⑲ 베를린을 떠나며
보이지 않는 선들이 베를린을 더 아련하게 만들어준다. 그 선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존재를 짐작하고 있다. 이따금 선들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베를린의 유명 관광지를 무심코 걷다 보면 발 밑에 특별한 선이 그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들은 무심하게 도시를 지나고 있고, 그럴 때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마음에 각인하게 된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이방인에게 그 선은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기념품 같은 존재다. 하지만 선 위에 세워졌던 장벽의 존재를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처럼 마음을 옥죄는 존재일 것이다. 베를린의 풍경을 완성해주는 것은 바로 이런 보이지 않는 선들이다.
<작가의 창>에서 독일 작가 다니엘 켈만은 자신의 창 밖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곳에는 화물을 실어나르는 바지선도, 음악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 승객이 갑판에서 맥주병으로 건배하는 바지선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바지선에 앉아 있는 승객 대부분은 카메라를 지닌 관광객으로, 어린 학생만큼이나 주의력이 떨어진다. 그들이 무슨 사진을 찍을지 늘 궁금하다. 아마도 대부분은 '눈물의 궁전'을 찍을 것이다. 그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넘나들던 월경열차의 역사였던 유리 건물로 오늘날은 텅 비어 있는데, 곧 댄스클럽이 된다고 한다. (중략)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진에 담을 수 없다. 그건 베를린장벽이 놓였던, 보이지 않는 선이다. 최고의 카메라로도 부재는 포착할 수 없으니 관광객들은 쓸모없는 장비로 똑같은 창문이 줄지어 박힌, 새 건물의 회색빛 얼굴이나 찍어댈 뿐이다.
나 또한 베를린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기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낮과 밤의 경계선에 걸친 브란덴부르크문은 다른 차원으로 떠나는 웜홀을 떠올린 만큼 아름다웠고, 슈프레강을 따라 줄지어 있는 현대적인 건물들은 베를린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송두리째 날려줬다. 국가의회의사당 앞으로 펼쳐져 있는 광장은 서울의 여의도 광장과 달리 자연스러워서 좋았고, 소니센터의 화려함은 밤이 되자 더 아름답게 빛났다.
그러나 이 모든 아름다움의 밑바탕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선이 아니었다면 베를린의 아름다움도 여느 대도시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선들은 베를린의 건축물, 광장, 풍경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담아 줬다. 베를린의 현재를 카메라에 담아도 베를린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찍힐 수밖에 없다.
베를린은 보이지 않는 천사들의 도시이기도하다. 이번 여행을 앞두고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를 찾아봤다. 대학 시절 수업 과제 때문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억지로 봤던 영화였다. 다소 지루하고 졸렸던 기억이다. 하지만 베를린 땅을 직접 밟게 됐으니 다시 한 번 보자는 생각으로 영화를 찾아봤다.
영화는 10년 전과 달랐다. 영화가 달라졌을 리는 없으니 내가 달라졌을 것이다. 페터 한트케의 <유년기의 노래>를 낭독하는 브루노 간츠의 담담한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2차 세계대전 직후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천사인 다미엘과 카시엘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 세계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호메로스는 자신이 할 일이 더 이상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전후 베를린은 모든 게 무너진 폐허의 도시였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흑백영화로 만들어졌다. 베를린은 흑백에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폐허의 도시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다미엘은 어느 날 서커스단의 공중곡예사 마리온을 만나고,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형사 콜롬보 역의 영화배우 피터 포크는 천사들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유일한 인간이다. 그 또한 한 때는 천사였다. 다미엘은 마리온과 피터 포크를 만나고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다. 카시엘의 만류에도 그는 인간이 된다. 모든 게 낯설고 서툰 인간이 된다. 그는 고통과 아픔, 허기를 처음으로 느낀다. 갓 세상에 태어난 아이처럼 말이다.
10년 만에 다시 본 <베를린 천사의 시>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천사들의 시선으로 내려다본 베를린은 폐허 속에 핀 꽃처럼 희망을 갖게 했다. 아이들은 천사의 존재를 볼 수 있었다. 천사와 가장 가까운 존재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에 치우치지 않고 보는 그대로 세상을 인식했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영화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오히려 천사들보다 더 천사 같았다.
