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 다른 시선(18, 마지막편) - 영화 <칠곡 가시나들>
할매 세 명이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오릅니다. 내려서는 힘겹게 계단을 딛고 어디론가 향하네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비까지 주룩주룩 내립니다. 도착한 곳은 계곡에 위치한 폭포. 장대한 물줄기가 힘차게 뿌려지고 있네요. 장관입니다. 하지만 웬일인지 할매들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네요.
“(비가 와서) 아깝다. 저걸 못 맞으니까. (비만 오지 않았으면) 폭포에 들어가 시원하게 맞을 텐데.”
할매 한분이 약간의 한숨 조로 이렇게 말하자, 다른 할매가 말을 잇습니다.
“여기 언제 한번 (다시) 오겠노.”
그러자 두 할매가 합창하듯이 이렇게 소리치네요.
“이제 죽어도 못 온다. 우리 한번 가면 다시 못 온다.”
그리곤 허탈한 웃음으로 덧붙이네요.
“안녕~”
인류의 모든 역사를 들여다보아도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예외는 없죠. 삶을 죽음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람은 출생 시점부터 자신만의 생명 시계를 지니고 태어나며, 이 시계는 언제 어디서든 죽음을 향한 카운트 다운 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은 죽음을 기다리며 사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한한 삶의 시간들이 더 소중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은 늦은 나이에 한글 공부를 하는 할매들의 이야기입니다. 문맹이었던 할매들은 읍내 간판을 읽기도 하고, 자신의 이름과 자식들 그리고 손자, 손녀의 이름을 써보며 신기해합니다. 늦게 나마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이 이런 큰 기쁨을 가져다주며 더불어 사는 게 더 재밌어졌다고 말합니다.
이런 할매들과는 별개로 OECD 자료에 의하면 부끄럽게도 대한민국의 노인 자살률은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9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우리나라의 전체 자살률은 약 26.9명을 기록하고 있는데, 10대부터 50대까지가 약 23.2명 임에 반해, 60대 이상은 49.1명으로 2배를 넘고 있습니다. 또한 노인의 11%는 60세 이후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답했으며, 그 이유로는 역시나 경제적 빈곤이 40%로 가장 높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고생을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노인이 되어 맞이한 가난은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칠곡 할매들의 일상을 보면 경제적으로 크게 부유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시골의 허름한 집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으며, 동네 냇가에 모여 빨래를 함께 빨래를 하며 막걸리 한잔씩 걸치기도 하고 봄이 되면 나물을 캐기 위해 들로 나서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돈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부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돈의 많고 적음이 노후 생활에 미치는 영향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경제적 소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대로 부자가 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벌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며, 자본주의 특성상 현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일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돈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할까요?
저는 제 졸저 <돈걱정 없이 잘 살고 싶다면>에 나오는 ‘최경자(최소한의 경제적 자유)’를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노인이 되었을 때 내가 이 정도면 ‘돈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란 ‘최경자’ 기준을 정하고 젊을 때부터 이를 준비하는 겁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최소한’입니다. 여유가 많거나 혹은 희망치를 많이 넣어 기준을 설정할 경우 우리가 원하는 목표치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이 정도라면 돈에 대한 걱정을 안 해도 되겠다’가 바로 최경자의 기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월 250만 원이 최경자의 기준이라면 기본적인 연금(국민연금,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 외 추가적인 수입 포트폴리오를 마련함으로써 해당 금액이 지속적으로 내 수중에 들어올 수 있도록 세팅해 놓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조금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 때문에 나의 일상이 흔들리는 경우는 없게 되는 거죠. 특히나 노인 세대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거고요.
최경자가 준비된다면 이후에는 노후를 행복하게 만끽하며 살면 됩니다. 칠곡 할매들처럼 한글 공부에 매진해도 되고, 시를 쓰며 그동안 몰랐던 세계를 경험해도 좋을 겁니다. 사실 인생이란 게 솔직히 별 거 없지 않을까요? 갈 때 가더라도 재밌고 즐겁게 살다 제 수명을 다하고 가는 것, 그게 인생의 큰 목적이자 살아가는 이유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박금분 할매는 <내 마음>이란 시를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몸이 아푸마
빨리 주거여지 시푸고
재매끼 놀 때는
좀 사라야지 시푸다
내 마음이 이래
와따가따 한다
특별히 몸 아픈데 없이 건강하고 또 하루하루가 재밌고 즐겁다면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지요. 사는 게 신나는데 당연히 오래 살다 가야 하지 않을까요? 갈 때 가더라도 말이죠.
※ 이 글은 2022년에 출간될 책 <같은 영화 다른 시선(가제)>의 초고입니다.
"경제·경영·인문적 삶의 균형을 잡아드립니다"
- 재무 컨설팅, 강의 및 칼럼 기고 문의 : bang1999@daum.net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 목마른 어른들의 배움&놀이터
- 돈의 흐름을 읽는 습관(https://cafe.naver.com/moneystreamhabit) -- 경알못 탈출 100일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