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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n 25. 2015

한 겨울의 피오르드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3가지

모든 여행은 훌륭하다 #2

'빙식곡이 침수하여 생긴 좁고 긴 만 지형'. 피오르드의 정의다. 어렵다. 수능볼 게 아닌 이상 알 필요 있을까. 문과 출신인 나에게 피오르드는 그저 '기가 막힌 신의 현신'이다. 그 현신을 본 건 3년 전 한겨울 노르웨이의 피오르드였다. 대개 총천연색 자연으로 물든 여름이 노르웨이 여행의 적기라고 하지만 내가 택한 계절은 겨울이었다. 자세히 알고 한 선택은 아니었으나 여행을 하는 내내 한 번도 여행 이외의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좋았다.


이런 분들이라면 한겨울 노르웨이 피오르드 여행이 인생여행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1. 넘쳐나는 통장 잔고를 주체할 수 없다면 (혹은 통장 잔고에 관심이 없다면)

2. 소복소복 쌓인 눈을 좋아한다면

3. 여행객이 드문 여행을 하고 싶다면






1. 넘쳐나는 통장 잔고를 주체할 수 없다면


노르웨이 여행은 비싸다. 직항 없는 비행기값도, 현지 물가도 그렇다. (생수 한 병이 6천 원, 대중교통도 그즈음. 한국 물가의 6배 쯤으로 느껴졌다.) 2주 조금 넘게 한 노르웨이 여행에 든 돈으로 다른 유럽 2번은 다녀올 수 있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은 6,7번 쯤 갈 수 있을 거다. 게다가 혼자 한 여행이라 숙박비는 더블. 그래서 추천한다. 넘쳐나는 통장 잔고를 주체할 수 없다면 당장 노르웨이행 티켓을 예약할 것.


그게 아니라도 방법은 하나 있다. 아예 통장 잔고에 관심이 없어도 좋다. 나의 경우 그랬다. 기왕 비싼 여행 하기로 한 거, 떠나는 순간부터 통장 잔고는 계산하지 않았다. (그러다 카드 한도가 막혀 쇼도 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새벽에 전화를 걸어 나인척 하고 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어 한도 좀 높여달라 했다.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무튼, 비싼 여행이다.





2. 소복소복 쌓인 눈을 좋아한다면


피오르드는 다섯 가지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구간은 오슬로에서 미르달(Myrdal)에 이르는 기차.

두번째 구간은 미르달에서 플롬(Flam)에 이르는 산악열차.

세번째 구간은  플롬에서 구드방겐(Gudvangan)에 이르는 크루즈.

네번째 구간은 구드방겐에서 보스(Voss)에 이르는 버스.

마지막 다섯번째 구간은 보스에서 베르겐(Bergen)에 이르는 기차다.  


한겨울에 이 구간을 이동한다는 것은, 눈을 여행하는 거다. 창 밖으론 내내 눈의 향연이 펼쳐진다. 드넓은 산맥 줄기와 평원은 언제 이리 내렸나싶을 정도로 눈만이 가득하다. 고요한 눈의 바다 위로 인간이 점처럼 찍혀 있었다.



산악 열차가 멈춰선 플롬은 책에서 읽었던 대로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내가 읽은) 모든 피오르드 여행의 후기에 이 마을이 등장한다. 반드시 거쳐가는 곳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유는 사진이 설명해준다. 으리으리한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을은 레고 마냥 아기자기하다. 초록풀과 야트막한 마을 구성, 하얗게 쌓인 눈의 조화.





물론, 눈 eye 으로 느낄 수 있는 눈 snow 의 호사는 피오르드에서 절정을 맞는다. 여름에 왔다면 만물이 소생하는 초록색이었을 것이나 겨울이기에 하얗고 짙은 풍경이 펼쳐진다. 피오르드의 신이 저-기 어디엔가 틀어박혀 겨울잠을 자고 있을 것 같다.







3. 여행객이 드문 여행을 하고 싶다면


복작복작이는 여행도 즐겁지만 그 반대의 여행을 즐기는 이들도 분명 있다. 한겨울의 노르웨이 피오르드를 120% 즐길 수 있는 건 바로 그런 이들이다. 200명 정원의 산악열차엔 나를 포함해 3명의 승객이 탔다. 어림잡아 500명은 탈 수 있을 것 같은 크루즈에 탄 건 나 하나였다. 2시간동안 거대한 배와 10여 명의 승무원이 나를 위해 움직였다. 눈 덮인 피오르드는 나를 위해 놓여 있었고. 이런 경험을 살며 다시 해볼 수 있을까.


배 2층에 자리잡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안내방송이 시작됐다. 내 귀를 의심했다. 한국어였다. 그제서야 입구에서 직원이 내 국적을 물었던 이유를 알았다.



약간 해가 누그러질 즈음에 시작된 크루즈 여행.



배가 물살을 뚫고 앞으로 나갈수록 해는 어딘가로 숨었다.



점점 파래지는 피오르드의 공기. 이윽고 밤이 되자 내 앞에 펼쳐진 장면. 피오르드에 놓인 마을이 불을 밝히자 이 곳은 순식간에 성탄절을 맞이하기라도 한 듯 따뜻해진다.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엄마는 놀러 간 아이들을 불러모을 것만 같은 공기. 하얀 눈과 검은 어둠.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불빛이 만들어내는 이 어마어마한 순간을 나 혼자 누린다. 호사도 이런 호사가 있을까.


2시간의 크루즈를 마친 후, 선장 아저씨는 직접 나와 유일한 승객을 배웅한다. 겨울왕국의 공주가 된 기분이랄까. 따뜻한 호사다.



아, 이 곳으로 떠나야 할 이유 한 가지가 더 떠올랐다.


비록 3주가 채 안되는 시간이었으나 많은 순간 노르웨이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삶의 여유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오슬로 호텔 프론트에서 체크인을 할 때도 그 중 하나였다. 컴퓨터에 체크인 정보를 조회하는 직원의 손을 아무 생각없이 응시하다 알았다. 직원은 손가락이 없는 장애인이었다. 10개에서 7,8개 쯤 모자란 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 역시 한국인의 '비교병'이지만,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된다.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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