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김기홍_충북 성화초 교사
‘2022 국민 참여, 국가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사회적 협의’돌아보기
김기홍 선생님은 2021년 국가교육회의 중장기 교육정책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2 개정 교육과정 사회적 협의 소위원회에 배속되어 국가교육회에서 진행하는 2022 개정교육과정 사회적 협의 과정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작년부터 이어지는 코로나19는 이전에 생각지 못한 낯선 삶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학교 또한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정부의 결정에 따라 방역, 긴급 돌봄, 온·오프라인 수업 등을 넘나들며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힘겨운 시기를 관통하는 가운데, 2021년 상반기에 우리 교육과 관련하여 아주 중요한 작업인 2022 개정 교육과정 수립 절차가 진행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많은 교사가 국가교육과정의 개정 과정과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숙고·숙의하며 다양한 경로로 목소리를 내길 바랐지만, 학교 현장이 얼마나 치열한 순간을 살아내는지 잘 알고 있기에 그 또한 쉽지 않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또한 앞선 여름호에서 언급된 것처럼, 여러 번의 수시 개정을 겪으며, 국가교육과정 개정 자체에 대한 피로감과 변화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지배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새로운학교네트워크 선생님들과 함께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수립 과정과 내용을 한 번 돌아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이 그전과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수립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는 것은 비단 과거의 회상과 평가를 넘어 앞으로 국가교육의 설계와 실행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새로운학교네트워크가 어떤 지점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2022 개정교육과정이 교육부에서 주관하고 고시하는 마지막 교육과정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국가교육과정은 올해 7월 21일에 시행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약칭: 국가교육위원회법)』에 의해 국가교육위원회에서 담당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 개정교육과정은 이전처럼 교육부에서 단독으로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교육위원회 수립을 위해 운영되고 있는 국가교육회의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와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교육부는 이번 개정교육과정을 ‘국민과 함께하는 미래교육과정’으로 규정하고, 국민을 중심으로 사회적 협의 과정을 국가교육회의에 일임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현장 교사 네트워크를 통해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2022 개정 교육과정 개정에서 교육부의 협업 대상이었던 국가교육회의는 내년에 설치될 국가교육위원회의 모습과 역할을 가늠할 중요한 프로토타입의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국가교육회의에서 진행한 ‘2022 국민 참여, 국가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사회적 협의’를 중심으로 교육과정 개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2022 국민 참여 국가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사회적 협의’ 과정 개요
국가교육회의는 국가 교육과정 총론에 미래 교육의 비전을 담아야 하고, 그 과정에는 충분한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를 위해 기존 교육과정 개정과 다른 새로운 원칙과 절차의 마련이 필요하고, 이는 소수 전문가 중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국민 의견 수렴이 중요하다는 원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국가 교육과정을 ‘국민과 함께’,‘미래형’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 교사, 학부모, 학생, 그리고 일반시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듣고, 함께 숙의함으로써 국가 교육과정과 관련된 내용의 합의문을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권고문을 작성하는 [그림 1]과 같은 일련의 과정을 진행했다.
가정 먼저 진행된 [그림 2] 온라인 설문은 교육부에서 이번 개정에서 핵심 쟁점으로 삼은 내용 중 16개의 문항을 뽑아 한 달 동안 설문을 진행했으며, 약 10만여 명의 시민분들이 설문에 답해 주셨다.
이후 온라인 토론방을 개설하여 설문 결과와 참고자료를 게시한 후 설문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으며, 국민의 의견을 바탕으로 국가교육회의 사회적 협의 소위원회에서 [그림 3]에 제시된 8개의 추후 토론 주제를 선정했다. 토론회 참석자는 온라인 토론방에 참여한 분들을 대상으로 특정 집단에 치우치지 않도록 학생, 학부모, 교사, 일반시민의 비율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 8개 주제는 총 4차례의 권역별 토론회와 청년·청소년 토론회에서 숙의되었고, 이후 100인 집중토론과 30인 집중토론을 거쳐 전체 협의문으로 완성되었다.
