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그러다 나는 내 노트북을 아예 여자 쪽으로 밀쳐버렸다. “이 노트북 가져요 가져. 당근에 팔던지 중고딩나라에 내놓든지 맘대로 해요. 저는 한숨 잘 거니까요. 우리들의 블루스인지, 환장 블루스인지 실컷 보세요.”라고 귀찮은 듯이 말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팔짱을 걸어두고 축축해진 등을 시트에 구겨 넣었다. 나는 잠을 잘 필요가 있었으니까.
눈을 감으니 최근 일어난 모든 사건들이 하나씩 차례대로 재생됐다. 먼저 한 달 전, 회사에서는 안이사에게 제안서 작업 지시를 받았으나, 태생적인 게으름 탓에 또한 제안서 작업 따위는 전혀 해보고 싶지 않아서 그 일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기한 내에 해내지 못했으며 친한 동료인 김대리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오히려 믿었던 그에게 배신을 당했다.
김대리는 내가 맡은 일을 남몰래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백업이라고 가장하며 용의주도하게 작업을 펼쳐나갔으며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 과정에서 나와 연관을 맺고 있던 사람들을 포섭하고 그들도 따라 공범이 되었다. 나는 결과적으로 제안서 작업 프로젝트에서 고의적으로 배제되었고 그 실패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회사까지 그만둬야 했다.
그리고 김대리에게 복수하겠다고 우연히 그의 집에 침입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나와야 했고 집에 돌아오는 길, 성수대교에서는 누군가 자살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파괴된 살림살이를 목격하며 절망했고 그 때문에 어디로든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곧이어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해로 향하는 버스에 앉았고 옆자리에는 제멋대로 불쑥 나대는, 마치 토끼처럼 깡충거리며 옆구리를 찔러대는 젊고 예쁜 여자가 애인처럼 내 노트북을 차지하고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 배터리는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점점 닳고 있다.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 아닌가.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존재가 점점 타인의 것이 되어간다. 지금 그것이 내가 속해 있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주도권 싸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같이 봐요. 잠도 안 오면서 눈 감고 있는 척하지 말고요. 다 알아요. 지금 실눈 뜨고 이쪽 힐끔거리고 있죠?”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입술 표면이 지나치게 까끌거려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의 말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건 달라지진 않아요 세상은 우리가 관찰하건 그렇지 않건 똑같다고요. 슈뢰딩거의 고양이 알아요? 오래전에 죽어있지만 동시에 살아있기도 한, 그 고양이 말이에요. 관심의 대상과는 상관없어요. 어쩌면 우리가 없어도 이 세상은 보란 듯이 잘 살아갈 거예요. 그러니까 현재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미래에서는 벌어질 만한 일들이 아무런 연관성을 갖지 않은 채 실행된다는 거예요.”
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 관찰? 슈뢰딩거의 고양이? 관련이 없다? 이 여자 혹시 사이비 종교 단체에 몸담은 자가 아닐지 의심스럽다. 현재와 미래는 어떤 교각으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런 다리는 세상이 무수하게 많다. 쉽게 건설되고 쉽게 무너져 내린다. 그런 이야기는 나도 안다. 그렇다면 여자가 말한 것처럼 내 삶이 어느 순간 급격히 무너져 버린 것은 불가피하게 벌어진 어떤 필연적인 원인이라는 건가, 우연의 공작이라는 건가? 그 필연에 포함된 것들, 혹은 우연적인 순간들의 중첩, 거기에서 결여된 것들은 무엇일까. 그것을 해석할 능력이 나에게 있을까.
“저는 드라마를 즐겨 봐요, 왜냐고요? 삶은 밋밋하고 따분하니까요. 강바닥에 떠다니는 수초들의 생태계와 같죠. 이리로 저리로 의지 없이 떠다니기만 해요. 반면에 드라마에는 탱탱하고 쫀득한 삶이 녹아 있어요. 드라마는 삶을 모방한 예술이지만 우리의 삶을 능가하는 또 다른 세계의 삶이 있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런 말을 했죠 아마도? 삶은 예술보다 사실 더 드라마틱하고. 위대한 작가는 삶을 모방하고 우리는 작가를 모방하죠. 누굴 담기 위해서요? 작가를? 작가의 위대한 생애를? 작가가 모방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세계를?”
