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 송순재_(전) 감신대 교수
우리 사회에서 아이의 생각하는 능력은 정당하게 대우받고 있을까?
아이들은 같이 놀고 싶어 하고, 같이 일하고 싶어 하고, 상대(친구든 어른이든)와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존재이다. 어린이가 어른에게 종속된 소유물이 아니라 그 자체 독립적이며 자유로운 존재라는 인식은 루터(Luther)와 코메니우스(Comenius), 마침내 루소(Rousseau)에게 이르러 하나의 독립적 주제로서 명확히 다루어졌고 페스탈로치(Pestalozzi)와 프뢰벨(Fröbel)은 이 사상을 개화시킨 이들이다. 여기서는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로 ‘야누쉬 코르착’(Janusz Korczak)의 논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첫 번째 주제는 어린이 존중과 어린이의 자기 존중이다.
야누쉬 코르착(1878-1942)은 유대계 폴란드인으로 의사이자 교육자로서 평생동안 어린이를 돌보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헌신하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자기가 돌보던 아이들이 독일군에 의해 가스실로 송치될 때 함께 자발적 죽음의 길을 택했던 분으로 알려져 있다. 코르착은 ‘어린이의 변호자’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어린이를 존중해야 할 의무’에 대해서 설파했다. 그는 교사들에게 ‘아동과 관계 맺기’라는 문제에서 교사 나름대로 선 규정한 멋진 교육학적 구상을 교육 현실 앞에서 내려놓으라고 요구한다. “원하고 경고하고 요구할 권리”를 가진 아이, “자라고 성숙해질 권리를 가지며, 성숙해지면 열매를 맺을 권리”를 위한 투쟁을 통하여 “어린이를 위한 자유대헌장”(Magna Charta Libertatum)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구로 표현해냈다.
(1) 자기 죽음에 대한 어린이의 권리
(2) 오늘 하루에 대한 어린이의 권리
(3) 자기 모습대로 있을 수 있는 어린이의 권리
두 번째 주제는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어린이 그리고 그에 알맞은 교육 방법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참신하게 생각하는지 또 어떠한 교육적 도움이 필요한지에 관해 마르틴 바겐샤인(Marin Wagenschein, 독일 김나지움 물리 교사이자 물리학자)은 이렇게 말한다.
“학생들이나 문외한들과의 조용한 대화를 통해 시도한 지난 수년간의 경험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양적으로 가르치는 도구의 영역으로 지나치게 빠르고 성급하게 들어가는 것, 흉내 낸 전문 용어와 단지 기능적으로 이용되기만 한 공식들, 명백하게 오해된 모형 이해, 그 같은 강의는 저학년에서부터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자연현상과의 관계를 끊어 버린다. 그것은 현상들과 언어에 대한 감수성을 똑같이 감소시킨다.”
아이들의 통찰력은 신선하다. 생각하는 힘은 적절한 교육적 도움을 받을 때 그 진면목이 드러난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최대 과제요 교육의 성패를 가늠하는 잣대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주제는 맹모의 교훈을 통해 바라본 개성의 발현과 교육환경에 대한 오해이다.
우리 사회에서 옛부터 전해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이야기는 보통 아이를 키울 때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할 때 즐겨 입에 올리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 이야기는 우리 전통 사회에서 글공부를 소중히 여기는 반면, 상업이나 공업 등 다른 실제적인 것들은 그보다 못한 일로 여기는 풍조를 반영해 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사고방식이 지금도 사람들의 의식을 여전히 뿌리 깊게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허구를 간파하고 다른 길을 걸어가고자 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잘 나가는, 존경받는 직업에 목을 거는 사람”이 아니라, “개성을 발현하고 어린이들이 스스로 진정성 있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인식 위에서 다양한 만남과 대화, 여행과 육체적 노동, 음악회와 각종 전람회, 박람회 등에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고, 아이들이 크건 작건 수많은 경험을 거리와 시장터, 들판에서 쌓아가도록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를 바라보기 위한 철학도 있어야 하고 방법도 좋아야 한다. 덴마크에는 ‘에프터스콜레’(Efterskole)라는 학교가 있는데 청소년들이 중등교육 단계에서 1년 정도 자기 탐색과 관심 분야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교육 경로이다. 이를 서울시교육청에서도 도입했으나 관심을 보이는 학부모는 극소수이고 대다수는 “한눈 팔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가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다양성의 부재! 우리나라 교육의 난점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 교육의 문제를 풀기 위해 그동안 기울여진 노력의 대부분은 제도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그동안 이루어진 숱한 제도개혁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 이유는 어린이 그리고 약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있어서 상당 부분 미숙하고 때로는 심각한 난점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문제에 대한 정당한 이해는 ‘어른을 바라보는 어린이의 시각’을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시각’과 동등한 차원에 올려놓을 때 비로소 대화적 관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들어가는 글_2021 새넷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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