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새넷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lys Jul 29. 2021

교사는 어떻게 꿈을 꾸는가?/푸르른 민주주의로 가는 길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윤희영_창원 교방초등학교 교사

1.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옛 마산 구도심에 위치한 교방초등학교는 최근 재개발로 인해 높은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기존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가 흐르고 섞임에 들썩이는 동네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또 경남형 혁신학교인 ‘행복학교’ 4년을 발판삼아 ‘행복나눔학교’로서의 새로운 길을 2년째 걸어가고 있는 학교이다. 


  이 학교와의 첫 만남은 2019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대학원에서 만난 서울 선생님에게 듣게 된 혁신학교 이야기는 말 그대로 혁신이었고, 혁신학교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궁금증이 생기게 되었다. 그럼 직접 경험해보며 해소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렇게 교방초등학교와 만나게 되었다. 


  처음 만난 학교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월 워크숍에서 ‘다른 우리가 모여 함께 빛나는 학교’라는 비전을 듣고, 나는 ‘민주주의’를 읽어낼 수 있었다. 무릎을 ‘탁’하고 쳤다. 내가 지금까지 중요하게 생각했던 교육이 민주주의와 맞닿았음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비전처럼 무엇이든 ‘마음껏’ 해도 되는 학교였기에 도전 정신이 투철한 나는 아주 빠르게 적응해갔다. 그러다 문득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선생님은 프로젝트 수업 왜 하나요?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하고 있기는 한데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수업 속에서는 살아있는 교육과정을 만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삶과 연결되는 살아있는 배움은 아이들에게 가슴 뛰는 순간을 만들어 내게 했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배움의 주체가 되었다. 경험으로부터 명쾌하지는 않지만,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달까. 그리고 3년째 교육과정과 수업으로 지지고 볶다 보니 ‘주체로서의 학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생겼고, 다시금 새로운 질문이 앞에 놓이게 되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교사의 삶은 곧 교육이다. 교육을 빼놓고는 교사의 삶을 논할 수가 없다. 그래서 교사의 꿈 역시 교실에서 수업을 통해 실현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선 질문처럼 명확한 대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나를 비롯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어떤 꿈을 꾸고 그 꿈을 어떻게 실현해 나가고 있는지 되새김질을 해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감히 세상의 곳곳에서 고군분투 중인 선생님들의 꿈에 작은 응원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다음’에 무엇이 올지를 함께 고민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2. 우리가 꿈꾸는 방법 


가. 아이들의 변화가 다시 도전하게 한다.

 “선생님! 심장이 너무 떨려요.”


  생애 첫 투표의 순간을 경험하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만 19세가 되어야 비로소 생기는 선거권을 7년이나 먼저 경험해본다는 설렘인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의 가치를 느꼈기 때문인지, 투표소와 거의 비슷하게 꾸며진 모습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수많은 투표를 했을 텐데 이번을 특별하게 생각한 이유는 수업으로 인한 결과였으리라고 기분 좋게 짐작해본다. 독재 정권을 향한 저항의 역사를 알지 못했다면,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 중에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아 정책을 제안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설렘이란 생각이 들었다.


  바야흐로 2월의 끝자락, 다양한 철학과 가치가 내포된 학교 비전을 나누고 교육과정을 엮어내던 그 무렵으로 거슬러 가면, 5, 6학년군 교육과정은 ‘민주시민’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민주시민’을 수업으로 어떻게 풀어갈지 디자인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정치를 활자로만 인식하지 않고 몰입하여 실제 생활에서 살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처음엔 우리 지역의 문제를 민주적 의사결정 방법을 거쳐 해결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민주주의’의 가치와 방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정치 주체로서 참여와 책임 의식을 느낄 수 있어야 할 텐데 우리 지역의 문제는 그러기 어려울 것 같다는 같은 학년 선생님의 우려로 보류되었다. 지루하고도 치열한 회의가 이어졌다. 그러다 ‘A’가 떠올랐다.

 위 사진은 작년 우리 아이들이 5학년일 때 함께 한 공간혁신 프로젝트 수업인 ‘우리들의 너나들이 공간 만들기’의 장면이다. ‘A’는 가운데 드릴을 쥐고 있는 아이가 아니라, 옆에서 드릴과 함께 나무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뚫어지게 쳐다보는 남학생이다. ‘A’는 학습에 의욕이 많지 않았고 틀릴까 봐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또 글을 쓰거나 미술 작품을 만들 때 여러 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할 정도로 자신감도 많이 잃은 아이였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무기력감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만약 이 공간혁신 프로젝트 수업이 없었다면 ‘A’가 관찰력이 좋아 드릴 작업에서 어떤 부분에 주의해야 하는지 친구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기여의 경험을 가질 수 있었을까? 모둠 친구들이 먼저 해볼 수 있도록 드릴을 내밀고 나사못을 건네주며 자기가 마지막에 하는 배려심 많은 모습을 우리 반 친구들이 발견할 수 있었을까? “선생님, 저도 목공 선생님 도와드려도 돼요?”라면서 수업 후 뒷정리까지 손을 보태는 적극적인 모습에 빙그레 미소 지을 수 있었을까?


