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따풀 2024: 함께 말 차리기
얼마전 최봉영 선생님께 받은 도표 <한국말의 바탕 논리식>을 스스로 묻고 따져 풀어 봅니다.
한 발 떨어져서 그림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를 꼽아 보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임자인 '나' 그리고 인식의 경계와 단위가 되는 '것'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담은 '쪽'을 꼽았습니다. 먼저 각각의 뜻을 써 보았습니다. 먼저 좌측 테이블에서 하늘색(혹은 민트)으로 칠한 셀은 도표의 내용을 그대로 쓴 것이고, 나머지 칸은 제가 직관적으로 써넣었습니다. 반면 오른쪽은 표준국어대사전 풀이 중에 골라서 썼습니다.
그러고 나서 양자를 대비할 수 있도록 붙여 둡니다. 작년 말 <사람은 어떻게 말이 뜻을 갖게 만드는가?(上)>를 쓸 때 그렸던 그림을 떠오르게 합니다.
같은 글에서 찾은 최봉영 선생님의 그림이 또 다른 것을 말해줍니다. 물론, 줏대와 잣대는 다른 말이지만, 사실상 불가분의 관계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들 말들은 최봉영 선생님을 뵙기 전에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잘 쓰지 않던 표현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해 편안하게 인지하게 되는 데에는 먼저 친해지는 기간이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사실 오랫동안 다들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드러내고 말하기가 꺼려진 진실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다소 온건한 문제 제기로 <정보홍수시대에 문해력은 어떻게 갖출 수 있는가?>를 쓴 일이 있었습니다. 글을 쓴 동기를 감정적인 언어로 바꿔 보면 이렇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믿고 속아 자기에게
불리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그런데, 지난 글 <한국말을 쓰면 헤겔 이전의 철학은 알 필요가 없습니다> 내용을 떠올려 보면 역사와 문화를 읽는 눈이 부족했거나 보지 않고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서구는 아주 오랫동안 신을 중심으로 하는 왜곡된 사고관을 지배 계급들이 활용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종교 국가는 아니지만 개신교 교도들을 보면 중세 교회에서 활용해 온 권력이 현대에도 응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그리고 학교 교육은 차이를 무시한 동일성에 입각한 교육이란 사실은 제 의견이 아니라 서적과 강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 인생책 <대체 뭐가 문제야>의 저자 제랄드 와인버그는 질문하지 않는 태도의 주범을 교육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작은 칠판 대신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에서 썼듯이 WHY의 저자 윤지영 님은 이를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잣대와 줏대가 약한 사람들을 지배하거나 이러한 약점(?)을 활용해 이익을 추구하는 체계가 다름 아닌 자본주의에서 작용하는 강력한 힘이라는 것이죠. 긴 시간이 걸렸지만 최봉영 선생님이 차리는 일, 임자 그리고 줏대와 잣대를 왜 강조하셨는지는 이제야 터득한 듯합니다.
(86회 이후 링크만 표시합니다.)
86. 열린 우리주의(홍익인간)와 닫힌 우리주의(집단이기주의)
87.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 밑바탕 마음에 대해서
89. 글 내용에서 내 경험과 공통점을 찾는 일은 대칭적인가?
94. 줏대가 없다면 모든 것이 완벽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