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lato Won Aug 16. 2018

3.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등장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에 위해 만들어진다.

인문아트 추상화,자유,평등,박애는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투쟁 속에서 피어난다.
인문아트 추상화,기적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의지와 열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프랑스 국기가 상징하는 세  가지 가치 , 자유,평등,박애 정신

루이 16세를 무너뜨린 프랑스 대혁명은

시민 혁명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은

봉건 신분제도라는 구제도의 불합리한 모순이다.


당시 프랑스는 3개의 신분이 존재하였는데

최상위층인 1 신분은 성직자이고, 2 신분은 귀족이며

이들 특권 신분은 전 국민의 약 2%에 해당하였다.


나머지 98%는 제3 신분으로 여기에는

부르주아부터 농민, 걸인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시민들이었다.


인구 2%의 특권계층이 전 국토의 반을

자치하는 이성적 국가 프랑스, 제3 신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은 지주에게 소작을

얻는 방법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그 수입의 절반은 세금으로 착취당한다.


반면 특권계층은 세금을 내지 않는 특권층을 위한,

특권층에 의한, 특권층만의 이상한 국가가 프랑스였다.


프랑스혁명의 원인을 요약하면,


왕권의 절대 주위에 대한 분노

봉건제도에 대한 농민, 노동자 계급의 불만

사회 비판적인 계몽주의 사상의 보급

불평등한 과세제도로 인한 심각한 국가부채

심각한 흉작 및 국민수 폭증으로 인한 식량위기 및

     물가 폭등 등의 원인을 꼽을 수 있다.


1789년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한
나라였다. 그러나 오직 네덜란드, 영국 국민들 만이
자유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1789년, 빵을 달라며 시위를 하는 시민들에게

왕비 앙투와네트는 "과자나 고기를 먹으면 될걸"

이란 말을  했다고 전해지며,

사태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혁명의 정점을 향해 달려갔다.

국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다.

당장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어가는 시민들을 

외면하고 베르사유궁에는 왕과 귀족들이 매일 같이

화려한 파티를 열고 진수성찬의 음식을 차려 먹었다.

이런 호화스러운 생활을 위해 많은 돈이 필요했고,

루이 16세는 세금을 더 걷기 위해 150년 동안

열리지 않았던 성직자, 귀족, 평민의 삼부회를

소집한다.

성직자와 귀족들이 거의 모든 재산과 땅을 차지
하였으나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으며,

인구의 98%를 차지하는 평민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겨 시달렸는데,
그런 상황을 무시하고 세금을 더 걷자고 하는
루이 16세의 제안을 제3계급은 거절한다.

반대에 막혀버린 루이 16세는 의사당을 막고,

평민들의 대표는 테니스 코트에서 집회를 통해

국민의회를 만들고 헌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농성을 이어간다.

이에 화난 루이 16세는 군대를 파견하고

국민의회를 해산하려 하는데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파리 시민들은 1789년 7월 14일 드디어

절대왕정의 상징이자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던 정치 감옥소,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다

세계 최초의 시민혁명,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다.

제3계급이 혁명에 성공하고 만든 국민의회는

17조로 이루어져 있는 인권선언을 발표한다.

"국민은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정치는 오직 국민들의 자유와 평등, 박애를 위해서

행사되어야 한다."

이에 루이 16세는 위기를 느끼고 왕비인
마리 앙트와네트와 오스트리아로 몰래 도망을

치다가 잡혀서 단두대에서 이슬로 사라진다.

"나의 왕국은 볼테르와 루소 두 놈 때문에

무너졌다"는 마지막 한탄을 남긴 루이 16세를

끝으로  프랑스는 황제가 아닌 국민의 대표가

다스리는 나라가 된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는 치열한 권력 다툼과

여러 혼란이 이어지고 이웃나라와 전쟁이 벌어지면서

힘든 날들이 계속된다.

이에 지친 국민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원했고,
농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새롭게 나타난

인물이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프랑스혁명 후 11년이 지나고 전쟁 영웅이었던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새로운 황제가 된다.


