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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ys Apr 09. 2021

故 류지남 시집 <밥 꽃>, <마실 가는 길>

이 책 한 권! / 정유숙_소담초등학교 교사

선생의 눈길이 닿을 그곳
-故 류지남 시집 <밥 꽃>, <마실 가는 길>-
정유숙_소담초등학교 교사

 공립학교 교사로서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할론에 대한 당위를 다루는 설교라면 나 역시 동요할 마음이 별로 없다. 변화하는 세상이 요구하는 교사상에 구색을 갖추느라 너덜너덜해진 심신을 돌아보자면, ‘방역도 교육이요, 복지도 교육이요’ 하는 큰 말들이 부끄럽지만, 한시적 거리두기가 필요한 심사다. 처음이든 한때든 기억을 솎아내다 보면 선생 노릇 제대로 해 보고 싶은 요량이야 누군들 없을까. 녹록지 않은 현실에 그 마음 둘 곳을 살피지 못하다 보니 형편들은 저마다 달라졌을지언정 말이다. 입 찬 소리로 핑곗거리를 찾아다니다 그만 한껏 나를 작아지게 하는 시를 만난다.


세상에서 가장 배우기 쉽고 아름답다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배우는 시간,
모음은, 마치 홀몸으로도 잘 사는 엄마처럼 혼자서도 소리가 잘 나서, ‘홀소리’라 하고,
자음은, 엄마 없으면 못사는 어린애 같아
 혼자선 소리를 못 내고 어미 소리에 닿아야만
소리를 낼 수 있기에, ‘닿소리’라 한단다
 목청 한껏 돋우며, 신나게 설명을 해대는데
어느 결엔가 슬쩍 고개 돌리는 아이가 보였다
 얼마 전, 급작스레 엄마를 여읜 아이였다
 미닫이문들 닫으며 교실을 나서는, 참
생각 없는 국어 선생의 등줄기가 서늘했다
 며칠 동안 아이 얼굴과 자음이 겹쳐 밟혔다
꽃, 별, 산들바람, 엄마, 사랑, 소나기, 메밀꽃
이런 말들이 왜 아름다운지
물, 불, 풀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느 순간, 머릿속에 반짝 별이 떴다
그래, 저 말들이 빛나는 건 모음 때문이 아니라
 그 앞에 가만히 소리 없이 웅크리고 있던
자음들 때문이었구나, 이와 입천장에 부딪혀
여기저기 상처 난 소리들 때문이었구나
 ㄲ, ㅊ/ㅂ, ㄹ/ㄱ, ㅁ/ㅎ, ㄴ
 이런 소리들이 서로를 밀고 끌어가는 동안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강물이 흘렀구나
 내 다음 시간엔 교실 문 다시 열고 들어가
자음의 아름다운 힘에 대해 말해 주리라
 혼자서는 제소리 내지 못하고 주눅 든,
 조금 모자란 듯한 것들이 모여 살아가며
서로를 부추기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작고 못나고 여린 것들의 힘에 대하여

 - 류지남, 「자음의 힘」-



교육의 본질을 찾고 새로운 학교를 꾸리자며 분주했던 일상이 교사들에게만 통용되는 학교 안의 문법과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시를 읽으면서 “등줄기가 서늘하다.” 논쟁의 중심에 아이들을 두자는 언설에서, 통틀어 일컫는 무리의 아이들이 아니라 이름 하나하나와 상황 하나하나를 지닌 아이가 떠오르지 않는다. 문득 허울 좋은 구호만 외치고 있지 않은지 마음이 어지럽다.




 시인은 시종일관 작고 여린 것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존재와 세계를 가만가만 품는다. 그가 기억하고 보듬는 것들은 대체로 조명이 없는, 일상적인, 경계 밖의, 가뭇없는 것들이다. “소리 없이 웅크리고 있던” “상처난 소리들”이 있기에 비로소 “빛나”는 “저 말들”. 그 관계의 본질을 발견해 내고 시로 길어 올릴 수 있는 그만의 따뜻하고 놀라운 시선은 그의 교육관에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무심코 행한 말과 행동, 미처 헤아리거나 닿지 못한 부족함으로 “머쓱해진 손”과 “헛헛한 가슴”으로 “덩그러니 남겨”(「운칠기삼 농사」)진 기분. 아이들 앞에 서 본 어른이라면 모를 리 없다. 그 미안함을 단단히 붙잡아 “쓸쓸한 등짝 다시 짊어진 채/홀로 나오는 목욕탕//이제부턴/아이들의 상처 난 날갯죽지/함부로 후려 꺾지 않으리라”(「등짝에 대하여」)는 다짐에 덩달아 고개를 주억거려본다. 그러다 “네 마음 밭에 밤이 어떻게 내리는지도 모르며/그저 야간자습이나 꼬박꼬박 열심히 해대던,/참 엉터리 선생을 자퇴”(「배추밭에 앉아 자퇴서를 쓰다」)시킨다는 다짐 앞에서는 내 서 있는 곳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서성였다.





