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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Nov 02. 2021

박노해 「걷는 독서」

이 책 한 권! / 신혜경_보평초 교사


가까운 거리의 나들이에도 가방 속에 어김없이 책 한 권이 나와 함께 동행한다. 여행 짐을 꾸릴 때도 입을 옷보다 읽을 책 선택이 더 고민이다. 읽을 수 없을 때는 듣는다. 현장을 가서 직접 보는 것에도 게으르지 않다. 사람, 문학, 영화, 음악, 미술 분야도 가리지 않고 폭식한다. 때론 아니 자주 이런 폭식 습관으로 인해 소화불량에 걸린다. 그럴 때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 속의 응축된 시어는 나에게 꼭 필요한 치료제가 된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자신감 갖기가 아닌 자신이 되기, 일을 사랑하지 말고 사랑이 일하게 하라, ‘힘들어야 힘이 들어온다.’,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은 없다. 좋은 삶이 곧 길이다.’라는 글들이 치료제의 주성분이다. 


너무 많이 읽고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이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가?
잠시도 내면의 느낌에 머물지 못하고 깊은 침묵과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있진 않는가?


  시인이 묻는다. 그렇다. 그러하기에 내가 본 것과 들은 것과 읽은 것들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보다 나의 생을 빼앗고 있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다. 외면했던 나를 직면하게 하고야 만다. 그 따가운 질문에 시인의 말대로 읽다가 아니라 나의 삶을 돌아볼 수밖에 없는 읽어버렸다 를 체험하게 된다.


 

‘적게 말하여라, 많은 것을 적은 말로 하여라’라는 시인의 각오와 ‘자신의 말과 글이 세상에 소음과 잡음을 더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자기성찰 끝에 남겨진 글과 사진이기에 <걷는 독서>는 그 자체가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라는 모습을 띠고 있다. 푸른 빛의 천으로 감싼 책의 외양이 단순하다. 단순해서 더 시선을 끈다. 책 속 내용은 오랜 세월 삶을 벼려 온 단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들로 채워져 있다. 크기는 작지만, 두께는 800쪽이 넘은 이 책의 글과 사진을 보며 내 삶도 단아해졌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내게 부족한 것을 동경한다고 했던가? 늘 비우기보다 채우기를 애쓰고, 작은 시련에도 애면글면하고, 단아함과는 거리가 먼 나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책을 만난 건 서촌에 있는 나눔 문화재단 ‘라 카페 갤러리’의 <걷는 독서> 글·사진전에서였다. 라카페는 짙은 초록색 배경 아래 야생화 화분이 싱그러움을 더하고 사람 손길이 찐하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나눔 문화의 연구원들의 차 한잔과 회보를 건네는 표정과 손길에서 남다른 태도가 느껴진다. ‘사랑하는 일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라는 박노해 시인의 글이 현실에 녹여진다면 바로 저런 모습일 거란 생각이 절로 든다. 공간을 완성하는 건 사람이다. 


  군사독재 시절 무기수가 되어 한 평짜리 어두운 감옥 독방에 갇혀 걷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던 시인에게 ‘걷는 독서’만이 갇힌 몸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고 한다. 그가 걷기에 대한 허기로 먹어 치운 책과 깊은 사유는 그대로 나무가 되었고 <걷는 독서> 전시회 공간에 있는 나는 시인이 오랜 세월 가꾸어 놓은 숲길에 초대된 것에 감사했다. 좋은 글과 사진은 나 자신과 얼마나 찐한 이야기로 이어지는가로 정해진다. 시인이 멈추어 서서 찍는 사진은 나의 이야기로 연장선이 길게 그어진다. 연장선의 끝에서 겹겹의 기억이 소환된다. 사진 옆의 밀도 있는 글에서도 연장선은 어김없이 길게 그어져 발을 멈추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박노해 시인은 말한다. ‘국경 너머의 고통과 슬픔을 얼마나 공유하느냐가 지구 시대 인간성의 크기’라고 말이다. 아……간장 종지만한 나의 인간성의 크기가 부끄러워진다. 햇빛 쨍한 여름날 라카페 방문 이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적혀있는 나눔 회보가 집으로 오고 있다. 나눔이 필요한 지구촌 소식과 정치적인 이슈들을 넘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 주는 소식들로 가득하다. 나의 시야를 확장해 주고 공유, 연대의 의미를 새기게 해 준다. 세상일에 눈과 귀가 번쩍 뜨인다. 간장 종지만한 마음 씀의 크기를 김치보시기만큼이라도 키우려면 이런 앎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는지……. 일상에 젖어 다시 눈을 감더라도 나눔의 소식지를 받을 때, 서촌 나들이길 라카페에 들를 때, <걷는 독서>와 함께 데려온 나눔 재단 책을 읽을 때 감았던 눈은 다시 떠질 것이다. 그런 시간이 겹쳐지면 정의롭지 못한 곳에 시선과 관심을 돌려 적당한 분노를 표할 수 있으리라. 세상의 폭력을 없애는 일이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 되리라. 그 앎의 연장선이 길어져 나의 선의의 그릇이 커지길 바래본다. 혹여 세상과의 연결의 선이 가늘어 좀 더 튼튼하고 굵은 동아줄이 되길 원하는 분이 계신다면 나눔 재단의 책을 권하고프다. 맑은 가을날, 서촌 라카페 방문도 권한다. 만약 함께 가길 원하는 분이 계신다면 기꺼이 동행도 가능하다는 것을 살짝 고백한다.


<걷는 독서와 더불어 라 카페 갤러리에서 데려온 책>


+2021 가을호 목차+


들어가는 글_2021 새넷 가을호


1. 시론


2. 포럼 & 이슈


3. 특집


4. 전국 NET


5.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6. 티처뷰_teacherview


7.이 책 한 권!




+과월호 보기+


2021년


2020년


2019년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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