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늘어나는 통화량과 그것에 반응하는 자본이 존재할 뿐
나는 나와 아내보다 더 많이 저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일전에 한 달에 700만 원씩 3년 동안 적금을 넣겠다고 했던 공구 상사의 사장님이 있기는 했다. 그에게는 비장한 각오가 있었다. 그러나 그조차 6개월 남짓 납입을 하다가 당장 돈이 급해 어쩔 수 없다면서 해지를 해버렸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6개월이 아니라 6년 남짓한 기간 동안 끊임없이 돈을 저축하고 있다. 어느덧 저축이라는 행위는 숨쉬기와 비슷해졌다. 별다른 의식적인 노력이나 생각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래도 그럭저럭 비슷한 액수의 돈이 매년 모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움 따윈 없어야 마땅했다. 사실 그러했다. 돈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러나 나란 존재는 어찌나 등신 같은지 자꾸만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과거 6년 동안 저축한 것과 비슷한 액수의 돈을 아파트로 벌어들였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송곳으로 내장을 후벼 파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곤 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그 아파트의 실거래가를 검색해본 적도 있었다. 거의 사실이었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무언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저축과 돈과 투자에 대한 글을 쓴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다. 나는 지금까지 그들에게 무슨 개 같은 소리들을 지껄여온 것일까? 지금이라도 나의 실수를 인정하고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한 푼이라도 더 끌어당겨 - 오를 것이 분명하다는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하는 방법에 관한 글을 써야 하는 것일까? 나 또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인플레이션은 자국의 통화를 신뢰한 사람에게 부여하는 세금이다. – 워런 버핏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나는 신뢰해서는 안 되는 존재를 신뢰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인 것이다. 내가 가진 재산의 상당액을 예금의 형태로 보유했던 것은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원화(KRW)라는 통화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발행하는 한국은행이 예금과 채권을 보유한 사람들에게 상식적인 수준의 신의를 지킬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순간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갔다. 지금 이 순간도 한국은행은 오래전 죽어버린 경제학자의 이론을 중얼거리면서 사방천지에 똥을 싸고 있다.
그들은 주장할 것이다. 물가상승률이 통제 가능한 수준에 있으므로 통화가치가 하락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나 통화가치는 분명 하락했다. 다만 다른 재화의 가치가 동시에 하락하고 있으므로 통화가치 하락이 물가상승률이라는 지표로 명확히 잡히지 않는 것이다. 오늘만 해도 나는 놀이터에서 왕 꿈틀이 반봉지를 비둘기에게 던지면서 장난치는 꼬마 아이를 보았다. 비둘기는 한입 먹더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것은 재화가치의 하락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내가 초등학생일 무렵만 해도 누군가 왕 꿈틀이를 학교로 가지고 오면 반 친구들이 열명은 달려들어 한 입 달라고 졸라 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비둘기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왕 꿈틀이뿐 아니다. 장난감부터 텔레비전까지 이마트에서 마주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재화의 가치가 폭락했다. 이것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지구 상 모든 국가가 재화가치의 하락이라는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장소에서 모든 것들이 흔해 빠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자유 무역 협정이 페북 친구만큼이나 흔해졌다. 엑셀과 자동공정과 OEM이 보편적으로 퍼졌다. 컨테이너선의 등장은 국제교역의 운송비용을 사실상 0으로 수렴시켰다. 그리고 이마트와 쿠팡이 등장했다. 이 모든 요소는 구매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내년의 왕 꿈틀이 한 봉지의 가치는 지금의 한 봉지 가치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재화 가치의 하락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중앙은행(그러니까 한국의 경우 한국은행이)이 기준금리를 만지작 거려야 하는 이유는 산업 변화 때문이다. 기존의 산업은 새로운 산업에 의해 대체되는데 이때 기존 산업에서는 실업이, 새로운 산업에서는 새로운 일자리가 발생한다. 여기에 상당한 시간차가 존재하므로 중앙은행은 실업이라는 필요악을 최소의 비용으로 다루기 위해 기준금리를 만지작거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낮출 수 있다. 다만 기준금리 인하에는 통화량 증가에 따른 물가상승이라는 대가가 수반된다. 이 두 가지 현상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 사회발전을 꾀하는 것 - 이것이 중앙은행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 설명은 점차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새로 등장한 산업이 인간의 노동력 그 자체를 대체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마존 같은 이커머스 산업이 그렇다. 이런 산업은 자신이 파괴한 일자리의 1/10만큼도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 그러나 아마존이 가져다준 효용은 그것이 죽여버린 산업의 효용을 가볍게 압도한다. 이커머스뿐만이 아니다. 새로운 산업 대다수가 그러하다. 가치가 하락하여 슬픈 것은 왕 꿈틀이뿐만이 아닌 것이다. 인간의 노동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갈수록 인간의 노동 필요량은 줄어들지만 사회가 생산하는 전체 효용은 감소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업률의 증대는 구조적이며 만성적인 현상이다. 시간이 지난다고 돈을 찍어낸다고 극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만성적인 고용률 악화는 한국은행이 하염없이 돈을 찍어 시장에 쏟아 넣게 하는 근본적 동기가 된다.