 시대 정신과 일상의 의무 사이에서 “부끄러운 나를 확 찢어 버리지 못한 채/밥그릇에 갇혀 끄윽 끄윽 울던 날”(「철밥통」)을 버텨온 시인은 일상에 뿌리를 둔 잔잔한 말로 세상 향한 목소리 내는 일을 잊지 않는다. 그는 “다시금 착한 사람들 목숨에 가까워질/미천하고 크낙한 불 그릇이여, 낮게 빛나던 순하디 순한 혁명”(「종이컵 혁명」)이라며 광장을 메우던 촛불 혁명의 엄중한 무게를 한낱 종이컵에 빗댄다. 본질과 주변, 귀추와 경중의 경계를 뒤집는 이 눈부신 역설은 삶의 태도로서 사물을 천착하지 않고서는 쉬이 견지할 수 없는 발견이다.


 “4・3은 이제 사삼이 아니라 사아삼이라고 불러야 된다고, 가슴을 우선 활짝 펴고, 입도 좀 크게 벌린 다음, 당당하고 길고 외쳐야”(「4・3을 부르는 법」) 한다는 그의 언어는 음량을 높이기 위해 확성기를 굳이 가져다 대지 않아도 가슴 묵직한 진동으로 찾아온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쌀값이 똥값이라서 좋은/우리나라, 좋은 나라”(「쌀값의 노래」)라며 읊조리는 농심의 상황은 대의명분을 담아 핏대 세우거나 요란하게 들춰내지 않더라도 한술 떠낸 밥숟갈에 턱턱 부채감을 얹는다. 작은 말로 뭉근히 시작해 시나브로 담아낸 이야기가 이내 삶을 흔드는 것이 그의 시다. 기교도 장식도 없는 담백한 시어와 시문이 먹먹함과 머뭇거림을 동반하는 까닭은 소외된 것에 눈길 두며 끊임없이 마음을 쏟아온, 삶으로 체화된 화법과 일관된 생의 자세가 전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시에 자주 등장하는 ‘등’과 ‘뒤’는 그의 시 정신을 드러내는 정수다. “파도처럼 들썩이”며 “늘 어둑어둑해지기 쉬워서/오 촉 등 하나쯤 걸어 두어야 할”“깊고 어두운 곳”(「등」)으로서의 등은 사는 내내 삶을 곱씹고 돌아보는 그의 성찰의 세계를 엿보게 하는 치열한 은유다.
“뒤를 잘 보아야 건강한 것이라고,/뒤가 아름다워야 잘 사는 것이라고/세상은 언제나 뒤를 치켜세우지만/정작 뒤를 잘 돌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뒤」)


 그의 눈이 닿는 곳과 그의 시는 죄다 순하고 착한데 어째서인지 그는 연신 미안해한다. 그 사려 깊은 시어에 숨어있는, 삶의 마디마디에 새겨놓고 부둥켜안은 슬픔과 아픔의 크기에 놀란 독자는 이내 자신의 뒤를 돌아보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독스레 깊은 이 고민과 자의식을, 여리고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 건네는 끊임없는 애정을 통해 확인하는 순간, 읽는 이는 ‘뒤’를 돌아보는 이가 된다. 큰 것을 외치는 사이 놓아버린 작은-그러나 큰 것-들을 그리며 소스라치는 것이다.



 한 세상 사는 모습이야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우리 하는 일이 내내 아이들 앞에 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라면, 선생의 눈길이 응당 머물러야 할 곳은 어딜까. “나를 하염없이 구부리는 일”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구부러진다는 것」)이라면, 그 대상은 과연 누구여야 할까. 안락주의와 중산층의 계층성에 편입된 교사가, 양극화된 사회에서 참말로 들여다봐야 할 곳은 어딜까. 그의 시가 그러하듯 배경과 그늘이 필요한 것을 찾아 서로를 부추기도록 쓰다듬고, 돌아보고, 오래 기억할 것을 다짐하며 기꺼이 자세 고쳐 구부러져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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