  ‘A’ 외에도 우리 반에는 시차 등교 중에도 한 시간이나 먼저 등교하는 아이가 있었다. 나중에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프로젝트 수업이 있는 날이면 설레서 일찍 학교로 갔다는 뒷이야기를 들었을 때 감동은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이다. 또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로부터 “게임보다 프로젝트 수업이 더 재밌어요.”, “제가 꿈이 없었는데 이제는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공간혁신 프로젝트 수업은 코로나19로 인해 수동적이고 단편적으로 배울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에게 가슴 뛰는 순간을 만들어 준 수업이었다. 


  가치로운 수업이었다는 그 좋은 기억 때문이기도 했고 아이들의 정치 결과가 비교적 빠르게 실현까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6학년 첫 프로젝트 수업은 ‘공간혁신’과 합쳐지고 ‘판’이 커졌다. 그리고 수업 디자인 과정에서 핵심은 다음과 같이 선생님들과 함께 논의해서 정했다.


① 모든 것을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 의사결정 원리에 따라 1부터 10까지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결정하게 하자.

②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 절차를 배우게 하자.

③ 승자 독식의 선거가 아니라 더 좋은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정치 과정으로서 선거를 활용하자.

 끝으로 3월의 의기, 4월의 선혈, 5월의 희생이 6월에 이르러 자유와 정의로 푸르게 빛났던 우리의 대한민국! 이런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을 아이들이 몸소 느끼고 실제 생활에서 살아낼 수 있는 수업이 되겠다는 같은 학년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푸르른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라는 멋진 제목도 갖게 되었다. 제목이 붙는 순간 시작도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설레기 시작했다. 긴 여정의 길에서 ‘야! 나도 정치할 수 있어’를 배울 수 있길,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민주적으로 ‘싸우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길 바라며 프로젝트 수업을 시작했다.


나. 교사의 주체성이 살아있는 교육과정을 만든다.


  작년에 ‘주체로서의 교사’라는 화두가 학교를 달궜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나의 철학으로 교육과정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교사 그 자체가 교육과정이며, 교사의 마음이 바뀌는 그 자리에서 이미 우리 우주의 변화는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바탕에는 우리 학교의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교사마다 가진 철학을 풀어갈 수 있도록 ‘여백’을 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 과정에서 정한 원칙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성취기준을 재구조화하여 수업의 굵직한 흐름만 잡고 실천은 각 학급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간다. 무미건조한 교육과정 옆에 선생님의 삶과 철학을 살짝 놓아두는 것으로 나의 우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소위 ‘역사 덕후’인 나는 의미 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인 민주화의 역사가 비단 ‘민주 투사’라는 이름의 김주열, 박종철, 이한열 같은 위인들의 이야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만 기억되지 않길 바랐다. 오늘 걸었던 창동 골목의 이야기였고 아침에 밝게 인사했던 옆집 아주머니의 이야기였으며 몇 년 전 촛불을 들었던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길 바랐다. 그래야 역사에 몰입할 수 있고 무엇이 시민들을 광장으로 이끌었는지 공감하여 일상의 파시즘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찐시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시간 우리 지역의 역사 속 사진으로 시작했다. 

 왼쪽 사진은 ‘3.15 의거’ 당시 마산도립병원(現 마산의료원)에 안치된 김주열 열사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다. 특히 앞쪽에 초등학생들이 눈에 띄어 골랐던 사진이었다. 오른쪽 사진은 열심히 검색한 끝에 찾을 수 있었던 마산역 앞에서 벌어진 ‘부마민주항쟁’의 기록이다. 내가 배움 주제를 고민한 것보다 훨씬 나은 아이들의 질문이 배움 주제를 대신했다.


  의도했던 바가 실현되었는지 당장 확인할 수 없지만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채워나갔던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은 영화 <1987>의 마지막 장면에서 폭풍 눈물을 쏟으며 마무리되었다. 민주화 운동을 경험하지 못했던 2021년 13세의 아이들이 슬프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은 1987년 6월의 연대와 환희의 순간에 감정이입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는 ‘1987년 6월,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이라는 주제로 쓴 글에서 모두가 다양한 모습이었지만 ‘호헌철폐, 독재 타도’를 힘껏 외치는 시민 중 한 명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물론 같이 그 장면을 보면서 주책스럽게 훌쩍거리던 담임 선생님의 영향도 있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 교실에서 주체가 되어 교육과정에 숨을 불어넣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다. 함께함이 새로운 길을 걷게 한다.


