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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ato Won Aug 21. 2018

6.계몽주의의 반항아 장자크 루소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으나 인간의 손만 거치면 타락한다.

후소보다 13살 많은 연인이자 후견인 이였던  바랑부인과 루소

프랑스를 대표하는 계몽주의의 사상가 장자크 루소,

하지만 당대 대표적인 계몽주의자 볼테르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는 계몽주의자 속 반계몽주의자가

장자크 루소였다.


이 시대는 인간의 이성이 꽃을 피우는 계몽의 시대였다.

루소는 이들과 함께 행동하면서도 계몽주의조차 비판한

사상가였다.


모순은 그의 전 생애를 거쳐 일관되게 등장하는 단어다.

교육학의 명저인 <에밀>을 집필한 그는 정작 자신의

아이 다섯 명을 낳아 고아원으로 보내버린다.


본인 보다 13살이나 연상인 바랑부인을 만나 집사로

일을 하며 귀족사회를 경험하고 그의 도움으로 본격적

으로 독서를 통해 인식의 지평선을 넓혔던 루소,그러나

그는 바랑부인과 연인 관계를 맺고, 동거하면서 훗날

근친상간의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던 것이 루소였다.


장자크 루소는 1712년 제네바에서 태어났다.출생
 곧바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에게도 버림
받아 외삼촌 집에서 살면서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루소의 방황은 필연적이였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독서로 달래며 방황하던 루소는 유년시절부터 재판소 서기

밑에서 필사 견습공을 지냈고 조각가 집에서 도제일도 배웠다.


이 시절 루소는 북부 이탈리아,프랑스 북부 지역을 여행

하며 아름다운 귀부인들,친절한 성직자와 한심한 귀족

들과 교류하다 바랑부인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다.


바랑부인의 집사로 일을 시작한 루소는,바랑부인의
도움으로 독학을 하며 인식의 지평선을 넓힘과 동시에

13살 위의 바랑부인과 연인관계로 발전하며 동거
생활을 한다. 당시 바랑부인은 유부녀로 남성 편력이
대단했는데 다른 남자를 사귀며 루소와 헤어지게
된다.


방황하던 루소가 파리에 정착하게 된 것은 음악악보의

필사경을 하면서부터다.악보를 베끼는 일은 신중함과

신속함을 요구하는 일로 유년시절 필사견습공의 경험

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처럼 루소는 불우한 환경으로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으나  일을 통해 배우며 독학으로 자신의 지식을
넓혀서 인생을 스스로 개척한 천재 사상가였다.


이때 루소는 또 하나의 운명적 만남을 이어간다.
당대 유명한 계몽주의자 디드로를 만나 그의 전폭적인
도움으로 계몽주의  백과사전 격인 <백과전서>
음악관련 부분의 편찬에 참여한다.
이때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교류하며 문필가이자
사상가로 길을 가는데 큰 도움을 받는다.


루소가 본격적인 사상가의 대열에 올라서게 된 계기는

1750년 <학술 예술론>이 당선되면서 부터였다.


프랑스 디종 시에 응모했던 이 논문은  예술과 학문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동의하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 행복 퇴화의 기념비라는 독특한 해석이 주목을
받게 된다.


"사회적 불의가 만연하기 때문에 법률 지식이 필요하고

덕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도덕과 철학이 필요하다.


신이시여! 우리로 하여금 지혜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킬 가난한 상태로 돌아가게 해

주소서. "라고 외쳤다.


루소의 또 다른 현상논문<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그는 도덕적 정치적,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했다.


애초 자연상태에서는 약자가 생길여지가 없었고,

꾸임없는 덕이 지배했다.


그러나 어떤이들이 땅에 울타리를 쳐놓고 자기 땅
이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은 살인과 전쟁,범죄가 득실
거리는 삶을 살게 된다.


더불어 지배자와 피지배자,강자와 약자,주인과 노예,

부르주아와 노동자의 이분법적 계층이 탄생하였고

불평등은 거기서 비롯되었다.