"천재적인 인물들은 자신을 불태워 세기를 밝히는
세기의 유성이 된다"

마치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였던 것일까? 

1791년 초급장교 시절 리옹 아카데미가 주최한

콩쿠르에 나가 쓴 글이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분출된 파괴와 창조의 동력을
승계하여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나폴레옹은 원래 프랑 국민이 아니었다.


나폴레옹은 1769년, 지중해 코르시카섬 출신이다.

유럽에서 미개하고 가난한 지중해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촌뜨기였던 나폴레옹,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가 프랑스의 장군이 되고 황제로 등극하여

큰 역사의 흐름바꾼 것은 코르시카섬의  운명

맞닿아 있었다.


나폴레옹이 태어나기 1년 전 코르시카섬은

원래 이탈리아 제노바 공화국 영토였으나

프랑스로 넘어갔다.


코르시카가 프랑스에 패하고 프랑스로 귀속되자,
독립전쟁을 위해 싸웠던 나폴레옹의 아버지

카를로는 프랑스로 국왕에 귀속되어 작위를

받았다.


아버지 덕분에 프랑스 군사학교에 들어간

나폴레옹이 10대 시절 쌓은 군사 지식과 학문은

훗날 전쟁과 정치에서 혁혁한 빛을 발한다.


나폴레옹은 정말 군사 천재였을까?
사실 나폴레옹의 군사전술은 단순했다.
"나는 한 가지만 본다. 적의 몸통 그것만 깨면

나머지는 부차적으로 저절로 정리된다"


나폴레옹은 가능한 전력을 집중해 적의 중심을

깨트려 저항의지를 초기에 꺾어 놓는 전술을

선호하였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독재자이자 유럽 문명의

발화를 가능하게 한 영웅 나폴레옹은 그의 말대로  

유성처럼  나타나 자신도 불사르고 유럽 대륙도

불사르다 사라진 영웅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모순적인  인간이다. 계몽주의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철권통치를 했고, 혁명 정신을 계승한다면서

새 왕조를 만들었으며,

독재자지만 뒤이은 공화정을 만들어 프랑스 국민의
영웅으로 받들어진다.


그는 유럽을 완전히 파괴하고 또 혁신했다.
백만 명 이상을 희생시키고도 고귀한 사명을

완수하려던 영웅으로 프랑스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는 나폴레옹은 미스터리 한 인물이자 한 시대가

전진하며 남긴 모순 덩어리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의 끝없는 야망,

처참한 패배와 몰락, 다시 영웅으로 떠오른

나폴레옹의 인생은 신과 왕이
지배한 중세 시대가 가고 근대의 시대로 진전하는
시대의 진보에서 벌어진 한편의 질퍽한

스토리텔링이다.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다"  했다.


기적은 그저 잉태되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열정에 의해 만들어 진다.

그러나 그 기적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만드는 것도 내면의 덧없는 욕망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ᆢPlato Won




생각하는 근력으로

생각주머니를 키우는 교육

Parallax 人文Art

 

루소 사회계약론 목차

 

1. 사회계약론 개요  

2. 시대적 배경, 계몽사상 

3.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등장

4. 영국 혁명과 미국 독립선언문 

5. 사회 계약설 비교 ᆢ홉스, 로크, 루소 

6. 계몽주의의 반항아 장 자크 루소 

7. 교육철학은  에밀에서 비롯되어 에밀로 끝난다 

8. 정치는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 

9. 국가와 국민은 사회계약관계에 있다 

10. 루소의 일반의지란? 

11. 자연 상태와 사회 상태에서의 인간 

12. 사유재산에 대한 루소의 생각 

13. 주권은 양도할 수도, 분할할 수도 없다. 

14.法은 일반의지의 기록 

15. 법 위에 상위  

16. 정부는 일반의지의 실행기관일  

17.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는? 

18. 입법권은 국가의 생명 

19. 독재자는 시민의 휴식을 원한다? 

20. 국민은 국가에 대해 저항권을 가진다

21. 대중주의는 위험하다 

22. 종교에 대한 루소의 생각 

23. 대외 관계에서 국가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Plato Won 브런치 홈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