흔해 빠진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가치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통화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상황에서 지속적인 저금리는 물가폭등을 야기한다. 그런데 이번만은 그렇지 않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통화량이 4.1배 늘어나는 동안 소비자 물가지수는 고작 1.6배 오르는 것에 그쳤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통화가치의 하락과 재화가치의 하락이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은 통화 가치 하락을 보여주지 못한다.
만성적인 실업률의 악화는 한국은행이 계속해서 통화량을 늘릴 수 있게 하는 명분이 되었다. 그리고 또한 계속되는 재화의 가치 하락은 한국은행이 늘려가는 통화량의 해악을 효율적으로 눈가림해주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현상이 결합되어 작용하는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케인즈가 죽은 지 70년이 되어가지만 한국은행은 아직도 그 잘난 실업률과 소비자 물가지수를 경전처럼 외우며 자신의 배임에 대해 시치미를 뗀다. 한국은행은 자신이 발행한 통화를 믿은 사람들을 배신했다. 그리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제 무제한적 양적완화 같은 말을 입에 담고 있다.
물가상승률은 통화가치 하락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통화 가치가 하락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 한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지 않았다. 폭등했을 리가 없다. 과거 몇 년간 한국의 GDP가 미친 듯이 성장한 것이 아니고, 전국적인 개발 호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인구가 늘어난 것도 아니고, 삶의 행태에 어떤 결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 2년 아무것도 - 아무 사건도 없었다. 다만 기준금리가 인하되었고 통화량이 늘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것이 부동산 가격에 반영된 것일 뿐이다.
만약 2000년부터 2019년까지 통화량이 4배 늘었다면 부동산도 그 정도 늘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계산해보면 통화량이 4.1배 오르는 동안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약 3.15배 올랐다. 이것은 폭등이 아니다. 일종의 균형점 회귀 현상인 것이다.
통화량 증대에 비하면 빚내서 집을 사라는 몇몇 정치인들의 말이나,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치적 다짐은 아무 것도 아니다.정부가 시도해온 모든 대출 장벽 구축이나 세금 부담 강화 같은 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 이 모든 것은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홀로하는 버스킹이며 몰려오는 파도 앞에 쌓인 모래성이다. 탐욕스러운 부동산 투기 세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늘어나는 통화량과 자연스럽게 그것에 반응하는 자본이 존재할 뿐이다.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재테크란 결국 내가 가진 부(Wealth)를 어떤 형태로 저장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예금이나 채권에 투자한다는 것은 부를 통화(KRW)의 형태로 저장한다는 의미이다. 장기적으로 이것은 미친 짓이다. 한국은행이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라는 2차원적 변수 종속 금리 결정 체계를 계속해서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의 저장 수단으로서 통화 - 즉 예금과 채권은 적절치 않다. 그렇다면 부동산과 주식이 남는다. 그런데 한국의 주식시장은 한국은행 못지않게 투자자를 기만해왔다. 예를 들어 1991년부터 2020년까지 예금과 주식의 누적수익률을 비교해보면 예금보다 주식의 누적 수익률이 더 낮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참고: 부동산과 주식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그것이 미래에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통화 가치 하락은 피할 수 없다. 예금은 통화가치 하락에 완벽하게 무방하다. 주식은 장기 수익률이 예금만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잉여 자금이 부동산으로 쏟아져 들어간다고 한들 그것이 탐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금이나 원유, 그림 같은 시장들이 있지만 이런 자산군은 어디까지나 곁들이에 불과하다. 투자의 메인 섹터가 될 수 없다. 그리하여 포 떼고 차 떼고 달리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잉여 자본들이 부동산으로 쏟아져 들어간 것이다. 이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의 재테크란 결국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한 푼이라도 더 끌어당겨 - 오를 것이 분명하다는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단말기 모니터 너머 넘쳐나는 유동성을 바라보며 이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했었다. 정말로 혼란스러웠다.
그 순간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타나 인류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나는 코로나 이후의 미래가 꽤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저의 첫 책 『부자들은 모두 은행에서 출발한다(RHK)』가 출간되었습니다.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브런치 독자분들이 없었다면 제 윈도 부팅 비밀번호는 오래 전 "이제는 그만"으로 바뀌었을 테니까요. 독자분들이 있어 글을 쓰는 시간이 저에게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 : 통화량과 물가, 부동산 가격 지수를 대응하고 해석하는 작업은 저 스스로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습니다. 독자분께서 이 포스팅에서 약간의 신선함을 느끼셨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혹시 제가 이야기했던 것 중 이상하게 느껴지시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댓글로 남겨주세요. 계속 더 고민하고 수정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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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타벅스를 좋아할 당신이 검소하게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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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번도 펀드로 10억 번 사람을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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