‘2022 국민참여 국가 교육과정 개정을 위한 사회적 협의’평가
❚의미 있었던 부분
1. 국민의 의견을 기반으로 국가 교육과정을 수립하는 최초의 시도
지금까지 국가 교육과정은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물론 교육과정 개정과 관련된 연구 과정에서의 설문이나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받기도 했지만, 수립 과정에서부터 국민의 의견을 중심에 둔 적은 없었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 또한 교육부가 주무 부서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국가교육회의가 권고안을 작성하는 한계는 있었지만, 온라인 설문부터 여러 차례의 토론회를 거치며 참가자들이 협의문을 작성하는 숙의 과정을 중심에 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다. 물론 보완해야 할 부분 또한 다양하게 제기되었지만, 변화의 첫걸음을 뗀 것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2. 국가교육의 방향에 대한 숙의 민주주의의 경험과 학습
교육은 인간의 내면과 성장, 사회 구조와 상호작용, 정치적·역사적 맥락이 중첩된 복잡성의 영역이다. 따라서 다양한 연구와 분석이 바탕이 되는 가운데 교육과정이 설계되고 운영되는 전문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공교육은 모든 시민이 주체로서 행위하고 성장하는 민주적 장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이 포착하지 못하는 다양한 삶의 맥락들을 시민들은 살아있는 몸짓과 언어로 표현한다. 그동안 교육의 핵심적 주체이며 당사자인 시민들은 자신의 몫을 가지지 못했다. 『무지한 스승』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자크 랑시에르가 말한 것처럼, 민주주의의 시작은‘몫 없는 이들의 몫’을 찾아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반 시민들을 숙의의 주체로 세우고 앞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삶과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을 열어준 것은 민주주의의 성숙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과정에 참여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학교에서의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가르침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배움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대학입학 시험 준비 말고는 배우고 있는 내용의 의미를 찾지 못하여 시간을 허송했던” 많은 시민의 목소리는 우리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었다.
3. 국가주의와 산업주의를 균열 내는 작지만 귀한 담론의 출현
기존의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미래 사회의 융합기술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는 국가·산업의 요구를 반영하여 ‘창의융합형 인재’양성을 핵심적인 개정 배경으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많은 시민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른 ‘창의융합형’국가 인재 양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개인과 사회 공동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배려심을 갖춘 따듯하고 책임 있는 시민’양성이 교육의 핵심 가치와 지향점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즉, 이제는 국가 인재 양성에 앞서 개인과 사회의 행복을 균형감 있게 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교육이 중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이러한 인간상, 사회상을 위해 민주시민, 인권, 노동 교육 등이 포함된 인성교육과 독서, 글쓰기, 철학 교육이 포함된 인문학적 소양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동안 교육부에서 수시 개정을 진행하며 공고해 온 ‘인재’ 양성의 패러다임을 ‘인간’, ‘시민’의 패러다임으로 변화시킨 것은 그야말로 시민들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가장 큰 변화로 꼽히는 고교학점제의 철학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학생 주도성(student agency)’개념을 단순히 학생 개인의 선택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 학생이 흥미를 갖고 동기를 부여하는 가운데 자신의 진로를 구성해 나갈 수 있도록 교사, 학부모뿐만 아니라 학교와 지역사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돕는 것을 의미하는 책임교육으로 재개념화한 것 또한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행위자성 혹은 행위주체성으로 번역되는 ‘agency’를 ‘주도성’으로 번역함으로써 자기 주도(self- directed), 주도성(initiative) 등의 개념으로 혼재되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낸 담론 구성의 결과라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완해야 할 부분
1. 형식을 넘어 실질적인 숙의 민주주의 구현하기
