 된다.


 특히 서학에 대한 핍박으로 기해사옥이 일어나 조선 최초의 사제 김대건도 순교하게 되고 서양 선교사의 처형으로 외세의 침략에 대한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정학을 어지럽힌다는 서학은 핍박하면 할수록 더욱 널리 퍼지게 되고 평등사상으로 인해 힘없는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이런 서학에 반대하는 또 다른 운동인 동학은 최제우에서 의해 창시되어 민중 사회 속으로 빠르게 전파되고 훗날 조선사회의 내부적인 붕괴를 초래한 전국적인 동학농민운동의 뿌리가 된다. 삼정의 문란과 지배층의 수탈로 인해 마음 둘고 없던 백성들의 삶은 서학과 동학에 빠르게 흡수되고 백성들의 자성을 일으킨다.


 수탈에 견디지 못하고 참다 참다 일어난 진주 민란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민란이 일어났지만 세도 정치가들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제시나 어떠한 책임의 행동도 없이 그저 관망하기만 했다. 안동 김 씨와 풍양 조 씨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왕은 그저 그들의 말을 듣기만 했고 고질적인 삼정의 문란은 그대로 방치되었다.


 조선 왕 중 최초로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강화도령 이원범은 그저 무능력하고 바보 같은 왕이라는 착각은 작은 부분이었지만 안동 김 씨 세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던 군주였다는 새로운 평가를 알게 된 그저 아쉽기만 한 실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토록 찬란하게 시작한 조선왕조의 시작은 이미 망국의 기운이 보이기 시작했고, 조선이라는 나라보다 자신과 자신의 집안을 위했던 세도가문의 횡포와 무능력의 절정으로 정조대왕과 같은 시대를 보는 안목이 없었던 그저 암흑의 시대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는데도 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권력도 강대국의 약탈 앞에서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했으며 세도정치에 의해 부실해진 왕권과 조선왕실은 바람 앞 촛불과 같은 형세였고 기록의 나라를 만든 실록조차도 신뢰성이 부실했던 말 그대로 부실의 시대였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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