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 이슈 / 새로운학교지원센터
‘핀란드교육의 새로운 시도, 현상 기반학습’을 주제로 11차 학습터가 열렸다. 류선정 소장(한국핀란드교육연구센터)의 강의로 진행된 연수는 현상 기반학습에 대한 소개와 함께 핀란드 학생과의 대화 및 질의응답으로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아무리 좋은 교육 방법일지라도 그 나라에 대한 역사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떼어놓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류선정 소장은 핀란드에서 ‘교육에서의 리더십’을 전공했고,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핀란드인 ‘빌푸’씨와의 결혼생활을 통해 핀란드에 대한 이해가 풍부했기에 현상 기반학습의 배경과 실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 이번 연수에서는 실시간으로 헬싱키의 하늘과 풍경을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핀란드 고등학생을 인터뷰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잠시 짬을 내어 회의에 참여한 빌푸 씨는 반가운 인사와 함께 시내의 풍경을 보여주었고, 류선정 소장이 유학 중 실습 과정에서 만났던 고등학생인 캐롤린은 질의응답을 통해 핀란드 고등학생의 일상이나 자신이 경험했던 현상 기반학습 중 인상 깊었던 주제와 그 경험에서 얻은 것, 진로 계획 등을 들려주었다.
2016년 8월, 10년 만에 개정된 핀란드의 새로운 교육과정에서는 1년에 최소 1번 이상 현상 기반학습을 실시할 것을 명시하였다. 현상기반학습(Phenomenon Based Learning)은 학습자가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Phenomenom)에서 영감을 얻어 학습주제가 정해지고, 기존의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과목 구분이 아닌(Subject-combine, Multidisciplinary) 하나의 주제가 프로젝트(Project)가 되어 수업이 운영된다.
현상기반학습의 ‘현상(Phenomenon)’은 같은 약자를 사용하는 PBL(Problem-Based Learning, Project- Based Learning)의 문제(Problem)처럼 해결해야 할 특별한 주제만 다루는 것이 아닌 학생들이 경험하는 삶의 소소한 일상 전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즉 문제라고 느끼지 않더라도 학생이 삶에서 경험한 현상들이 학습 주제가 된다는 면에서 좀 더 새로운 개념이라 하겠다. 학생들이 경험하는 모든 현상이 공부할 수 있는 소재나 주제, 공부하고 싶은 동기가 된다.
류선정 소장은 핀란드에서 경험했던 것 중에서 ‘기후 위기’를 주제로 했던 고등학교의 현상 기반학습의 사례를 자세히 소개했다. 각 과목에서 학생들이 관심과 흥미를 느끼며 학습을 이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합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중 기후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접할 때 생기는 두려움이나 우울함에 대한 대처나 해소 방안을 다룬다는 심리수업의 내용이 인상 깊었다. 핀란드에서는 심리수업을 중요하게 다룬다고 한다. 어떤 현상을 접하든 그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와 함께 자신의 심리를 이해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면, 심리수업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일 것이기에 이를 주목하고 있는 핀란드교육의 통찰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오래전부터 학점 이수제를 운영해 온 핀란드 고등학교에서는 학기를 시작할 때, 각 부스에서 교사들이 자신의 강좌에 대한 소개와 광고를 한다고 한다.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알리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그렇게 개설되는 과정 중에는 매우 매력적인 수업이 많았다고 했다.
인터뷰 과정에서 캐롤린은 자신이 경험했던 현상 기반학습 중에서 ‘미래세대로서 원주민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소통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를 경험했던 사례를 들었다. 이 수업 경험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진로를 고민하는 데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였다.
우리도 프로젝트 수업이나 주제 중심 통합수업 등의 형태로 비슷한 교육활동을 하고 있기에 핀란드의 현상 기반학습 사례가 낯설지 않았다. 현상 기반학습의 관점이 우리 새로운학교네트워크의 슬로건인 ‘삶을 위한 교육 미래를 여는 교육’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우리 아이들이 겪는 현상 모두가 중요한 교육의 주제이자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아주 오래된 명제이지만 또한 교육의 미래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 핀란드의 학교는 사업 결과 보고, 정산 보고 등의 보고를 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예산을 사용하고 집행할 뿐이며 그 또한 교사가 아닌 교장과 비서가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정말 그런지 되묻고 싶을 만큼 아주 낯설었다. 심지어 연간 5건 내외의 보고 문서를 생산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엔, 자조적인 웃음소리가 한숨을 대신했다. 두 나라 학교가 처한 환경의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자율성을 부여받은 학교와 교사에 관한 설명을 들으면서 이것이 핀란드교육의 현재를 만든 키워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심과 개인주의가 사회문화의 바탕인 핀란드,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율성을 발휘하며 주체로 살아가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교사 역시 자율적으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 것이다. 물론 ‘교육전문가로서 신뢰와 존경을 받는 교사’, ‘석사 이상의 학위과정을 거치는 교사’라는 요인이 핀란드를 교육 강국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신뢰 기반의 교사 자율성 부여’야말로 두 사회의 교육의 질을 가르는 결정적 잣대라고 볼 수 있다. 핀란드인들은 독립성을 중시하기에 부모와 교육자는 그 자녀나 학생이 아주 어려도 교육할 때 아이들을 지켜보며 기다리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관여하거나 돕지 않는다며 교육자들의 인내심을 치하했다.
핀란드 교육과정에서 직접적인 수행을 요구하는 서술을 사용하고 우리나라 교육과정 문서보다 훨씬 적은 분량의 교육과정이 제시되는 배경을 묻자, 현장 교사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만들어 왔고, 논의와 토론으로 합의한 개념을 모두가 이해하고 있기에 그런 서술과 분량으로도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결국은 교사의 전문성을 국가와 국민, 모두가 신뢰하기에 굳이 장황한 교육과정 문서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스웨덴과 러시아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1919년에야 독립 국가로 인정받은 핀란드는 입지나 외교적 상황, 역사, 자원이 부족한 조건에서 경제적 성장을 이룬 점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1.7배에 달하는 면적에서 서울 인구의 반만 사는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라는 면에서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핀란드의 낮은 인구밀도는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 경쟁보다는 협력과 화합을 강조하는 사회문화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돌아보면 혁신학교 운동은 기존의 학교, 학생, 교육,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존중, 협력, 존엄 등의 낱말은 글로벌 인재, 명품 수업, 세계 제일 대신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7차 교육과정 시기부터 진작에 학교와 교사에게 주었다는 자율권, 재량권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믿고 맡기지 않기에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류선정 소장의 지적처럼 ‘일부 교사들은 지시를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학교 교육에서 자율성을 주는 것은 우리 교육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자율성은 어릴 때부터 교육되어야 하므로 학생들이 독립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켜보며 필요할 때만 지원하고,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수업, 학교 교육과정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류선정 소장이 소개한 현상 기반학습은 ‘삶을 위한 교육 미래를 여는 교육’의 실천에 깊이를 더할 흥미로운 수업 방법이었다. 신뢰 기반의 자율성을 부여받은 학교와 교사, 독립할 수 있도록 양육되고 교육받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나 방법 모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전문가로서의 자율성은 엄중한 것이어서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라는 그의 말이 늦은 시간에 이렇게 모여 공부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들렸다. 지루한 코로나19 전염병 시대를 뚫고 연결된 새넷 학습터야말로 ‘교육 대전환’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좋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교육 대전환 시리즈 첫 번째 시간이었다.
들어가는 글_2021 새넷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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