국가교육회의는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듣기 위해 교사, 학부모, 학생, 일반시민으로 의견 수렴과 숙의의 주체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앞선 [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절차를 거쳐 의견을 조율하고 협의해가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이 과정에 참여한 시민들이 기존 국가교육의 역사적 맥락과 현재 쟁점화되는 사안을 속속들이 알기 힘들었다. 당연하게도 기존 교육부 차원의 설명자료만으로 미래 교육의 비전을 숙고하고 선택하는 것은 형식적 숙의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따라서 시민들이 제대로 된 선택과 합의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의 생각들이 폭넓게 제공되고 충분한 시간이 제공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한 사안을 두고 이론적 논의의 지평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교원단체, 학부모단체, 학생단체의 생각은 어떠한지 깊이 있는 관련 정보가 제공되고 오랜 기간 숙고와 숙의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번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올해 8월까지라는 물리적 시간의 한계가 존재해 그야말로 한국인의 특성인‘번갯불에 콩 구워 먹기’로 진행되었다. 물론 이것이 항상 문제인 것은 아니다. 정말 불가능해 보이는 일정임에도 이 과정을 해내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으로 국가교육위원회가 들어서고 장기적 교육 비전과 제반 정책이 수립되는 과정은 조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2. 여전히 관료주의의 그늘에서 추진되는 ‘학교 없는 교육개혁’극복하기
국가교육회의에서 사회적 협의 과정을 진행하며 가장 아프게 생각했던 부분은 교사와 시민들의 냉소였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결국 교육부에서 정한 대로 할 거면서 시민을 들러리로 세우는 것 아닌가?’라는 말들은 기존의 정책 추진 과정이 깊이 패어 놓은 감정의 골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더욱 가슴 아픈 건 그러한 말들이 아프면서도 여전히 관료주의의 메커니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물론 유의미한 변화의 지점을 찾고 권고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야말로 새로운 교육을 상상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자유롭게 경합할 수 있는 장으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교육부에서 고민하고 있는 몇 가지 표현과 비율, 제반 보완사항 등을 두고 귀한 시간을 할애하여 숙의하는 과정은 때로는 무력감이 들었다. 아도르노가 이야기한 것처럼, 잘못된 삶에 좋은 삶이란 없는 것이다.
이제 교육 변화와 개혁의 지점을 OECD, 4차 산업혁명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살아가는, 교사들이 분투하는, 학부모들이 염려하는 그곳에서 찾았으면 한다. 한국의 많은 시민이 우리 사회와 교육에 희망을 잃어가는 것은 그들이 역량을 갖추지 못해서, 선택권을 가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지나칠 정도의 고스펙 역량을 갖추어도 이 사회의 잉여 인간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처절함에 있다.
3. 숙의 민주주의를 넘어 경합적 다원주의로 나아가기
마지막으로 국가교육회의가 근간으로 두는 숙의 민주주의에 자체에 대한 숙의를 요청한다. 숙의 민주주의는 ‘합리적 의사소통 행위이론’으로 유명한 철학자 하버마스의 논의에 크게 기대고 있다. 사람들이 의사소통 합리성을 갖추고 공론장에 모여 생활세계를 함께 숙의하고 결정한다는 그의 이론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몇 가지 전제를 지니고 있다. 첫 번째로 모든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합의를 할 수 있다는 점.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이성적인 사고와 행위는 무엇인지, 그리고 모든 사안에 하나의 합의를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많은 비판이 가해졌다. 예를 들어, 생의 마지막에 몰려 거리로 나서 몸의 투쟁을 하는 분들에게 이성적, 합리적 대화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리고 혹시 당신이 특정한 정치적 지향점이 비교적 뚜렷하다면 반대되는 신문과 방송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독하며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결국 숙의 민주주의는 공론장에 참여할 여건이 되는 특정 계층의 이익 추구나 최대 다수의 최대 이익을 실현하는 공리주의의 실현이 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단순히 숙의의 공론장을 열어주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교육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숙의 과정을 진행하더라도 단순히 희망자를 수용하는 것이 최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없는 소외된 집단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확성해야 한다. 학생은 물론이고 다양한 정체성―미등록 이주 학생, 탈북학생, 성소수자, 장애인 등―이 교차하는 삶을 고려하여 사회적 소수자들도 정당한 교육권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나아가 다수가 합의하지 못하는 것이라도 모든 인간에 그들이 포함될 수 있도록 중요한 교육적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비록 그것이 숙의 민주주의에 다소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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