천사들은 슬픈 존재들이다. 카시엘은 실의에 빠진 청년을 위로해주고자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지만, 청년은 천사의 손길도 느끼지 못한 채 건물 아래로 몸을 던진다. 천사들은 오로지 바라볼 뿐 세상에 개입할 수 없다. 아이들만이 천사를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을 제외하면 천사들은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가 없다. 다미엘은 이 사실을 깨닫고 인간이 됐다. 그는 "둘이라고 하는 놀라움, 남과 여라는 놀라움. 그것이 날 인간으로 만들었다. 난 이제 안다. 천사도 모르는 것을."이라고 독백한다.
<베를린 천사의 시>가 나온 지 30년이 지났다. 베를린은 30년 동안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 베를린 시내 곳곳에서 쉴 새 없이 공사가 진행 중이었고, 현대화된 건물이 날마다 새로 지어졌다. 그럼에도 천사들이 내려다본 베를린의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다미엘과 카시엘이 앉아 있던 높은 탑의 전경, 천사들이 자주 찾던 도서관.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강. 오랜 시간에도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베를린 곳곳에는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장벽들을 볼 수 있다. 독일인들은 이 장벽을 곳곳에 가져다 놓았다. 숙소 근처의 포츠담 광장에도 장벽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장벽 바로 옆에는 한국의 정자가 서 있었다. '통일정'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정자는 독일의 현대적인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장벽과는 이상하게도 잘 어울렸다. 한국의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세웠다는 '통일정' 앞에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선은 우리에게도 있다. 철책은 서울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선은 서울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광주, 제주까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군사분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라도 보이지 않는 선의 침범을 막을 수는 없다. 그 선은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 보이지 않는 천사 또한 우리 곁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야기를 남몰래 귀담아듣고, 실의에 빠진 청년의 어깨에 손을 얹기도 하고, 언젠가 다시 만날 북녘의 가족을 그리워하는 노인의 손을 주물러 주고 있을 것이다.
베를린은 늘 옆에 있지만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해주는 도시였다. 보이지 않는 선과 아이였던 때를 내 마음속에 되살려 주었다. 숙소로 돌아가 다시 짐을 싸고 베를린 중앙역으로 향했다.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뤼겐 섬까지 기차로 네 시간 거리였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다녔다
시냇물은 하천이 되고
하천은 강이 되고
강도 바다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자신이 아이였다는 걸 모르고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세상에 대한 주관도, 습관도 없었다
책상다리를 하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사진 찍을 때도 억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난 여기에 있고
저기에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 조각은 아닐까?
악마는 존재하는지, 악마란 사람이 정말 있는 것인지,
내가 내가 되기 전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만 나일뿐인데 그것이 나일 수 있을까.
아이가 아이였을 때
시금치와 콩, 양배추를 억지로 삼켰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것을 잘 먹는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낯선 침대에서 잠을 깼다
그리고 지금은 항상 그렇다
옛날에는 인간이 아름답게 보였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옛날에는 천국이 확실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상상만 한다
허무 따위는 생각 안 했지만
지금은 허무에 눌려 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아이는 놀이에 열중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열중하는 것은 일에 쫓길 뿐이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사과와 빵만 먹고도 충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딸기만 손에 꼭 쥐었다
지금도 그렇다
덜 익은 호두를 먹으면
떨떠름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산에 오를 땐 더 높은 산을 동경했고
도시에 갈 때는 더 큰 도시를 동경했는 데 지금도 역시 그렇다
버찌를 따러 높은 나무에 오르면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도 그렇다
어릴 땐 낯을 가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항상 첫눈을 기다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막대기를 창 삼아서 나무에 던지곤 했는데
창은 아직도 꽂혀 있다.
프롤로그
① 부다페스트 밤의 풍경
② 부다페스트 키슈피파 레스토랑
③ 부다페스트 테러하우스
④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
⑤ 빈 제체시온 클림트 <베토벤 프리즈>
⑥ 빈 벨베데레 미술관
⑦ 빈 벨베데레 미술관
⑧ 빈 프라터, CAFE SPERL
⑨ 빈 미술사 박물관
⑩ 프라하에서 읽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⑪ 플젠 필스너 우르켈 공장
⑫ 프라하 오페라 하우스 <카르멘>
⑬ 프라하 <슬라브 서사시>
⑭ 프라하 <무하 미술관>
⑮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⑯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⑰ 베를린 영화제 '죽여주는 여자' 관람기
⑱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