  <꿈동이의, 꿈동이에 의한, 꿈동이를 위한 정치>라니! 아이들의 눈빛을 보니까 주제 이름만 들어도 느낌이 오는 모양이다. 먼저 ‘정치가 싸움이 되지 않으려면?’이라는 주제로 민주적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를 배웠다. 아직 정치를 배우기도 전인데 이미 다 배운 양 잘도 글을 써 내려가는 아이들이 기특했다. 이후의 과정을 통해 생각만 했던 절차와 태도를 직접 경험하면서 잘 배워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공간혁신’으로 ‘찐시민’이 되기 위한 우리의 여정은 말 그대로 ‘step by step’의 과정이었다.


  가장 먼저 학교 공간을 탐색하고 모둠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공간혁신에 적합한 공간을 선택했다. 같은 공간을 선택한 아이들끼리 모둠을 이루면 되겠다는 생각은 아이들은 내 생각처럼 N등분 되지 않는다는 첫 번째 난관을 만나게 되었다. 너무 많이 모인 장소는 두 개의 모둠으로 ‘알아서’ 조정하게 하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한 명만 선택한 ‘생명의 숲’은 없어질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생명의 숲도 여러분이 정한 기준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으니까 상상할 거리가 많지 않을까요?”


  아뿔싸! 선생님 말의 무게가 이렇게나 무거운지 생각하지 못했다. 말 한마디에 한 명이 여덟 명이 되었다. 민주주의에서 ‘빅마우스’는 경계해야 한다고 뒤늦게 알려주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모둠이 정해지고 학생들에게 필요한 공간이 무엇일지, 공간에 어떤 가치를 담을지, 실현 가능성과 공공성, 창의성 등을 고려하여 어떻게 디자인할지, 모둠 발표를 위해 어떤 역할이 필요하고 어떻게 나눌지 등 모둠별 준비 과정에 다양한 토의·토론 방법을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안의 장단점을 분석하거나 다양한 측면에서 의견을 나누고 모으는 방법을 찾길 바랐다. 또 ‘민주주의 실천을 위한 태도는 대화와 타협, 비판적 사고, 관용이다.’라는 문장이 현실에서 살아나길 바라는 의도도 있었다. 

 드디어 모둠별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시차 등교로 11시 20분까지 등교였지만, 아이들은 내가 출근하기 전부터 교실에 앉아 발표 자료를 다듬고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공청회까지 11시 20분이라는 등교 시간은 유명무실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비밀이다.


  투표를 통해 우리 학급 의견이 정해졌지만, 다시 토의하면서 뽑힌 방안에 필요한 것을 더해 더 구체적이고 좋은 안으로 함께 만들어나갔다. 승자 독식의 선거는 대표자를 뽑는 것에만 한정되어야 하고, 모든 투표는 가장 좋은 방안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려의 민족당’이라는 비전에서 따온 이름으로 우리 반은 ‘한팀’이 되었다. 효과적으로 발표하고 홍보할 방안이 무엇인지, 잘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 등을 함께 정하고 함께 준비해서 공청회까지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두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홍보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던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다. 친한 친구의 영상 촬영을 돕고 싶었던 아이는 자기 역할에 소홀하게 되었고 홍보팀은 그런 행동에 뿔이 난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양쪽 이야기를 듣고 입장을 정리해주는 ‘소통의 달인’이 있어 다시금 힘을 모아 더 열정적으로 연습하는 것으로 갈등이 해결되었다. 놀라웠던 것은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아이들이었다.


  공청회에서 발표와 경청이 빛났다. 질문이 빛났다. 덕분에 선거가 빛났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전에 충분한 대화와 타협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 절차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선생님! 심장이 너무 떨려요.”

  이렇게 우리는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빌려온 ‘실제’ 기표소와 투표함으로 ‘실제’와 같은 절차로 공간혁신 디자인 방안을 뽑는 선거를 했다. 그리고 개표 시간! 개표도 역시 ‘실제’처럼 학교 방송실을 빌려 개표방송을 진행했다. 자기 당 이름이 불릴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는 통에 온 복도가 들썩들썩했다. 결과는 아쉽게 되었지만, 아이들은 이미 결과는 상관이 없는 표정이었다.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한 명, 한 명이 주체로 반짝반짝 빛났다는 것을 모두가 이미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푸르른 민주주의로 가는 길>의 마무리는 과거의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의 역사와 ‘꿈동이’들의 정치를 합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민주주의 ing>이다. 코로나19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주 성지 탐방을 떠났다. ‘소풍’이 아니라 체험 ‘학습’으로 배움에 진지하게 참여한 아이들이 대견했다. 아이들은 국립 3‧15 민주 묘지의 담벼락에 핀 베고니아꽃 구경을 하려고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창동의 구두닦이였던 오성원 열사의 이야기를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으며, 산책길에 오고 가며 보았던 3‧15 의거탑의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프로젝트 수업이 끝날 무렵, 교장 선생님께서 한 말씀이 떠올랐다. 대안보다 대안 세력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그렇게 함께하는 세력으로서 문을 열어 길을 만드는 자리에 있다. 동료 선생님의 글로 우리가 꿈꾸는 방법의 맺음을 대신한다.

