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은 훌륭하다 #17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 Edinburgh는 영국같지 않은 영국이다.
스코틀랜드의 뿌리가 잉글랜드의 그것과는 다른 까닭에 지난 해엔 독립 투표까지 치렀다. 그런 배경을 따지지 않더라도 스코틀랜드의 이미지 자체가 워낙 독특했던 까닭에 런던에서 에든버러로 향하던 날은 국경을 넘는 기분이었다.
비록 여행이라 이름 붙이기도 뭣한 하루짜리 여정이었지만 스코틀랜드는 제법 풍부한 기억을 남겼다. 다음의 3가지 중 3가지 모두 해당한다면 영국 여행에서 에든버러를 빼놓아선 안될 듯.
1. 애주가의 피가 흐른다면
2. 순대 체질이라면
3. 해리포터와 셜록홈즈의 팬이라면
스코틀랜드의 상징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스카치 위스키가 아닐까. 그 위스키를 눈과 입, 코로 느낄 수 있는 스카치 위스키 익스피리언스 The Scotch Whisky Experience가 에든버러에 있다. 이름 자체가 'Experience'다. 그냥 판넬과 술병만 가득한 박물관이 아닌, 위스키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유료다. 2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흥미로운 구성 덕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 중 하나는 위스키 통처럼 생긴 이 관람기구(?) 였다. 통이 빙그르르 돌며 운행되는 사이 유령같은 사이버 캐릭터가 위스키의 역사와 제조 과정을 설명한다. 통 안에 앉아 있자니 놀이공원 <사파리> 같았고, 유령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신밧드의 모험>같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훌륭한 건 따로 있었다. 그냥 지루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오감으로 스카치 위스키를 느끼게 하려는 센스가 돋보인 '냄새 종이'도 그 중 하나다. 스카치 위스키는 생산지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뉘는데 저 종이를 하나하나 뜯으며 각기 다른 냄새를 맡을 수 있게 한다.
코로 맡았다면 이젠 입으로 마실 차례다. 멋진 위스키룸에 모여 모두 같이 잔을 든다. (스무 명 가까운 방문객 가운데 오로지 한국인만 원샷을 감행했다.)
사실 이 공간에서 즐거웠던 건 코와 입보단 눈이었다. 진열된 300여 종의 위스키에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마구. 조명 아래 놓인 수 백 개의 병들은 흡사 '기사'같았다. 아주 성스러운 공간을 말없이 수호하고 있는 기사.
영국을 여행하는 내내 의문을 품었다. 정말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뭘까. 있기는 한걸까? 보통 '피시 앤 칩스있잖아.'라고 대답할테지만 그보다 좀 더 영국스러운 음식을 원했다. (못 찾았다.)
스코틀랜드스러운 스코틀랜드 음식 '하기스 haggis'를 찾아 나선 건 그래서였다. 많은 이들이 하기스를 일컬어 '영국 순대'라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식의 재료 자체가 양이나 송아지의 내장이다. 이를 오트밀 등과 섞은 다음 위장에 넣어 삶는다. 평소 순대라면 덮어놓고 2인분이기도 했고, 먹어본 이들의 평가가 대개 별 네 개는 되었기에 무척 기대했던 요리다.
문제가 뭐였을까? 가게를 잘못 택했던 걸까? 기대가 너무 컸었나? 셰프가 양념통을 쏟기라도 했던 것일까? 내겐 별로였다.
에든버러는 많은 문학가들의 고향이다. BOOK LOVERS' TOUR라 적힌 간판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적어도 이 중 2명은 여러분도 안다고 장담한다. 조앤.K.롤링은 해리 포터를 썼고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낳았다.
이 곳 '코끼리 집 The Elephant House'에서 조앤 롤링은 해리포터를 쓰기 시작했다.
소설 해리포터 만큼이나 흥미로운 게 작가인 조앤 롤링의 인생사다. 그녀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28살의 애딸린 이혼녀였다. 그녀의 소설 <해리포터>는 12개의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선인세 200만원을 받고 계약한 출판사 담당자는 '잘 안 팔릴 거라'고 작가를 위로했다. (참고) 1997년의 일이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전세계가 그녀를 안다. The Elephant House는 모든 이야기가 아주 조용히 시작되었던 곳이다.
한편 코난 도일은 좀 더 오랜 시간 에든버러와 인연을 맺었다.
이 곳에서 태어났고, 이 곳에서 대학을 나왔다. 그가 의사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가 공부한 곳이 이 곳 에든버러 의과대학이다. 런던에 이어 에든버러에서 맞닥뜨린 코난 도일과 셜록의 흔적이 반가웠다. (#11. 셜록 매니아가 런던으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4가지 참고)
그가 이 곳에서 공부했던 흔적은 (당연히)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도에 표시된 옛 도서관 자리와 의과대학 간판을 보며 140년 전의 코난 도일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멋졌다. 마침 해가 지던 때라 하나 둘 밝혀지던 불빛이 상상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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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셜록 매니아가 런던으로 떠나야만 하는 이유 4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