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은 훌륭하다 #12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글루미 선데이>는 한 여자와 두 남자가 사랑하는 영화다. 여주인공 일로나의 매력이 넘쳐 그녀를 공유하기로 한 두 남자의 심정을 이해했다.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이기도 한 부다페스트는 일로나만큼이나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도시다.
워낙 야경으로 유명한 도시지만 부다페스트의 낮은 결코 밤에 지지 않는다. 그 낮과 밤이 지닌 매력 3가지를 추려봤다. 다음의 3줄 중 2줄 이상에 눈길이 머문다면 부다페스트는 멋진 선택이 될 것이다.
1. 짭짤한 치즈와 느끼한 빵을 즐긴다면
2. 야경에 대한 로망이 있다면
3. 서양인들의 온천 문화가 궁금하다면
빵을 기름에 튀긴다. 그 위에 치즈와 온갖 토핑을 올린다. 중앙시장에서 맛 본 랑고쉬는 한국인 입맛에는 다소 과한 맛이었다. 한 입 베어 물자마자 짠 맛과 기름기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난 치즈 토핑을 잔뜩 올렸다.) 그리 달갑지 않은 첫 맛이다. 하지만 신기하게 그 한 입이 두 입을 부르고 두 입이 세 입을 부른다. '짠데', '느끼한데' 중얼거리면서 결국 다 먹었다. 부다페스트에 머물며 (랑고쉬를 먹기 위해) 중앙시장에 3번 들렀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도 간혹 그 맛이 그립다.
중앙시장에서 가장 붐비는 바로 그 곳에 랑고쉬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매우 허술한 테이블과 의자가 그 앞에 몇 개 놓여 있으나 자리를 차지하긴 매우 어려웠다. 들고 먹고 기대서 먹고 걸으며 먹게 된다.
몇 가지 주의할 게 있다.
- 우선 칼로리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빵을 튀겼다. 치즈와 초콜렛, 크림을 얹는다. 살찌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 직원은 아주 자연스럽게 토핑, 또 토핑을 유도한다.
얼떨결에 오케이 오케이 하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토핑 값 다 받는다.
- 여성이 먹기엔 조금 크기가 크다. 1.7인분 정도? "그럼 하나 사서 나눠 먹을까?" 혹은
"하나씩 사서 반 갈라 먹을까?" 했다간 낭패를 보기 쉽다.
토핑이 넘치고 작업할 공간이 마뜩찮은 까닭에 자르기 어렵다.
내 카메라는 매우 후졌다. 내 컴퓨터엔 그때도 지금도 포토샵이 없다. 딱히 멋진 구도를 찾아 헤매지도 않았다. 그냥 밤거리를 걸으며 성의없게 후진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부다페스트 도나우강의 야경은 각도와 의상을 초월하는 김태희같은 존재다.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꼭 이 순간의 부다페스트에서 프로포즈를 받고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다페스트의 명소 중 하나는 '겔레르트 온천'이다. '온천'이란 단어가 지닌 이미지가 워낙 토속적이고 정겨웠던 지라 서양의 온천이 궁금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부다페스트의 온천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근엄한 목욕탕'이다.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 벌거벗지 않는다.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 (빌릴 수 있다.)
- 혼탕이다. (청춘남녀의 귀여운 애정행각도 관람할 수 있었다.)
- 오가는 이들 몸매보다 100년 전 건축물의 예술성을 구경하는 게 좋다. (아르누보 양식으로, 무척 유명하다.)
- 물은 미지근하다. (적어도 우리가 상상하는 뜨거운 온천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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