인간불평등의 원인은


사유재산을 갖도록 한 것이 첫번 째 원인이요

지배자와 피지배자,주인과 노예관계가

두번 째 화근이며

이러한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분명하게 대립시켜 놓은

권력의 자의성이 제 3의 화근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사회에 불평등이 깊숙히 스며
들었다고 분석하였다.


요약하면,루소는 "인간이 행복하자고 이성적인 사유로

만들어논 각종 사회 규범이 역설적으로 인간을 불행
하게 만들었다.그 대표적인 것이 사유재산 제도이고
불평등의 출발이다"고 보았다.

오히려 사회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원시 자연상태가
더 행복하다지 않게는가?그러나 우리는 다시 원시

자연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으므로 우리는 구성원

전체의 합의,즉 자유로운 동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국가의 정당한 지배를 가능케 할 수 있다.

이것이 루소가 주장한 사회계약론의 큰 줄기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루소가 직접 한 말은
 아니지만 루소의 주장을 은유법적으로 대변하는

말이 되었으며 당대 최고의 계몽주의자 볼테르로

부터 공격받는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계몽주의 사상이 무지의 미개사회로 부터 이성적

판단으로 문명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인데 마치

문명사회를 부정하는 듯한 루소의 주장을 곡해한

것이다.

계몽주의 사상과 루소의 사상은 불평등 원인에
대한 해석이 다를 뿐 그 추구하는 목적은 일치한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를 말하고 문화,학술,예술의
낙관론을 이야기할 때,루소는 도리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이런 독특한 관점의 차이가 루소를 당대 저명한

문필가이자 사상가로 이름을 떨치게 하였으며

계몽주의를 대변하는 천재적 사상가이자 신랄한

계몽주의 비판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루소는 패럴랙스적 사고가 습관화
 인물이며 그런 패럴랙스적 사고가 루소를 있게
 이유이고,패럴랙스적 사고는 독서를 통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색의 결과물이다.


루소의 이러한 비판적 사상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계몽사상들은 역설적으로 그가 틀에 갖힌 정규교육
을 통하지 않고 독학으로 스스로 인식의 지평선을
넓힌 불우한 유년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소의 비판적 사상들과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듯한

태도는 뒤에 마르크스 혁명적 공산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으며 프랑스 대혁명의 혁명교과서 역할을 하였다.


루소의 삶은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다.그는

<고백론>이라는 저서를 통해 자신의 삶 전체를

폭로함으로써 진실성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벌거벗은 자신을 드러내면 낼수록 더욱 더 진실된다는

루소의 태도야말로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루소의 생애만큼,루소의 저작만큼 인간의 덧없는

행복에 대한 통찰과 상념을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우리는 루소의 생애가 모순되었다고 비판할 수 없다.

그는 온 몸으로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으로 살다간

우리의 자화상이자 나약함 속에 꽃핀 위대한 지성이다.


루소의  질문이 현대를 사는 우리의 가슴에 꽂힌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모든 것이 조물주에 의해 선하게

창조되었음에도 인간의 손길만 닿으면 타락하게 된다"


인간은 행복할까?


Plato Won



생각근력을 키워 생각주머니가 열리는 교육

패럴랙스 人文Art

 

루소 사회계약론 목차

 

1.사회계약론 개요  

2.시대적 배경,계몽사상 

3.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등장 

4.영국 혁명과 미국 독립선언문 

5.사회 계약설 비교 ᆢ홉스,로크,루소 

6.계몽주의의 반항아 장자크 루소

7.교육철학은  에밀에서 비롯되어 에밀로 끝난다 

8.정치는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 

9.국가와 국민은 사회계약관계에 있다 

10.루소의 일반의지란? 

11.자연 상태와 사회 상태에서의 인간 

12.사유재산에 대한 루소의 생각 

13.주권은 양도할 수도,분할할 수도 없다. 

14.法은 일반의지의 기록 

15. 위에 상위  

16.정부는 일반의지의 실행기관일  

17.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는? 

18.입법권은 국가의 생명 

19.독재자는 시민의 휴식을 원한다? 

20.국민은 국가에 대해 저항권을 가진다

21.대중주의는 위험하다 

22.종교에 대한 루소의 생각 

23.대외 관계에서 국가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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