“하지만 예술과 삶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죠. 서로의 존재를 부정해도 어쩔 수 없이 연결된 원수지간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 예술과 삶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삶을 불살라가면서 그쪽에 있던 세계를 예술로 옮겨가려고 애썼죠. 어떤 예술가는 그것을 죽어서 구현했고 어떤 예술가는 어떤 지점에도 미치지 못하고 사라졌어요. 이 드라마는 어떤까요? 내가 지금 당신 노트북을 마치 내 것처럼 다루며 내 안방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드라마를 즐기고 있다면 이 행위는 예술에 해당될까요? 아니면 삶의 또 다른 치욕적인 연장에 불과할까요?”
“이런 어려운 이야기는 원한다면 태양의 열이 차갑게 식어버릴 때까지 지겹게 들려줄 수 있어요. 그러니 심각한 표정도 불만족스러운 자세도 모두 저리 치워버리고 옆으로 좀 가까이 와봐요. 이 드라마나 같이 보자니까요. 노희경이잖아요. 노희경의 드라마를 외면할 이유 백만 가지 이상을 댈 수 있으면, 당신을 용서해줄게요”
나는 그렇게 여자가 분위기를 조성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어떤 강력한 기운에 이끌려 여자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여자의 왼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밀착했다. 나는 이어폰으로 노트북의 소리보다 내 왼쪽에서 들려오는 고동소리에 더 예민해졌다. 이 여자와 나는 어쩌면 애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감각이.
내 귓속에선 여자의 목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드라마와 예술의 관계, 드라마를 만들었던 위대한 극작가들의 비참한 생애, 그들이 왜 비극에 그토록 삶을 불태워버렸는지 나는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내 삶은 지극히 드라마의 작은 장치이거나 1막과 3막 사이를 잠시 통과하는 소품 같은 거라고 생각하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비극들이 내 페이지에 기록될지 예측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생각만 들뿐이었다.
“연희라고 해요. 김연희.”
“저는 홍대리, 아, 민석이라고 합니다.” 나도 모르게 내 정보를 발설했다.
“저는 글을 쓰고 있어요. 아, 그렇다고 작가 뭐 그런 건 아니고요. 조그만 잡지 회사에서 기자일을 하고 있어요”
“……”
여자는 내 대답을 멀뚱하게 앉아서 듣고는 지우개로 슥슥 지우는 것 같은 눈치다.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저는 한 달 전까지 IT 회사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잘 나가는 개발자였지만 뜻하지 않는 변수가 생겨서 현재는 백수로 지내고 있답니다. 그런데 백수도 여의치 않아서 이렇게 목적 없는 여행을 등 떠밀리듯 선택하고 말았네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저는 코드를 쓰고 있어요”라고 나름 여자의 말에 라임을 붙여야 할 것 같아서 나름 형식을 갖춰서 말했지만, 오히려 그 표현이 여자의 기운을 빼놓은 건 아닐지 걱정이 들었다. “아 그래요? 개발자이신가 봅니다. 제 주변에 개발자 분들이 많아서 나름 친숙하긴 하네요.”라고 오히려 여자는 반갑게 되물었지만…
버스는 서울에서 출발한 지 어느덧 2시간 가까이 지나고 있다. 지금쯤 버스는 아마도 대전 어디쯤을 동과 중인 것 같다. 창밖으로는 성급한 여름 바람이 기다림에 지쳤다는 듯, 커다란 기운이 감싼 채 막 움트려 하고 있다. 나는 막연한 기대감을 꽉 막혀버린 차창 바깥으로 띄워 보내고 싶었지만, 그런 감정은 현재 나에게 어울리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