  “푸르른 민주주의로 가는 길 위에서 우리는 과거의 시민들을 만났고 현재의 공간혁신이라는 문제를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걸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초록빛의 이파리들을 보았다. 길의 끝은 문이라고 했다. 프로젝트가 끝난 지금 2학기에 실제로 공간을 혁신해야 한다는 큰 문이 우리 앞에 닫혀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과 서로 다른, 그래서 서로를 채우는 같은 학년 선생님들의 시너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함께 이 문을 연다면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것
이다.”


3. 꿈꾸는 우리가 모여


  선생님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나요?이 학교에 와서 변한 사람인가요?” 

  최근에 받은 질문인데, 나는 교방에 와서 선생님으로서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꿈을 어떻게 이뤄나가며, 행복한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 수 있는지 배우는 중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선뜻 대답할 수 없었던 질문에 대해 조금은 자신감 있게 답할 수 있게 되었고, 망설이기보다 일단 해보려 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의 가치와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행복은 누군가가 나의 손에 쥐여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며, 그 선택에 따라 만들어가는 ‘나’와 ‘너’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자, 그 결과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남형 혁신학교인 ‘행복학교’는 행복을 어딘가에 미리 쌓아두고 나누어 주는 증식과 배분의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각 주체가 관계 속에서 행복을 공동체와 함께 만들어가는 생태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1학년 입학을 온 공동체가 열렬히 환대해주었다. 우리 6학년은 첫 만남에서 직접 만든 장식품을 선물하였고 다정하게 손을 잡고 학교 곳곳을 소개해주었다. 또 두 번째 만남에서 무더운 날씨에 동생들이 더울까 봐 손부채를 해주고 해를 가려주었다. 그랬더니 1학년은 선배들에게 한 글자, 한 글자 배워서 편지를 써 왔다. 또 환대해준 교육공동체에게, 마을공동체에게 감사의 인사를 온종일 전하려 다녔다.


  “‘환대’라는 단어가 처음엔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따뜻한 만남, 아이들 자체를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이루어진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아이들도, 나도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는 듯하다. ”


  “북극곰은 너무 멀리 있지 않나요?”

  평생 살아도 한번을 보기 어려운 북극곰을 대신하여 지역의 명산인 무학산에 사는 다람쥐들을 위해 도토리 저금통을 만들어 주었던 친구들이 4학년이 되어 이번에는 알을 부화시켜 병아리와 오리를 키우는 중이다. ‘공존’을 어떻게 풀어갈지 함께 고민하던 선생님들이 풀어낸 방식이 놀라웠다. 실제로 키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멀리 가는 법은 바로 함께 가는 법이라고 했던가. 동료 선생님들이 꿈을 꾸는 방법이 다시금 한 발을 내딛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우리 청둥이와 건강이의 행복을 위해 가슴 아프지만, 유학을 보내기로 했다. 언젠가는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오겠지만, 주남저수지에 가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기대하며 아직은 행복을 만끽하기로 했다. 청둥오리가 먼 길을 날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함께하기 때문에, 그리고 서로서로 돌아가며 리더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멀리 올 수 있는 거라고. 우리는 청둥오리를 기르면서 삶의 지혜를 배웠다. 아이들이 오리를 기르면서 오리가 우리 아이들을 기르고 있다.”


  선생님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위대한 꿈을 가지고 이 학교에 들어오는 사람은 교장 선생님뿐이지 않을까는 우스갯소리를 나눴다. 대부분 선생님은 집이 가깝다는 이유나 행복학교에 대해 조금은 궁금하다는 이유로 우리 학교를 찾는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누구든 약간의 호기심으로 교방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꿈꾸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군가가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결말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이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할 것 같다. 함께 행복을 만들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요즘이 행복하다.




+2021 여름호 목차+


들어가는 글_2021 새넷 여름호


1. 시론


2. 포럼 & 이슈


3. 특집


4. 전국 NET


5.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6. 티처뷰_teacherview


7.이 책 세 권!

+과월호 보기+


2021년


2020년


2019년


2018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