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찾아올 퇴직을 새로운 시작으로 맞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를 해두자.
21세기를 눈앞에 두었던 90년대 후반, 대한민국은 IMF 외환 위기라는 큰 재앙을 만났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등장했고, 평생직장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이후로 10년 뒤 또다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또 한 번 폭풍을 감내해야 했다. 근래에 임금피크제가 시행되어 은퇴의 시기가 늦춰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은퇴가 연장되리라 믿는 직장인은 별로 없다. 오히려 창창한 나이에 은퇴를 당하고 불안한 노후를 보내느니 자발적으로 퇴직을 선택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렇게 빠른 퇴직을 하고 다시 경제활동에 뛰어드는 현상을 가리켜 '반퇴(半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극소수의 고액 연봉자 직장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반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20세기만 하더라도 정년퇴직 이후의 삶은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자녀들도 일찍 낳았기 때문에, 은퇴 무렵이면 이미 자녀 혼사를 치른 경우도 많았다. 평균수명도 은퇴연령 이후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남은 것도 아니었다. 취미나 소일거리로 인생의 황혼을 마무리하면 되었다. 그랬던 삶이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인생의 절반을 지나는 시점에 이른 퇴직을 고민하게 되었다. 아직도 자녀들은 품을 떠나지 않았고, 부모님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연금을 받는 연령에도 아직 이르지 못했고, 연금만으로 살아가기에는 경제적 여유도 부족하다. 경제적 안정이 반퇴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큰 목적이 되었다.
실제 통계청의 데이터를 보더라도 평균 연령은 2008년 37.0세 → 2017년 41.2세로 높아졌고, 인구의 정 가운데에 해당하는 중위연령은 2008년 36.7세 → 2017년 42.0세로 격차가 더 벌어진다. 그만큼 고령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얘기다. 인구의 가운데 계층이 30대에서 40대로 접어든 것이다. 15~64세 생산 가능 인구를 100명으로 보았을 때, 14세 이하는 2008년 23.8명 → 2017년 18.0명으로 줄어들고, 65세 이상은 2008년 14.0명 → 2017년 18.8명으로 늘어났다. 아이들은 줄고 노령인구는 늘어나고 있으니, 앞으로는 직업의 변화도 중장년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를 비롯한 지자체에서도 시니어계층의 창업과 창직을 돕고 있는데, 가령 서울시에서는 '50 플러스 재단'을 설립하여 다양한 공익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꼭 경제적 여유만은 아니다. 우리보다 은퇴 준비에 더 신경을 쓰는 미국인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아래의 기사를 보면, 수입 금액 못지않게 자신의 여가 시간의 보장 또한 중요한 문제임을 보여준다. "최근 국립노화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62세 미국인 중 35%가 정규직이며 14%는 시간제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68세 경우 풀타임 종사자가 13%로 급격히 줄어드는 반면 파트타임 종사자는 19%로 늘어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시니어들이 꼽는 준은퇴의 장점은 돈 버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교류를 통해 일상을 활기차게 보낼 수 있고 노동시간이 짧아 스트레스도 덜 받는 점을 꼽았다. 따라서 퇴직 후 일자리를 찾을 때는 가능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비결이다. - 미주 중앙일보 2016.10.17"
반퇴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직장을 다니고 있어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IMF사태와 금융위기 때 그 불안한 미래를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았다. 내가 아무리 능력이 있고 열정이 있다 할지라도 외부에서 닥쳐오는 위기를 막아내는 것은 개인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기회를 찾았을 때 직장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직장을 떠나서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준비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가능하다면 퇴직하자마자 계획했던 일을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자면, 직장을 다닐 때 새로운 시작의 준비를 해야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또 다른 배움을 병행하는 것은 녹록지 않은 작업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조차도 버거워 야근으로 버티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보다 먼저 살펴볼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확인하는 일이다. 직장에서 하는 일이 마음에 드는 일일 수도 있고, 지금의 직업을 기반으로 다른 기술이나 역량을 추가해서 퇴직 이후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그렇게 현재의 내 모습을 다시 확인한다면, 매일 출근하는 기분이 달라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의 일이 미래의 내 꿈에 대한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만큼 일을 하겠다는 마음과 내 역량을 키우기 위해 일을 하고자 하는 열정은 정말 큰 차이가 있다.
세계적인 경영 구루 찰스 핸디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그 스스로 대기업과 교수직이라는 코끼리들의 세계를 버리고, 직접 프리랜서 벼룩이 되어 살아가는 포트폴리오 인생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의 성공담을 '코끼리와 벼룩'이라는 명저를 통해 생생한 증언으로 들려주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변화경영전문가를 선언했던 고 구본형 선생님도 자신이 직장인이었던 IMF 위기 당시에 생존을 위한 변화를 부르짖으며,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책을 통해 불타는 갑판에서 희망의 바다로 뛰어들라고 하였다. 1988년 영국 스코틀랜드 근해 북해 유전에서 발생한 폭발사고에서 생존한 앤디 모칸의 비유를 든 것이다. 불타는 갑판에서 죽음만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한 줄기 희망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 것인가 선택을 해야 한다.
반퇴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자. 경제적 안정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남은 생애 동안 어떤 삶을 보낼지 생각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반퇴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내 목표를 설정해 보라는 뜻이다. 직장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제한적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능동적으로 해보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비롯하여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들을 모아 본다. 가슴 설레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면 회사를 떠나는 것이 두려운 일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꼼꼼한 계획과 철저한 준비를 해보자. 뜻이 있다면 그곳에 도움의 손길도 함께 할 것이다.
[3줄 요약]
- 빠른 퇴직 이후 제2의 활동을 시작하는 반퇴의 시대가 찾아왔다.
- 계획없이 퇴직을 기다리지 말고, 내 목표를 미리 설정해야 한다.
-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떠나는 것은 두렵지 않고 가슴 설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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